1084화. 그게 도사 된 자의 도리니까. (4)
목이 바짝바짝 탔다. 거친 무언가로 목 안을 긁어 대는 것만 같았다. 몸은 불덩어리처럼 뜨겁고, 어딘가 깊은 곳으로 계속 가라앉는 듯했다.
어둠 속으로 끝없이 침전하는 가운데, 무언가 낯선 느낌이 다가왔다. 시원하면서도 따뜻한, 그리고 온화한 무언가가.
‘아…….’
여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자 시야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조금 어두운 천장과 손을 잡은 누군가였다.
‘누구…….’
파리한 안색의 젊은 남자가 보였다.
의식이 몽롱한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경계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입은 검은 도복을 본 순간 이내 느슨하게 도로 풀렸다.
‘도사님…….’
어렴풋이 기억이 난 것이다. 의식이 흐릿한 와중 들려왔던 도호 소리가.
“아…….”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청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젊은 여도사였다.
“깨셨어요?”
이상한 일이었다. 달려오는 저 여도사를 분명 처음 보는 것인데도, 저 도복을 보고 있으니 괜히 안심되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게, 도복을 입고 사람을 해치는 이는 없으니까.
“어때요?”
여도사가 묻자 그녀의 맥문을 잡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많이 안정됐어.”
“그럼 이제 좀 물러나서 쉬세요. 사형 몸도 별로 온전하지 않잖아요.”
“괜찮아.”
“……여하튼 말은 더럽게 안 들어 먹는다니까. 굳이 사형이 안 해도 된다고 해도.”
“아직은 괜찮아. 버틸 만해.”
“네네.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대신에 이거 장문인이랑 장로님한테 다 이를 거예요.”
두 사람이 티격태격 나누는 대화를 넋놓고 듣던 여인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며 흠칫 몸을 떨었다.
“하, 학이……. 우리 학이……!”
“어머. 내 정신 좀 봐!”
양 갈래 머리의 여인이 한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더니 이내 두터운 이불로 감싼 무언가를 안아 들고 다시 다가왔다.
“아이는 잘 있어요.”
여인은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받아 안았다. 강보 사이로 보이는 평온한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여인의 얼굴에 평온이 깃들었다.
“아아…….”
그녀의 손이 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지쳐서 잠든 거예요. 건강에는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까 깨서 한차례 크게 울기도 했어요.”
“감사…….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안도와 감격에 젖은 여인이 무언가 말하려는데,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깨셨어?”
그러더니 안으로 시커먼 남정네들이 우르르 뛰어 들어왔다. 여인이 깜짝 놀라 달려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검은 도복을 입은 도사들이었다. 허리춤에는 검을 차고 있음에도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입은 옷과, 얼굴에 드리운 염려와 걱정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하라고, 이것들아! 환자 있잖아!”
“……넵.”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냥 좋아서…….”
양 갈래 머리의 여인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희희낙락하며 달려오던 남자들이 일제히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쭈글쭈글한 모습이 여인의 마음에 안심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여긴…….”
“아, 여기는 배 안이에요.”
“배……?”
양 갈래 여인, 당소소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 항주는 도무지 지낼 곳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우선은 저희가 모셨어요. 지금 강북으로 가고 있어요.”
여인이 순간 굳어진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항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지옥 같던 광경들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른 것이다. 몰려오는 공포심에 몸이 절로 굳으며 움츠러들었다. 그때, 옆에 있던 도사가 잡은 손으로 시원하고도 부드러운 기운이 훅 밀려들었다.
기운이 몸을 타고 흐르며 공포를 다시금 밀어 냈다.
“아……. 그랬…군요.”
여인은 더는 묻지 않았다. 항주가 어떻게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건 이미 그녀도 알고 있으니까.
“여러분들께선…….”
“저희는 화산파의 도사들입니다.”
당소소의 바로 뒤에 서 있던 백천이 조금 느리게 말했다. 최대한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애쓰는 게 보였다.
“화산…….”
“예. 섬서에 있는 도관입니다.”
백천이 슬쩍 제 옆에 서 있는 제 사질들을 돌아보고는 차분히 말했다.
“생긴 건 이렇지만, 놀랍게도 도사입니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 생긴 거 가지고 그렇게 말하기 있습니까?”
“걸아.”
“왜요? 사형은 기분 안 나쁘신…….”
“사숙은 그래도 된다.”
순간 말문이 막힌 조걸이 백천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어두운 얼굴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보나 마나 더러운 세상이 어쩌고 하고 있겠지.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항주를 공격했던 마교도들은 모두 물러갔습니다.”
“……저를 구해 주신…….”
“운이 좋았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를 듣고 여인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이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득 차올랐다.
“……합니다.”
떨림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화산의 제자들은 말없이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운검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저희가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괜스레 제 코를 한번 훔친 조걸은 여인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말을 돌렸다.
“고놈 참 똘똘하게 생겼네. 제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사방에서 비난이 쇄도했다.
“애한테 막말을!”
“그게 도사로서 할 말이냐? 이 천인공노할 놈!”
“주둥아리!”
알고 보면 귀하게 자란 부잣집 자식 조걸이 매우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안타깝게도 화산은 개개인의 억울함 따위는 신경 써 주지 않는 매정한 문파였다.
“아니, 보십시오! 여기 이 볼이…….”
조걸이 검지로 아이의 볼을 꾹 하고 누르는 순간이었다. 그 감촉에 눈을 뜬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어, 어어? 내, 내가 그런 거 아니…….”
“근데 이 새끼는 진짜!”
결국 윤종의 주먹이 사정없이 조걸을 턱주가리를 돌려 버린다. 조걸은 그 와중에도 아이가 놀랄까 봐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배가 고픈 모양이네.”
“아…….”
아이의 어머니가 우는 아이를 보다 화산의 제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 도와드립니까?”
“뭘 하면 됩니까?”
“시켜만 주십시오!”
다들 당황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고 봤다. 당소소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사형들.”
“응?”
“……애 젖 먹여야 하니까. 당장 나가세요.”
“넵.”
화산의 남자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우르르 달려 나갔다. 청명 역시 몸을 일으켜 그들과 함께 나갔다.
“하여간…….”
당소소가 혀를 차고 고개를 내저으며 열린 문을 꽉 닫았다. 그사이 아이에게 젖을 물린 여인이 제 아이의 뺨과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당소소가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곧 미음을 준비해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폐를 끼칠 수는…….”
“폐라뇨. 너무 당연한 거예요. 걱정 마세요. 저희 사형들이 좀 멍청하긴 하지만 능력은 좋거든요.”
당소소가 살짝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람들도 다들 좋고요. 착해 빠져서는…….”
여인은 말없이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닫힌 문 쪽을 보는 당소소의 시선이 따뜻했다. 저들을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좋은 곳이구나.’
그 관계만으로도 모두가 따뜻한 이들이겠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여인은 문득 어두워진 얼굴로 머뭇머뭇 입을 뗐다.
“저희는, 이제 어디로…….”
“네? 아!”
여인을 돌아본 당소소가 아차 하며 설명했다.
“아무래도 항주는 더 이상 사람 살기 어려운 곳이 되어서,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드리려고 해요. 혹시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이 있으신가요?”
여인은 막막하고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땅을 일구고 살아가는 이들은 보통 한 지역에 일가가 모여 살기 마련이다. 항주에 돌아갈 수 없다면, 그녀와 그녀의 아이는 이 넓은 중원에 발붙일 곳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음. 그럼…… 장강변에 있는 마을에 의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당소소가 제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어린아이를 키우는 여인이 외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갈 곳이 없으면 사천이나 섬서로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사천에는 당가가 새로 만들고 있는 마을이 있고, 섬서는 화음이 참 살기 좋거든요. 인심도 좋고.”
여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천과 섬서라니. 이름만 들었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곳이다. 그런 곳으로 가서 어린아이를 돌보며 홀로 살아야 한다니 덜컥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여인이 무심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아 주고 있었다.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아요.”
“…….”
“다 좋은 곳이니까.”
무표정한 얼굴. 인상이 서늘해 조금 무서워 보일 수도 있는 얼굴이지만, 잡은 손이 따뜻해서인지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유이설도 어떻게든 여인을 안심시키려 필사적이었다.
당소소가 그런 유이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명랑하게 거들었다.
“네, 맞아요. 너무 걱정하실 것 없어요. 그런 건 저희 장문인께서 어떻게든 해 주실 테니까요. 아무 걱정 마시고 몸부터 추스르세요.”
“……네.”
아이를 안은 여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힘이 들어간 손이 말해 주는 듯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 아이만은 지키겠다고. 유이설은 그런 그녀의 한 손을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당소소가 말했다.
“그럼 조금 쉬세요. 곧 미음 가져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유이설을 이끌고 조용히 선실을 빠져나왔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유이설이 당소소에게 물어왔다.
“진짜 괜찮아?”
“네. 청명 사형이 무리한 덕분에요.”
“…….”
“여하튼 못 말리는 사람이에요. 제 몸도 멀쩡하지 않으면서, 잔소리를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다니까.”
“그런 사람이니까. 원래.”
“네, 그런 사람이죠. 알긴 아는데…….”
당소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걱정되는 마음이야 알겠지만, 누군가에는 그 역시 걱정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아이…….”
“아이도 괜찮아요, 사고. 걱정 마세요.”
유이설은 작게 끄덕이더니 물결치는 장강을 응시했다. 한참 후에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어머니도…….”
“…….”
“내 어머니도 저런 눈으로 날 보셨을까?”
당소소는 조용히 손을 뻗어 유이설의 손을 가볍게 잡아 주었다.
“그랬을 거예요.”
“…….”
“분명히.”
유이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물었다.
“미음은 어떻게 쒀?”
“……제가 할게요.”
“어떻게 쑤는 건지 물었는데.”
“제가 할게요.”
그 부드럽지만 단호한 대답에 유이설이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