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3화. 그게 도사 된 자의 도리니까. (3)
파아아앗.
화산의 제자들이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그러면서도 연신 당소소의 품에 안긴 아이를 힐끔거렸다.
“……괜찮은 거지?”
“괜찮다니까요.”
“……진짜 괜찮은 거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이 인간이?”
내내 인내하던 당소소가 결국 눈에 불을 켜자 백천이 찔끔했다.
“아, 아니. 나는 걱정이 돼서…….”
유난히 더 푼수처럼 구는 백천을 보며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는 괜찮아요. 그냥 탈진한 것뿐이에요. 되레 저분이 문제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획 돌아갔다. 유이설의 등에 업혀 있는 여인에게로.
“조금만 늦게 발견했어도 정말 돌이킬 수 없었을 거예요.”
“아…….”
그 말에 모두가 몸서리를 쳤다.
그들이 그냥 항주를 떠났다면 이 여인과 아이는 그대로 잔해에 파묻혀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이리 탈진한 상태로 홀로 그곳을 빠져나올 순 없었을 테니까.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아니, 부정 타게!”
“입 좀 다무십쇼, 시주!”
“확 마!”
“……미안한데, 마지막은 어느 새끼냐?”
백천이 눈을 부라리자 조걸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백천은 이를 갈아붙였지만, 지금은 조걸 따위(?)를 때리느라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 참았다.
일단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저 모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장강은요?”
뒤를 따르던 임소병이 조금 급한 목소리로 답했다.
“북쪽으로 달리면 하루 꼬박입니다.”
그러자 백천의 시선이 유이설이 업은 여인에게로 향했다. 당소소가 괜찮다고 했으니 당장 탈이 나지야 않겠지만, 아무래도 불안했다.
어쩌면 지금 그가 느끼는 다급함은 이성적인 게 아닐지도 모른다. 겨우 건져 낸, 그 지독한 항주에서 겨우 얻어 낸 것을 절대 잃어선 안 된다는 조바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천은 알고 있다. 때로는 이성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는 것을. 지금 그들이 느끼는 조바심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숙!”
“그래. 속도를 더 높이자꾸나.”
“자, 잠시만요! 도장님들! 여기서 더 빨리요?”
임소병이 ‘야, 이 미친놈들아! 지금 설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라는 얼굴로 외쳐 댔지만, 백천은 대답 대신 다른 곳만 흘끔거렸다.
임소병은 자연스레 백천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남궁도위가 ‘내가 달리다 뒈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속도는 안 늦춘다!’는 말을 얼굴로 해 대고 있었다.
“……이래서 아버님이 정파 새끼들이랑은 상종을 하지 말라고 했구나…….”
누가 사파 놈들더러 정신이 나갔다고 했는가?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은 모조리 잡아서 저 미친 화산파에 던져 버려야 한다.
“달려!”
“히익! 가, 같이 좀!”
임소병이 기겁을 하며 속도를 높이는 화산의 제자들에게 따라붙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보조를 맞추는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임소병에겐 생존의 문제다. 이 강남 땅에 홀로 낙오하기라도 하면, 그 뒤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아, 아니. 가, 같이 좀……. 쿠, 쿨럭! 나도 병자……. 쿨럭! 나, 나는 병자도 아니냐. 이 새…끼들아! 쿨럭! 쿨럭! 쿨럭!”
속이 뒤집힌 임소병이 폐를 토할 듯 기침을 해 댔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니, 사실 한 명은 시선을 주었다. 그래도 미운 정이 남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붙은 건지, 청명이 살짝 안쓰러운 눈으로 돌아본 것이다.
“도, 도장!”
임소병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쯧쯧. 저 사파 새끼. 언제 뒈지나 했더니, 이제야 뒈지는 모양이네.”
“…….”
“여기 혼자 남아 뒈지나, 달리다 뒈지나, 어차피 뒈지는 건 똑같은데 그냥 미리 묻히지? 그게 시체라도 온전히 남기는 방법 아닐까?”
“……개새…….”
“뭐?”
“쿨럭! 쿨럭! 쿨럭!”
임소병이 재빨리 기침하며 청명의 눈을 외면했다. 물론 속으로는 욕을 퍼부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이 새끼야?’
저런 새끼들이 측은지심이 어쩌고 한다. 태상노군이 보다 빡쳐서 무릎으로 대가리를 찍어 버릴 새끼 같으니.
“으…….”
그때 유이설의 등에 업힌 여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모두가 말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의식을 되찾아 나오는 신음이 아니라, 그저 흘러나온 신음인 모양이었다.
“사매, 괜찮으냐? 교대할까?”
“제가 할게요.”
“……그래.”
백천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의 여인에게는 별일이 아니겠지만, 사가(私家)의 여인에게는 외간 남자의 등에 업히는 것도 큰일일 수 있다. 그러니 결국 이 중에서 좀 더 고강한 유이설이 여인을 업을 수밖에 없다.
‘힘들 텐데.’
백천이 안쓰러운 눈으로 유이설을 보았다.
환자를 업고 달리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흔들림이 전달되면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수 있으니, 발을 한 번 내디디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한다. 평소보다 체력이나 심력이 두 배로 소모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이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여인을 업고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책임감이 진득하게 배어났다.
“소소야, 아이 내가 안을까?”
“손 떼요, 사형! 어디 그 더러운 손을 애한테!”
“……더럽다니.”
한구석에선 조걸이 크게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당소소는 절대 아이를 넘겨주지 않고 이를 드러냈다.
“다른 사람은 다 돼도, 사형은 안 돼.”
“그건 맞지.”
“넌 저 뒤로 가 있어라. 애 깨서 네 얼굴 보면 경기 일으킨다.”
“……근데 이 양반들이…….”
화산의 제자들은 빠르게 앞으로 치고 달렸다. 언제 사패련이 덮쳐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떨치기 위해서 농을 해 대고 있지만, 움직임만큼은 필사적이었다.
“허윽……. 허윽!”
시간이 흐르자, 잘 따라붙던 임소병이 슬슬 뒤쪽으로 처지기 시작했다. 오랜 지병 때문에 지구력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출발한 이후로 쭉 무리를 하지 않았던가.
화산의 제자들이 순간 시선을 주려 했지만, 그런 그들의 귓가에 덤덤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냥 달려.”
그 말을 남긴 청명이 슬쩍 뒤로 빠졌다. 그러더니 영 마뜩잖단 표정으로 임소병의 등에 손을 댔다.
“뭔 놈의 산적 새끼가 이렇게 체력이 약해?”
“사, 산적이 이렇게 뛸 일이 뭐가……. 쿨럭! 뭐가 있다고!”
“예이, 예이.”
“그, 그래도, 허억! 도와주긴 하시네…….”
청명이 슬쩍 혀를 찼다.
“뭐, 나름 밥값은 했으니까.”
임소병이 아니었으면 흑귀보가 덮쳐 왔을 때 모두 죽었을 것이다. 평생을 살며 사파 놈 덕분에 살았다는 말을 입에 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빨리 뛰어라, 산적 놈아. 진짜로 내버려 두고 가기 전에.”
“……사갈 같은 인간.”
“응?”
“……아닙니다.”
임소병이 입을 삐죽거리며 다리에 힘을 밀어 넣었다. 머리에 쓴 관이 제멋대로 구겨져 흘러내렸다. 그래도 청명이 등을 밀어 준 덕분에 웬만큼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다 문득 그는 슬쩍 다시 속도를 늦추었다. 청명이 의아하게 물었다.
“뭐 해, 인마?”
“잠시만.”
앞 사람들과 거리를 조금 벌린 임소병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장?”
“뭐가?”
“저 여인과 아이 말입니다.”
유이설의 등에 업힌 여인을 보며, 임소병은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몰라 뒤져 봤지만, 다른 생존자는 없었잖습니까.”
“…….”
“건장한 남자도 버티지 못하는데, 저런 여인이 그 충돌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도무지…….”
청명은 딱히 대답하지 않고 달렸다. 그 굳은 안색을 힐끗 본 임소병은 답을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달렸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무척 무거웠다.
“제가 짐작하는 게 맞는 겁니까?”
“……글쎄.”
임소병은 여인과 아이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 애초에 그 주변이 초토화되도록 마기를 뿜어낸 이는 단자강이다. 장일소와 청명은 오직 단자강 하나만을 공격했으니까.
휩쓸린 이들이 죽은 원인이 단자강이었던 만큼, 저 모자가 살아남은 이유 역시 단자강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임소병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다. 마기에 먹혀 이성을 잃고 날뛰던 이가 특정한 곳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저 우연일지도 모르지.”
“……그렇네요.”
청명도 임소병도 그 이상은 말을 잇지 않았다. 아마 그 답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대답을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까.
전방을 주시하는 청명의 눈이 어두웠다.
이건 그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청명은 그곳에 여인과 아이가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단자강과 천살이라는 대적을 앞에 두고 다른 곳에 신경을 분산할 수 있을 만큼 지금의 청명은 강하지 않다.
임소병의 말대로, 이 모든 것은 그저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정말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청명이 생각하는 게 맞다면…….
‘마교도라 해도…… 결국은 사람의 자식이라는 건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알고 있다 해도 잊어야 한다.
“그러니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
청명의 중얼거림에, 임소병은 영문을 모르겠단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청명은 그런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다른 존재로 이미 가득했다.
‘천마.’
아무리 교리를 받아들인다 해도, 세뇌에 가깝도록 배운다 해도 인간은 결국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존재다. 그리고 마음 안에 있는 작은 측은지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천마가 너무도 끔찍한 것이다.
그런 인간을 맹목적인 광신도로 만들어 버리니까.
‘반드시……. 내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다시는 천마가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들어선 안 된다. 항주의 참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심을 굳힌 듯 입술을 질끈 깨문 청명이 임소병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마, 말로 하시라고!”
그렇게 다시 날이 저물도록 달리고 또 달린 끝에, 화산의 제자들이 마침내 장강에 도착했다.
지쳤다는 말로도 부족한 몸을 이끌고 겨우 도착한 그들이 본 것은, 강변에 서 있는 거대한 한 척의 배였다. 그 소속이 너무도 분명해 보이는.
말을 잃고 멍하니 그 배를 보던 이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수적 놈들 배지?”
“……그런 것 같은데요?”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이게 왜 여기……?”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 사이로 걸어 나온 청명이 빈 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여하튼 성격 더럽다니까, 장일소 새끼.”
윤종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빈 배를 보다 말했다.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걸까?”
“모르지. 뭐, 상관있겠어?
청명이 배를 향해 턱짓했다.
“타고 가란 모양이다. 타자.”
“이, 이걸?”
“수적 놈들 배인데?”
“그럼? 이 사람들 데리고 헤엄이라도 치게?”
화산의 제자들은 영 떨떠름한 얼굴로 배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별수 없구나. 타는 수밖에.”
“예, 사숙조.”
운검까지 그리 말하니 화산의 제자들은 께름칙해하면서도 빈 배에 올랐다. 닻을 올리고, 접힌 돛을 펼치자, 이내 배가 강을 타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길었네.”
“그러게.”
난간에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겨우 기댄 화산 제자들은 온갖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강남을 보았다. 채 이틀도 안 되는 시간이었건만, 수개월은 지난 듯한 느낌이었다.
침묵하며 멀어지는 땅을 바라보던 그때, 그들의 귓가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스쳤다.
“……깼나 봐요.”
당소소가 안은 아이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아이의 작은 손이 그녀의 엄지를 꽉 쥐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모두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백천은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다음에는…….”
“예, 사숙.”
윤종이 담담히 대답했다.
“다음에는 다를 겁니다.”
서로를 바라본 이들은 다시 당소소의 품에 안긴 아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노을에 젖어 붉게 물든 강 위로 한 척의 배가 고요히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