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화. 그게 도사 된 자의 도리니까. (2)
진혼제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도관에서 정식으로 하는 진혼제를 하기에는 준비된 물품이 너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향과 향로조차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형식은 모두 갖추지 못했으나, 축문(祝文)을 외고, 도경을 읊는 화산 제자들의 자세는 경건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의례라는 것은 죽은 자들에게 지키는 예의일 뿐. 그 어떤 휘황찬란한 의례라 해도, 진심을 담은 고갯짓 한 번 이상의 가치는 없는 법이다.
화산의 제자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하나하나의 동작에, 한 번 내뱉는 말끝에 그들의 진심을 담았다. 이곳에서 죽어 간 이들이 죽음 뒤에서라도 평온한 안식을 얻기를 기원하며 말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 그건 그들이 무인이기 이전에 도를 추구하는 도사라는 것.
하지만 화산의 제자들조차 때때로 자신이 어떤 이들인지 잊어버리고 만다. 지금 이 자리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동시에, 그들의 본분을 되찾는 자리였다.
뒤쪽에 선 청명이 도경을 외는 제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장 왼쪽에 선 당소소부터 가장 우측에 선 백천까지. 그 모든 이들의 뒷모습을 남김없이 눈에 담은 청명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사형.’
과거 화산에서도 종종 도제를 올리고는 했다. 청명은 지루한 예식에서 빠지려 애를 써 댔지만, 청문은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 구석 자리에라도 세우려 애썼다.
- 너는 검수이기 이전에 도사다.
- 협의 없는 검은 산도적의 칼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이도 아닌, 바로 너이기에 더욱 도사로서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를 좇는다, 어쩐다 하지만 진혼(鎭魂)의 기본은 측은지심이다. 네 스스로 그것을 타고나지 못했다면, 보고 배우기라도 해야 한다. 그게 화산의 제자로서 네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일이다.
“……뻔한 잔소리.”
그래, 그랬다. 과거에는 그리 생각했다.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제례 따위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생각했다.
사람이란 죽어 버리면 그저 그만인 것을. 흙에 묻힌 이들에게 바치는 경이 무슨 소용이고, 그들에게 흘려 주는 눈물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랬었지.’
청명이 천천히 감은 눈을 떴다.
그때의 청명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도의 가치를 알고, 더욱더 알아 가고자 화산에 오른 게 아니라 화산에 버려진 이였으니까.
그는 자장가처럼 도경을 듣고 자랐고, 놀이처럼 도제(道祭)를 보며 컸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이 모든 것은 굳이 의미를 생각할 것 없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알지 못했다.
어째서 사람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그리고, 넋을 기리는지 말이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이는 잃을 수도 없으니까.
‘사형, 저는…….’
그가 잃은 건 처음부터 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살아 가며 만들어 낸 것이다. 아니……. 그가 원치 않았음에도 그저 당연하다는 듯 주위에 머물러 주었다.
그렇기에 알게 되었다. 잃고 나서야.
돌아오지 못할 죽은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남겨진 이들이 어떤 심정으로 도관을 찾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예전의 청명이 알지 못했던 것을 알고, 그가 지키지 못한 것을 지키려 하는 이들이 있다.
아직 어린 화산의 제자들이 경건하게 도경을 외는 소리가 황량한 땅에 낭랑하게 퍼져 나갔다.
선두에 선 운검이 하나 남은 손을 가슴 앞에 대고 예를 표했다. 그 동작 하나하나에 이곳에서 죽어 간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담겨 있었다.
그가 다시 도경을 읊기 시작하자 화산의 제자들이 따라 외었다. 가장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명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입에서 도경이 흘러나왔다.
딱히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청명이 누구인지를 아는 이라면 이 장면을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청명은 지금껏 수도 없이 진혼제에 참가했지만, 그 목소리로 도경을 읊어 본 적이 없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도경이라 눈을 감고도 암송할 수 있음에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쑥스럽기도 했고, 어색했으니까.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청명은 진심을 담아 도경을 외고 있었다. 그저 뜻으로 아는 구결이 아닌,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이건 죽은 자들을 위한 축원이자 남겨진 자들을 위한 위로.
그리고 어쩌면 그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이를 향해 건네는 손길일지도 모른다.
도경을 모두 왼 운검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혜연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엄숙히 반장 한 그는 천천히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서로 믿고 있는 바는 다르다. 서로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마음만은 분명 같을 것이다.
선명한 혜연의 불경 소리가 널리 퍼져 나가는 동안, 화산의 제자들은 내내 자세를 풀지 않고 그 뒤를 지켰다. 황폐해진 항주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가에 뭐라 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올랐다.
백천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지금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리하여 잊지 않기 위해서.
조걸과 윤종, 유이설과 당소소 역시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침내 길게 이어지던 혜연의 낭독이 끝났다. 혜연이 깊게 반장을 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는 서글픈 얼굴로 몸을 돌려 다시 화산 제자들의 옆에 섰다.
백천은 자연히 운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운검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끌어 주는 건 여기까지라는 듯이.
순간 백천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아무도 구하지 못했구나.’
이곳에 올 때 그들의 목표는 마교를 막아 내는 것. 그리고 이곳에 아직 살아 있을 이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의 모든 정신은 그저 살아남는 것에만 쏠려 있었다.
살아남았고, 기뻐했다. 안도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음을.
고작 제 안위에 기뻐하기에는 이곳에서 그들이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도 크니까.
앞으로 나설까 하다가 그저 그 자리에 발을 멈추었다. 지금은 이들에게 설파할 때가 아니다. 같은 자리에 서서 말을 해야 할 때다.
백천의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장문인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죽어 간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화산의 제자들이 고개를 떨궜다.
“장로님들께서 계셨다면, 적들과 싸우는 내내 희생자들을 잊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담담하기에 오히려 조금 서글퍼 보였다.
“우리가 그러지 못한 이유는 나약하기 때문이다.”
뿌듯함과 안도감, 치기 어린 마음이 빠져나간 자리를 안타까움이 채워 나간다.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도인이라 말하지만, 도를 추구하지 못하고, 타인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진정으로 타인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뼈아픈 말에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인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힘이란……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무력이 아니다. 제 목숨이 위험할 때도 나보다 더 약한 이를 돌아볼 수 있는 강함……. 그래.”
백천의 목소리는 느릿하지만 확고했다.
“아마 사람으로서의 강함일 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최선을 다해 싸우고 적을 무찔렀다. 그럼에도 이토록 마음이 공허한 이유는 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겪어야 할 것이다.”
모두가 황폐해진 항주의 땅을 바라보았다.
“다음에는……. 그래, 다음에는 절대 잊지 말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를.”
운검이 고개를 숙이며 도호를 외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내력을 담아 도호를 외었다. 이 넓은 항주의 땅에 남김없이 퍼져 나가도록.
그들에 맞춰 혜연 역시 크게 불호를 외었다.
불호란 스스로 비는 것, 도호란 스스로 바라는 것.
그건 구원을 비는 외침이다. 또한, 살아가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마는 나약한 인간이 제 길을 잊지 않기 위해 밝힌 촛불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이 왼 도호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또 선명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소리만큼, 자연스레 떨궈진 그들의 고개 역시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이 전쟁이라 부르기도 힘든 참상의 본질을 보고만 것이다.
그런 그들의 귓가에 나지막한 청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가자.”
“응…….”
모두 느릿하게 발을 돌렸다. 조금 전에는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었던 곳이지만,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때문일 것이다.
“다음에는…….”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청명의 말끝에도 결국 미련이 맺힌다. 눈앞의 폐허를 보던 청명은 끝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다음에는 지켜 내면 돼.”
“……그래.”
허무함이 깃든 백천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퍼졌다.
“그래야지.”
무거운 마음을 애써 갈무리한 그가 제 사질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분위기를 환기하려 할 때였다.
‘응?’
순간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모두가 몸을 돌리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앞을 보며 서 있던 유이설의 두 눈이 순간 커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적?’
놀란 백천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보이는 것은 그저 여전히 황량하기만 한…….
“어?”
“지, 지금?”
그 순간 화산 제자들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즉시 입을 닫은 그들은 바짝 굳은 얼굴로 숨을 죽였다.
그 순간.
“아……!”
모두가 들었다.
환청인 것처럼 들려오는, 하지만 너무도 분명한 누군가의 미약한 목소리를.
너나없이 생각 이전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급한 걸 넘어 간절해 보이는 누군가의 등이 가장 먼저, 앞으로 또 앞으로 달려 나간다.
청명이 땅을 박차며 전력으로 쏘아졌다. 그러고는 건물의 잔해를 미친 듯이 헤집어 파내기 시작했다. 상처투성이인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조금 늦게 도달한 화산의 제자들 역시 지체 없이 달려들어 엉망이 된 잔해들을 맨손으로 파헤쳤다.
그 안에서 미약하게 들려오는 숨소리를 향해. 분명 이곳에 있었음에도 이제야 찾아낸 그 미약한 온기를 향해.
“으! 으……!”
다급한 청명의 입에서 억눌린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거칠게 잔해를 파헤치던 청명의 손길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청명의 손이 그대로 멈추었다.
“……와주…….”
바람 소리에도 묻힐 만큼 희미하던 소리가 마침내 또렷하게 들려왔다.
“도와……주세…….”
우득!
청명의 손에 잡혀 있던 건물의 잔해가 그대로 으스러졌다. 혹시나 매몰된 이가 다칠까 봐 내력으로 잔해를 가루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했을까?
생에 단 한 번도 없었을 만큼 조심스러운 손길이 이어진 끝에, 마침내 잔해 아래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니, 한 사람이 아니다.
“여, 여기!”
“아기도……. 아기도 있어요! 아기!”
먼지투성이가 되어 반쯤 의식을 잃은 여인과 그 품에 안긴 작은 아이가 보였다.
눈을 뜰 힘도 없는지 완전히 탈진해 버린 여인의 입에서 목소리가 끊길 듯 끊어지지 않고 연신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도와……주…….”
“…….”
“내…… 아기…….”
누구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정적 속에서 청명이 덜덜 떨리는 손을 잔해 속으로 뻗었다. 그리고 여인의 맥문을 아주 조심스레 쥔 채 진기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았어…….”
그 순간 모두는 보았다. 청명의 어깨가 무너지는 모습을. 그 강인하던 이가 두 사람의 생존자를 발견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떨궈 버린 것이다.
“살아…… 있어…….”
고개 숙인 청명과 의식을 잃은 여인. 그리고 그 품에 안겨 잠든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백천은 입술을 꽉 깨물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숨을 죽였겠지.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두려웠을 테니까. 서로 싸워 대는 소리가, 서로 충돌하는 굉음이 아이를 앗아 갈까 무서웠을 테니까.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입을 틀어막고 버텼겠지. 혹시나 그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올까 봐.
그런 여인이 마지막 힘을 짜내게끔 한 것은, 마교도를 무찌른 힘도, 주교의 목을 꿰뚫은 검도, 사파의 거두를 위협해 쫓아낸 심계도 아니었다.
그저 울려 퍼지는 도호. 안타까움이 어린 불호. 어떠한 강대한 힘도 실리지 않은, 그저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라는 그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상처받고 두려움에 떨던 이에게 전해진 것이다.
세상을 웅비할 힘으로도 구해 내지 못했던 이를 끝끝내 구한 것은…… 그들이 잠시 잊었던,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했던 작은 마음가짐이었다.
백천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푸른 하늘은 눈이 아플 만큼 유난하게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