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4화. 이렇게 하는 거지? (4)
“끄륵……. 끄르륵…….”
단자강의 입에서 진득한 피거품이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 그의 몸은 쉴 새 없이 경련했다.
이 광경은 모두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아무리 청명에게 당해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단자강은 단자강이다. 청명과 장일소 모두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지독했던 주교를 일격에 제압해 버리는 존재를 대체 어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어……. 어떻…….”
단자강의 입을 벙긋거릴 때마다 피가래 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심히 듣지 않으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백색 장삼 차림의 사내, 천살마제(天殺魔帝)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사람의 몸뚱이에 손을 박아 넣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그 모습이 지켜보는 이들의 뇌리에 더없이 섬뜩하게 파고들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를 묻는 건가?”
“끄, 끄륵…….”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천살이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야.”
“…….”
“어째서 모르느냐? 교리를 의심하고, 천마를 의심한 네가 어째서 그 뻔한 말은 의심하지 않았더냐?”
“…….”
“천마께서는 우리에게 중원으로 향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분은 애초에 그런 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란다. 사람은 개미에게 먹이를 내어 주기도 하지만, 그 개미에게 명을 내리지는 않는 법이지. 그렇지 않으냐?”
단자강의 몸이 더욱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미 혈광을 잃어버린 그의 두 눈은 저도 모르게 청명에게로 향했다.
한참을 청명을 빤히 바라보던 단자강의 입에서 다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그럼……. 그럼 왜…….”
“쯧쯧. 이래서 자격도 안 되는 어린놈을 주교의 위(位)에 봉하는 것이 아닌데. 대주교께서는 무엇이 그리 급하신 건지.”
“…….”
천살이 희게 웃었다.
“그분을 모시는 데 있어 논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분께의 복종 그 자체지, 그분께서 우리에게 내릴 상이 아니다. 이해하겠느냐?”
“그…….”
피투성이가 된 단자강이 제 가슴을 꿰뚫고 나온 천살의 손을 움켜잡았다.
“끄……. 끄으으으윽!”
그러고는 천살의 손이 아니라 제 몸뚱이를 뜯으며 천살의 손을 뽑아냈다. 끔찍하고 경악스러운 방법으로 겨우 천살의 손에서 벗어난 단자강은 이내 땅에 사정없이 고꾸라졌다.
“호오?”
그 모습을 본 천살이 크게 웃어젖혔다.
“과연. 그래도 주교의 이름을 달 자격은 있다는 건가?”
땅에 처박혀 신음하던 단자강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원독에 찬 눈동자가 죽일 듯이 천살을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단자강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처절하게 소리 질렀다.
“그럼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대체 무엇을 위해 그 시간을 이겨 냈는가! 대답해라 이주교! 우리는……. 그것이 천마의 명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째서 지킬 필요도 없는 교리에 묶여 삶을 낭비해야 했던가! 대답해라!”
“흐음.”
“대답해에에에에에에!”
그 통한의 울부짖음을 듣고도 천살의 눈은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더 차게 가라앉았을 뿐.
“내가 왜 그걸 설명해 주어야 하지?”
“…….”
“너 같은 더러운 배교자 놈에게 말이야.”
단자강은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기라도 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배교자?”
결코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그는 넋을 잃고 말했다.
“……내가 배교자라고? 내가……?”
“몰랐더냐?”
천살이 환히 웃었다.
“천마의 가르침을 의심하고, 그분의 신성함을 의심했으며, 교리를 어겨 교도를 이끌고 중원으로 향한 네가 배교자가 아니라면 세상 누구를 배교자라 칭할 수 있겠는가?”
“그, 그 가르침은 거짓이다!”
“누가 그러더냐?”
단자강은 순간 말문이 막혀 답하지 못했다.
“누가 네게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 말해 주었지? 네가 직접 천마를 뵙기라도 했던가?”
“너……. 너…….”
대답할 가치조차 못 느낄 궤변을 들으며 단자강은 전신을 떨었다. 천살은 그런 그를 향해 느긋하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이야. 너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한 걸음.
“너는 그 기회를 영원히 잃었으니까. 신을 두 눈으로 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서로 대화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너는 이제 그 두 눈으로 신을 볼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나는…….”
단자강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육신을 파고드는 고통보다 배교라는 두 글자가 주는 고통의 크기가 더욱 큰 모양이었다.
“나는! 나는 배교하지 않았다! 나는 신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너는 천마의 대리자가 아니다! 내 믿음은 오직……!”
“닥쳐라.”
듣기 지겹다는 듯 천살이 말허리를 잘랐다.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아주 작은 검은 화염이 흩날리는 불씨처럼 날았다. 그리고 단자강의 이마에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너무도 짙은 검은 화염이 단자강의 전신을 휘감으며 치솟았다.
“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차마 태연히 들을 수 없는 처절한 비명이, 살아 있는 게 거의 남지 않은 황폐한 대지에 울려 퍼졌다.
“배교자에게 주어지는 죽음은 하나뿐.”
천살의 입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죽어 가라. 네 영혼은 죽은 뒤에도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아주 영원히 구천을 맴돌며 네가 저지른 죄악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라.”
마공을 익힌 자에게만 내릴 수 있는 형벌의 업화(業火).
“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공이 역류하며 그의 모든 것을 낱낱이 불살랐다.
그토록 강인했던 단자강조차 그 고통 앞에서는 바닥을 굴러 대며 몸부림치고 절규했다. 비명을 지르고 땅을 기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온몸을 뒤틀었다.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단자강에게 가진 감정이라고 해 봐야 증오뿐인 화산의 제자들조차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정작 천살의 두 눈에 어린 감정은 오로지 서늘한 악의(惡意)뿐이었다. 교에 있어서 불신자란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할 대상이지만, 배교자는 그런 불신자보다 더욱 더러운 이로 취급되니까.
“끄아아아아아아아! 나, 나는……. 나느으으으으은!”
시커먼 화염에 뒤덮인 단자강의 입에서 고통에 절은 목소리가 통곡처럼 흘러나왔다.
그리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 쉬이 죽지 않는다. 죽지 못하기에 지독하고, 그만큼 지독하기에 지옥이다. 그렇기에 마교가 배교자에게 선사하는 형벌로 쓰이는 것이다.
“나는…….”
단자강의 육체가 천천히 허물어졌다.
“나는…… 배…교자가 아니야……. 나는…….”
실낱같은 그의 음성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천마……. 천마시여……. 어째서……. 어째…….”
“쯧.”
“어째서…… 제 절규…….”
콰드드득!
거의 다 타 버린 단자강의 머리를, 천살은 사정없이 짓밟아 부숴 버렸다. 그러고는 마치 더러운 것을 밟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발을 떼었다.
“더 들어 주기 역겹군.”
단자강.
항주를 지옥도로 만들고, 천하의 청명과 장일소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마교의 주교가 맞이했다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비참한 죽음이었다.
그 섬뜩한 죽음을 선사한 천살은 더 이상 볼 일 따윈 없다는 듯 단자강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리고 이내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움찔.
서늘한 시선 앞에 놓인 마교도들이 그 즉시 땅에 머리를 처박고 부복했다. 하나같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마치 저승에서 명왕이라도 만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천살이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린 그 순간, 부복하고 있던 적일이 엎드린 채 엉금엉금 기어 다가왔다.
“지, 집법사자 적일이 감히 이주교를 뵙나이다.”
간절함이 어린 목소리였다. 단자강을 잃은 고통과 천살을 마주한 공포보다도 간절한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이 모든 일은 주교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저의 책임입니다. 부디 주교께서는 제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그 죄를 벌하시옵고,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미천한 자가 감히, 감히 간청드립나이다.”
쿵! 쿵! 쿵!
적일이 연신 바닥에 머리를 찧어 댔다. 하지만 천살은 그저 무심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책임이라.”
작게 되뇐 천살이 피식 웃었다. 그 희미하고 나지막한 웃음에도 적일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자격도 없는 이에게 교구를 맡겨서 그런가? 교구의 꼴이 엉망이로군. 감히 집법사자 따위가 책임을 논하다니.”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적일은 그저 시체처럼 숨을 죽일 뿐이었다.
“손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손을 벌하는 멍청한 자는 없다. 하물며 그 손만 한 가치조차 없는 집법사자 따위야 처벌해도 의미가 없지.”
“…….”
“주교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너나 교도들에게 물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한낱 집법사자 따위가 주교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불가능했을 터이니.”
“가, 감사합…….”
“다만.”
천살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감히 집법사자 따위가 주제를 모르고, 책임을 논한 죗값은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적일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옅게 웃고 있는 천살의 얼굴을 본 순간, 적일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처…… 천마…….”
입술을 질끈 깨문 그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쳤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퍼석!
이윽고 적일은 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단번에 부숴 버렸다.
털썩.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시체가 되고 만 적일이 땅에 쓰러졌다.
영 못마땅한 눈으로 그 꼴을 지켜보던 천살은 부복해 있는 교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교로 복귀하라.”
“처, 천마재림…….”
“닥쳐라.”
모두가 숨을 죽였다.
“너희에게 교리상의 책임이 없다고는 하나, 감히 배교자를 따른 죄악은 교리로만 따져 물을 수 없는 법. 해가 서른세 번 지고 떠오를 동안, 묵언하며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라.”
쿵! 쿵! 쿵!
감히 그 말을 거스를 수 없었는지 교도들이 대답 없이 땅에 머리를 짓찧었다. 그러더니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방향으로 홀린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늘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천살의 시선이 슬쩍 발치로 향했다.
“흐음.”
단자강은 이제 한낱 검은 재가 되어 흔적만이 남았다. 천살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쳤다. 그는 바짝 긴장해 있는 화산의 제자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확실히…….”
감탄 같은 게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원은 재미있는 곳이지. 아무리 머저리 같은 어린놈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주교가 설마 이 꼴을 당할 줄이야.”
즐겁다는 듯 웃은 그가 청명과 장일소를 보았다.
특별히 적의 같은 게 비치지 않던 눈빛이 일변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온화하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았을 천살의 시선이 청명에게 닿는 순간, 전혀 다른 빛깔로 물든 것이다.
“네놈……?”
청명과 그를 지키듯 서 있는 무리의 면면을 확인한 천살의 두 눈에 명백한 적의와 살의가 차올랐다. 심지어 그의 얼굴에는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귀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으득.
이 갈아붙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화산(華山)……. 그 저주받을 문파인가?”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천살의 목소리가 하늘조차 숨죽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