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1063화 (1,064/1,567)

1063화. 이렇게 하는 거지? (3)

“청명아아아아!”

“빌어먹을! 이 새끼야아아아!”

화산의 제자들이 청명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왔다.

“사, 살살 좀 뛰어……. 몸이 울린다…….”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진동만으로 몸이 쪼개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화산 제자들의 귀에는 그 말이 도통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장 빠르게 달려온 조걸이 과격하게 청명을 덮쳐들었다.

“야! 괜찮냐? 어?”

조걸이 청명의 목을 잡고 탈탈 흔들어 댔다.

“어디 안 잘렸어? 멀쩡해?”

“거, 걸아!”

“야, 인마! 왜 대답이 없어!”

“이 미친 새끼야! 네가 애 죽이겠다!”

“어?”

그제야 정신이 든 조걸이 청명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까뒤집고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조걸은 슬그머니 손을 놓고는 헛기침을 했다.

“아니……. 나는 그냥 걱정이 돼서…….”

천마도 주교도 아닌, 같은 화산의 제자 손에 명을 달리할 뻔한 청명은 혼이 나간 눈으로 조걸을 보며 힘겹게 말했다.

“……제발 나가 죽어. 제발…….”

백천과 유이설이 한숨을 쉬며 청명의 양쪽 어깨를 잡아 부축했다.

“괜찮으냐?”

“……괜찮아 보여?”

“아니.”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몸 안에 진기란 진기는 모조리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면 상대가 조걸이라고 해도 곱게 죽여 달라고 목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련주님! 괜찮으십니까?”

“……죽었다니까.”

지금 이곳에서 가장 위협적인 놈도 그와 별다르지 않은 꼴이라는 사실이었다.

“쿨럭.”

장일소가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안 그래도 새하얀 놈이 피까지 줄줄 흘려 대자 금방이라도 고개를 꺾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지독한 새끼.”

청명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다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했다. 목이 꿰뚫린 상황에서도 공격을 해 대다니. 주교라는 놈들이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겪으니 새삼 치가 떨렸다.

만약 목을 꿰뚫어 그 힘을 반감시키지 못했다면, 지금 장일소나 청명이나 둘 다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 미친놈이 기어코 해냈네.”

그리고 화산의 제자들은 축 늘어진 청명을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가지 감정은 경외. 또 한 가지 감정은 안쓰러움이었다.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던 그 주교를 마침내 죽여 없앴다는 건 경탄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 거짓 조금 보태면 지금 청명의 몸은 반쯤 저며 놓은 고깃덩어리 같았다. 숨이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백천은 지체 없이 청명의 아랫배에 손을 붙이고 진기를 밀어 넣었다.

“쿨럭!”

그러자 청명의 입에서 검게 죽은 피가 한 바가지는 쏟아져 나왔다.

“……진짜 죽겠네.”

“망할 놈아.”

백천은 진기를 넣어 주면서 이를 갈았다.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 해도 이리 박살이 난 청명을 지켜보는 심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때, 지금껏 침묵하던 운검이 입을 열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 말에 화산의 제자들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마교의 잔당들을 경계해라!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순간 움찔한 화산의 제자들이 삽시간에 기세를 바꿔 독오른 맹수처럼 청명과 마교도들의 사이를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과는 달리 마교도들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주, 주교…….”

“주교시여…….”

마교도들은 세상을 잃은 듯한 얼굴로 검게 파인 대지를 망연히 응시하고 있었다.

단자강의 패배.

그들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결과였다. 상상해 본 적이 없으니 대처할 수 있을 리도 없다. 그저 혼이 나가 버린 것처럼 멍하니 이 격전의 흔적을 바라볼 뿐.

“주교……. 주교시여.”

적일은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땅을 잡아 뜯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으드드드득.

꽉 물린 입술이 찢기며 피가 흘러내렸다. 지독한 증오와 분노를 담은 그의 시선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적들, 정확히는 청명과 장일소에게 꽂혔다.

“이……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이 개 같은 불신자 놈들이 기어코!”

그의 두 눈에 시뻘건 핏발이 돋았다.

“죽이리라……. 죽여서 주교의 원수를 갚겠다! 반드시!”

이를 악문 적일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넋이 나가 있던 마교도들의 두 눈에 흉악한 기운이 급격히 차올랐다. 그 변화 과정을 지켜보던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달려온 홍견들 역시 맹수를 앞에 두고 주인을 지키는 사냥개처럼 으르렁대며 장일소의 앞에 섰다.

“으…….”

백천과 유이설의 부축을 받던 청명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입을 열었다.

“우선 저…….”

하지만 그 순간, 백천은 느꼈다.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던 청명의 몸이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는 것을.

‘응?’

청명의 시선이 다급히 뒤로 돌아갔다. 그의 두 눈에 담긴 것은 불신과 경악, 그리고 뒤틀린 어떤 감정이었다.

“이, 이 새끼…….”

“청명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의문이 채 풀리기도 전에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마교도들을 경계하고 있던 화산의 제자들이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 역시 보았다. 거대한 산이 무너진 잔해인 것처럼 한가득 쌓여 있던 토사를 일시에 폭발적으로 날리며 뿜어지는 시커먼 마기를.

백천의 등골을 타고 진득한 땀이 흘러내렸다.

“서, 설마…….”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건 마치 선계의 감옥에 갇힌 마귀가 우짖는 소리 같았다. 소용돌이치는 검은 마기 속에서, 결코 그곳에 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 주교…….”

백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두 눈에서 뿜어지는 혈광과 처절한 비명. 먹물을 뒤집어쓴 듯, 전신을 새카맣게 물들인 단자강이 말라비틀어진 상반신을 드러낸 채 짐승처럼 절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스쳤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의 목에는 여전히 청명이 박아 넣은 암향 매화검이 사선으로 박혀 있었다. 절규하고, 또 절규하던 단자강이 제 목에 박힌 검을 움켜잡았다.

뿌드득. 뿌득.

휘몰아치는 마기가 만들어 내는 굉음 속에서도 목에 박힌 암향매화검이 뽑혀 나오는 소리는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콰드득!

마침내 그는 목에서 암향매화검을 완전히 뽑아내고 땅에 내던졌다.

“으…….”

윤종이 검을 쥔 자신의 우수를 좌수로 움켜잡았다. 손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떨려서였다.

그때, 작게 욕지거리를 한 청명이 늘어져 있던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빗나갔나?”

종이 한 장 차이로 목뼈를 완전히 끊어 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고루마공을 익힌 단자강이니 그 지독한 상처를 입고도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을 터.

“사숙. 내 검을…….”

“개소리하지 마! 미친 새끼야!”

백천을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은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극심한 공포를 이겨 내고 청명의 앞을 더 꽉 가로막았다.

‘더는 안 돼!’

이제 청명은 싸울 수 없다. 그래선 안 된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이 이 망할 놈을 지켜 내야 한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검을 세게 움켜잡았다.

더는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형태로 화해 버린 단자강이 고개를 쳐들고 악을 썼다.

“어째서어어어어어어어어어!”

처절하다 못해 서글프게까지 들렸다. 어미를 잃어버린 아이가 내지르는 통곡과도 흡사했다.

“어째서! 어째서 우리를 돌아보지 않으시나이까! 어째서어어어어어어어어!”

단자강이 뿜어낸 마기가 거칠게 휘몰아쳤다.

“천마시여어어어어어어어!”

그의 목소리는 이제 쇠를 긁어 대는 듯 거칠기 짝이 없었다.

“당신을! 당신을 이토록 기다리는 이들이 있음에도 어째서! 어째서 당신은 우리를 외면하시나이까! 천마시여! 어째서! 천마시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미쳤어…….’

당소소는 경악하여 저도 모르게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아는 언어를 모두 동원해도 저 광기를 완전히 형용할 수 없을 듯했다. 애초에 저건 인간이 가지는 감정이라 보기도 힘들었다.

“이것으로도!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우리가 더 무엇을 하리까! 이 절규로도 당신께는 닿지 않습니까!”

핏빛의 안광을 줄기줄기 뿜어내던 단자강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향했다.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의 고뇌를! 우리의 고통을! 너희 따위가 이해할 수 있느냔 말이다!”

청명이 백천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청명아!”

한 걸음 내딛는 게 버거울 만큼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청명은 기어이 그들을 밀어 내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어느새 장일소도 그와 함께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래야 한다는 듯이. 어떤 몰골이 되든, 적을 앞에 둔 이라면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는 듯이.

“살짝 모자랐군.”

“그런 모양이야.”

“별수 없지.”

청명과 장일소가 동시에 이를 드러냈다.

“살아난다면…… 몇 번이고 다시 쳐 죽이는 수밖에!”

“큭큭큭큭.”

화산의 제자들과 홍견도 이번엔 물러서 있지 않고 두 사람의 좌우로 도열했다. 이젠 함께 싸우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자 단자강의 마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

단자강은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마공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 올렸으니, 그는 두 번 다시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이젠 영원히 이 광기에 휩싸인 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학살하는 광인이 될 터.

하지만 이로써 그의 간절한 목소리가 천마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는 그 운명마저도 거부하지 않고 오롯이 받아들일 것이다.

단자강이 마지막 남은 내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가공할 마기가 그의 몸을 휘감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끄윽…….”

그 압도적인 위용 앞에, 화산 제자들의 입에선 절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저만한 힘이…….’

백천이 떨리는 턱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 입술을 깨물려는 바로 그때였다.

‘어?’

처음에는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휘몰아치는 검은 마기의 뒤편에 무언가 희끗희끗한 것이 얼핏 보였다. 공포에 짓눌린 나머지 잠시 헛것을 봤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백천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자강의 바로 뒤, 만년한철조차 종잇장처럼 구겨 버릴 기세로 마기가 휘몰아치는 그 폭풍 속에 한 사내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백색 장삼 차림의 그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건지,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실로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백천이 넋이 나간 듯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볼 때, 단자강의 뒤에 선 백색 장삼 차림의 사내가 옅은 미소를 흘렸다.

“나는 이래서…….”

그제야 제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깨달은 단자강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고개가 채 움직이기도 전에 그 백색 장삼 차림의 사내가 단자강의 등을 손으로 꿰뚫어 버렸다.

콰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아아악!”

단자강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그는 경악이 가득한 눈을 내려 제 가슴께를 보았다. 시커멓게 물든 가슴을 꿰뚫고 나온, 너무도 새하얀 손이 보였다.

“끄……. 끄윽……?”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상황을 차마 믿지 못하는 듯 손을 내려다보던 단자강이 마침내 덜덜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등에 손을 박아 넣은 사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단자강의 얼굴에 거대한 공포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

단자강의 목소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였던 모습만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들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화산의 제자들마저도 알 수 있을 만큼 확연히 떨렸다.

“이, 이(二)주교…….”

이주교라 불린 사내는 가볍게 혀를 차며 하던 말을 이었다.

“나는 이래서 너희 어린놈들이 마음에 안 들어.”

콰드드득!

사내의 팔이 단자강의 가슴에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자 단자강의 입이 찢어질 듯 크게 벌어졌다.

큰 부상이 무색하게도 강력한 마기를 뿜던 단자강을,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너무도 손쉽게 짓밟고 있다.

상황을 채 다 이해하지 못한 백천은 순간적으로 청명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더 놀라운 광경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단 한 번도 적을 앞에 두고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청명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처…….”

청명의 입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천살(天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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