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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58화 (1,059/1,567)

1058화. 네 목소리 같은 건 닿지 않아. (3)

백천이 저도 모르게 이를 질끈 깨물었다.

부릅떠진 그의 두 눈은 맹렬하게 단자강을 몰아붙이고 있는 청명과 장일소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저…….”

실로 경이로운 광경이다. 청명과 극한의 수련을 해 온 그의 눈으로도 순간순간 종적을 놓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의 공방전이었다.

모든 걸 세세히 다 보지 못한다 해도 이 격전 속에 녹아 있는 무리의 격만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이 아닌 피부로 느껴졌다. 머리가 아닌 감각이 먼저 전율했다.

“저 미친놈들…….”

단 한 번 드러난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의 승부를 감행하고, 상식을 벗어나는 적의 공격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막아 낸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초고속의 공방은 전투라기보단 잘 짜인 한 편의 경극처럼 보일 정도였다.

“사숙…….”

“그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백천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몰아붙이고 있다.”

청명의 검이 독사처럼 날뛸 때마다 적이…… 마교의 주교가 물러나고 있었다.

파아아아앗!

청명이 섬전처럼 허공을 가를 때마다 지독한 파공음이 일었다. 백천은 마디가 희게 질리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 새끼…….”

지금의 청명을 보면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대련에서 보여 준 모습이나, 저 흑룡왕과의 싸움에서 보여 준 모습 중 그 어느 것 하나 청명의 전력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그게 아니지.’

청명이 딱히 제 실력을 숨긴 게 아니다. 그들이나 흑룡왕이 저 청명이 놈의 실력을 모조리 끌어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 저 주교가 청명의 모든 힘을 끌어내고도 남을 정도로 강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백천의 시선을 가장 잡아끄는 건, 놀라운 검을 전개하는 청명도, 단자강도 아니었다.

‘장일소…….’

어느 쪽이 더 대단한지를 따져 묻는 게 아니다.

다만 백천은 적잖이 당황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일소가, 뒤를 생각지도 않고 달려드는 청명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백천이 아는 장일소라는 인간은 절대 타인에게 주도권을 내어 준 채로 보조를 맞출 인간이 아니다. 세상 무엇이든 제 뜻대로 조종해 도구로 써 대는 게 바로 장일소 아니던가?

장일소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심지어 사파를 아무나 붙들고 묻는다 해도 대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터.

그런데 그런 장일소가 군말 없이 청명에게 선공을 내어 준다. 그리고 자신은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단자강의 반격을 막아 내고 빈틈을 노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패군 장일소라는 자가 내린 선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건, 저 둘의 손발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잘 맞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저 공방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둘이 맞아떨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백천은 안다. 저 미쳐 날뛰는 놈의 뒤를 받쳐 본 경험이 이 중에서 가장 많으니까. 청명의 뒤를 받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청명의 검은 있어 보이게 표현하자면 변화막측한 신룡 같고, 상스럽게 표현하자면 소금 뿌린 미꾸라지나 다름없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고, 갑자기 어디로 튀어 오를지 예상조차 불가능하다.

청명의 검에 익숙할 만큼 익숙해진 백천조차 신경을 칼날처럼 예민하게 바짝 세워야 겨우 청명의 동작을 따라갈 수 있다. 끔찍할 정도의 심력을 소모하고서야 말이다.

그런데 지금 청명과 처음으로 손발을 맞추는 장일소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었다. 마치 수도 없이 합을 맞추고, 전문적인 합격(合擊)을 익혔던 이처럼.

‘빌어먹을 놈이!’

장일소에 대한 호오를 접어 두고 저놈의 대단함만은 부정할 도리가 없었다.

콰아아아앙!

청명이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순간, 장일소의 손에서 팔찌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발출되었다. 열 줄기의 황금빛 선이 주교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미리 점한 채, 청명의 검으로부터 달아날 길을 차단한다.

완벽하게 청명에게 맞춘 움직임이다. 그와 동시에 장일소는 혹시라도 돌아올 발작적인 반격에 대비해 청명의 바로 뒤로 따라붙었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야.’

전 중원의 반을 지배하는 사패련의 련주이면서도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청명의 뒤를 받치는 쪽을 선택한 장일소나, 그토록 증오하던 사파의 악적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등을 맡기는 청명이나 매한가지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 대는 미친놈들이었다.

하지만 그 미친놈들의 말도 안 되는 조화가 지금 저 무시무시한 주교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으득.

백천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 자체가 대단하니 경탄밖에 나오질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백천은 그저 좋은 마음으로만 바라볼 수 없었다.

장일소가 선 저 자리가, 본래 화산의 제자들이 채워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직 너무 모자라.’

백천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장일소를 노려보았다.

‘어쨌든…… 지금은 이기고 본다!’

방식이야 어찌 되었든, 주교를 물리치고 마교의 발호를 막아 낼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어렴풋하게나마 승부에 대한 확신이 선 순간, 드디어 등 뒤를 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저 주교가 청명의 검에 죽는 순간 마교도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니 미리 그들의 동향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마교도들을 돌아본 백천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뭐지?’

딱히 눈에 띄는 반응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눈에 띄는 반응이 없다는 사실이 백천을 당황케 했다. 마교도들은 처음 주교가 등장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엎드린 채, 진언을 외어 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노래처럼 울리는 저 진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저 단자강이 명백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뒤에도.

어쩌면 단순히 광신의 일면일지도 모른다. 본디 믿음이란 건 상황을 따지지 않는 것. 심지어 이들은 애초에 광신에 절어 사니 자신의 상관에 대한 대책 없는 믿음을 보인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니야. 뭔가 달라!’

이들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승부가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청명아!’

백천의 시선이 전방을 향해 격하게 돌아갔다.

청명은 번개 같은 검기를 뿌리며 단자강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콰가각!

청명의 검이 단자강의 목 바로 옆을 베고 지나갔다. 섬뜩하게 갈라진 상처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단자강이 걸친 장포는 어느새 군데군데가 흘러나온 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파아아아아앗!

청명의 검은 단 한 번 숨을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단자강을 끊임없이 몰아쳤다. 기기괴괴하게 변하고, 때로는 지독하게 뒤를 쫓고, 때로는 정신 나간 도박을 해 대면서.

그리고 그런 청명의 옆에서, 뒤에서, 머리 위에서 장일소가 끊임없이 장력을 퍼부었다. 때때로 청명의 내력으로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공격이 쏟아질 때는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들어 그 공격을 막아 내기까지 했다.

‘이게…….’

단자강의 두 눈에 스산한 기운이 스쳤다.

쿠웅!

머리 위로 날아드는 청명의 검을 똑똑히 응시한 단자강이 강하게 진각을 내밟았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마기가 폭발하듯 온몸에서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여파에 휘말린 청명의 몸이 태풍에 휩쓸린 가랑잎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한참을 뒤로 날아간 청명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며 몸을 낮춰 착지했다.

“헉! 허억! 헉!”

땅에 닿기 무섭게 청명의 입에서 폐를 토해 내는 듯한 거친 숨이 쏟아졌다. 흘러내린 땀으로 그의 전신은 물론이고, 머리카락마저 온통 축축이 젖어 있었다.

호흡까지 제한한 채 끊임없이 연격을 퍼부었다. 심력과 체력을 지독하게 갉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청명의 두 눈만큼은 처음과 다름없이 새파란 살기를 띤 채 마기 뒤에 모습을 감춘 단자강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마기의 여파가 걷히고 단자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내가…… 너희를 너무 과소평가한 건지도 모르겠군.”

상처투성이. 지금 단자강을 본 이라면 우선 그 말부터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청명은 알고 있다. 저 몸에 새겨진 상처 중에 정말 치명상이라 불릴 만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단자강이 비정상적인 회복력을 발휘하게 하는 고루마공을 익힌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군.”

단자강이 나지막이 말했다.

“고작 이 정도인가?”

그는 대지를 콱 짓밟았다.

“중원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교는 어째서 너희에게 패주해 그 척박한 땅으로 내몰렸는가?”

숱한 의문이 단자강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천마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이들에게 허를 찔리셨다는 말인가?

물론 범도 때로는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하지만 개미에게 물려 죽는 범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있는가? 이들이 개미 이상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 정도가 아니겠지?”

분노가 차오르자 단자강의 두 눈에서 다시 혈광이 뿜어졌다.

“말해 보라, 중원의 무인이여. 고작 이 정도가 너희의 전부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너희가 가진 것을 모조리 꺼내 보아라. 그렇지 않으면…….”

검은 마기가 부유하는 악령처럼 단자강의 몸 주위를 휘돌았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사위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너희는 이곳에서 죽는다!”

콰아아아앙!

단자강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진했다.

이동보다는 축지(縮地)에 가까운 행위였다. 마치 존재하는 공간을 강제로 비틀고 뚫어 낸 것처럼, 단자강의 육신은 삽시간에 청명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어쩌면 나타났다는 표현이 더 걸맞을지도 모른다.

청명의 두 눈이 크게 부릅뜨였다.

그 순간 단자강의 손이 여지없이 청명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청명은 순간적으로 검을 들어 날아드는 손을 막아 냈다. 하지만 단자강이 휘두른 장력은 막아선 검과 함께 통째로 청명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으드드득!

기운과 기운이 충돌하는 폭발음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뒤섞였다. 청명의 몸이 전력으로 걷어차인 조약돌처럼 튕겨 날아갔다.

콰앙!

단자강은 땅을 박차며 그런 청명에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따라붙었다. 순식간에 따라잡은 단자강은 한 손을 하늘을 향해 펼쳐 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그의 몸을 타고 올랐고, 이내 그 손끝에서 뭉쳐 들었다.

처음에는 사람 머리통만 했던 마기가 순식간에 집채보다 더 크게 불어났다. 어둠이 너무 짙다 못해 빨려들 것만 같은 마기는 흡사 이글거리는 검은 태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단자강이 이윽고 손을 내려치려는 순간, 새파란 불꽃 형태의 장력이 다급하게, 그리고 숱하게 그의 면전으로 쏟아졌다. 그 하나하나가 강기마저 부수고 들어올 만큼 대단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단자강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손을 내리그었다.

“오오오오오!”

타오르는 검은 태양이 푸른 불꽃을 집어삼키며 으스러뜨렸다.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모조리 날려 버린 마기는 튕겨 날아가는 청명의 몸을 그대로 집어삼켜 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검은 태양이 대지에 작열하며, 세상 전체가 뒤흔들렸다. 부복한 마교도들 또한 그 거대한 폭발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튕겨 나가떨어졌다.

“처…….”

백천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청명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비명은 연이어 터져 나오는 폭음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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