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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57화 (1,058/1,567)

1057화. 네 목소리 같은 건 닿지 않아. (2)

서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무인에게 있어서는 생과 사를 가르는 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바로 그 안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단자강의 시선은 적이 아닌 제 어깨로 향했다. 갈라진 의복 사이로 똑똑히 보였다. 쩍 벌어진 채 피를 흘려 대는 어깨가.

맥이 뛸 때마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상처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하지만 그 고통보다 더욱 강렬한 것은, 그의 어깨가 깔끔하게 베였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살은 검에 닿으면 베여 나간다. 그건 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단자강에게 있어선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이리도 쉽게……?’

이 상처의 의미는 크다. 한철보다 단단하고, 천잠사(天蠶絲)보다 더 질긴 그의 몸이 저자의 검 앞에선 평범한 몸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니까.

쩍 벌어졌던 어깨가 절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붉은 속살을 드러냈던 상처가 빠르게 서로 엉겨 붙으며 상처를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비현실적, 비정상적으로 빠른 회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청명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고루마공(骷髏魔功)인가?”

작은 목소리였지만 똑똑히 알아들은 단자강이 흠칫했다. 그는 청명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상처 입어도 죽지 않는 몸이라니, 그것참 편리하긴 하다만…….”

청명이 이를 드러냈다.

“네놈 이전에 그 마공을 익혔던 놈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고 있나?”

단자강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청명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아아앗!

곧장 목으로 날아드는 붉은 검기가 대신 답을 알려 주는 듯했다.

카가강!

손을 들어 검기를 막아 낸 단자강의 바로 앞으로 청명이 쇄도했다. 기괴한 웃음이 드리운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단자강의 등을 타고 냉기가 흘렀다.

촤아아아악!

대기를 찢어발기며 내리쳐지는 검격. 하지만 이미 같은 수를 겪어 본 단자강은 조금의 방심조차 없이 마기를 전개했다. 보나 마나 또 산개하는 검으로 방어를 흐트러뜨리려는 수작이겠지!

하지만 그 순간 청명의 검이 허공에서 다시 한번 가속하며 가공할 힘으로 단자강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앙!

검의 변화에 집중하고 있던 단자강의 무릎이 움찔 떨렸다.

연이어!

콰앙! 콰아앙! 콰아앙!

거대한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검격이 연이어 그의 마기 위로 떨어졌다.

“큭!”

결국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기와 저 검이 충돌할 때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손을 타고 내부로 파고들었다. 마치 몸 안에 얼음장 같은 물을 직접 쏟아붓는 듯한 고통이었다.

‘마기가…… 흩어진다?’

도대체 이자의 무학은 무엇이기에 마공을 이토록 손쉽게 흐트러뜨린단 말인가?

쾅!

흐트러진 마음은 결국 몸에도 영향을 준다. 자세가 무너진 단자강을, 청명의 검이 뒤로 쭈욱 밀쳐 냈다. 그와 동시에 연이어 땅을 박찬 청명은 밀려나는 단자강에게 벼락같이 따라붙었다.

“어림없다!”

구름처럼 일어난 마기가 청명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상대의 수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으니 힘으로 찍어 눌러 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하나 그 순간, 청명이 검을 거의 등 뒤까지 젖혔다. 그리고 단숨에 좌에서 우로 맹렬하게 그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앙!

흡사 채찍이 휘둘러진 듯한 파공음이 울렸다. 동시에, 청명의 검이 지나간 주변의 모든 것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흡사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구기는 듯했다.

이윽고 붉은 선 하나가 피어났다.

화가가 붓끝으로 그어 낸 것만 같은 선명한 선. 그 선에 닿은 단자강의 마기가 거짓말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단 일격으로 마기를 잘라 낸 청명은 곧장 두 눈에서 광기를 뿜어내며 단자강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고, 적은 더없이 강대하다.

하지만 이 순간 청명이 느끼고 있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파아아아앗!

평소보다 배는 더 빠르게 뻗어 나간 검이 단자강의 얼굴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들었다. 단자강이 다급하게 손을 올린 순간 청명의 검은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방향을 바꾸어 막아 오는 그 손을 회피했다.

촤아아아악!

단자강의 손목에 파고든 검 끝이 손목부터 팔꿈치까지를 길게 갈라 냈다.

옅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점점이 뿌려졌다. 청명의 눈에는 이 광경이 하나도 빠짐없이 느리게만 펼쳐졌다.

‘아직이야.’

아직! 아직 모자라다! 아직!

‘나는…….’

매화검존은 이보다 배는 더 빠르고, 이보다 배는 더 강했다. 이 정도로는 그의 갈증을 모조리 채울 수 없다.

한 방울 한 방울 끊임없이 모아 온 내력이 단전에서 용솟음쳤다. 한 발을 내딛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잊고 있던 감각들이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더!’

숨통을 옥죄며 밀려오는 마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숨. 얻어맞은 적도 없는데 전신이 으스러진 듯 아파 오고, 두 눈은 피가 몰려 실핏줄이 툭툭 터졌다.

마기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검을 휘둘러 댄 손은 이미 너덜너덜해져서 손가락 끄트머리의 뼈가 곧 드러날 판이었다.

하지만…….

콰앙!

검과 손이 마주치는 순간 청명의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단자강의 두 눈에 선명하게 드러난 당혹감이. 그 얼굴이 청명의 쾌감을 더욱 부추겼다.

‘너는 이해 못 해.’

얼마나 무수한 전장을 그가 헤쳐 왔는지. 얼마나 많은 마교도를 죽여 왔고, 얼마나 많은 주교를 상대해 왔는지.

백 년 전을 겪지 못한 주교 따위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

파아아아아아앗!

여전히 느려 터졌다. 검 끝에 어리는 힘은 감히 예전의 그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하다. 하지만…….

카가가가각!

청명의 검이 다시 한번 마기를 뚫고 단자강의 볼에 긴 상처를 새겼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

지금의 청명은 여전히 매화검존만은 못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다. 검 끝에 어린, 그 무엇보다 선명한 기운.

‘뚫어 낸다.’

세상에서 가장 정순한 기운만을 모아 내고 정제하고 또 정제해서 쌓았으니 일반적인 선기(仙氣)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마기를 찢어발기고도 남을 날카로움이다.

검을 휘두르는 이는 약해졌을지 모르나, 그 검만은 비교를 불허하는 명검이란 의미다. 그 명검이 발하는 날카로움이 청명의 또 다른 무기가 되어 주고 있다.

“하앗!”

그 순간 단자강이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휘돌던 마기가 마치 부유하는 망령처럼 청명을 덮쳤다.

닿기만 해도 몸이 으스러지고 살이 썩어들 지독한 마기가 오히려 지금은 청명의 감각을 더없이 예민하게 갈아 내고 있었다. 온몸이 오싹오싹했다.

“더!”

파아아아앗!

검 끝이 환상을 그린다.

콰가각! 콰가가각!

마기를 모조리 쳐낸 청명은 다가오는 단자강의 손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얼굴이 거의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청명은 뻗은 발끝으로 다시 한번 허공을 박찼다. 몸에 속도가 더 거세게 붙었다.

으드드득!

단자강의 손이 그의 어깨 위로 스쳐 지나갔다. 고작 스친 것에 불과했지만, 어깨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부위의 살덩이가 뜯어낸 것처럼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찔한 고통이 일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채 뇌리에 전달되기도 전에 청명은 단자강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과거보다 나약하다면 극복할 방법은 오직 하나. 과거보다 더욱 과격하게, 과거보다 더욱 위험하게 날뛰는 것뿐이다.

파아아앗!

초 단거리에서 최적의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진 검이 단자강의 허벅지를 깊숙이 베었다. 워낙 거리가 가까운 데다, 단자강의 육신이 질기기 이를 데 없다 보니 벤다기보단 쇠꼬챙이로 살점을 뜯는 듯한 묵직한 감각이 손끝에 남았다.

검 끝이 단자강의 뼈에 닿는 순간, 청명은 짧게 검을 내질렀다. 그 반동으로 몸을 뒤로 슬쩍 물린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앙!

조금 전까지 그의 머리가 있던 공간을 단자강의 손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갈랐다. 만일 욕심껏 검을 끝까지 휘둘렀다면 이 한 수로 청명의 머리가 터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죽음을 모면한 청명의 얼굴에서 공포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고작 한순간의 선택으로 목숨이 오가는 칼끝에 서 있다.

그런 청명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희열이었다. 순간적으로 다가왔던 죽음이 빠르게 멀어져 갈 때만 느낄 수 있는, 지독하기 짝이 없는 쾌감. 거기에 완전히 몸을 맡겨 버린 청명은 몸을 뒤틀며 다시 단자강에게 돌진했다.

우드득!

검을 잡은 손에 과격하게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에 반해 몸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지금 이곳에는 그가 지켜야 할 이도 없고, 주시해야 할 이도 없다. 뒤쪽에서 벌어지는 전투나 급변하는 상황에 신경을 돌려야 할 이유도 없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눈앞에 있는 이의 목을 잘라 버리는 것.

내내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감을 모조리 날려 버린 청명의 얼굴은 살기와 희열로 범벅되어 있었다.

그 달뜬 얼굴을 본 장일소는 청명과 발을 맞춰 단자강에게 돌진했다. 조금의 여유라도 있었다면, 지금쯤 아마 목이 터져 나가라 광소를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미친놈.’

장일소는 자신도 제정신은 아니라는 걸 늘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놈, 청명은 그와는 다른 의미로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생과 사의 틈.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칼날 위를, 화산검협은 한순간에도 몇 번이나 드나들고 있다. 제정신이 박힌 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이다.

물론 위를 노리는 자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판돈으로 걸 수 있어야 하지만, 저 미친 도사 놈이 해 대는 짓거리는 그런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장일소가 휘두르기 위해 움켜잡은 검이,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저걸 검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차라리 시위를 떠난 화살에 가깝다. 적을 꿰뚫지 못하면 의미 없는 나무작대기가 되어 버릴 극단적인 무기.

‘설마 이 내가 누군가의 뒤를 받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고고한 자존심이 뒤틀렸지만, 그 욱신거림마저도 오히려 즐거울 지경이었다. 두 눈을 요사스레 빛낸 장일소는 광기에 휩싸여 날뛰는 청명의 공격에 맞추어 창염살강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아직!’

양손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그 순간 청명의 검이 화려하게 변화하며 단자강을 향해 검기를 퍼부었다. 이 순간 청명의 온 신경은 단자강에게로 향해 있다. 청명을 적으로 둔 자라면 누구라도 손을 뻗어 공격하고 싶을 광경이었다.

하지만 장일소는 지극한 인내심으로 제 욕구를 짓눌렀다.

‘아직!’

콰아아아아!

화살 비처럼 뻗어 나온 마기가 쏟아지는 검기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연이어 분노한 흑룡처럼 화한 검은 마기가 청명을 향해 쇄도했다. 아니, 쇄도하려 했다.

‘지금!’

쾅!

단번에 거리를 좁히며 돌진한 장일소가 단자강의 빈 옆구리를 향해 장력을 때려 박았다. 그 모습이 흡사 때를 노리다 뛰쳐나온 맹수 같았다.

콰아아아아아앙!

단자강이 휘청이며 뒤로, 또 뒤로 물러났다. 청명이 차게 일갈했다.

“늦어!”

“……욕심이 많은 아이네.”

짧은 순간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이 범을 노리는 이리 떼처럼 단자강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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