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6화. 네 목소리 같은 건 닿지 않아. (1)
묻고 싶다. 어떤 적을 상대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뻔한 말을 늘어놓는 이들에게 지금의 광경을 보여 주며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 저 모습을 보고도 전의가 꺾이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남궁도위는 휘몰아치는 마기와 붉은 매화 잎, 그리고 솟구치는 푸른 불꽃을 홀린 듯 응시했다.
‘이게 정말로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모습인가?’
무인과 무인이 서로 힘을 겨루는 광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신화 속의 한 장면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남궁세가의 적자인 그는 이해할 수 있다. 머리로는 충분히 알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수도 없이 들어 왔다. 무학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대동소이하지만, 특정한 수준을 넘게 되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남궁도위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말을 해 주었던 남궁황조차도 이 광경을 보고 나면 그 반응이 남궁도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콰아아아아아앙!
기운과 기운이 맞부딪쳐 폭발하는 소리가 연신 고막을 때렸다. 내력으로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고막이 찢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는 남궁세가의 검을 쓰는지라 ‘위력’의 측면에서는 천하의 어떤 무학에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평생 품고 살아왔던 그 자부심은 지금 보는 광경 앞에서 삽시간에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궁도위를 괴롭게 하는 것은…….
‘어떻게 저기에 달려들 수가 있지?’
저 지독하고 끔찍한 마기의 폭풍 속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어 버린 청명과 장일소의 행동이었다. 항주에 도달한 이후로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는 괴로움이기도 했다.
저게 강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까? 그건 결코 아니다. 생존에 대한 욕구는 강자든 약자든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이다. 그러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무릎이 꺾이는 저 지옥 속으로 제 발로 달려든다는 건, 강함과 다른 차원의 것이 필요할 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휘이이이잉!
내내 끝을 모르고 몸집을 키우며 휘몰아치던 마기가, 붉은 꽃과 푸른 불길에 뒤덮이며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일순간 그 자취를 감추었다.
“어!”
그리고 남궁도위는 보았다.
가공할 속도로 단자강에게 돌진하는 청명의 모습을.
카아아아아아앙!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친 검이 단자강의 손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카가각! 카가가각!
지독하게 거친 소리가 연신 울렸고, 마기와 검기의 파편이 불똥처럼 사방에 비산했다.
단자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손바닥에 닿은 검을 그대로 움켜잡으려는 순간, 청명의 검이 환영이었던 것처럼 뒤로 훅 빠졌다. 그러더니 이내 수십 개의 검영으로 화해 단자강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단자강의 손 역시 그에 질세라 수십 개로 분열했다.
검 끝만을 흔들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과 직접 손을 휘두르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수월할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단자강의 손은 청명이 빚어낸 변화에 어렵지 않게 따라붙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아아아아앗!
분열한 청명의 검 끝이 일제히 파르르 떨린다 싶더니, 이내 수천 개의 꽃잎으로 분열하며 단자강을 덮쳐 왔다.
단자강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기서?’
막아 낼 수 없다. 저렇게 숱하게 쏟아지는 것은 누가 와도 막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사람의 손이라면 더더욱.
뻗었던 손을 거둬들인 단자강은 커다란 기합을 내질렀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주변에서 맹렬히 회전하던 꽃잎들을 모조리 찍어누르고 떨구어 냈다.
‘하나하나는 강하지 않다!’
단자강은 마기에 더욱 내력을 실었다.
파아아아앗!
하지만 그때, 회전하는 마기 사이로 새하얀 검신이 불쑥 튀어나왔다.
‘뭣?’
천하의 단자강도 기겁할 수밖에 없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다급하게 손을 들어 겨우겨우 막아 내었다. 하지만 그뿐.
“큭!”
단자강은 그 상태로 점점 뒤로 밀려났다.
청명은 그가 숨을 돌릴 틈 따윈 주지 않았다. 단자강이 반사적으로 장력을 쏘자, 납작 몸을 낮춰 피한 청명이 제비처럼 지면 바로 위로 날았다. 그리고 단자강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놈!”
콰아아아아아아앙!
단자강이 일순 터뜨린 마기가 다시 한번 강력하게 청명을 향해 쏘아졌다. 저런 속도로 달려들던 이가 이걸 피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확신이 실린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때 청명이 암매검을 땅으로 내질렀다.
일순 부러질 듯 휘어졌던 검이 다시금 탄력 있게 펴졌고, 그 반동을 이용해 청명은 허공에 몸을 한껏 띄워 올렸다.
콰아아아아아앙!
단자강의 마기는 애꿎은 땅만 처참하게 박살 냈다. 그 굉음의 여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청명의 검 끝에선 수십 개의 검기가 발출되었다.
피처럼 붉은 검기가 맹렬한 속도로 단자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의 몸을 단번에 난자해 버리겠다는 듯이.
‘허술하군.’
단자강의 눈에 스산한 빛이 돌았다.
이런 뻔한 공격이 통할 거라고…….
하지만 그때,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파공음이 일었다.
‘뭐?’
황급히 돌아보니 이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드는 열 개의 황금빛 팔찌가 또렷하게 보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땅거죽이 뒤집혀 높은 곳까지 치솟았고, 강제로 밀어 올려졌던 토사는 잠시 후 산사태처럼 도로 쏟아져 내렸다.
휘이이익.
장일소에게 돌아온 팔찌들이 촤르륵 맑은 소리를 내며 그의 손목에 다시 안착했다.
“흐음.”
장일소는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두 눈만큼은 어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쯤 되니 그 몸뚱이가 대체 뭐로 만들어진 건지 궁금한걸?”
쏟아진 토사 사이에서 단자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토록 거대한 폭발에 휘말렸음에도 상처 하나 엿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전투를 시작했을 때와 명백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게 중원인가?’
단자강의 시선이 한쪽으로 고정되었다.
‘특히나 저 검수.’
청명이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단자강의 뇌리엔 조금 전 청명이 펼쳤던 검이 아직도 생생히 떠올라 있었다.
무학에 대한 이해가 낮은 이들이 보기에는 그저 순식간에 휘몰아친 연환 공격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말도 안 되는 상승의 묘리가 숨어 있었다.
강(强)에서 변(變). 변에서 다시 환(幻). 뒤이어 쾌(快)까지.
겨우 숨 한 번 내쉴 정도의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네 개의 묘리를 쏟아낸 것이다.
쾌검을 쓰는 이가 수십 번의 쾌검을 날리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쾌검을 쓰는 이가 순간적으로 강검을 펼치고, 다시금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애초에 어지간한 검수는 하나의 운용만을 평생 갈고닦아도 그 극성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저 검수는 그 불가능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다.
상대하는 검이 순간적으로 바뀔 때 느껴지는 곤혹감이란,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이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단자강의 시선이 이번에는 장일소에게로 향했다.
독 오른 뱀 같은 시선과 그 사특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자꾸만 단자강의 심기를 건드렸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등 뒤에 독 바른 비수가 겨눠진 듯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마교에서도 몇 번 겪어 본 적 없던 지독한 살기가 무공의 고하를 넘어 사람을 굳게 했다.
‘위협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저자의 존재는 오히려 저 검수 이상으로 단자강을 거슬리게 했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인다면 저 독사의 송곳니가 여지없이 그 틈을 파고들 테니까.
상극과도 같은 저 둘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능숙하다.’
펼치는 검을 보면, 상대의 틈을 노리는 감각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저 두 사람은 모두 지독할 정도로 전투에 익숙한 이들이라는 사실…….
쾅!
그 순간 청명이 말 그대로 빛살이 되어 단자강을 향해 쇄도했다. 단자강의 시선이 장일소에게로 옮겨 간 그 잠깐의 틈조차 놓치지 않은 것이다.
파아아아앗!
청명의 검이 노을 같은 검기를 머금은 채, 단자강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뻔한 수를!’
단자강은 마기로 덧씌워진 손을 뻗어 날아드는 검을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화아악!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청명의 검이 흐려졌다. 그리고 단자강의 손을 그대로 관통했다.
‘뭣…….’
쇄애애액!
청명의 검은 단자강의 머리 위에서 다시 그 형태를 되찾았다. 그러더니 다시 독사처럼 뒤틀리며 단자강의 목을 향해 파고드는 듯 날아들었다.
단자강은 다급하게 목을 꺾어 검을 피했다.
“큭!”
뭔가 술법을 쓴 것이 아니다. 단자강이 검을 막으려 할 때, 순간적으로 검로를 꺾으며 그 손을 비껴 낸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니, 마치 검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뿐.
말로 하기야 쉽지만, 실제로 펼쳐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검술. 이건 기예(技藝)의 영역도 아니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영역이다.
파아아앗!
단자강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검이 허공에서 거짓말처럼 우뚝 멈춰서더니, 그대로 단자강의 목을 벨 듯 횡으로 움직였다.
찌르고, 멈추고, 벤다.
분명 셋으로 나누어야 할 동작임에도, 그 모든 과정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쾌속하고 또 자연스럽다. 상대를 노리는 과정들이 모여 초식을 이룬다는 말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훌륭한 교본이 있을까?
카가가가가각!
그 순간 단자강이 제 목으로 날아든 검을 그대로 움켜잡았다. 청명을 날뛰게 해서는 그 역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한 모습이었다. 시커먼 손아귀가 검을 옴짝달싹 못 하게 콱 조이기 시작했다.
‘놈!’
우수로 검을 움켜쥔 채, 단자강은 잔뜩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청명의 얼굴에 그대로 일권을 먹일 심산이었다.
그런데 청명은 허공에서 그대로 검을 놓아 버렸다.
상대의 저항을 의식해 있는 힘을 다했던 단자강의 몸이 순간 휘청했다.
“안 되지!”
그때 등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일소의 붉은 장포가 깃발처럼 휘날렸다.
쾅!
진각을 밟은 장일소의 연환격(連環擊)이 단자강의 등으로 폭우처럼 쏟아졌고,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청명의 연환각(連環脚)이 단자강의 머리를 향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크윽!”
한 손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단자강은 쥐고 있던 검을 위로 던져 버리고 양손을 펼쳤다. 탁한 연기처럼 피어오른 마기가 장일소의 권과 청명의 각을 막아 냈다.
콰콰콰콰쾅!
단숨에 십여 번의 연환각을 날린 청명의 발이 매섭게 하강했다. 그 모습을 본 단자강이 순간적으로 내력을 끌어 올릴 때!
탁!
내려치던 다리에서 갑자기 힘을 빼낸 청명이 그의 마기를 마치 발판처럼 밟고 뛰어올라 허공에 떠 있는 암매검을 낚아챘다.
콰아앙!
몸을 틀며 허공을 박찬 청명이 먹이를 쫓아 강하하는 매처럼 단자강을 향해 쏘아졌다. 살기 가득한 눈빛이 번뜩였다.
이윽고 암향매화검이 위에서 아래로 맹렬히 내리그어졌다.
투우웅!
그 검 끝이 땅에 닿았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단자강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촤아아악!
단자강의 한쪽 어깨가 쩌억 벌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