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5화. 나도 미친놈이었군. (10)
콰아아아아!
들썩이던 바위가 어마어마한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사람보다 더 커다란 바위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광경을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대경할 광경은 그 뒤에 벌어졌다.
콰가가가각!
시커먼 마기의 폭풍이 바위를 집어삼키는 순간, 단단한 바위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며 바스러져 버렸다.
휘몰아치는 검은 마기(魔氣). 아니, 마강(魔剛)이라 불러야 마땅할 기운은 단단하기 짝이 없는 바위를 부수다 못해, 순식간에 으스러뜨려 가루로 만들었다.
바위가 저럴진대, 하물며 인간의 몸이야 어떻겠는가? 저 폭풍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자살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곳에, 그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 무려 둘이나 존재했다.
파아아아앗!
붉은 장포를 펄럭이며 앞으로 쇄도한 장일소의 두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솟구쳤다. 그 순간 그를 향해 시커먼 마강(魔剛)이 수천 개의 칼날처럼 쏟아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악!
마강이 대기를 찢어 내는 소리가 마치 귀곡성처럼 울려 퍼졌다.
“흥!”
장일소의 독문강기(獨門剛氣)인 창염살강(蒼炎殺剛)이 극성으로 전개되며 양손에서 피어오른 푸른 불꽃이 거칠게 타올랐다.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날아드는 검은 마강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마강(魔剛)과 살강(殺剛)!
마(魔)와 사(邪)의 극의에 오른 기운이 맞부딪치는 순간, 가공할 살기와 기운들이 사방으로 폭발적으로 뻗어나간다.
카가가가각! 카가가가각!
수백 개의 비수가 손을 깎아 내는 듯한 고통이 번지자 장일소의 얼굴에 섬뜩한 살기가 어렸다.
콰앙!
땅을 다시 박찬 그는 되레 앞으로 더욱 뛰어들며, 양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동시의 몸에서 피어난 푸른 불꽃이 마치 악마의 혀처럼 날름대며 날아드는 마강을 휘감았다.
카가가가각!
천하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명검들이 허공에서 서로 맹렬하게 충돌하는 것만 같은 광경. 태생적으로 타고난 살기를 극도로 제련해 담아 낸 장일소의 기운은 단자강의 마기마저 비틀고 꺾었다.
뒤틀리며 날아든 마강은 펄럭이는 장일소의 화려한 장포를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장일소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앞으로만 전진했다.
새하얗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섬뜩함을 넘어 지독함마저 느끼게 했다.
콰가가가가가각!
마기 안으로 손을 밀어 넣은 장일소가 단숨에 양팔을 펼쳐 내자, 그를 휩쓸던 마강이 찢겨 나가며 정면에 커다란 공간이 생겨났다.
그건 정말 잠시의 틈에 불과했다. 마기를 찢어 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휘도는 마기는 순식간에 그 틈을 채울 테니까.
하지만 지금 장일소의 뒤에는 그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놓치지 않는 이가 있었다.
파아아아앗!
장일소가 만들어 낸 틈으로 섬전처럼 몸을 던진 청명이 검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맹렬히 날아드는 마강은 그 한 올 한 올이 한철보다 더 단단하며 명검보다 더 날카롭다. 연약한 청명의 몸뚱이 따위는 순식간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폭풍 속에서도 청명의 검은 한없이 부드러운 원을 그려 냈다.
위에서 아래로.
검 끝이 그려 낸 것은 그저 하나의 반원이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다. 그 반원은 흘러가는 강처럼 실로 자연스러웠다.
붉게 물든 하늘 끝에 걸린 해처럼 피어난 붉은 선이 검게 휘몰아치는 마기의 폭풍을 매끄럽게 베었다.
촤아아아아아악!
결코, 베어져서는 안 되는 마강이 단도로 베어 낸 비단폭처럼 갈라졌다.
찢고 베어 기어코 열어 낸 공간 사이로 청명과 단자강의 눈이 순간적으로 마주쳤다. 청명의 웃음을 본 단자강의 얼굴엔 삽시간에 노기가 차올랐다.
저들이 마강을 파훼하리라는 건 단자강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저들 역시 이 강호에서는 그 적수를 찾기 힘든 고수일 테니까.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 해도, 그 과정이 이리 간단해선 안 된다. 그의 마강은 천마께서 교에 내려 준 은총이다. 무학을 익힌 불신자들에게, 그 불신의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칼날이다.
그런데 감히 저 불신자들이 천마께서 내리신 은총을 빛바래게 만든다?
콰앙!
단자강의 두 눈이 핏빛 안광을 줄기줄기 뿜었다.
내면에 존재해서는 안 될 의심이 존재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천마께 모든 것을 바친 존재다. 더러운 불신자들에게 천마의 신성이 훼손되는 것을 좌시할 만큼 배덕한 이가 아니다!
“감히!”
그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끝이 만들어 낸 척력(斥力)이 찢어 갈긴 공간 안으로 뛰어들려는 청명과 장일소를 순간적으로 밀어 낸다.
“찢겨라!”
그와 동시에 회전하던 마강이 소름 끼치는 귀곡성을 터트리며 거칠게 약동하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가가각!
속도를 높인 마강이 대지를 갈고, 공기를 찢는다. 검은 폭풍은 순간적으로 멈칫한 청명과 장일소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단자강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손끝에 확실한 감각이 느껴졌다.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이들이 감히 주둥이를 놀려 대었단 말인가.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악!
무언가가 맹렬히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붉은 피처럼 보였다. 산산조각이 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솟구친다면 딱 저런 형태일 테니까.
하지만 이내 인간의 피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흩어지지 않으니까.
노을빛을 넘어 아예 피처럼 붉게 물든 검기가 검은 마기의 폭풍 속에서 환상처럼 피어났다. 붉은 검기가 흩날리는 모습이 흡사 허공에 거대한 붓으로 흩뿌린 듯했다.
단자강조차 순간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보았다.
‘꽃……?’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매화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흩날리듯,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매화 꽃잎들이 맹렬하게 날아드는 마강을 막아섰다.
그 광경은…… 그저 부질없는 저항처럼 보였다. 연약한 꽃잎 따위는 저 거친 폭풍에 그저 찢겨 나가고 휩쓸리기만 할 테니까.
콰가가가가가각!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마강은 피어오른 꽃잎들을 순식간에 으스러뜨렸다. 수천 개의 꽃잎이 산산이 부서지며 명멸했다.
하지만 다시 피어오른다.
하나하나는 너무나도 나약하다. 악의로 가득 찬 마강에 감히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할 뿐이다.
그러나 꽃잎들은 모여든다. 나약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듯,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들어 덮쳐 오는 위압에 맞선다.
본디 무학이란 나약한 이가 태어날 때부터 강했던 이에게 저항하기 위해 존재했다. 즉,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채워 나가는 것이 곧 무학이 아니던가?
수백, 수천 개의 꽃잎이 동시에 다시 피어오르며 마강을 막아섰다. 꽃잎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과, 이를 덮치는 급류 같은 검은 폭풍.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거친 폭풍이 꽃잎의 벽을 때렸다. 하지만 꽃잎들은 밀려날 듯 밀려날 듯 휘청이면서도 끝끝내 다시금 밀어닥쳐 마기의 폭풍을 뒤틀었다.
마기가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하자 단자강의 얼굴이 굳어졌다.
‘밀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알고 있다. 저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저 검수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수정하게 만드는 환검의 극치였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지독하단 말이 어울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겨우 저만한 기운을 그의 마기가 짓밟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흩어진다고? 내 마기가?’
단자강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저 붉은 꽃잎에 닿는 순간, 그가 발출한 마기는 마치 물을 끼얹은 불처럼 스러졌다. 힘에서 밀리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것만 같았다.
“상극……?”
저 기운이 마기를 억제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역시 말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도 아닌 단자강의 마기다.
물론 세상에는 반드시 상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의 격차 앞에서는 그 상성조차 무의미해지지 않던가?
물이란 불을 꺼 버리는 상극이다. 하지만 거대하게 피어난 불은 되레 물을 증발시켜 버린다.
그런데…… 고작 저런 기운에 그의 마기가 힘을 쓰지 못한다고?
‘대체?’
단자강의 두 눈의 의문으로 물들던 바로 그때였다.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붉고 검은 기운의 격전지 그 중앙에서 한 줄기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분명 그 형태는 불이되, 북해의 찬바람보다 더 시리고 칼날보다 더 날카로웠다. 푸른 불꽃은 이내 꽃잎이 막아 내고 있던 단자강의 마기를 사정없이 뒤덮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귀를 멀게 할 것 같은 천붕지음(天崩之音)이 터져 나왔다.
막대한 기운들끼리의 충돌이 가져온 어마어마한 여파에, 천하의 단자강조차도 뒤로 한 발짝 물러나고 말았다.
전신의 마기가 진탕되어 들끓기 시작했다. 주교의 직위에 오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고통이 찾아왔다.
그 익숙하고도 생소한 감각이 순간적으로 단자강의 주의를 흐트러뜨렸다. 두 사람의 기척을 놓치고 만 것이다.
“큭!”
곧바로 자신의 실책을 알아챈 단자강이 재빨리 마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채 발현되기도 전에 그의 얼굴 앞에 새하얀 검신이 불쑥 튀어나왔다.
단자강은 두 눈을 부릅뜨며 벼락처럼 손을 뻗었다. 날아드는 검을 막아 내자 요란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카가아아아앙!
백색 검신이 단자강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허공에서 그대로 검을 내리친 청명의 이글대는 눈과 분노를 숨기지 않는 단자강의 눈이 허공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이……!”
단자강이 들끓는 노기를 실어 청명을 갈기려던 순간, 그의 얼굴을 향해 황금빛 유성이 날아들었다.
콰앙!
단자강의 몸이 뒤로 쭈욱 밀려났다. 바닥에 긴 선을 남기며 밀려난 그는 두 사람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또옥.
길게 베인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옅은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손바닥에선 화끈한 통증이 번졌다.
그렇게 잠시간 제 손을 바라보던 단자강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에 선 두 사람을 응시했다.
“이런, 이런. 천하의 주교께서 당황하신 모양이군.”
장일소가 소매로 제 입가를 훔쳤다. 창백하다 싶을 만큼 흰 피부에 붉은 피가 번졌다.
청명의 입가에서도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왜? 마교에서는 제대로 싸워 주는 이가 없었던 모양이지?”
비웃음을 흘린 청명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말했다.
“그래도 너무 상심할 것 없어. 이제 알게 될 테니까.”
청명이 검을 들어 주교의 목을 겨눴다.
“진짜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게 어떤 건지 말이야.”
단자강은 상처를 손에 쥐듯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다시 두 눈에서 살벌한 안광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하루살이 같은 것들이!”
포효하는 단자강은 상처 입은 짐승과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모조리 찢어 죽여 주겠다!”
“오?”
그 광경을 본 청명의 두 눈에 기이한 광기가 스쳤다.
“이제야…… 내가 알던 주교 같은데? 하하하핫!”
검을 역수로 쥔 청명이 커다란 광소를 터뜨리며 단자강을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