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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52화 (1,053/1,567)

1052화. 나도 미친놈이었군. (7)

“막아아아아아앗!”

집법사자들은 수없이 생각하고, 또 고민해 왔다.

중원. 그 수에 있어서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적(大敵). 그들을 어떻게 상대하고 어떻게 멸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들보다 더 적은 수의 중원인이 오히려 그들을 뚫고 돌파해 오는 상황 말이다. 그건 천마라는 신성(神聖)에 모든 것을 바친 이들에게는 결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대처가 되질 않았다. 소수의 강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는 그들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파아아아아앗!

벼락처럼 휘둘러진 청명의 검이 달려드는 마교도들을 순식간에 분쇄했다. 도사의 손끝에서 나온 일격이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단호한 검격이었다. 그 검격 앞에 모든 것이 그저 평등했다.

눈앞에서 동료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을 본다면 제아무리 철석간담을 지닌 이라 해도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교도들은 자신들이 어째서 마교라 불리는지를 그 목숨으로 증명했다.

“카하아아아악!”

뒤쪽에 있던 마교도가 분쇄된 제 동료의 몸뚱이를 양팔로 후려쳐 걷어 내며 청명에게 달려들었다. 마기로 새까맣게 물든 마교도의 손이 청명의 얼굴을 할퀴려 드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카가가강!

마교도의 손이 날아든 무언가에 막히며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손에 빼곡하게 끼워진 반지로 마교도의 마조(魔爪)를 막아 낸 장일소가 연이어 팔을 휘둘렀다.

퍼석!

마교도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피와 뇌수가 흩뿌려졌다.

“버릇없게.”

짧게 감상을 전한 장일소의 두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여전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마교도 너머의 높은 주루였다.

그때, 혜연과 남궁도위가 그를 스쳐 지나가며 앞으로 달렸다. 장일소가 피식 웃었다.

“설마 내가 소림과 남궁의 호위를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이거 참 진귀한 일이로군.”

“주둥아리 놀려 댈 시간 있으면 싸워!”

“……이런 말을 듣는 것도 진귀한 일이지.”

장일소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미친 짓거리야.’

지금 그들은 막아서는 마교도들을 절반쯤 뚫었다.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해, 지금 그들이 적의 진영 한중간에 서 있단 의미다. 지금이야 다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순간이라도 발이 멈추는 순간?

‘사방에서 덮쳐들겠지.’

제 발로 놈들의 포위망 안으로 걸어 들어와 준 꼴이 되는 것뿐이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병력의 우위란 어떨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또 어떨 때는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가 되곤 하니까.

발이 멈추고 주변을 둘러싼 마교도들을 두 눈으로 직시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들에게 남을 건 절망뿐일 터.

‘그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그 정신 나간 짓을 태연하게 저질러 대는 이와 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그 뒤를 쫓는 이들이 여기에 있다. 그 사실이 장일소를 오싹하게 했다.

만일 이들이 지금 노리는 게 주교의 목이 아니라 장일소의 목이었다면? 저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가 주교가 아닌 장일소였다면, 그는 지금쯤 어떤 기분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정말 진귀하다니까.”

장일소가 양팔을 들어 올렸다. 팔찌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그의 머리 바로 위에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설마 이 중원에.”

장일소가 양팔을 동시에 쫙 펼쳐 냈다.

“나보다 더 미친놈들이 있을 줄이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회전하던 팔찌들이 일제히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순간적으로 발출된 십여 개의 황금빛 유성이 마교도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익!”

마교도들이 마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제 정면을 향해 날아드는 팔찌를 쳐 냈다. 아니, 쳐 내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휘이이이익!

직선으로 날아들던 팔찌들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꿈틀거렸다. 후려쳐 오는 마교도의 손을 피해 내더니 괴이한 곡선을 그리며 몸뚱이를 파고들었다.

우드드드득!

질기기 이를 데 없는 피부가 순간적으로 저항했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팔찌는 말 그대로 육체를 갈아 내며 점점 안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악!”

가슴께에 파고든 팔찌는 마교도의 내부를 갈가리 찢어 내고는 등을 뚫고 나왔다. 그러고도 기세를 잃지 않고 뒤쪽에서 달려들던 마교도들의 몸을 연이어 꿰뚫었다.

맹렬하게 회전하며 종횡무진하는 팔찌는 꿰뚫은 마교도들의 몸을 산산이 부숴 놓고도 남을 만한 위력을 싣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치 열 마리의 황금빛 뱀이 날뛰고 있는 광경 같았다.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팔찌를 본 마교도가 양손으로 움켜잡으려 했지만, 황금빛 팔찌가 상승곡선을 그려 내더니 그대로 마교도의 얼굴을 꿰뚫었다. 밤하늘로 솟구치는 모양이 흡사 커다란 별 같기도 했다.

“나도 장단을 맞춰 줘야겠지. 멈추지 않으면 될 일이잖니?”

가열하게 달려들던 이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보조를 맞춰 달리던 화산의 제자들마저도 이 순간만큼은 할 말을 잃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도 자신이 할 일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파아아아앗!

청명의 검이 고통에 전율하는 마교도들의 목을 단숨에 쳐 날렸다.

“호오?”

장일소가 막 감탄을 터뜨리려는 순간, 청명의 좌우로 두 개의 그림자가 쇄도했다.

파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좌우를 완벽히 채운 백천과 유이설이 명백히 청명의 것과 닮은 검격을 쏟아냈다. 더없이 간결하지만 치명적인 쾌검이었고, 일체의 낭비를 허용하지 않는 지독한 살검(殺劍)이었다.

마교도들의 목이 연이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검이 약속이라도 한 듯 변화하기 시작했다. 간결하게 휘둘러지던 검은 공간을 확보하자마자 무수한 검기를 뿌려 내는 가공할 환검으로 화했다.

두 검 끝에서 수천 개의 꽃잎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붉은 매화 잎들이 아직 태세를 정비하지 못한 마교도들을 맹렬히 휩쓸며 전신을 파고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메우는 검기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

“아미타불! 타아아아아아아압!”

불자답지 않게 거친 기합을 터뜨린 혜연이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소림에서 공들여 키워 내고 화산이 완성한 소림제일기재의 가공할 내력이 그의 주먹에 실리기 시작했다.

쾅!

강력한 진각!

기이이이이이이이이잉!

뒤이어 마치 거대한 건물이 통째로 으스러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혜연의 주먹 끝에서 가공할 권력이 뿜어져 나갔다.

모든 마를 멸하고, 모든 삿된 것들을 정화하는 불법(佛法)의 권!

혜연의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이 극성으로 펼쳐지며 마교도들을 휩쓸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으로 윤종과 조걸을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이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뚫어 내라!”

“길을 열어!”

그들의 검격이 수없이 앞으로, 또 앞으로 쏟아지며 두터운 마교의 포진을 순식간에 뚫었다. 흡사 날카로운 송곳 같았다.

굳이 머리를 노리지도 않는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적을 죽이는 것도, 쓰러뜨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루로 향하는, 단 하나의 직선 길을 뚫어 내는 것뿐!

“이 개 같은 놈들이!”

집법사자들은 이를 악물고 청명을 향해 쇄도했다. 누구를 우선적으로 죽여야 하는지가 자명했다.

쾅!

하지만 길을 뚫던 화산의 제자들과 혜연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방으로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며 달려드는 집법사자들을 막아섰다.

카아아앙!

집법사자의 손과 화산 제자들의 검이 허공에서 서로 맞부딪히며 거대한 금속음을 만들어 냈다.

“비켜라! 이 더러운 놈들아!”

“안 되지!”

조걸이 집법사자를 농락하듯 히죽 웃었다.

“이쪽도 나름 필사적이거든!”

조걸의 눈이 달려 나가는 청명의 등에 힐끔 닿았다.

“내가 죽기 전에는 저 걸음은 못 멈춘다, 이 멍청한 마교 새끼야!”

화산의 검수들이 마음 급한 집법사자들을 격하게 몰아쳤다.

“큭!”

“이놈들이!”

집법사자들은 명백하게 강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화산의 제자들이 잠깐 그 집법사자들을 상대하는 사이, 빈자리를 대신 메울 새 얼굴들이 앞으로 치고 나왔다.

“혼자서는 좀 버거울 것 같은데.”

“끄응. 이제는 또 앞이로군, 작작 부려 처먹어야지!”

홍견에게 뒤를 맡긴 운검과 임소병이 앞으로 달려 나온 것이다.

“후욱! 후욱!”

그 광경을 본 남궁도위의 두 눈에 불똥이 튀었다. 금방이라도 탈진할 듯 숨을 헐떡이던 그는 이를 악물었다.

“선두는!”

커다란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내 자립니다!”

이미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내력을 힘껏 끌어 올린 남궁도위가 뛰쳐나가며 검을 치켜들었다.

고오오오오오오!

검 끝에 어린 백색 검기가 끝도 없이 그 크기를 키워 나갔다. 웬만한 장정보다 더 거대한 검기를 뽑아낸 남궁도위가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며 단숨에 검을 휘둘렀다.

“오오오오오오오!”

제왕현신(帝王現身).

남궁의 정수를 오롯이 담아 낸 제왕검형(帝王劍形)의 절초가 단숨에 발출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적의 한중간에 떨어진 백색 검기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가십시오, 도장!”

“가라, 청명아!”

그 모든 외침을 들으며 청명의 발이 땅을 박찼다. 고개는 돌리지 않는다. 등 뒤에 남은 이들을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건 길을 열어 준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 길을 따라 달려 끝내 도달하는 것!

운검과 임소병이 다급하게 달려드는 마교도들을 밀어 내는 순간 청명과 장일소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땅을 박찬다. 붉고 검은 빛줄기가 된 두 사람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옅어진 포위망을 뚫었다.

이윽고!

콰앙!

막아서는 마지막 마교도의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고 바닥에 처박아 버린 청명이 그 반동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치켜올려진 암향매화검이 희게 빛났다.

“타하아아아아아압!”

이윽고 뿜어져 나간 붉은 검기가 단숨에 주루의 아래층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앙!

귀가 먹먹해질 만큼 거대한 폭음과 함께 이미 반쯤 박살이 나 있던 주루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릉!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아…….”

적일의 두 눈이 절망과 공포에 휩싸였다.

무너진 주루에서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는 청명의 검이 마침내 도달해야 할 곳에 도달했다는 증거였다.

쿠르르르릉! 쿠릉!

주루는 삽시간에 완전히 무너졌다. 자욱하게 피어났던 흙먼지가 불어온 바람에 천천히 떠밀려 갔다.

그리고…… 이제는 본래의 모습을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무너진 주루의 잔해 한가운데, 한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이 고요에 휩싸였다.

“주, 주교시여……!”

적일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만이 울렸다.

외침을 들은 사내가 매우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아직 채 다 가라앉지 않은 흙먼지 속에서도 그의 서늘한 눈빛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눈을 마주한 청명이 이리처럼 이를 드러냈다.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암향매화검이 섬뜩하기 짝이 없는 검명(劍鳴)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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