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1화. 나도 미친놈이었군. (6)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교. 중원에서는 마교라 불리는 그들에게 있어, 중원을 살아가는 이들이란 더러운 불신자이자 이미 끊겼어야 할 목숨을 운 좋게 연명하는 하찮은 것들에 불과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천마께서 약속하신 그때가 오지 않았기에 가치 없는 삶을 구차하게 허락받은 저열한 놈들.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저열하고 하찮은 존재에게서 ‘두려움’을 느끼는 날이 오리라고는 말이다.
파아아아앗!
두 눈을 광기와 살기로 물들인 청명이 적일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그 어마어마한 속도와 기세를 정면에서 맞이하는 이에게 허락된 감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쾅!
적일의 발이 땅을 과하다 싶게 박찼다. 생각이라는 걸 할 틈도 없었다. 뒤쪽으로 몸을 날린 적일은 양손을 광인처럼 저었다. 사나운 마기가 줄줄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다소 달랐다. 교의 적을 멸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다가오는 이를 밀어 내기 위한 발악에 가까웠다.
당연히 교에 바치기 위해 존재한다 여겨 왔던 목숨을 아등바등 지켜 보고자 하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마기는 맹렬히 피어오른 화염 위로 솟은 흑연(黑煙)처럼 짙었다. 하지만 손을 내저으면 흩어져 버리는 연기와 달리, 이 마기는 사람의 몸에 닿는 것만으로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마(魔)의 결정체다. 그 지독한 마기가 청명을 휘감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명은 자신을 뒤덮으려 드는 마기를 보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다만 우수에 잡은 검을 좌측 하단을 향해 쭉 뻗었다. 그리고 우측 상단으로 맹렬히 그었다.
고막이 찢길 듯한 굉음이 일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앙!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강력한 일검(一劍).
허공에 피어난 붉은 선이 마기 중앙에 사선으로 선명히 새겨졌다. 적일이 전력을 다해 뿜어낸 마기가 단 일검에 갈라져 버렸다. 청명은 그 사이로 몸을 던져 쇄도했다.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환하게 그려져 있었다.
적일이 채 놀라기도 전에 발목에 섬뜩한 감각이 번졌다. 암향매화검이 그의 발목을 가로로 긋고 지나간 것이다.
서걱!
앞쪽 발목을 깔끔하게 베어 낸 검은 다시 섬전처럼 적일의 전신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허벅지와 복부까지 연이어 베인 적일은 이내 제 목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멈춰라!”
그 순간 또 하나의 집법사자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청명의 머리를 향해 낙하했다. 단번에 청명의 머리를 쪼개 버리겠다는 듯 양손에 괴조의 발톱 같은 마기를 머금은 채 말이다.
모두 청명이 우선 제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공격을 막아 내어야 할 상황이라 여겼다. 하지만 청명은 외려 지금까지보다 배는 더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뭣?’
사아아아아악!
암향매화검이 멈추지 않고 공기를 가르며 목으로 날아들자 적일은 기겁하며 손으로 막았다.
카각! 카가가각!
마기를 한껏 머금어 만년한철보다 몇 배는 더 단단해진 손바닥에, 빙한지옥의 삭풍보다 더 차가운 검날이 파고들었다.
‘끄윽…….’
적일은 목숨의 위기 앞에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황이었다. 오히려 그게 문제였다. 예민해진 감각이 통증을 오롯이 적일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피부를 뜯으며 파고든 검이 살을 찢고, 이윽고 손목뼈에 틀어박히는 그 모든 과정이 생생하기만 했다.
선기 어린 검은 발악하며 저항하는 마기를 낱낱이 풀어헤쳤다. 마치 톱으로 느리게 살을 써는 듯한 끔찍한 격통이 일었고, 검은 꾸준하게 적일의 목을 향해 전진했다.
“끄아아아아악!”
적일은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손에 박힌 검을 밀어 냈다. 그가 밀어 내는 딱 그만큼 검이 파고들었다.
이내 암매검이 그의 손목을 지나 팔뚝까지를 갈랐다.
“크핫!”
적일은 손에 들고 있던 세검을 내던지고, 제 왼팔에 박힌 청명의 검을 맨손으로 움켜잡았다.
콰드드득!
왼팔은 이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암향매화검은 그로도 모자란 듯 적일의 오른손마저 잘라 버릴 듯 요동쳤다. 오른손까지 위험한 상황이지만 적일은 필사적으로 검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의 눈에 청명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집법사자의 마수(魔手)가 똑똑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멍청한 놈! 실수를…….’
하지만 그 순간 적일은 움찔하고 말았다. 머리 위로 어마어마한 마공이 날아들고 있단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청명의 얼굴에는 일말의 당황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적일만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죽어라아아아아!”
마침내 집법사자의 손이 청명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려는 순간.
채애애애애애앵!
거대한 금속음이 울렸고, 날아들던 집법사자의 손이 청명의 머리 바로 위에서 멈춰 섰다.
들끓는 마기를 품은 손과 무방비 상태의 머리, 그 사이로 백색 검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어, 언제?’
적일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청명을 호위하듯 뒤에 머물며 싸우던, 영웅건을 한 청년이 어느새 쏜살같이 날아들어 청명에게로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이리될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과 달아오른 낯빛이, 그가 이 거리를 단숨에 좁히기 위해 얼마나 큰 공력을 소모했는지를 극명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카핫!”
물론 그 한 번의 공격이 막혔다고 집법사자가 쉬이 포기할 리 없었다. 하지만 허공에서 재차 손을 휘두르려는 순간, 백천의 위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집법사자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그가 본 것은, 밤하늘을 등진 채 날아드는 여검수였다. 그녀의 표정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사매!”
“네.”
쇄애애애액!
어두운 허공을 가른 유이설의 검이 수십의 검영으로 화해 집법사자의 전신을 꿰뚫었다.
“크아아아아아악!”
평소라면 이리 쉽게 공격을 허용할 리 없지만, 집법사자는 청명과 백천에게 신경이 쏠린 상태였다. 때마침 사각에서 나타난 유이설에게 대항할 방법 따윈 없었다.
집법사자는 이내 전신에서 피를 쏟으며 나가떨어졌다. 얼굴에 생겨난 긴 검상에서 붉은 피가 뿜어졌다.
‘빌어먹을 놈이!’
백천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이를 갈았다.
지시나 협의 같은 건 필요 없다. 이 미친놈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가는 순간, 무엇을 노리는지 뻔히 보였으니까. 그러니 백천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 아닌가? 지금 그가 정말 조금만 늦었으면 청명의 머리는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 나갔을 것이다.
이걸 신뢰라고 불러야 할지 무모함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따져 묻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명확하다.
“하아아아압!”
쾌속하게 검을 회수한 백천이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검을 날렸다. 그의 검이 향한 곳은 청명이 잡은 암매검 자루 끝이었다.
카가아아앙!
그의 검이 암매검을 친 순간, 적일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청명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백천이 땅을 박차기도 전에 윤종과 조걸이 백천을 스쳐 지나가며 청명의 바로 뒤로 따라붙었다.
화산의 제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적의 수가 이쪽보다 많고, 상황이 불리할 때 청명이 무엇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다.
“걸아!”
“예, 사형!”
조걸의 섬전 같은 쾌검이 전방으로 쏟아졌다. 당혹과 증오가 뒤범벅된 얼굴로 청명에게 달려들던 마교도들이 순식간에 휩쓸리며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더없이 부드럽게 휘둘러진 윤종의 검이 청명의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막아 내었다.
공격해 길을 여는 검.
막아 내서 지키는 검.
그 상반된 두 가지 검이 청명의 길을 열고, 청명을 지킨다.
빠르게 따라붙은 백천이 크게 외쳤다.
“열어라! 주교에게로 간다!”
과거 마교를 상대할 때, 청명은 적을 뛰어넘어 집법사자를 베어 냈다. 그리고 그의 목을 베어 내 모두의 목숨 또한 지켜 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적은 더욱 강하고, 주교 역시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강할 터.
그렇다면 청명이 그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청명을 지켜야 한다.
청명이라는 검의 날이 상하지 않게 온전한 상태로 저 주교의 목까지 날려 보내야 한다.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혜연 스…….”
“실례.”
바로 그 순간, 한 사내가 백천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머리 위로 펄럭이는 피처럼 붉은 장포를 본 백천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장일소!”
“대충은 이해했단다.”
나긋하게 말한 장일소의 양손에서 새파란 청염(靑炎)이 뿜어져 나왔다. 불덩어리처럼 쏘아진 그것은 청명의 앞에 있는 마교도들을 집어삼켰다.
마교도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는 그 순간, 장일소는 그대로 허공을 박차 청명의 바로 옆에 가뿐하게 뛰어내렸다.
“자, 그럼…….”
그는 귀기 어린 얼굴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갈까?”
파아아아앗!
청명과 장일소가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간다.
동시에 백천과 유이설, 윤종과 조걸이 그들을 호위하듯 따라붙었다.
그 모습은 마치 팽팽하게 당겨졌던 시위를 떠나 맹렬히 쏘아진 화살 같았다.
화살은 멈추는 순간 그 의미를 잃는다. 적의 중진을 돌파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실패한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하나뿐일 터.
하지만 청명도 장일소도, 그 둘의 뒤를 따르는 누구도 그 운명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았다. 그저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부수고 베어 내며 앞으로 또 앞으로 돌진했다.
“오오오오오오!”
청명과 장일소의 머리를 타 넘어 앞으로 날아든 혜연과 남궁도위가 각기 권력과 검기를 뿜으며 길을 열었다. 포탄처럼 쏟아진 막대한 기운은 미처 방비하지 못한 마교도들을 거칠게 휩쓸었다.
전방이 막히니 옆에서 파고들려 시도하던 마교도들은 당소소의 검기와 임소병이 날려 댄 선기에 가로막혔다.
“크윽!”
“이 불신자 놈들이!”
하나로 뭉친 화산의 일행은 밀집한 마교도들 사이로 깊게 파고들었다.
뒤를 노리려 드는 이들의 송곳니는 침착한 운검의 검격에 차단되었고, 끈질기게 따라붙으려 하는 마교도들은 이내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지는 붉은 홍견을 직면해야 했다.
파죽지세. 한번 기세를 올린 화산 일행은 마교도들의 바다를 가르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막아아아아아!”
처참한 몰골로 튕겨 나가 겨우 목숨만 부지했던 적일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교의 집법사자가 내지르는 고함이라기에는 너무도 다급하고 간절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최소한의 여유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놈을, 저놈을 절대 주교께 보내서는 안 돼!’
이게 불경스러운 생각이라는 건 그도 잘 알았다. 저 중원의 도사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그 힘이 하늘에 닿은 주교의 앞에서는 한낱 벌레에 불과하다. 저자의 검이 주교에게 닿는 걸 두려워하는 것은 주교에 대한 끔찍한 불경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적일은 제 가슴에 엄습하는 공포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안 된다. 저자를 주교께 닿게 해서는 안 된다!
“막아라!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무조건 막아아아아!”
어두운 밤하늘과 어두운 대지. 온통 검게 물든 세상을 하나의 붉은 화살이 갈랐다.
강림한 마(魔)의 심장을 갈라 버릴 더없이 날카로운 화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