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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46화 (1,047/1,567)

1046화. 나도 미친놈이었군. (1)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그 격언을 지금 홍견이 증명하고 있었다.

장일소의 개. 그 멸칭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인 이들이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개처럼 적들을 몰아붙였다.

가라앉은 두 눈과 굳게 다문 입술만 보아도 마음에 일절 흔들림 따윈 없다는 게 보였다. 그들은 가차 없이 마교도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리그었다.

카가가각!

섬뜩한 도기가 서린 칼이 머리를 막은 마교도의 팔로 파고들었다. 단단한 뼈와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뒤쪽에서 달려들던 이파(二波)가 앞사람의 등을 밟고 뛰어오르며 마교도의 머리에 쾌속한 도격을 찔러 넣었다. 처음부터 그리하기로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듯,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이어진 합격.

이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단련해 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이……!”

당황한 마교도가 칼이 박힌 팔을 당기려 하자 앞선 홍견이 제가 들고 있던 칼을 빙글 돌려 마교도의 팔을 끌어안듯 잡아당겼다.

그리고.

서걱! 서걱! 서걱!

좌우에서 하나씩, 머리 위에서 하나.

훈련된 사냥개들이 범을 노리듯, 선두에 선 홍견의 뒤에서 뻗어 나온 세 줄기의 붉은 선이 마교도의 전신을 긋고 지나갔다.

“……끄윽.”

양쪽 옆구리와 머리 한중간에 상처를 입은 마교도의 몸이 순간 뒤로 휘청였다.

쇄애애애액!

이어 날아든 도가 마교도의 목에 힘껏 틀어박혔다.

카가가각!

그건 목을 베어 내는 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톱으로 금속을 썰어 대는 소리에 더 가까웠다. 목에 반쯤 박힌 도는 질긴 피부에 걸려 거걱거리며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섬전처럼 날아든 홍견이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마교도의 목에 박힌 칼을 전력으로 후려쳤다.

카강!

마침내 깔끔하게 잘려 나간 마교도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하지만 한 명의 마교도를 피해 없이 처리한 홍견의 눈에는 승리에 대한 쾌감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다섯.’

마교도 하나를 피해 없이 처리하는 데 다섯이 필요하다. 홍견 다섯이면 웬만한 절정고수 하나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곳에 널려 있는 마교도 하나하나가 절정고수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단 의미다.

홍견들은 진득한 위기감을 전신에 두른 채 다음 사냥감을 향해 땅을 박찼다.

“끼아아아아악!”

지독한 귀곡성과 함께 시커멓게 물든 손이 날아들었다. 손을 뒤덮은 마기는 거칠게 일렁이고, 마기로 빚어낸 긴 손톱은 지독할 만큼 예리하게 목을 노려 왔다.

하지만…….

카앙!

조금의 동요도 없이 말끔하게 휘둘러진 백천의 검은 큰 힘을 싣지 않고도 마교도의 공격을 쳐 냈다. 검과 마교도의 손이 맞닿는 순간, 그 손을 감싸고 있던 마기가 밀려나며 손바닥에 시뻘건 검상이 새겨졌다.

파아아앗!

이어서 날아드는 찌르기. 섬전처럼 뻗어진 백천의 검이 순식간에 수십으로 분열하며 마교도의 전신을 뒤덮었다.

서걱! 서걱! 서걱!

살 베어 내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크하아악!!”

마교도의 입에서 노기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시뻘겋게 물든 두 눈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나.

카각!

백천은 날아드는 마교도의 팔을 찔러 뒤로 밀어 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한 발 더 다가갔다.

파아아아아앗!

이윽고 허공에 노을빛 선이 새겨졌다.

그 강렬한 선이 마교도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목이 반쯤 베인 마교도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끄흐…….”

경추를 반쯤 베인 마교도는 발악하듯 손을 휘저었다. 바로 그 순간 백천의 머리 위로 검은 형상이 환상처럼 솟아올랐다.

어두운 밤하늘로 치솟은 유이설이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이 향한 곳은 당연히 마교도의 목이었다.

서걱!

더없이 깔끔하게 마교도의 목이 잘려 나갔다.

뻗었던 검을 끌어당긴 그녀는 다시 한번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힘으로 몸을 다시 한번 띄워 올렸다. 이윽고 그녀의 검 끝에서 붉디붉은 매화 잎들이 수도 없이 피어나 사방을 휩쓸었다.

“크흑!”

“이 개 같은!”

마교도들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튀어나왔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공격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더구나 실(實)과 허(虛)가 뒤섞여 광범위한 공격을 퍼부어 대는 화산의 검술은 이런 집단전에서 특히 그 위력을 발휘했다.

위에서 퍼붓는 매화검기가 마교도들의 몸을 수없이 꿰뚫었다.

“사형!”

“가자!”

그리고 그 순간 백천의 뒤에서 윤종과 조걸이 빛살처럼 앞으로 뛰쳐나갔다.

마교도들이 발작적으로 공격을 해 댔지만, 둘은 맞상대를 피하지 않았다. 되레 강렬한 강검(强劍)으로 달려드는 마교도들을 그대로 후려쳤다.

콰아아앙!

베어 내고 할퀴어 대고, 또 잘라 내는 소음으로 가득하던 전장에 폭음이 터져 나왔다. 마교도를 단번에 후려쳐 밀어 낸 조걸과 윤종이 더욱 기세를 올리며 주위의 마교도들을 좌우로 밀쳤다.

“사고!”

그들이 열어 낸 길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뛰쳐나온 당소소가 몸을 뒤집어 하늘을 보며 검을 뻗었다.

유이설이 검을 내려 당소소의 서로 검을 맞대었다. 그러자 당소소가 재빠르게 검을 휘둘러 유이설을 높이, 더 높이 띄워 올렸다.

사라라락!

그녀의 검이 붉은 검기를 다시 한번 줄줄이 뿜어냈다.

낙매분분(落梅紛紛).

절정에 오른 이십사수매화검법이 검게 물든 하늘 아래 수많은 매화 잎을 그려 냈다. 마치 붉은 비가 내리듯, 흩날리는 매화가 마교도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끅…….”

“커헉…….”

팔다리며 몸을 꿰뚫린 이들은 그저 고통을 참아 내면 되었지만, 머리나 목이 꿰뚫린 이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어 대다 고꾸라졌다. 선기(仙氣)를 머금은 매화 잎은 그들에게 저항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 더러운 불신자 년이!”

마교도들이 악을 쓰며 바닥을 박찬다. 그들이 노리는 건 당연히 유이설이 떨어져 내리고 있는 곳. 증오와 분노를 담아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를 증명할 사람이 이곳에 있다.

“아―미―타―불!”

어두운 세상에 신성하기 그지없는 황금빛 불광이 퍼져 나갔다.

강하게 땅을 박찬 혜연의 허리에서 주먹이 뻗어졌다.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모든 사특한 것을 멸하는 아라한의 권이, 뭉쳐 든 마교도들을 해일(海溢)처럼 뒤덮었다. 강렬한 황금빛 불광이 일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만 같았다.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마교도들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그 권력(拳力)에 휩쓸려 날아갔다. 몸 안에 쌓아 놓은 마기가 산산이 부서지고 으스러지는 감각은 육체가 부서지는 것 이상의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거, 이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임소병이 부채를 확 접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발이 맞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지켜본 바, 전투에 들어간 이후 이들은 서로 단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그런데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미리 들었다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화산도 아닌 소림 출신의 혜연마저 말이다.

‘아군이면 든든하고 적이면 끔찍하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그럼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그는 이들의 아군을 자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음……. 밥값은 해야 구박을 안 받겠지.”

탓.

학처럼 고고하게 앞으로 나아간 임소병이 부채를 쫙 펼쳐 내고는 부드럽게 휘둘렀다. 부채를 이루고 있는 철대에서 뿜어져 나간 선기(煽氣)가 나비 떼처럼 어지러이 주변으로 뻗어 나간다.

카가각!

백천에게 달려들던 마교도들이 그 기운에 막혀 주춤거렸다.

“자, 이제 앞으로 갈 것 아닙니까?”

“…….”

백천은 말없이 땅을 박차며 앞으로 쇄도했다. 그의 뒤를 임소병과 운검이 호위하듯 받치며 달려 나갔다.

‘굉장해.’

임소병의 입술이 움찔움찔 경련했다. 마치 웃음을 가까스로 참는 듯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선두로 뛰쳐나가는 백천의 모습은 인상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세상이 말하는 영웅의 상이 딱 이런 거겠지.

선택을 조금만 잘못했더라면 임소병과 녹림은 끝내 이들을 상대하게 되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했다.

한편, 달리는 백천의 두 눈은 생각만큼 열기에 들떠 있지 않았다.

서걱!

달려드는 마교도를 단숨에 베어 낸 백천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렵지 않아.’

확실히 알겠다.

그들의 선기는 마교도들에게 있어 재앙과도 같다. 저 강한 홍견이나 흑귀보의 정예들조차 애를 먹는 마교도의 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 내고 밀어 내고 있지 않은가.

이젠 비로소 알 수 있다.

지난 삼 년간의 수련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마교도들은 지독하게, 그리고 기상천외하다는 말로도 다 형용하기 힘든 방법으로 공격해 오고 있지만, 백천은 그 모든 공격에 대처할 수 있었다.

이미 겪어 봤으니까.

북해가 아니다. 청명과의 수련에서 수도 없이 상대해 본 공격들이다. 삼 년 동안 청명의 수련을 버텨 낸 그들에게는 이 전투 역시 특별할 게 없었다.

마교도가 내뿜는 광기라고 해 봐야 청명이 놈이 그들에게 뿜어 대던 살기에 비하면 간지럽지도 않다.

그렇기에 상황은 딱히 불리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게 다일 리가 없어.’

적의 전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백천이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은 너무도 확고하다.

‘겨우 이 정도였다면 저놈이 그런 반응을 보였을 리가 없다. 분명 뭔가 더 있어.’

백천의 시선이 저 멀리 선두에서 마교도들을 몰아치는 청명에게로 향했다. 그 극단적인 반응이 분명 겨우 이런 상대를 두고 나왔을 리는 없을 터.

“방심하지 마라! 검에 취하지 마!”

터져 나온 백천의 고함에 화산의 제자들이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즉각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백천의 시야에 청명을 향해 다가가는 장일소의 모습이 들어왔다.

파아아앗!

단숨에 마교도의 목을 하나 더 쳐 낸 청명의 얼굴로 뜨끈한 피가 쏟아졌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다음 마교도를 찾아 나아가려던 청명의 귓가에 싸늘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너무 기분 내지 말라고.”

“…….”

청명이 말없이 돌아보았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장일소가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서 있었다.

“네 적이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지? 이런 잔챙이들을 상대하면서 힘을 뺄 때가 아니야.”

청명이 차디찬 눈으로 장일소를 바라본다.

“가지.”

장일소가 스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마 지금 이 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건 그와 청명, 그리고…… 굳이 하나 더 넣자면 임소병 정도겠지.

“이긴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야. 적은 겨우 일백에 불과해. 이곳에 최소한 삼백은 더 있겠지. 이놈들은 외곽을 도는 조무래기일 뿐이야. 주력이 합류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그 전에…….”

잠시 말을 멈춘 장일소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죽여야지, 그 주교란 놈을. 온정은 충분히 베풀었잖니. 하찮은 사파 놈들까지도 하나라도 더 살려 보겠다는 도사님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싸늘하게 장일소를 노려보던 청명이 입가를 뒤틀며 말했다.

“속이 시커메서 악취가 흘러나올 판이군.”

“흐음?”

“하지만 뭐 좋아. 어울려 주지. 네 그 장단에.”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싸늘하게 마주 웃었다. 이내 장일소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가명아!”

“예!”

“따라붙어라.”

장일소의 두 눈에서 섬뜩한 빛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그 주교란 놈의 목을 베러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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