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3화. 죽든가, 아니면 죽이든가. (3)
흑귀보의 정예들이 본능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 광기에 휩싸여 달려드는 마교도들.
두 귀에 들리는 것은 마교도들이 질러 대는 짐승과도 같은 울부짖음.
피부는 저들이 뿜는 마기 탓에 아플 지경이고, 코끝으로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파고들었다.
오감이 모두 격렬한 경고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소리가 떨리는 입술 새로 쏟아져 나왔다.
그때.
“흐아아아아아아악!”
사람의 절규인지 귀곡성인지 알 수 없는 섬뜩한 비명과 함께 마교도들이 흑귀보의 정예들을 덮쳐 들었다.
“죽여 버려!”
흑귀보는 그간의 명성이 결코 허명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기세를 끌어 올리며 마교도들을 맞이했다.
쇄애애애액!
강력한 검기를 휘감은 도(刀)가 가공할 속도로 휘둘러졌다.
달려드는 이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실린, 실로 강력한 일도(一刀)! 몸은 긴장에 굳었을지라도 그 검에 실린 날카로움만은 결코 평소의 실력에 뒤지지 않았다.
그 섬전과도 같은 참격이 마교도의 팔을 향해 날아들었다. 금방이라도 그 팔을 동강 내어 버릴 듯했다.
‘뭐야? 별것 아니잖…….’
도는 조금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고 마교도의 팔에 무자비하게 박혔다. 하지만 그 순간, 도를 휘두른 흑귀보 정예의 두 눈이 한계까지 부릅뜨였다.
거걱!
당연히 팔을 잘라 내고 돌아와야 했을 그의 도가 마교도의 팔에 박힌 채 요동치고 있었다.
‘뭐, 뭣……?’
마치 질기고 끈적거리는 고무를 무딘 나무칼로 후려친 듯한 감각. 결코 사람의 팔을 벨 때 느껴져서는 안 될 이질적인 감각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이내 그는 보았다.
팔에 도가 박히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향해 손을 뻗어 오는 마교도와, 그 눈에 들어차 있는 저열한 쾌감을.
그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마교도의 손가락이 두개골을 뚫으며 파고들었다.
우드득!
“아아아아아아아악!”
마교도가 그르렁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짐승 같은 소리. 금방이라도 짙은 누린내가 풍겨 올 것처럼 날것 그대로의 살의였다.
“이 더러운 불신자 놈!”
마교도는 두 눈에서 광기를 뿜으며 두개골에 박았던 손을 내리그었다. 마기 머금은 손톱이 사람의 얼굴을 뼈째 잡아 뜯었다.
콰드드득!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얼굴이 통째로 뜯겨 나가면 누구라도 저런 비명을 질러 댈 테니까.
“내, 내 얼굴! 아아아악! 내 얼구우우울!”
두 눈까지 함께 잃은 그가 반사적으로 제 얼굴을 더듬거리려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바람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연이어 휘둘러진 마교도의 손이 그의 목울대를 뜯은 것이다.
푸우우우웃!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뜨거운 피는 마교도의 검은 무복을 흠뻑 적시고 흘렀다.
“끄……. 끄륵…….”
“하하하하하하하하핫!”
광기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겨 버린 마교도는 만족을 모르고 연이어 손을 휘둘렀다. 마기가 덧씌워진 손톱이 채 숨이 끊기지 않은 이의 몸을 난자했다. 살점이 무자비하게 튀어 오르고, 피가 흩뿌려졌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동료들은 이 지독한 광경에 분노하지 않아도 되었다. 채 분노할 틈도 없이 연이어 달려든 마교도들이 그들을 덮쳐 왔기 때문이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끓는 듯한 목소리로 외치는, 절규 같은 진언(眞言) 복창.
그것은 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콰드드득!
마기에 물든 손이 육체를 잡아 뜯는 소리는 정신없는 전장에서도 괴이할 만큼 선명하게 울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아악!”
산 채로 살이 뜯기고, 뼈가 뽑혀 나간 이들의 입에선 연신 처절하기 짝이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천마재림 만마앙복!”
“죽어라! 죽어! 죽어라! 더러운 불신자 놈들! 으하하핫! 으핫! 하하하하핫!”
피보라가 몰아친다.
몸에서 생으로 뜯긴 살점이 흩날리고, 뿜어진 피는 비처럼 쏟아진다. 혈우(血雨) 속에서 마교도들은 연신 광소를 터뜨렸다. 광기와 살의로 뒤범벅되어 붉게 물든 눈은 쉬지 않고 다른 희생자를 물색하며 번들거렸다.
하지만 흑귀보 역시 그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 미친놈들이!”
흑귀보의 문형(文瀅)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검을 찔러 넣었다. 가공할 속도로 쇄도한 그의 검은 달려들던 마교도의 눈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콰드득!
적의 눈을 꿰뚫은 검을 보며 문형은 쾌재를 불렀다.
“어떠냐!”
덥석!
하지만 그 순간 눈을 꿰뚫린 마교도가 손을 들어 제 얼굴에 박힌 검날을 그대로 움켜잡았다. 그러더니 하나 남은 눈으로 태연히 문형을 응시했다.
“흡!”
순간 질겁한 문형이 필사적으로 검을 당겼다. 하지만 그의 검은 거대한 바위에 짓눌리기라도 한 듯, 마교도의 손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흐으…….”
마교도는 이내 천천히 제 눈에 박힌 검을 뽑아냈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건만, 오히려 기괴한 웃음을 흘리면서.
“어……. 어으…….”
그 압도적인 광경에 완전히 질려 버린 문형은 얼굴에 핏기가 가신 채 몸을 떨며 주춤 물러났다.
콰득!
당황해 버린 대가는 당연히 죽음뿐이었다.
우득. 우드득! 우드드득!
가슴을 뚫고 들어온 손이 살을 헤집고, 뼈를 끊어내며 안으로 또 안으로 파고든다.
“끄륵…….”
문형의 입으로 핏물이 울컥울컥 역류해 쏟아졌다.
“천마……재림.”
마교도의 하나 남은 눈에 광기가 넘실거렸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환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만마앙복!”
우드드득!
마교도가 움켜잡은 문형의 심장을 그대로 잡아 뽑았다.
“…….”
흠뻑 젖은 마교도의 손 위에 펄떡거리며 아직도 피를 뿜는 심장이 놓였다.
아직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문형은 제 심장을 풀려 버린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흐하하핫!”
그 순간 마교도가 심장을 움켜잡은 팔을 채찍처럼 휘둘러 문형의 머리를 후려친다. 제 심장에 얻어맞은 문형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모든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문형에게는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더는 그의 눈으로 이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니까.
“천…마재림.”
마교도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제 눈알을 본 그가 히죽 웃었다.
“너희의 피가…… 우리를 평온케 하리라!”
콰직!
제 눈알을 미련도 없이 짓밟아 터뜨린 마교도가 포효하듯 고개를 한차례 젖히고는 다시 앞으로 짓쳐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서 마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하나 남은 눈에선 변함없이 시뻘건 혈광이 줄기줄기 뿜어졌다.
“이, 이 미친……!”
그 기세에 질린 흑귀보의 정예들이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물론 그들이라고 얌전히 적이 손에 죽어 준 것은 아니었다. 수련이란 정신이 아닌 몸에 쌓이는 것이다. 반쯤 전의를 잃은 상태라 해도 그들의 병기는 몸이 수없이 그려 낸 궤적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하지만 그 궤적이 완성되지 못한다.
꾸드득!
마교도들의 몸에 닿은 날은 그 몸을 잘라 내기는커녕, 되레 그 육체에 붙들렸다. 마치 아교라도 바른 듯 찐득거리는 몸뚱이가 녹은 고무처럼 날붙이를 붙들었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무슨 무공이냐!’
병기를 잃은 이에게 남은 결과는 으레 같다.
우두두둑!
통째로 뽑혀 나간 머리가 바닥을 구른다. 머리를 잃고 더는 사람이라 칭할 수 없게 된 그 몸뚱이를, 그 시신을 마교도들이 들러붙어 난자했다.
흡사 먹잇감에 달라붙은 아귀 떼 같았다.
“죽어! 이 괴물들아!”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찌르기가 마교도의 가슴을 파고든다. 마교도의 옷이 찢어지며 검이 살을 꿰뚫고 들어가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하지만…….
피 몇 방울이 흐른 게 전부였다. 심지어는 검이 파고든 주변의 피부가 의지를 가진 것처럼 상처에 몰려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몸에 침입한 검을 옥죄기 시작했다.
“크흐……. 흐흐흐.”
마교도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제 배를 찌른 이를 바라보았다.
“어…….”
역류한 피가 입을 가린 복면 사이로 새어 나왔지만 마교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손을 뻗어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손톱을 검을 쥔 손목에 박아 넣었다.
콰가각!
허무하리만치 쉽게 살을 찢어 낸 손톱이 뼈에 닿았다.
“끄윽!”
몸 안을 불로 지지는 듯한 끔찍한 격통. 그 고통 앞에 흑귀보의 정예도 참지 못하고 입을 쩌억 벌렸다.
“흐하하하핫!”
그러자 순간 웃음을 터트린 마교도가 앞으로 달려들어 벌어진 입 사이로 손을 쑤셔 넣었다. 그러더니 아래쪽 턱을 통째 움켜잡고 어마어마한 힘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드득!
괴이한 뼈 소리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이의 두 눈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차올랐다.
“아으……. 으……악!”
우드드득!
사내의 턱이 얼굴에서 뜯겨 나오며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격통 앞에 몸이 경련했다.
마교도는 제 배에 박힌 검을 천천히 뽑아내었다. 검이 빠져나오자 흉하게 뚫려 있던 구멍이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기사(奇事)였다.
“흐……. 흐으…….”
“……불신자 놈.”
잔인한 미소를 지은 마교도는 경련하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그 검 끝이 향한 건 다름 아닌 사내의 입이었다.
“아…… 안……!”
푸우욱!
기다란 검이 목구멍에 파고들었다.
온몸을 달군 쇠꼬챙이로 꿰뚫리는 듯한 고통에 사내는 끝내 눈을 까뒤집었다. 먹먹해진 귓가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영원히,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더러운 불신자여.”
파아아앗!
그 말을 끝으로 검을 휘둘러 사내의 몸을 두 쪽 내 버린 마교도는 들고 있던 검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외쳤다.
“죽여라! 모조리 죽여라! 감히 천마의 위대함을 알지 못하는 저들을 모조리 죽여 죄값을 치르게 해라!”
“천마재림 만마앙복!”
그 지독한 광기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엄숙한 진언이 뒤따랐다.
신을 잃은 광신도.
있을 곳을 잃은 마라들이 그간 쌓아 온 분노와 증오를 한순간에 발산하고 있었다.
목이 베이면서도, 몸뚱이가 꿰뚫리고, 팔이 잘려 나가면서도 그저 달려들어 눈앞에 있는 이들을 물어뜯고 도륙하기 바빴다.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 따위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광기에 제 몸을 맡긴 채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
누군가는 전의를 잃었다. 누군가는 끝까지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이들에게 맞섰다. 누군가는 등을 보이며 달아났고, 누군가는 팔이 잘려 나가면서도 적에게 칼을 쑤셔 넣었다.
하지만 맞이하는 결과는 잔혹하리만치 같다.
죽음. 실로 절대적인 결말이다.
시신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 무참한 죽음이 세상을 물들인다. 광신의 갑옷을 두르고, 교리의 칼을 든 마귀들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향한 증오를 일시에 뿜었다.
마교. 강호의 심연 속에 숨겨져 있던 그 어두운 이름이 핏빛의 불꽃처럼 타올랐다.
항주의 대지가 마(魔)에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