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1화. 죽든가, 아니면 죽이든가. (1)
연신 구역질이 치밀어 당소소는 힘껏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해…….’
눈앞의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구토감을 참아 내는 것 이전에, 치미는 눈물을 참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갈 곳을 모르는 그녀의 다른 한 손을 누군가 꽉 움켜잡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유이설이 굳은 얼굴로 당소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고…….”
“…….”
유이설은 언제나처럼 표정이랄 게 없었다.
하지만 당소소는 알 수 있었다. 일견 무표정해 보이는 그 얼굴에 차가운 분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오검 역시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사형.”
“…….”
언제나 조걸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해 주던 윤종조차도 이 순간만큼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분명 북해에서 마교를 목격했다.
그 집단이 얼마나 광신에 빠져 있는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절감했다. 하지만…… 그 잔혹성이 훑고 지나간 광경을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꾸우욱.
윤종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희게 질려 있었다. 짓깨문 입술에선 붉은 피가 번져 나왔다.
그런 윤종을 어쩔 줄 몰라 하며 보던 조걸은 결국 차마 입을 더 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곳에 너무도 많은 죽음이 있었다.
본디 칼끝에 서서 사는 것이 무인의 삶이다. 그토록 죽음에 익숙하건만, 그런 그들이 보기에도 이곳에 쌓인 죽음은 너무도 무거웠다.
으드득.
백천이 이를 갈아붙였다. 핏발이 잔뜩 선 두 눈이 지금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어떻게…….”
백천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두려워서가 아니다. 안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스스로 주체할 수 없어서였다.
“어떻게 이런…….”
보이는 것이 모두 시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해도 놀랄 만한 인파였을 것이다. 그 많은 이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숨이 끊긴 채 널브러져 있는데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백천을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몰아간 것은 이곳에 쌓인 죽음의 수가 아니었다.
바로 그 죽음의 방식이다.
“사람이란…….”
백천이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원수의 죽음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표하는 법이다.”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어 내도록 반목하던 이들이 벌인 전쟁이라 해도 이렇게 처참하게 도륙하고 시신을 방치하지는 않는다.
서로 살기에 급급한 전장이 아니라면, 적어도 죽은 이들을 땅에 묻어 주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는 법이다.
그게 사람이고, 그게 도리다.
아니.
설사 도리를 모르는 이라고 해도, 자신이 저지른 이 무도한 짓거리를 저 하늘 아래 훤히 대놓고 내보이려 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동정이나 연민도, 망설임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사람이기에 지켜야 할 마지막 무언가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백천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조걸이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렸다.
“사람이잖아요…….”
언제나 경쾌했던 그답지 않게 겨우 내뱉는 목소리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짓을…….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그 목소리에 모두가 숙연해지려는 찰나, 쿡쿡대는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걸이 웃음이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장일소가 참기 어렵다는 듯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순간 열이 확 오른 조걸이 으르렁거렸다.
“뭐가……. 뭐가 우습냐?”
“아니, 아니.”
장일소가 고개를 내저었다.
“과연 정파의 도련님들이라 그런지, 웃긴 이야기를 진지하게도 늘어놓는구나 싶어서 말이지.”
“뭐?”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하느냐가 아니지.”
장일소의 얼굴에 귀기가 감돌았다.
“사람이니까 이런 짓을 하는 거다. 오직 사람만이 이런 짓을 하지.”
“…….”
“그게 사람이라는 거란다. 똑똑히 기억해 두렴, 도련님.”
조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뭔가 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조걸은 되레 이죽거렸다.
“그,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너도 영 표정이 안 좋은데? 왜? 사파도 이런 걸 보면 화가 나는 모양이지?”
말을 마친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 홧김에 쏘아 대기는 했지만, 저 장일소에게 홀로 맞선다는 건 아직 힘겨운 일이니까.
하지만 돌아온 장일소의 반응은 의외로 태연자약했다.
“뻔한 소리를 하는구나. 당연히 화가 나지 않겠니?”
“……뭐?”
그 대답에 조걸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장일소가 이런 대답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일소는 고개를 돌려 시체 더미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차갑다 못해 시릴 지경이었다.
“사람이 죽었다느니 어쩌니 하는 뻔한 소리를 할 생각은 아니야. 어차피 사람이야 언젠가는 죽으니까.”
“…….”
“내가 화가 나는 건…… 이들이 내 것이었기 때문이지.”
장일소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두 눈이 무시무시한 빛을 뿜었다.
“내 영역 안에 있는 이들을 죽일 권리는 오직 내게만 있다. 그런데…… 어디서 기어 나온 건지도 모를 비루먹은 놈들이 감히…….”
그가 나직이 중얼거리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자 청명이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어차피 별 관심도 없었을 거면서, 빼앗기니 속이 뒤틀리나?”
“당연한 소리.”
장일소가 청명을 노려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내버려 둔 장난감이라고 해서, 다른 자가 멋대로 망가뜨려도 되는 건 아니지. 흥미가 없다고 해도 그건 내 것이니까.”
“……애새끼 같군.”
“그게 뭐 잘못됐나?”
장일소의 두 눈에 비웃음이 어렸다.
“어른이란 체면을 따지느라 제가 바라는 것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된 아이에 지나지 않지. 나는 그저 내 욕망에 조금 더 솔직할 뿐이란다.”
장일소가 청명을 똑바로 보며 쿡쿡 웃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야.”
청명은 고개를 내저었다. 장일소와 이런 입씨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 펼쳐진 광경에는 그도 배알이 뒤틀렸으니까.
익숙하다.
이들에게는 낯설고 충격적이겠지만, 청명에게는 그저 익숙하기만 한 광경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기분이 더러웠다. 그 지독한 과거가 바로 지금 생생하게 살아난 것 같아서.
시체 더미에서 삐죽이 솟아 있는 누군가의 가녀린 손을 응시하던 백천은 차마 더 못 보겠단 듯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외면하지 마.”
하지만 그 순간 청명의 냉정한 목소리가 여지없이 백천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게 마교가 득세한 세상이다.”
“…….”
“지금은 항주일 뿐이지. 하지만 마교가 전 중원을 집어삼키면 이 광경을 중원 전역에서 보게 될 거야.”
이들도 알아야 한다.
어째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어야 했는지.
어째서 과거의 선조들이 바로 뒤의 일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제 목숨을 던져 저들을 막아야 했는지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막아야 해.”
청명이 입술을 질끈 깨문 바로 그때, 먼 곳에서 일련의 무리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사형!”
“……나도 안다.”
화산의 제자들이 살짝 긴장 어린 눈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한눈에 보아도 적지 않은 수……. 아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였다.
‘적인가?’
모두가 본능적으로 제 검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지금껏 말이 없던 만금대부가 앞으로 나서더니 다가오는 이들을 맞이했다.
“보주를 뵙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지기 무섭게, 낯선 무리의 선두 몇몇이 무릎을 꿇으며 만금대부에게 예를 표했다.
“상황은?”
“놈들은 여전히 항주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렇군.”
“다만.”
“음?”
보고하던 이가 고개를 든다. 그의 두 눈이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최근 며칠간 정체불명의 이들이 나타나 속속들이 합류하고 있습니다. 그 수가 물경 삼백에 달합니다.”
만금대부의 얼굴이 굳어졌다.
“삼백?”
“예!”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흑귀보를 부순 건 주교의 짓이었지만, 그 주교 주변의 마교도들이 풍기던 기세 역시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그런 이들이 삼백이나?’
현재 항주 내부의 상황은 미지수나 다름없다. 그러니 일단은 적지 않은 수의 마교도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가용한 흑귀보의 병력을 모조리 끌고 온 것인데…….
“이건 예상외로군.”
설마 추가 인원이 더 합류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니,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잖은가? 저들이 이곳을 교두보로 삼을 생각이었다면, 인원 충원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걸 놓쳤다는 건, 그만큼 만금대부가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리라.
만금대부는 계산이 빠른 만큼 스스로 저지른 실수에 대한 인정도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눈앞에 모인 오백의 병력을 두 눈으로 훑은 뒤 장일소를 돌아보았다.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련주.”
“문제?”
“적들의 수가 처음 추산한 것보다 많다.”
“흐음. 그래서?”
“……아무래도 지금은 한번 물러나는 쪽이 좋을 것 같다. 무작정 달려들어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그 말에 장일소의 눈이 묘한 호선을 그렸다.
“이거…… 실망이로군. 팔 하나를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 만금대부가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 버렸을 줄이야.”
“나는 지금 지독하게 냉정하다.”
만금대부가 이를 악물고 으르렁대듯 말했다.
“련주는 아직 그 괴물을 겪어 보지 못해서 그런 호기로운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곳에 있는 이들이 모조리 달려든다 해도 그 괴물을 잡아 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아. 련주가 말한 ‘칼’이 잘 들지 않는다면 되레 우리가 당할 수도 있다.”
장일소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게 만금대부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만금대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만금대부가 장일소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목숨은 하나뿐이다. 만전을 기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
장일소가 막 그 말에 대답하려는 찰나였다.
“태평한 소리 지껄여 대고 있군.”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가를 실룩인 장일소가 청명을 돌아보았다.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여전히 모르고 있어, 여전히.”
“…….”
“여기가 어디인지. 우리가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말이야.”
그 순간이었다.
청명을 바라보던 장일소의 시선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시체가 널려 있는 대지, 그 너머의 어딘가였다.
청명의 선명한 목소리가 울렸다.
“똑똑히 알아 둬라. 멍청한 사파 새끼들아.”
내내 차갑던 그의 얼굴에 사나운 웃음이 번졌다.
“저게 마교다. 마주한 순간부터 선택은 하나뿐이야. 죽든가. 아니면…….”
살기 듬뿍 어린 목소리가 더없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청명의 모습은 흡사 흉터 가득한 짐승 같았다.
“죽이든가.”
이내 장일소가 응시하던 곳에 시커먼 무리가 나타났다.
손끝이 저릿할 만큼 불길한 기세를 풍기는 마의 광신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동쪽 하늘을 뒤덮는, 짙디짙은 어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