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8화. 너희도 알게 될 거야. (3)
“사, 살려…….”
콰드득!
무심한 발이 사람의 머리를 짓밟아 터뜨렸다.
하나의 생명을 무심하게 끊어 버린 단자강이 피와 뇌수를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이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지나온 곳은 온통 시신뿐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관군(官軍)들이 달려오기는 했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일 것이고, 강호인들도 쉬이 건드릴 수 없는 관군조차도 단자강에게는 날아드는 파리떼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한차례 전쟁이 휩쓸고 간 것 같은 지옥도만이 남았다.
물론 이 지옥도도 단자강에겐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는 마땅히 지워야 할 존재들을 지우고 있을 뿐이니까.
사소한 동정이나 의문도 생길 리 없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묵묵히 지워 냈다.
그래. 이것들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다.
겉모습이야 교도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의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린 버러지에 불과하다.
이미 천마께서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셨다. 천마의 존재를 알고 그 앞에 복종할 기회를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기회를 스스로 거절했다. 강림한 신을 거부했으니 남은 건 오직 죽음과 그 뒤로 이어질 영원한 고통뿐이다.
‘결국은 이들이 선택한 거지.’
붉게 물든 대지를 무심히 바라보던 단자강이 고개를 돌리려던 바로 그때였다.
단자강의 시선이 문득 옆으로 돌아갔다.
귓가에 희미한 아이 울음소리가 스친 것이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죽은 이들과 죽어 가는 이들. 그 속에 뒤섞인 작은 기척을 놓쳤던 모양이다.
그는 새삼 자신 역시 이런 살육의 경험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발을 옮겼다.
“제, 제발……. 제발.”
이윽고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다소 기이한 광경이었다.
처참한 시체 더미 아래에, 웬 여인이 제 온몸으로 아이를 덮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우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오들오들 떨어 대는 여인을 보며 단자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발…….”
어떻게든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던 여인이 단자강의 기척을 느꼈는지 크게 움찔했다. 이윽고 겁에 질린 눈이 단자강을 올려다보았다.
여인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사신이라도 맞닥뜨린 듯 흐느끼며 벌벌 떨었다.
“제, 제발…….”
하는 말이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그 말이 향하는 대상은 명백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의 제발이 아이에게 하던 말이었다면, 지금은 단자강에게 하는 말이다.
“제발 이 아이만은…… 제발!”
단자강은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여인과 그 품에 안긴 아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어리석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임을 어째서 모른단 말인가?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이 단자강이 아님은 또 어째서 알지 못한단 말인가?
단자강이 무심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여인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터뜨렸다.
“학아……. 학아……. 제발. 학아.”
여인이 아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아 숨기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단자강은 한 손을 들어 올린 채 그 광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여인과 아이를 빤히 바라보던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여인에게서 멀어졌다.
딱히 동정 같은 건 아니다.
어차피 이 일대의 사람이란 사람은 모조리 죽을 터. 이런 곳에서 쇠약해진 여인과 아이가 살아날 방법 같은 것은 없다. 그가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죽을 목숨이다.
손대지 않아도 금방 죽을 테니, 굳이 더러운 불신자의 피를 더 묻히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다.
철벅.
땅에 고인 피를 밟으며 잠시 걷자니 적일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보고드립니다!”
피에 젖은 땅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복한 적일이 보고를 시작하려다 순간 고개를 들었다. 단자강의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는지 두 눈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가면서 듣지.”
하지만 그 순간 단자강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감히 그가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예!”
결국 적일은 잠자코 일어나 단자강의 뒤쪽으로 따라붙었다.
“9할 이상 처리가 끝났습니다.”
“늦군.”
“죄송합니다. 도시가 도시이다 보니…… 지하로 숨어든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변명은 무능을 가리는 좋은 방편이지. 하지만 신심(信心)의 부족을 가리지는 못해.”
그 말을 들은 적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흘 내로 끝내겠습니다!”
“이틀.”
“…….”
“이틀 주지. 그 안에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없애라.”
“복명!”
적일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주교의 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교의 법칙이니까.
적일이 그 결심을 다잡고 있을 때, 단자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일.”
“예, 주교시여.”
“하나 묻지.”
적일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단자강의 하문을 기다렸다.
“이들의 죽음은 그 죄악의 대가에 불과하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위대하신 분께서 내민 구원의 손길을 거부했지. 천마의 존재를 알고도 교에 귀의하지 않고, 감히 천마를 적대한 이들이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분의 존재를 알고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은 구원의 여지가 없다. 무지했기에 선택하지 못한 이들도 그 죄악을 벗을 길이 없다.”
적일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교리 중 하나다.
“하지만 적일.”
그때 단자강이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천마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선택할 기회조차 아직 얻지 못한 생명은 어찌해야 하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다. 아직 인지가 없는 아이들 역시 같은 죄값을 치러야 하는가?”
적일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에게는 죄악이 없을지 모르나, 자식이 부모의 죄를 감당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단자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이라.’
과연 그걸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단자강이 가만히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거칠어진 입술이 손바닥에 스쳤다.
교의 안에서만 살아갈 때는 이런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믿고, 같은 것을 생각한다. 어긋난 것은 철저하게 배제되니까.
그저 믿는 것만으로 평안해질 수 있었다.
천마와 그 신령한 복음(福音)을 전하는 주교들의 설파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단자강이 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막상 그가 접한 세상은 마치 저 하늘처럼 뿌옇기만 했다. 교에서 바라보던 한 점 의혹 없는 하늘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 더 묻지.”
“예, 주교시여.”
“만약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이루고도…….”
단자강은 차마 말을 잇기 힘든 것처럼 잠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우리의 절규에 답하지 않으신다면…… 너는 어찌할 셈인가?”
“…….”
“다시 교로 돌아가 그저 그분이 오시기만을 영원토록 기다릴 것인가?”
“저는…….”
머뭇거리던 적일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가.”
“제가 아는 것은 그저 하나입니다. 교도의 기쁨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것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어기고 추구할 수 있는 쾌락은 사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단자강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대답이로군. 네 신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감사합니다, 주교시여.”
“이곳을 마무리하라.”
“예.”
“아, 그리고.”
단자강의 단호한 목소리에 적일이 멈칫했다.
“아무래도 그자가 마음에 걸리는군.”
“……일전에 찾아왔던 그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단자강이 피식 웃었다. 굳이 이름까지 기억할 만한 이는 아니다.
“그리 쉽게 포기할 만한 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분명 다시 우리를 노리려 하겠지.”
“예.”
“허망한 발버둥에 불과하겠지만, 경계해서 나쁠 건 없다. 주위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미리 대비하도록.”
“마침 뒤따르던 교단의 교도들이 막 도착한 참입니다. 그들에게 경계를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방법은 맡기지.”
“예, 주교시여!”
적일이 왔던 것처럼 빠르게 멀어졌다. 단자강의 무심한 걸음은 멈추지 않았지만 조금 전에 비해서는 묘하게 느릿해 보였다.
‘교리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 그건 당연한 일이다.
교리가 완벽하다면 불신자는 존재할 수 없다. 애초에 교리라는 것은 우둔한 이와 명석한 이를 구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을 이와 믿지 않을 이를 가르는 척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교리는 완벽해서는 안 된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교리는 그 신심을 가를 척도가 되지 못하니까.
의심할 여지가 있어도 믿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던가?
그러니 의심하지 않을지어다. 그저 믿을지어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어찌 이리도 다른가? 그 모든 의심이 자신을 좀먹어 간다는 걸 알면서도 한번 피어난 의심은 끌 방법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확인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군.’
단자강의 목적은 그분이 열어 주실 광명 된 세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분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 짙은 의심의 대가로 영원히 지옥불에서 타게 된다 해도, 천마의 존재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는 지옥불 속에서 영원히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
‘답해 주십시오.’
말해 주십시오. 모든 의심과 모든 의혹이 그저 헛된 것이었다고.
그리하여 이 믿음 부족한 자를 단죄해 주십시오.
부디 저 삭막한 대지에서 오직 천마만을 기리고 또 기리는 가엾고 불쌍한 이들을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단자강은 불씨가 될 것이다.
그의 존재는 불씨가 되고, 그의 의심은 스러져 확신으로 화하리라.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에 영원한 평온이 찾아올 것이다.
희열과 불신, 증오와 애정이 뒤섞인 얼굴로 단자강이 달뜬 웃음을 지었다.
‘나는 모순이로구나.’
의심하되 믿고, 믿되 의심한다. 의심 없이 믿지는 못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이 틀리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란다.
이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잊으라.’
지금은 그저 행해야 할 일을 할 때였다.
어느새 멈춰 버린 발을 다시 옮기려던 단자강은 순간 고개를 격하게 돌렸다.
북서쪽.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감각에 걸리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었을까? 조금 전에 그가 느낀 감각은?
단자강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북서쪽이라…….’
그의 두 눈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강을 건너야 할지도 모르겠군…….”
어두운 눈으로 북서쪽을 한동안 주시하던 단자강이 다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