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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36화 (1,037/1,567)

1036화. 너희도 알게 될 거야. (1)

백천이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교라.’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마교라는 두 글자를 들을 때면 머릿속에서 당연하게 북해의 기억이 떠오른다. 광기라는 말이 아니고서야 표현할 길이 없던 교도들과, 과연 인간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강렬했던 주교의 모습이.

백천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마교를 겪어 본 이들은 안다. 마교라는 두 글자가 두려움을 주는 이유는 그들이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같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상대하고 있는 듯한 공포감과 이질감. 그걸 이겨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막상 저 장강을 넘어 마교를 상대하러 가게 되니, 시린 긴장감이 전신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럼.”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나 조걸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만 가면 되는 겁니까?”

“……응?”

그 말에 백천이 제 주변에 있는 이들을 다시 확인했다.

그와 유이설, 윤종과 조걸, 당소소와 혜연. 거기에 청명까지 포함하면 모두 일곱이다.

‘일곱이라…….’

새삼스레 느껴졌다. 이게 얼마나 적은 수인지. 저 사패련과 마교에 비한다면 모래알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청명이 놈의 말도 맞다.’

화산이 모두 강남으로 넘어간다면 만일의 사태가 벌어져도 발을 빼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저곳이 적진인 것을 감안한다면 최소 인원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다.

“청명아.”

“응?”

“……백상이나 곽회는 어떠냐? 몇몇은 더 데려가 볼 만할 것 같은데?”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과 다른 화산의 제자들의 무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남은 이들 중에서도 급격한 실력의 발전을 보여 준 이들은 분명 있었다.

“아니.”

하지만 청명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더는 안 데려가.”

“……그러냐?”

“명심해, 사숙. 이건 경험하러 가는 게 아니야. 싸워서 이기러 가는 거다.”

“음.”

그때 청명이 담담히 말했다.

“아직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불안해서 안 돼. 이번 전투는 누굴 지키면서 할 만한 게 아니야.”

백천은 잠깐 그를 보다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백천이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을 사람은 남아도 된…….”

“거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시고 빨리 출발이나 합시다, 사숙.”

조걸의 말에 백천이 입을 닫았다. 윤종이 조걸의 뒤통수를 치며 혼을 냈다.

“사숙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인마!”

“아니…… 그렇잖습니까, 사형! 여기서 빠질 사람이 있겠어요? 저 양반은 잘 나가다가 꼭 한 번씩 이상한 소리를 하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응? 윤종아? 뭐라고?

“출발해요.”

유이설이 앞으로 한 발짝 나선다. 당소소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그녀의 옆에 섰고, 혜연도 반장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아미타불. 비록 제가 화산의 제자는 아니지만…….”

“아니, 그런 걸로 합시다.”

“대충 입문했다고 쳐.”

“스님. 이제는 소림 제자라고 해도 안 믿어 줍니다.”

“…….”

혜연이 확 빨개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강남의 양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데 불자 된 도리로……. 예. 이곳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의 말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이곳의 모두는 그 씁쓸함의 이유를 이해하고 있기에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려 들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일곱이…….”

“여덟.”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아주 잘 아는 이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여덟로 하자꾸나.”

“사숙.”

백천은 빙그레 웃으며 다가오는 운검을 보며 당황한 낯을 감추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문의 일이니 훔쳐보았다고 나무라지는 말거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버려 둬도 안심할 만한 사람이라. 어떠냐, 청명아? 나는 그 조건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냐?”

청명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숙조께서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꾸나. 어차피 돌아오러 가는 길이지 죽으러 가는 길은 아니잖느냐?”

운검이 다시 한번 빙그레 웃었다.

“이건 네 일이 아니다. 화산의 일이지.”

“…….”

“적지로 뛰어드는 임무를 맡는데 그 인솔을 이대제자가 맡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내가 함께 가지 못한다면, 나는 내 모든 권한을 사용해서라도 이 일에 반대할 것이다.”

청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사숙조에게 등을 맡길 수 있다면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고맙구나.”

운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종을 바라보았다.

“……검아.”

“심려치 마십시오, 장문인.”

운검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들은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 돌아오겠습니다.”

현종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부탁하마.”

“맡겨 주십시오.”

이런 위험한 임무를 아이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물론 현종도 운검도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은 굳이 운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건 단순한 무위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무거운 짐을 이들에게만 떠넘기지 않는다는 것. 강하든 약하든 문파의 윗대로서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사숙.”

백천이 입을 열자 운검은 하나 남은 손으로 그의 머리를 꽉 잡아 눌렀다.

“너를 못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마냥 기다리며 답답할까 봐 그러는 것이다.”

“예, 사숙.”

백천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역시 자존심을 내세울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운검이 있어 준다면 확실히 안정감이 달라지니까.

백천도 이럴진대 다른 이들도 느끼는 바가 확실히 다를 것이다. 그가 아무리 화산의 대제자로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연륜을 채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사문의 어른이 함께해 준다는 건 길을 떠나는 모두에게 커다란 위안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여덟이군요.”

백천의 말에 운검이 빙그레 웃었다.

“글쎄다. 그리 생각하지 않는 이가 있는 것 같구나.”

“예?”

기다렸다는 듯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응?”

모두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흰 무복을 입은 남궁도위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소가주님?”

남궁도위는 현종과 청명의 앞에 서더니 깊이 포권 했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소가주.”

현종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위험한 일이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남궁세가는 모험을 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소?”

“예. 하지만…….”

남궁도위가 현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건 화산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 말에는 현종도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남궁세가에 있어서 남궁도위의 가치와 화산에 있어서 이들의 가치 중 무엇이 더 큰가? 누구도 쉽사리 전자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종이 난처하다는 얼굴로 청명을 돌아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청명이 차가운 눈으로 남궁도위를 응시했다.

“하나 묻자.”

“예.”

남궁도위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은 가주를 잃었다.”

“…….”

“장로들도 잃었으니 위기에 처한 거야. 이런 상황에서 소가주마저 잃는다면 얼마나 상황이 힘들어질지 눈에 보이는 듯 뻔하지.”

남궁도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알면서도 강남으로 향하겠다는 건, 네 어깨에 올려진 책임을 회피하는 알량한 자기만족 아닌가? 소가주로서, 아니.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네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가문의 안위여야 하지 않나?”

무겁디무거운 물음이었다.

하지만 남궁도위는 청명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차분히 답했다.

“저도 고민 없이 나선 것이 아닙니다, 도장.”

크게 심호흡을 하는 얼굴에 이미 확신이 서 있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만일 아버님이 계셨다면 뭐라 말씀하셨을까?”

“…….”

“너무도 쉽게 결론이 나오더군요. 충분한 여유가 있고, 큰 피해를 감수하지 않아도 될 때 행하는 것은 협의도 무엇도 아닙니다.”

남궁도위가 굳은 얼굴로 말한다.

“저는 남궁세가를 다시 예전과 같은 문파로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되찾으려 하는 것은 남궁의 번영이 아니라, 남궁의 정신입니다.”

“……소가주.”

남궁도위가 깊이 포권 했다.

“그러니 제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화산의 협의로 목숨을 구한 남궁입니다. 그러니 최소한 스스로 협의를 베풀 기회를 끊지는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청명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다면 말리고 싶다. 남겨진 이들의 힘겨움을 이젠 청명도 잘 아니까. 하지만…….

“하나는 똑바로 알아 둬.”

“……무슨?”

“죽으러 가는 거 아니야. 지켜야 할 정신이 있다면, 살아 돌아와서 네 입으로, 네 손으로 직접 전해.”

남궁도위가 의지견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짐이 되면 두고 갈 거야. 너까지 챙겨 줄 여유 없어.”

“죽을 각오로 따라붙겠습니다.”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천이 길게 숨을 내쉬며 정리했다.

“그럼 아홉이로군.”

“아니, 열이다.”

“응?”

청명의 뜬금없는 말에 백천의 얼굴엔 의문이 어렸다. 또 있다고?

“나와.”

“…….”

“아, 빨리 나와. 시간 없어.”

“끄으응.”

잠시 후 슬쩍 앓는 소리와 함께 강변에 우거진 수풀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녹림왕?”

“아, 아니. 당가주님?”

임소병은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고, 당군악은 겸연쩍은 듯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아니, 아버지! 체통도 없이 거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놀란 당소소가 소리를 빼액 지르자 당군악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나라고…… 나라고 이러고 있으려던 건 아니다만.”

“그럼요?”

그 대답은 임소병이 대신 들려주었다.

“아니, 갑자기 강변에서 살기가 넘쳐나고 재수 없는 새끼 웃는 소리가 막 들려오는데! 안 나와 볼 수가 있습니까?”

“……아. 그러네.”

모두가 순식간에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라니.

그때 당군악이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열 번째 사람은 나를 말하는 건가?”

“아니요.”

청명은 이번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주님은 여기서 만일의 사태 때, 활로를 뚫어 주셔야 합니다.”

“그건 맹주님만으로도…….”

“가주님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말없이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던 당군악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예.”

당군악이 손을 들어 올려 임소병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게.”

“……예?”

“내가 아니면 자네 아닌가?”

“예?”

“…….”

“예?”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헛웃음을 흘리던 임소병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청명과 시선이 마주치자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 아니 나는 책사……!”

“거기서도 책사는 필요해.”

“나는 녹림을 지켜야…….”

“네가 죽으면 대충 아무나 녹림왕 하겠지. 녹림은 원래 그런 데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잊은 모양인데.”

청명이 피식 웃었다.

“녹림도 이제 천우맹이야.”

“…….”

“권리를 얻었으면 의무도 져야지. 군소리하지 말고 달라붙어. 아니면 그 계약서 찢든가.”

“이런 제기랄…….”

임소병은 세상 다 잃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단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쩐지 뭐가 잘 풀린다 했지. 내가 그럼 그렇지. 에이.”

바닥에 침을 탁 뱉은 임소병이 구겨진 관을 꾹꾹 누르고는 터덜터덜 다가왔다.

“악귀 같은 인간.”

그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청명의 뒤에 섰다.

“모두 열이군.”

화산의 제자들과 남궁도위, 그리고 임소병까지.

딱 열 명의 수가 갖춰졌다.

애초에 예상했던 일곱보다 크게 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열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그럼…….”

청명이 주위에 선 모두를 바라보았다.

“가 보자고. 저 망할 마교 새끼들을 쳐 죽이러.”

입술 사이로 청명의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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