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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35화 (1,036/1,567)

1035화. 우리가 그 옆에 없는 거다. (5)

장일소가 탄 나룻배가 강변에서 점점 멀어졌다.

걸터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던 장일소의 귓가에 호가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련주님.”

“음?”

장일소가 시선을 돌리니 노를 젓던 호가명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장일소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그냥 물으면 된다. 뭘 새삼스럽게.”

호가명이 살짝 고민하다 말했다.

“련주님께서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도가 계열 무학을 익힌 자를 필요로 하심은 압니다.”

“그렇지. 그런데?”

“하지만 저는 그게 왜 저 화산검협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흐음.”

장일소는 대답 대신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지었다.

하지만 호가명에게는 그 미소만으로는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았다.

“련주님께서 마음만 먹으신다면, 저 무당은 물론이고, 소림마저 끌어들일 수 있잖습니까.”

“확실히…… 가능할지도 모르지.”

이건 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마교라는 건 강호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하자면 장일소에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패가 손에 들어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패를 쥔 이상 마음만 먹었다면 정말 소림도 움직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예리한 칼이 필요하시다면, 차라리 그쪽과 손을 잡는 쪽이 낫지 않았습니까? 화산검협이 흑룡왕의 팔을 자른 것은 사실이지만, 정파에서 가장 예리한 칼이라기에는…….”

“쯧.”

장일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자 호가명이 송구하다는 듯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가명아.”

“예, 련주님.”

“너는 한 번씩 이상한 곳에서 핵심을 비껴 가더구나.”

호가명은 의문 어린 눈으로 장일소를 바라보다 제 생각을 고했다.

“제 생각에, 정파에는 그보다 날카로운 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칼도 있습니다. 화산검협이 아무리 예리한 칼이라 해도, 검자루를 잡은 이마저 해칠 수 있는 칼은 결코 명검이라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장일소가 피식 웃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 말도 맞지.”

“한데 어찌…….”

“분명 네 말대로 정파에는 좀 더 다루기 쉬운 칼이 있겠지. 게다가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칼도 있을 것이다.”

“예.”

“하지만 가명아. 왜 모르느냐. 내게 위험하지 않다는 건 다른 이들에게도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란다.”

“…….”

“그리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적이라면, 굳이 내가 이 강을 건널 필요도 없지 않았겠니? 내가 원하는 건 안전하고 튼튼한 칼이 아니다. 내 팔을 베는 한이 있더라도 적의 목을 완벽하게 잘라 낼 수 있는 요검(妖劍)이지.”

미소로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 장일소의 눈이 빛났다.

“그래서 화산검협이야 하는 거란다. 이해하겠니?”

호가명은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수긍하는 듯한 고갯짓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조금도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화산검협은 너무도 위험한 자다.’

장일소의 곁에서 호가명은 수많은 격전을 치렀고, 수많은 위기를 이겨내 왔다. 아마 사파를 통틀어 그만큼 전장의 진창에 몸을 담근 이는 장일소를 제외한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의 감각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해 왔던 어떤 적들보다, 저 화산검협이란 애송이가 더 위험하다고 말이다. 몇 배는 더 위험천만할 것이라고.

‘아니, 굳이 감각까지 논할 것도 없지.’

사람들은 말한다. 만인방만큼 단기간에 그 입지를 넓혀 온 문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바로 저 화산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만인방 역시 광서의 작은 흑도에서 시작하여 사패련의 패자라는 위치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문파다. 하지만 화산 역시 곧 망할 것이란 평가를 받던 삼류 문파에서 천우맹의 수장 자리까지 기어오른 어처구니없는 문파였다.

누가 더 높은 입지를 구가하고 있느냐를 따져 묻는다면 당연히 만인방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더 어려운 길이었는가를 따진다면…….

호가명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몇 년이던가?’

불과 십 년도 되지 않는 기간 만에 섬서의 작은 문파에 불과했던 화산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중심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바로 저 화산검협이 있다.

그렇기에 위험하다. 세상 누구보다.

‘물론.’

장일소 역시 이 모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해서라도 저 화산검협을 주교의 목을 날릴 화살로 쓰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호가명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일소에게는 모든 것이 천하를 발아래에 두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만인방도 사패련도, 저 화산검협과 호가명은 물론, 심지어 장일소 자신마저도 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목적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호가명은 아니다.

호가명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호를 발아래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장일소의 안위였다.

그는 장일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과거 그가 명령을 거역하고서라도 강남에 진입한 화산검협을 죽여 없애려 했던 것 역시 언젠가는 화산검협이 장일소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리고…….”

호가명의 생각을 읽은 모양으로, 장일소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그저 그뿐만은 아니란다.”

“예?”

“……그래, 그것만은 아니지.”

장일소가 천천히 손을 들어 입가를 쓸어내렸다. 피처럼 붉은 그의 입술이 거친 손길에 이지러졌다. 장일소의 눈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호가명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일소의 내심에 무엇이 담겼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존재하기는 할까?

그가 선택한 주군은 너무도 뛰어나지만, 그렇기에 때때로 따르는 이들을 힘들게 만들곤 한다.

호가명의 안색이 천천히 굳어 갔다.

‘위험하다.’

확실히 마교를 상대하는 데는 장일소의 말처럼 요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교를 물리치고 난 뒤에는?

적이 없는 상황에서 요검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반드시 폐기해야 할 흉물로 전락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이일수록 요검에 다치곤 한다. 자신만은 이 요검을 다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없이 노를 저어 가는 호가명의 눈에 서늘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 * *

멀어져 가는 장일소의 배를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던 현종이 깊은 탄식을 흘렸다.

‘거대하구나.’

장일소를 마주할 때마다 거대한 태산이 사위를 짓누르는 듯한 감각을 느끼고는 했다.

그럼에도 그가 장일소의 앞에 태연히 설 수 있는 까닭은 너무도 간단하다. 뒤에 또 다른 태산이 있기 때문이다.

현종이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순간 여러 가지 말을 떠올렸지만 결국에는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남은 것은 그저 하나뿐이었다.

“정말 가려 하느냐?”

그 말에 청명이 슬쩍 미소 지었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고뇌는 이미 씻은 듯 사라지고 없다. 투명할 정도로 맑은 눈빛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 평소의 청명이다.

“뭐, 저렇게까지 비는데 가 주는 게 예의 아니겠어요?”

씩 웃는 청명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현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 청명의 자신만만한 얼굴만 앞에 두면 불안이 가시고 만다. 저 웃는 얼굴 뒤에 얼마나 많은 것이 감춰져 있는지를 뻔히 알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화산 역시…….”

“안 됩니다, 장문인.”

청명이 대뜸 딱 잘라 말하자 현종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냐?”

“위험하니까요.”

“그러니…….”

“화산이 아니라 저희가 위험하니까요.”

“음?”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장일소 저 새끼는 독사 같은 놈이라 틈이 있으면 언제든 찌르려 들 겁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화산 전체가 저놈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 구원을 와 줄 수 있어야죠.”

현종이 입을 다물었다.

다 함께 강남으로 진입하는 것보단, 강 너머에서 화산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하는 쪽이 장일소의 계산을 흐트러뜨리기엔 좋을 것이다.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청명이 밝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하나만 대답해 주거라.”

“예, 장문인.”

“화산의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들이 걱정되기 때문이냐? 아니면 그편이 네가 만일의 사태가 생겼을 때 발을 빼기가 더 용이하기 때문이더냐?”

“후자입니다.”

청명의 눈빛에 묘한 열기가 스쳤다.

“이번에는…….”

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정말 제대로 날뛰어 보고 싶어졌거든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현종을 보며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문인.”

청명이 제 뒤에 서 있는 이들을 흘끗 돌아보았다.

“솔직히 뭐 그리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어쨌든 혼자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현종이 마지못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리고 청명과 그 뒤에 서 있는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탄식하듯 말했다.

“여전히 잘 모르겠구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안단다.”

현종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맺혔다.

“내가 선택할 수 없을 때 해야 할 일은…… 그저 믿어 주는 것이구나.”

“장문인.”

“하나는 기억하거라, 청명아.”

청명이 말없이 현종을 응시했다. 현종의 얼굴에선 이제 망설임이 걷혀 있었다. 현종이 심유한 깊은 눈으로 청명을 응시했다.

“너희가 혹여 저 강남에서 변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

“화산은 반드시 저 사패련에, 만인방에, 장일소에게 그 죄를 물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설령 그 결정이 화산을 이전보다 더한 몰락으로 밀어 넣는 우매한 짓이라 해도.”

현종의 목소리는 더 이상 유악하게 흔들리거나 떨리지도 않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앞에 선 이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보았다. 시선에 담긴 전에 없는 날카로움이 그저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니…….”

믿음과 우려, 걱정과 신뢰.

현종의 목소리는 그 모든 것을 묵직하게 담고 있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거라.”

청명이 몸을 바로 세웠다. 그와 동시에 다른 화산의 제자들도 일제히 자세를 곧게 했다.

“예! 장문인!”

이 자리의 화산 제자들이 일제히 장문인 현종을 향해 포권 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인연과 짙게 남은 미련, 그리고 새로운 각오까지. 그 모든 것을 담은 청명의 시선이 장강 너머의 땅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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