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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28화 (1,029/1,567)

1028화. 다만 이해하십시오. (3)

퀭하게 파인 눈. 말라비틀어져 쩍쩍 갈라진 입술, 거친 고목나무를 연상하게 만드는 피부, 핏기 없는 얼굴까지.

그 모든 것이 만금대부가 겪은 고초를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가 겪은 일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깨 바로 아래서부터 잘려 나간 팔이 그의 처지를 여실히 설명해 주고 있으니까.

만금대부는 초췌한 얼굴로 건너편에 앉은 이를 보았다. 옥좌에 반쯤 늘어진 이는 다리를 꼰 채 만금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이 경멸인지 우려인지, 그도 아니면 비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모든 게 다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만금대부는 의식적으로 어깨를 폈다. 그러지 않으면 자꾸만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저지른 죄가 있어서?

물론 그럴 수도 있겠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삼 년 만에 대면한 장일소는 그가 알던 장일소가 아니었다.

불과 삼 년 만에 장일소는 저 옥좌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만금대부조차 그 기세에 눌릴 만큼.

“……재미없는 농담이로군.”

장일소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룡왕이 매화도에서 팔을 잘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만금대부가 팔이 잘려 나타난다……. 이러다간 사패련에 의수 만드는 기술자라도 영입해야겠는걸.”

“…….”

만금대부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장일소는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도 없다.

“그래. 어디 지껄여 보지.”

그 말에, 만금대부의 비어 버린 동공이 장일소를 응시했다.

“변명이든 설득이든 해 보지. 그런다고 제멋대로 마교와 싸우다 팔을 잃고 돌아온 게 과연 면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웃음기 섞인 잔혹한 눈빛이 만금대부를 꿰뚫었다. 거의 시체 같은 만금대부의 눈빛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지금의 만금대부는 딱히 그 눈빛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저 눈빛을 두려워하기에는 그가 겪은 일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주교…….”

만금대부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떼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다.”

장일소의 두 눈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한쪽 팔 내준 대가로 참 대단한 걸 알아 오셨군.”

“……변명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련주.”

만금대부의 입술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주교라는 자를 떠올리는 것조차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듯이.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심지어 내가 그 괴물의 가슴에 박아 넣은 검마저도 놈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그 말이 나온 순간 장일소의 눈썹이 꿈틀했다.

만금대부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귀왕십이류는 장일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절의 검예(劍藝)다.

그런데 저 만금대부가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는 이가 세상에 존재한다?

‘현실적이지 않군.’

장일소는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살아오면서…… 그런 걸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건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아……. 정말이지 아무것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장일소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미 강호는 백 년 전에 그 마교라는 것들을 궤멸까지 몰아넣었지. 그런데 이제 와서? 질 떨어지는 농담이로군.”

“……농담 같은가?”

만금대부의 물음에, 장일소의 눈빛에 순간 짜증이 어렸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무시할 수가 없으니 더 심기가 불편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 농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게 다름 아닌 만금대부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 말을 전한 이가 흑룡왕이나 천면수사였다면, 겁에 질린 놈이 제멋대로 지껄여 댄다고 무시해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금대부는 아니다. 장일소가 아는 만금대부는 제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이성을 잃지 않을 이다.

“……나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겁에 질려 버렸지.”

“그러니까…….”

장일소가 사뭇 진지해진 어투로 입을 열었다.

“너 정도 되는 이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건가? 그 주교라는 작자가?”

만금대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 역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듯이.

“……조금 다르다.”

“달라?”

“분명 그는 강했다. 말이 되지 않을 정도였지. 내가 이끌고 간 백여 명의 정예와 나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어.”

그 광경이 떠오른다는 듯 만금대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래. 지금 생각해 보니 확실히 이상하군.”

“혼자 중얼대지 말고 제대로 이야기해 보지. 머리까지 이상해진 게 아니라면 말이야.”

장일소가 재촉하자 잠시 고민하던 만금대부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말을 들은 장일소의 두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좀 더 상세하게.”

“딱히 몸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기세에 눌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분명 최선을 다했음에도 내 검이 내 검 같지 않았지. 마치…… 그래, 마치 아주 깊은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장일소는 느리게 제 입술을 핥았다.

“마공이라…….”

마교에 대한 전승은 언제나 허황되다.

그중에서도 가장 허황된 건, 그들의 수가 결코 다수가 아님에도 언제나 전 중원을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광신에 몸을 맡긴 짐승들이라고는 하나, 같은 사람에 배에서 난 이들이라면 무엇을 배우든 그리 큰 차이가 생겨날 리 없다.

하지만 지금 만금대부의 말을 듣고 보니 그 괴이함에 대한 비밀이 어느 정도는 풀리는 느낌이었다.

만금대부는 덧붙였다.

“……벽을 만난 것 같았다. 어떤 것으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을.”

장일소는 얼굴을 굳힌 채 생각에 잠겼다.

돌이켜 보면 마교와의 대전에서 명성을 날린 사파인은 전무하다. 지난 마교와의 전쟁에서도 사파는 그저 마교를 상대로 속수무책으로 쓸려 나가기만 했을 뿐이다.

사파의 생리가 강자에게 굴복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굴복이란, 그 대가로 생존을 보장받았을 때나 의미를 지닌다. 항복하는 이를 살려 두는 법이 없는 마교를 상대로 굴복하는 게 무슨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당시 사파의 절대자들도 분명 마교를 상대로 응전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정파에도 크게 밀리지 않았을 이들이 이상하게도 마교를 상대로는 전과가 전무하다.

그렇다면 해석은 너무도 자명해진다.

“상성의 문제로군.”

“……아마도.”

장일소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만금대부의 말대로라면 마교의 무학은 사파에게 있어서 일종의 상성으로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에게만이 아니지.’

그랬다면 마교의 마수가 전 강호를 휩쓸 수는 없었을 테니까. 대부분의 중원 무학을 집어삼키는 종류의 무언가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대체 어느 누가 그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면 그 능력은 이미 사람의 것을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아니지.”

연신 관자놀이를 눌러 대는 장일소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야. 이게 아니지.’

장일소 같은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는 순간, 상황의 인과와 원리를 파악하려 든다. 이해가 동반되지 않는 일을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해하는 것보다는 현상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해석하지 못하는 것을 부정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수가 있으니까.

‘있는 그대로 해석해.’

설사 그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이 상황에선 부정보다는 인정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놈들의 수는 얼마나 되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장일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수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내가 보았던 이 외에는 다른 주교도 없는 것 같았다.”

“……선발대거나, 이탈한 무리라는 의미로군. 아니, 어쩌면 그게 남은 마교의 전부일지도 모르고.”

만금대부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해법은 간단하지. 어떻게 해서든 그 주교라는 놈을 죽이기만 하면 되겠군.”

“수로 밀어붙이는 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놈의 무학은 극단적으로 다수를 학살하는 데 특화된 것 같았으니까.”

“거꾸로 말하면 그런 놈에게 팔이 잘리고 도망쳤다는 말이지. 그런 소리를 잘도 지껄여 대는군. 수치도 모르는 모양이야, 대부.”

“이해하게 될 거다.”

장일소의 눈이 일순 가느스름해졌다.

하지만 만금대부는 그의 반응이 보이지도 않는 듯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직접 그 괴물을 마주한다면…… 부끄러움이 사치일 뿐이라는 걸…… 이해하게 될 거다. 반드시…….”

“쯧.”

장일소는 언짢은 듯 혀를 짧게 찼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등을 푹 기댔다.

‘하필이면 항주란 말이지.’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군자금이다. 그리고 하필 마교가 발호한 곳은 강남에서 가장 부유한 땅이다. 그곳이 초토화된다면 사패련이 거둬들이는 금전에도 크나큰 지장이 있을 게 자명하다.

무슨 수를 쓰든, 한시라도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가만히 눈을 감은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해법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뜬 장일소의 눈빛이 차게 빛났다.

“……선도(仙道).”

“…….”

“선도로군.”

마침내 해법을 찾아냈다는 듯 장일소가 삐딱하게 웃었다.

“놈들이 정말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이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깰 수 있는 것은 결국 선도(仙道)나 불도(佛道)겠지. 설마 내가 파사(破邪)의 기운 같은 허황된 말을 믿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그는 허탈하다는 듯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벌어진 일을 덮어놓고 부정하는 것보다는 나 역시 멍청한 광신도가 되어 보는 것이 낫겠지.”

그렇게 고개를 꺾은 채 천장을 응시하던 장일소는 마침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만금대부가 눈으로 그의 움직임을 좇으며 물었다.

“어찌할 셈이지?”

“칼이 필요해.”

장일소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아. 팔 병신 둘을 데리고 상대할 만큼 간단한 적도 아닌 것 같고 말이야. 내가 나섰다 실패하는 것이 가장 최악이겠지. 그럼 모든 것이 무너져. 결코 실패해서는 안 돼.”

“…….”

“그렇다면 제대로 된 명검을 손에 넣어야지. 그 괴물의 목을 확실하게 잘라 낼 수 있는 검을 말이야.”

만금대부는 머리가 비상한 자다. 자세한 설명이 없이도 그는 지금 장일소가 말하는 ‘칼’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알았다.

“그들이 응할 거라 생각하나?”

“흥.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대부. 응하길 바라는 게 아니야. 응하게 만드는 거지.”

“…….”

장일소의 기름한 눈에 요사스런 빛이 연신 일렁였다.

“세상은 참 재미있지. 설마 내가 저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벌어질 줄이야. 하하하핫.”

그의 커다란 웃음이 대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한동안 그리 웃던 그가 요란스러운 장신구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만금대부는 그 뒤에서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실린 눈으로 장일소의 등을 그저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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