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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25화 (1,026/1,567)

1025화. 지금 뭐라고 했어? (10)

“흐음.”

장일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손에는 서신이 들려 있었다.

“마교라…….”

장일소가 살짝 눈을 감았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듯이. 평소였다면 호가명은 그런 그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호가명은 제 인내심이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슬쩍 입을 떼었다.

“련주님…….”

그러자 장일소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이 평소보다 훨씬 어둑했다.

“마교란 말이지.”

장일소가 헛웃음을 지었다.

“원래 세상일엔 늘 변수가 따른다지만,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몸에 걸친 장신구들이 짤랑거렸다. 천천히 손을 든 장일소가 다시 생각에 잠기며 제 얼굴을 가볍게 움켜잡았다.

진한 불쾌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마교라는 변수 하나로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다 헝클어지는 느낌이었다. 혀로 입술을 느리게 훑었다. 장일소의 두 눈이 요사스레 빛났다.

“……우선은 흑귀보에서 대응을 하기로 했으니…….”

“실패할 거다.”

그 단정적인 어조에 호가명이 움찔했다.

“만금대부는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고 믿는 이지. 계산이 실패하는 것은 정보가 부족하고 분석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말이야. 물론 그의 생각은 대부분 맞아떨어지지만…….”

장일소가 살기 떨어지는 목소리로 확언했다.

“이번엔 아니야.”

“…….”

“세상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마교는 드물게 거기에 속하는 이들이지.”

장일소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역시 마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단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광신에 몸을 담은 이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완벽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만금대부가 멍청한 짓거리를 했어.”

“하면…….”

“발생한 변수도 최악이고 첫 대응조차 최악이라…….”

장일소가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뒤틀며 자조했다.

“꼴이 말이 아니로군.”

그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강변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명아.”

“예, 련주님.”

“저 강 건너에 있는 것들에게 마교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라.”

“……괜찮겠습니까? 저들은 분명 이 상황을 이용하려 들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지.”

장일소는 협의니, 뭐니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건 형편 좋은 이들이 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적당히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물론 저놈들은 자기들이 지어낸 말을 스스로 믿고 있는 모양이지만…….

“상관없다. 우린 이미 진탕에 빠졌다. 그렇다면 적어도 저놈들도 같은 진탕에 빠지게 만들어야지. 홀로 깨끗한 옷을 입고 느긋하게 구경하는 꼴은 볼 수 없잖니?”

“……이행하겠습니다.”

까가각!

장일소의 반지가 거칠게 마찰했다.

“술을 치워라.”

“예.”

“한동안 내 주변으로 아무도 다가오지 말라고 해.”

호가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일소는 말없이 강변 쪽만 주시했다. 그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호가명이 조용히, 하지만 신속하게 물러났다.

* * *

“……마교?”

법정은 순간 말을 잃은 사람처럼 입을 벌렸다.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마교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방 안의 분위기가 북해보다 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들에게 ‘마교’란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무겁고 두려운 것이었다.

“……지금 마교라 했느냐?”

“예, 방장! 지금 항주 쪽에서 마교가 발호한 것 같다고 합니다.”

“발호?”

법정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교의 발호. 이 말 앞에서는 천하의 법정도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뜬금없는 일이란 말인가?’

물론 아주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마교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그들의 발호는 언제나 전조 없이 벌어진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다가 한순간 일제히 몸을 일으키곤 했다.

백 년 전의 전쟁 역시 그렇게 벌어지지 않았던가?

입술을 짓씹던 법정이 법계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얻은 정보더냐?”

“……사패련 측에서 전달해 왔습니다.”

법계의 대답에 법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차마 묻지 못한 질문을 종리형이 대신 던졌다.

“그 정보가 확실한 것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정보의 출처가 사패련이라면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잖소? 저 장일소는 온갖 책략으로 우리를 괴롭혀 왔소. 이 정보 자체가 장일소의 수작이 아니라는 증좌가 없지 않소.”

법계 역시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검증은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전달해 온 정보의 내용이 내용인 만큼 검증 이전에 보고부터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이번에는 종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교에 대한 정보는 시간을 끌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법정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법계.”

“예!”

“개방에 이 상황을 전달하고 최대한 빠르게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전하거라.”

“예!”

“시급을 다투는 일이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법계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법정의 입에서 참지 못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마교라니…….’

왜 하필 이런 순간에 그들의 이름이 들려온단 말인가?

“방장…….”

“조금 기다려 보십시다.”

법정이 선수를 치듯 말했다.

“아무리 삼 년 전부터 개방이 강남의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고는 하나, 저 마교가 항주에서 발호한 것이 맞는다면 곧 사실 확인이 될 것입니다. 항주에 거지가 한둘이 아니니.”

“그렇겠지요.”

“일단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나서 대응을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종리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야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그의 가슴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쿵쿵 뛰고 있었다. 마교라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어찌해도 진정이 되질 않았다.

“다만 방장.”

그때, 뒤쪽에서 침묵하던 팽엽이 입을 열었다.

“만에 하나 마교의 발호가 정말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때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법정이 고개를 들어 팽엽을 바라보았다.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그 대신 종리형이 반문했다.

“어찌하다니요. 그게 무슨…….”

“마교는 일개 문파가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백 년 전에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

“백 년 전에는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정사를 가리지 않고 모든 문파가 연합했습니다. 그 말인즉, 마교가 정말 발호했다면 저 사패련과 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입니다.”

“……그게…….”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 종리형의 안색이 변했다.

사패련과 손을 잡는다니.

마교라는 대적이 존재하면 어쩔 수 없을지 모르지만, 역시 지독한 거부감이 앞섰다. 사패련과 손을 잡는다는 건 그들이 장강에서 해 온 모든 걸 무위로 돌리고, 정파로서 주장했던 명분을 거름통에 처박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교가 발호한 곳이 항주라면 우리는 저 강을 넘어야 합니다. 방장께서는 정녕 그리하실 생각이십니까?”

법정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침묵하던 그가 이윽고 눈을 뜨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은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에 대책을 논의하도록 하십시다.”

“방장, 이건…….”

“가주.”

법정이 팽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정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말은 곧 화를 부르는 길이 될 수 있으니 가주께서도 우선 침착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팽엽의 침울한 목소리를 끝으로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손끝이 저릿할 만큼 짙은 침묵 속에서 법정은 작게 불호를 외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눈은 불자의 것과 달리, 실로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뭐라고?”

백천과 윤종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말을 전한 조걸은 다시 한번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주변에 대화를 들을 이들이 더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다시 빠르게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분명히 들었습니다, 사숙. 사패련에서 온 놈들이 장문인께 분명 그리 말했습니다.”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느냐?”

“농담할 일이 아니잖습니까.”

백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아무리 조걸이라고 해도 마교라는 이름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화산의 제자라면, 특히나 그 북해에서 마교를 겪었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마교라니.’

왜 이때 갑자기 마교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손끝이 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북해에서 겪었던 마교 놈들, 특히나 그 ‘주교’라는 작자가 보여 주었던 위용은 아직도 생생하게 그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때 입었던 무수한 상처들이 아려 오는 것 같았다.

“이러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사숙?”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던 윤종마저도 지금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

그걸 백천이 무슨 수로 알겠는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놈은 지금 어디 있느냐?”

“놈이라니요?”

“청명이 말이다.”

윤종이 순간 움찔했다.

청명이 놈이 이 말을 듣는다면?

‘안 돼.’

마교라는 말만 나와도 사람이 달라지는 게 청명이다. 그놈의 귀에 이 말이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당장에 칼 한 자루 들고 달려가 버릴지도 모른다.

“지금 남궁세가를 데리고 수련을 나갔습니다.”

백천이 조걸을 노려보았다.

“다른 곳에 말을 전한 적이 있더냐?”

“아, 아닙니다. 사숙. 여기로 바로 달려왔습니다.”

백천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두 입단속 제대로 해라.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 모든 게 확실해지고 나서 전해도 늦지 않아.”

“예.”

“……마교가 발호했단 소식을 들으면 그놈 성격에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그러니 일단 청명이 놈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아니, 최대한 늦게 들어가게 해야 한다.”

“예, 사…….”

그때였다.

“지금 뭐라고 했어?”

“…….”

그곳에 있던 모두가 일순 굳어 버렸다.

절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이다.

‘아…….’

백천의 얼굴에서 순간 핏기가 가셨다.

“사숙.”

백천은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외면할 순 없었다. 숨을 들이켜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청명아. 그러니까.”

무표정하던 청명의 얼굴이 천천히 변해 간다. 어지간해서는 그들에게 보여 주지 않는 얼굴이었다. 흉신악살 같은 모습으로 청명은 진득한 살기를 흘렸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저건 그들을 위협하기 위해서 흘리는 살기가 아니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여 뿜어내는 살기였다.

“지금…….”

청명의 입술 새로, 마치 쇠를 긁는 듯 거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 뭐라고 했냐고.”

백천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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