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1024화 (1,025/1,567)

1024화. 지금 뭐라고 했어? (9)

“마, 막아!”

단자강이 돌진을 시작한 순간, 흑귀보 정예들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만금대부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하는 이다. 오랜 세월 동안 세뇌당한 것에 가깝게 인식해 온 사고가 당장 만금대부의 앞을 가로막고 그를 지키라고 악을 써 댔다.

하지만 발은 입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광.

전신을 휘감고 도는 시커먼 마기.

마치 단자강이 죽여 댄 망자들의 원혼이 그의 주위를 떠도는 것만 같다. 그 소름 끼치다 못해 파괴적인 광경이 그들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싸워야 한다는 이성과 살고 싶다는 본능이 연신 충돌했다.

그 순간, 흑귀보의 정예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했다. 본능적인 공포를 이겨 낸 이들이 분분히 날아들어 만금대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하지만 옳은 선택이 언제나 옳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콰아아아아아!

휘둘러진 단자강의 손이 그의 앞을 막아선 이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 난 두개골이 마치 암기처럼 사방으로 쏘아졌다.

겨우 손가락 한 마디 크기에 불과한 작은 뼛조각들이지만, 거기에 실린 힘은 끌어 올린 호신강기를 종잇장처럼 부수었다. 그뿐일까, 뼛조각은 연약한 사람의 몸을 소용돌이치며 꿰뚫었다.

“크아아아아악!”

가슴에 난 건 손톱만 한 구멍에 불과했지만, 그 등판에 난 상처는 사람의 주먹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컸다.

달려들던 십여 명을 삽시간에 곤죽으로 만들어 버린 단자강은 두 눈으로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신음하는 이들을 찢어발겼다.

피가 튀고, 살이 찢겨 나간다.

“주, 죽어라! 이 괴물아아아아!”

그건 어쩌면 용기가 아닌 만용, 또 어쩌면 발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단자강은 주제넘는 짓을 저지른 이들을 철저하게 응징했다.

쇄애애애액!

그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마기의 칼날이 달려드는 이들을 말 그대로 난자한다. 육편이 된 이들이 흩뿌려지며 주위에 자욱한 피 안개가 피어올랐다.

군마행(君魔行). 마귀가 세상을 걷는다.

그에게서 뿜어지는 마기가 대기를 찢으며 사위를 휘감고 돌았다. 그 압도적인 위용 앞에서는 강남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귀보조차도 그저 무력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만금대부의 발이 바닥을 박찬다.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해.

“막아 내라!”

만금대부의 입에서 높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하나뿐이다. 그가 이곳에서 죽는 것.

사파의 특성상 머리가 떨어지는 것은 궤멸을 의미한다. 그가 죽는다면 흑귀보는 순식간에 붕괴할 터,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계산을 마친 만금대부는 전력으로 몸을 빼냈다.

구차할지라도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저 미친 괴물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수 있다.

하지만 단자강은 자신이 점찍은 먹이가 멋대로 달아나도록 내버려 둘 만큼 자비롭지 않았다.

파아아아아아앗!

만금대부의 앞을 막아선 이들이 곤죽이 되어 흩날렸다. 부수고 짓밟고 꿰뚫어 낸 단자강은 곧장 만금대부를 향해 검은 화살처럼 쇄도했다.

“큭!”

만금대부의 허리춤에서 빛살이 뿜어졌다.

귀왕현신(鬼王現身)!

그가 천하에 자랑하는 절초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일체의 낭비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검격. 이 섬전과도 같은 쾌검에 한 줌 고혼이 되어 사라진 이가 몇이던가?

하지만.

카가가강!

만금대부가 날린 검격은 단자강의 손과 충돌하며 고스란히 튕겨 나왔다. 만금대부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내 검을 손으로?’

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들어 올린 단자강의 손끝에서 거대한 마기의 날이 솟구쳐 올랐다. 현세에 강림한 아수라(阿修羅)의 손톱과 같은 마기의 날이 만금대부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감히 막을 엄두도 내지 못한 만금대부가 바닥을 박차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기의 날이 떨어진 대지에는 마치 괴조가 발톱으로 긁고 간 듯한 거대한 상흔이 새겨졌다.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 더러운 불신자 놈이!”

단자강이 고개를 뒤로 젖혀 내며 짐승처럼 포효했다.

만금대부의 전신이 식은땀으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대체 어째서인가?

지금 이곳을 압도하고 있는 이는 당연히 단자강이다. 흑귀보는 그를 막아 내는 것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저자가 오히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날뛰고 있단 말인가?

“이!”

단자강의 양손이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쉽게 죽이지 않는다!”

두 눈에 실린 노화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단자강은 분을 이기지 못하는 듯 고함을 내질렀다. 온 얼굴에 혈관과 힘줄이 툭툭 불거지기 시작했다.

“감히 망령되이 그분을 담은 입을 천 갈래로 찢어발겨 주마! 이 불신자 놈!”

콰아아앙!

대지를 거세게 내밟은 단자강은 다시 한번 가공할 속도로 만금대부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만금대부는 이번에도 빠르게 몸을 옆으로 날려 피했다.

콰아아아앙!

단자강의 주먹이 떨어진 땅이 두부처럼 으스러졌다. 그리고 마치 물에 포탄이 떨어진 듯 폭발하며 위로 솟구쳤다.

파아아아앗!

몸을 날려 단자강의 공격을 피해 낸 만금대부는 순간적으로 몸을 뒤집으며 단자강을 향해 삼 검을 발출했다.

예리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세 줄기의 검광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정상적인 이라면 피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라면 막을 것이다. 하지만 단자강은 피하지도 막아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신을 마기로 휘감으며 검기를 향해 돌진했다.

‘뭣?’

콰앙!

뿜어져 나온 검은 마기가 날아드는 세 줄기의 검기를 튕겨 냈다. 만금대부는 반사적으로 바닥을 박차고 몸을 뒤로 날렸다.

하나 언제까지고 완벽하게 피해 낼 수는 없다.

콰드드득!

맹수의 앞발처럼 휘둘러진 단자강의 손이 만금대부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가슴께의 살이 한 움큼 쥐어뜯기며, 만금대부의 가슴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어딜 도망치느냐! 이 쥐새끼 같은 놈!”

만금대부를 뒤쫓는 단자강의 모습은 흡사 사냥감을 덮치는 비호 같았다. 몰리던 만금대부는 이를 악물고 검을 움켜잡았다.

그의 성명절기 귀왕십이류(鬼王十二流)의 절초, 귀왕겁천(鬼王劫天)이 생의 어느 순간보다 더 강렬하게 뿜어졌다.

콰각! 콰가가가각!

단자강을 휘감은 마기와 그의 검기가 허공에서 맹렬히 충돌했다.

“으으아아아아아아!”

만금대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괴성과 함께, 쪽빛보다 더 푸른 검강이 단자강의 마기를 찢어발겼다.

파앗! 파앗!

순식간에 단자강의 육체에 시뻘건 혈선이 종횡으로 그어진다.

“노오오오옴!”

연이어 발출된 귀왕관일(鬼王貫日)의 일검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찢겨 나간 마기의 틈을 파고들었다.

콰드드드득!

“…….”

만금대부의 두 눈이 일순 흔들렸다.

시리도록 새파란 검강을 머금은 그의 검 끝이 단자강의 가슴 중앙에 박힌 것이다.

‘어…….’

스스로 이루고도 믿을 수 없는 성과였다.

그렇기에 만금대부는 순간 공포감에 휩싸였다.

‘설마 함정…….’

콰득!

그 순간 단자강이 제 가슴에 박힌 검을 맨손으로 움켜잡았다.

“……쥐새끼가.”

만금대부는 본능적으로 검을 놓고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몸이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단자강이 그의 팔을 잡아챘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순간 만금대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단자강의 손톱이 그의 살을 꿰뚫고 뼈에 틀어박혔다. 마치 팔이 통째로 불타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작열감이 쏟아졌다. 만금대부의 전신이 학질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거대한 고통보다 더욱 만금대부를 절망하게 한 것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었다. 단자강의 가슴을 꿰뚫고 들어갔던 그의 검이 절로 스르륵 밀려 나오고 있었다.

“끄으……. 끄으으으윽…….”

고통에 잔뜩 핏발 선 그의 두 눈이 점점 커졌다. 시뻘건 구멍이 뚫려 있던 단자강의 가슴에 순식간에 붉은 살이 차오르고 있었다.

단자강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 둘 것이다. 네게 편안한 죽음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몸뚱이는 쓸모가 없겠지.”

순간 입이 쩍 벌어질 만큼 거대한 통증이 만금대부의 팔을 휘감았다. 탄탄한 근육으로 차 있던 만금대부의 팔이 순식간에 고목나무처럼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만금대부의 벌어진 입에서 처절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겨우 두 사람을 따라잡은 흑귀보의 대원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단자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주님을 지켜라!”

“죽어라! 이 괴물아아아아아아아!”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이들은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단자강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단자강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저 달려드는 이들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솟구친 검은 마기의 칼날이 달려드는 이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인간이 육편이 되고, 병장기가 가루가 되어 튕겨 나간다.

하지만 흑귀보의 대원들은 제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들었다. 이유야 간단하다. 만금대부가 죽는 순간 그들의 가족들도 죽는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카가강!

하반신이 날아가면서도 휘둘러 댄 검이 단자강의 어깨를 찔러 내고, 전신이 짓뭉개진 이가 하나 남은 팔로 단자강의 다리를 잡고 늘어진다.

“이!”

결국 단자강이 두 눈에서 혈광을 뿜어내며 몸을 돌렸다.

“이 더러운 불신자들이!”

동시에 검은 마기의 칼날이 동시에 수십여 개나 뿜어져 나왔다.

“모조리 죽어라!”

콰아아아아아아!

사람 몸통보다 더 큰 마기의 칼날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달려드는 이들을 덮쳤다. 육편과 피보라가 그의 칼날에 뒤섞여 인세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될 광경을 만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검은 마기의 폭풍은 전방을 휩쓸고 또 휩쓸었다.

그리고 한순간, 마치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처럼 씻은 듯 사라졌다.

세상이 고요함으로 물들었다.

오직 붉게 물든 땅만이 이곳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흥분을 채 가라앉히지 못한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던 단자강이 천천히 시선을 내려 제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았다.

고목나무처럼 말라비틀어진 누군가의 팔이 어깨부터 잘려 나가 있었다. 단자강의 입가에 옅은 비웃음이 스쳤다. 그는 들고 있던 팔을 바닥으로 집어 던지며 중얼거렸다.

“판단이 빠른 놈이군.”

단자강이 이성을 잃은 그 짧은 틈을 타 만금대부가 스스로 팔을 잘라 내고 달아난 것이다.

평소의 그라면 제 손에 잡힌 이가 달아날 틈을 주었을 리 없겠지만…… 마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린 이는 잠시나마 이성을 잃게 된다. 이건 그가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할 부작용이다.

하지만 강호에서도 이름깨나 알렸다는 놈이 고작 제 팔을 자르고 수하들을 모두 버린 채 달아나는 꼴이라니.

“고작 이런 놈들에게…….”

단자강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짙어진 의혹을 떨쳐 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강림하실 것이다.

그분은 반드시 강림하실 것이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그리하여 그의 안에 존재하는 모든 미혹을 부정하시고, 마침내 그에게 이름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단자강은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되리라.

“적일(赤一).”

“예! 주교시여.”

그의 명에 화답한 집법사자가 그의 앞에 나타나 부복했다.

“……더 많은 이들을 죽이고, 더 많은 고통을 저들에게 안겨 주어라. 세상 모두가 절망과 고통에 신음할 수 있도록.”

“예! 주교시여!”

단자강은 피로 물든 대지를 물끄러미 보았다.

‘듣고 계시나이까. 천마시여. 우리의 절규를.’

그는 한참 후에야 느리게 몸을 돌렸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고목나무처럼 비틀어진 만금대부의 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