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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977화 (978/1,567)

977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2)

실로 화려한 광경이었다.

검고 붉은 기의 파편이 폭죽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니, 마치 허공에 붉고 검은 거대한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다. 그 광경은 화려함을 넘어 숫제 장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또한 더없이 위험했다.

“피, 피해라!”

“아아아아아악!”

폭발한 기운은 가공할 속도로 매화도를 뒤덮으며 비산했다. 하나하나가 명검과도 같은 날카로움을 가진 도기, 검기의 파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수적들은 속수무책으로 그 검기에 꿰뚫렸다.

개개인의 수준이 높지 않은 그들로서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그 기운을 피할 길이 없었다.

“아아아아아악!”

“내 팔! 내 파아아알!”

여기저기가 꿰뚫린 수적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뒹굴었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화산 쪽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남궁을 보호해라!”

“예!”

현종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산의 검수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날아드는 검기를 튕겨 냈다. 그 과정에서 피워 낸 매화가 섬의 한쪽을 붉게 물들였다.

“음!”

당군악 역시 비도를 날려 도기를 쳐 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서 보호하는 화산의 검수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당가는 그 성향만큼 장단이 확실한 문파다. 적을 공격하는 것에는 어느 문파보다 뛰어나지만, 단병(短兵)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짧은 암기를 쓰는 문파의 특성상 방어에 더없이 취약하다.

화산은 이미 그걸 알고 남궁뿐 아니라 당가마저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기이한 기분이었다.

설마 수년 전의 그 문파가 그들을 지켜 서는 날이 올 줄이야.

당군악의 시선이 화산의 검수들을 넘어 그 위로 향했다. 저 폭발하는 기운 사이로 다시 맞붙기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로.

검과 도가 힘을 싣고 맹렬하게 충돌하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카아아아아앙!

한번 충돌했다 떨어질 때마다 귀가 먹먹할 만큼의 소음이 울렸다. 그리고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맹렬하게 충돌한다.

카가가가가각!

부들대며 서로를 밀어 내던 검과 도가 일순 강하게 튕겨 나갔다.

“타아아아아압!”

흑룡왕의 언월도가 허공을 갈랐다. 그가 뿜어낸 먹색의 도기가 청명을 향해 일자로 뻗어 나갔다.

그 어떤 변초도 없는, 정직하기 그지없는 일격. 하지만 그렇기에 빨랐고, 더욱 파괴력이 대단했다.

파라라라락!

청명의 검 끝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뿜어져 나온 매화가 날아드는 먹색 도기를 옆으로 밀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도기가 땅에 처박히며 모래가 분수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때 땅에 남은 깊은 상흔을 누군가가 뒤늦게 본다면, 결코 도가 만들어 낸 흔적이라고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큭!”

하지만 그 믿지 못할 흔적을 만들어 낸 흑룡왕의 얼굴에선 득의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오오오오오!”

흑룡왕이 연이어 목이 터질 듯한 사자후를 터뜨리며 도를 휘둘렀다. 그가 날린 십여 개의 도기가 청명을 덮치듯 날아들었다.

그 하나하나가 커다란 수적선을 분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위력이지만, 흑룡왕은 그런 것을 숨 쉬듯 날려 대고 있었다.

과연 일신의 무력만으로 장강수로십팔채라는 거대한 문파의 수장이 된 이다웠다. 그만큼 실로 놀라운 무위.

한쪽 끝이 먹물에 닿은 화폭 위에 먹이 번지듯, 도기가 선명하게 청명을 향해 뻗쳤다.

파앗!

하지만 그 가공할 광경을 보고도 청명은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날아드는 도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먹빛 도기가 그를 덮치려는 찰나, 달려들던 청명이 퍽 꺼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몸을 있는 대로 숙인 청명이 도기의 아래로 파고든 것이다. 바닥에 검을 박아 넣어 튕기는 동시에 발을 박차며 이전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땅을 스치듯 날았다.

쇄애애액!

도기가 청명의 머리 바로 위를 가르며 지나갔다. 잘린 머리카락 끄트머리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한 치라도 어긋났다면 머리가 통째로 잘려 나갔을 테지만, 앞으로 달려드는 청명은 일말의 주저도 보이지 않았다.

물 위를 나는 제비처럼 날아드는 그의 두 눈에선 선연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흑룡왕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숨에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도가 자세를 낮춘 청명을 강렬하게 내리찍었다.

그 도에 어린 가공할 기운은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청명의 두 눈이 새파란 빛을 내뿜었다.

파아아앗!

바닥을 박찬 그는 오히려 자신을 내리쳐 오는 도를 향해 솟구쳤다. 그리고 한 손을 검면에 붙이며 양손을 밀어 올려 내리치는 도를 검면으로 막을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본 흑룡왕의 두 눈에서 흉악한 기운이 폭발했다.

‘이 개 같은 놈이!’

내력을 쥐어짜 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막아 낸 검째로 청명을 두 동강 내 버릴 각오로 있는 힘을 다해 내리눌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흑룡왕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도를 막아 낸 검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있는 대로 휘어지는 광경이. 검면에 댄 청명의 손바닥에서 피가 튀어 오르고, 검을 잡은 손목이 뒤틀렸다.

허리는 뒤로 꺾여 버릴 듯 젖혀졌고, 파들파들 떨리던 입에선 피가 뿜어져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

하지만 그의 도는 아직 그 힘을 다하지 않았다. 이대로 내리누르는 것만으로도 이놈을 두 쪽 내고도 남을 터!

‘죽어라!’

흑룡왕이 내력을 더욱 끌어 올려 청명의 만용을 응징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드드드득!

젖혀진 몸에서 나오는 탄력을 모조리 공세로 전환한 청명의 무릎이 언월도의 창대를 움켜잡은 흑룡왕의 손목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끅…….”

흑룡왕의 입술을 뚫고 처음으로 억눌린 신음이 비집고 나왔다.

있는 대로 끌어 올린 내력이 도에 흘러 들어가려는 바로 그 순간을 노려, 기운이 흐를 길을 틀어막듯 그의 손목에 무릎을 찔러 넣은 것이다.

쾅! 쾅! 쾅!

연이어 날아드는 무릎이 이미 반쯤 갈라져 뼈를 드러낸 손목을 쉴 새 없이 찍어 댔다.

“크핫!”

흑룡왕이 결국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상대하는 이는 결코 적을 놓아주는 법을 모르는 악귀.

커걱!

청명의 검이 빙글 회전하더니 물러나는 흑룡왕의 도를 얽어 당겼다. 그 반동으로 돌진한 청명은 피에 젖은 이를 드러내며 몸을 회전시켰다.

파아아아앗!

초근거리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흑룡왕의 발등을 뼈째 쩌억 갈라 냈다. 그 발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에 신음하기도 전에, 또다시 날아든 검이 그의 겨드랑이 아래서부터 뻗어 와 얼굴을 향해 들이닥쳤다.

사아아악!

날카로운 날로 과일의 껍질을 벗겨 내듯, 얼굴로 날아든 검이 그의 턱부터 눈까지를 길게 가르며 지나갔다.

흑룡왕의 시야 한쪽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

“흐아아아아악!”

기합인지 비명인지 알 수도 없이 악을 쓴 흑룡왕이 도를 무서운 기세로 내리쳤다.

그 순간 언월도 바로 앞에서 다섯 송이의 매화가 피어올랐다.

콰드드득!

맹렬하게 휘둘러진 도는 하찮은 꽃 따위는 말 그대로 으스러뜨려 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아주 잠깐의 틈은 청명의 몸이 그를 스쳐 지나갈 틈을 만들어 주었다.

서걱!

무릎 측면이 베이는 감각이 섬뜩하게 퍼졌다.

흑룡왕은 휘청이는 몸의 균형을 어떻게든 잡아 내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와 동시에 등을 보이며 멀어지는 청명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도를 가로그었다.

“이 개 같은 노오오오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폭발적인 도기가 청명의 등을 향해 노도처럼 쏟아졌다. 무학을 익힌 이라면 누구라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세. 하지만 그 순간 청명이 몸을 돌리며 검을 치켜올렸다.

“타아아아아아아아압!”

상단세에서 이어지는 강력한 내려치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허공에 선명한 붉은 선이 그어진 순간, 쏟아지던 도기가 해안에 오롯이 서 있는 천년거목을 들이받은 것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아래로 내리그은 청명의 검 끝에서 매화가 줄줄이 피어났다. 그리하여 붉게 암향매화검을 휘감고 돌다가 이내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흑룡왕은 보았다.

도기 위로 마치 물결처럼 불어난 매화의 강이 그를 향해 폭포처럼 쏟아지는 광경을 말이다.

매화검결(梅花劍結). 매화류여하(梅花流如河)!

콰아아아아아아!

넘쳐흐른 강은 그의 도기를 뒤덮고, 밀쳐 내고, 또 흐르고, 흘렀다.

붉은 꽃잎으로 이뤄진 강이 향해 폭우에 불어난 계곡물처럼 흑룡왕을 향해 폭발적으로 밀어닥쳤다.

“이노오오오오옴!”

흑룡왕이 입술을 콱 짓깨물었다. 귓속에 우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튀었지만, 고통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두 눈에 핏발을 세운 그는 남아 있는 내력을 모조리 끌어냈다.

쾅!

진각을 내밟고 폭풍처럼 도를 휘두르며 앞으로 전진했다. 쏟아져 들어온 매화의 강은 그의 도기와 부딪히며 부서지고, 으스러지고, 튕겨 올랐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콰앙!

흑룡왕이 또 한 발을 내디뎠다.

소용돌이치는 검은 폭풍이 붉은 강을 부수며 청명을 향해 전진했다.

“흐아아아아아아악!”

있는 힘을 모조리 짜낸다.

평생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흑룡왕은 이 순간 직감한 것이다. 여기서 밀리는 쪽이 무조건 죽는다는 것을. 힘과 힘, 내력과 내력이 맞붙는 승부. 그가 결코 밀릴 수 없는 승부다.

시야는 차단된 지 오래다.

이 꽃잎의 강은, 그리고 그가 만들어 낸 도기의 폭풍은 시야를 모조리 앗아 갔다. 더욱이 한쪽 눈이 베여 반밖에 보이지 않으니 이 기운의 충돌 너머를 볼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굳이 볼 필요도 없다. 그의 적은 이 꽃잎의 강 끝에 있을 테니까! 마지막 한 발을 내딛고 그 목을 베어 내는 순간이 그의 승리다!

푸우우웃!

흑룡왕의 입과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있는 대로 긁어모아 끌어 올린 내력이 그의 육체를 폭발적으로 순환하여 도 끝에 머물렀다.

“이야아아아아아압!”

흑룡왕의 도가 가속했다. 더 빨리, 더 강하게! 모든 것을 집어삼킬 폭풍이 된 그의 도는 쏟아지는 매화검기를 말 그대로 후려쳐 터뜨려 댔다.

‘더!’

조금만 더!

머리가 점차 텅 비어 간다. 단전이 날카로운 칼로 난자당하는 고통에도, 흑룡왕은 굳건히 발을 내딛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쏟아지던 매화검기의 기세가 일순 느슨해졌다.

‘지금!’

흑룡왕이 모든 기력을 쥐어짜 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아니, 돌진하려 했다.

파아아아앗!

그때 매화의 강 속에서 청명이 튀어 올랐다.

평소의 흑룡왕이었다면 절대 놓치지 않았을 기습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두 눈이 아닌 한 눈으로 전투에 임해야 했던 그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늦게 청명의 존재를 알아챘다.

‘소용없다!’

흑룡왕은 힘을 있는 대로 밀어 넣은 도를 강하게 휘둘렀다.

조금 늦어도 상관없다! 저놈이 그의 몸에 검을 찔러넣을 때, 그의 도는 저놈의 허리를 반으로 갈라…….

하지만 그때.

파아아아앗!

그의 발등 근육이 모조리 끊어졌다.

조금 전 청명이 베어 낸 발등이, 너무도 강하게 휘몰아치는 흑룡왕의 힘을 버텨 내지 못한 것이다.

맹렬하게 도를 휘두르던 그의 몸이 찰나간 휘청였다.

그리고!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청명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이 흑룡왕의 창대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 순간, 흑룡왕은 똑똑히 들었다. 버티고 버텨 낸 그의 손목이 부러지고 마는 섬뜩한 소리를 말이다.

‘너?’

베인 한쪽 눈.

그리고 잘려 나간 발.

집요하게 노려 온 손목.

도와 맞부딪힌 충격을 그대로 이용하여 오히려 앞으로 달려드는 청명.

그 시리도록 냉정한 눈을 마주 보는 순간 흑룡왕은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파아아아아앗!

세상 모든 것을 베어 낼 것 같은 노을빛 무지개가 흑룡왕의 목을 향해 쏟아졌다.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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