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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967화 (968/1,567)

967화. 너희가 시작한 싸움이야. (2)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고, 물 아래에선 연신 날카로운 작살이 날아든다.

그 모든 것을 받아 내야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이 장강 위다.

악조건이라는 말마저도 빛을 잃을 만큼 안 좋은 상황이지만, 화산 검수들의 발은 한순간도 멈추는 일이 없었다.

앞에서 달려가는 이의 끓어오르는 피가 뒤로, 뒤로 또 전달되는 듯했다.

그리고 이토록 뜨거운 열기 속에서 함께 달리는 남궁도위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게 화산.’

장강 위에서 수적들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도 두려운 일인지 가장 잘 아는 이가 남궁도위일 것이다. 몸에 남은 이 지독한 상처들이 그가 겪어 온 것들을 증명하니까.

그러나 화산은 이 어렵고 두려울 게 분명한 상황 속에서도 마치 이곳이 평지인 것처럼 검을 휘두르며 달리고 있다.

저 목판 덕분이라고?

‘그럴 리가!’

첨벙!

순간 목판을 잘못 밟아 옆으로 미끄러지는 그를 조걸이 확 잡아당겼다.

“고, 고맙소.”

“신경 쓰지 말고 달리쇼! 내가 도와줄 테니까!”

“예!”

눈으로 보기에는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 위에 떠오른 작은 목판을 정확하게 밟으며 달리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그냥 달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만한 속도를 유지한다? 분명 놀람을 넘어 경악할 일이었다.

이들이 지켜 주지 않았다면 남궁도위는 벌써 몇 번은 물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남궁도위를 잡고 달리면서도 쏟아지는 화살을 쳐 내고, 공격해 오는 수적들을 빠르게 물리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대체 어떻게?

이들의 경신법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마치 이런 환경에서 수없이 격전을 치러 보고, 발 하나 내디딜 곳이 없는 곳에서 목숨이 오가는 싸움을 여러 번 치러 본 이들 같다.

그래, 능숙하다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들은 이런 싸움에 익숙해 보였다. 대체 평소에 어떤 수련을 하고 있으면 그와 나이도 비슷한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단 말인가?

그가 화산이라는 문파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화산이라는 문파를 알지 못했던 것인가?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만으로도 이들을 섬서에 있는 흔하디흔한 검문으로 여기는 세간의 평가가 모조리 박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아니야!’

생각을 이어 가던 남궁도위가 순간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부분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천하의 모두가 이들의 무위에 주목하더라도 남궁도위만은 다른 것을 보아야 한다.

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 장강에 뛰어든 순간 어떤 전투를 치러야 할지.

그렇기에 남궁도위가 보아야 할 것은, 이들의 강함이 아니라 바로 이들의 용기다.

쏟아지는 화살 비 속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 용기.

저 시커먼 물 아래로 끌려 들어갈 각오를 하고, 수적들이 득실대는 강으로 달려들 용기.

세상 모두가 모른다 하더라도 남궁도위만은 이들의 용기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죽어도 발목은 잡지 않는다!’

“타앗!”

남궁도위가 맹렬하게 검을 휘둘러 쏟아지는 화살을 쳐 냈다. 그 모습을 본 청명이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도 여유롭게 웃었다.

“좋은데, 샌님!”

이를 악문 남궁도위가 청명을 마주 보았다. 청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죽을 각오로 따라붙어!”

“예!”

파아아아앗!

청명의 검이 빛살처럼 날아들어 물 아래서 솟구치는 수적의 목을 정확하게 베어 냈다.

동시에 그의 시선이 뒤쪽으로 획 돌아갔다. 당가 쪽을 일별한 그는 지체 없이 소리쳤다.

“조걸 사형!”

“알았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남궁도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뜻이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남궁도위를 호위하듯 달리던 조걸이 순간 발판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그리고 마치 강 속의 물고기를 노리는 맹금처럼 수면 아래로 강하게 쏘아졌다.

퍼어어어엉!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물보라와 함께 조걸이 물 안으로 뛰어들자, 동시에 전력으로 달려 나가던 화산 검수들 중 일부가 그를 따라 곧장 뛰어들었다.

제대로 된 지시도 없었는데, 누군가는 물속으로 뛰어들고 또 다른 이들은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앞으로 계속 달린다.

‘뭐, 뭐야.’

남궁도위의 얼굴에 순간 당혹이 스쳤다.

한편, 장강의 깊은 물 속.

오자형(吳紫衡)은 물 위를 향해 빠르게 솟구쳤다. 주위에는 그가 이끄는 흑사대(黑鲨代)의 대원들이 함께였다.

‘빌어먹을!’

화산을 공격한 제일대는 모조리 물고기 밥 처지가 되었다. 제대로 작살도 찔러 보지 못한 채, 물속으로 쏘아지는 검기에 꿰뚫렸다. 그뿐이랴. 겨우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이들은 숨 한 번 들이쉬지 못한 채 목이 잘려 나갔다.

저놈들은 마치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공격하고 방어한다. 그의 체온이 점차 떨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물속이 차갑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굳이 어려운 적을 노릴 필요는 없다. 지금 이곳에는 화산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당가 놈들!’

어찌 생각하면 수공을 익힌 수로채는 사천당가의 천적이나 마찬가지다. 그 어떤 암기도 수면을 뚫고 들어올 때는 그 위력이 반감되기 마련이고, 그 어떤 독도 물속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굳이 저들과 물 위에서 싸워 줄 필요 없다. 아래에서부터 작살을 찔러 저들을 물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힘들일 것 없이 농락할 수 있다.

마침내 당가가 제 머리 위에 도달한 순간 오자형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가 공격 신호를 보내자 흑사대가 그 속도를 배로 올리며 쏘아진 살처럼 수면을 향해 솟아올랐다.

‘이 장강에 온 것을 지옥에서 후회하게 해 주마!’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륵!”

물속임에도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오자형의 눈에, 흑사대원 하나가 입에서 거품을 뿜고 경련하는 모습이 보였다.

‘뭣?’

아니, 뿜어내는 것은 거품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강물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 언제?’

대체 언제 공격을 받았다는 말인가?

그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오자형은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망연히 보았다.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그의 수하의 뒤로 검은 무복 차림의 화산 검수들이 놀라운 속도로 달려들고 있었다.

화산은 말 그대로 섬서에 있는 산을 칭하는 말이다. 즉, 이들은 평생 물과는 인연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들의 움직임은 전문적으로 수공을 익히지 않았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쾌속했다.

‘어떻…….’

촤아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선두에서 돌진해 오는 청년의 검이 빛살처럼 물을 갈랐다. 물 안에서 휘두르는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한 그 가공할 쾌검이 단번에 오자형의 목을 꿰뚫었다.

“끄르…륵…….”

엄습하는 고통과 함께, 목에 뚫린 구멍으로 강물이 비집고 들어왔다. 죽음으로 향하는 감각은 상상 이상으로 역겹고 생생했다.

콰득!

검이 목 안에서 비틀렸다. 그렇게 상처를 헤집어 회복할 수 없는 자상을 남기고서야 뽑혀 나갔다.

“끄륵…….”

오자형의 몸이 깊은 물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오자형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의 위로 자맥질해 지나가는 젊은 검수의 입가에 매달린 의기양양한 미소였다.

‘화산…….’

화산의 계곡 속에서 죽을 둥 살 둥 검을 휘둘러 온 수련의 진가가 이곳 장강에서 발휘되었다. 그 소용돌이치는, 깊고 물살이 격한 계곡에 비한다면 이 너른 장강의 물결 따위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걸을 필두로 한 검수들이 모두 당가의 아래를 지켜 내며 수적들을 향해 예리한 검을 휘둘렀다.

“달려!”

백천이 치고 나간다.

간간이 작살을 찔러 오는 수적들을 일일이 베어 넘기기보다는 피하고 뛰어넘으며 속도를 늦추지 않는 데 주력했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인원히 일제히 일렬로 달려 나갈 때, 선두의 속도가 줄어들면 서로 얽히며 틈을 보이고 만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는 절대 멈출 수 없다. 그의 발에 달린 것은 이들과 저 남궁세가의 목숨이니까!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달리는 백천을 향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백뢰포?’

허공을 가로지르는 포탄이 백천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그러나 그가 채 선택을 내리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 포탄을 향해 솟구쳤다.

콰아아아아앙!

솟아오른 이는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포탄을 비껴 날렸다.

“윤종!”

백천이 반사적으로 그의 이름을 외친 순간, 또 하나의 포탄을 향해 이번엔 백상이 날아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백상의 검이 날아드는 포탄을 쳐 날렸다!

“가십시오, 사형!”

“멈추지 마세요!”

“감히 명령이냐, 이 망할 녀석들이!”

백천은 씩 웃으며 앞으로, 또 앞으로 달렸다.

콰앙! 콰앙!

하지만 수적들 역시 이대로 쉽사리 포기할 리 없었다. 접근해 오던 수적선이 옆으로 선회하며 그들을 겨누었다. 갑판 위에 놓인 백뢰포의 포구가 연신 불을 뿜었다.

“이……!”

백천의 얼굴에 분노가 스친 바로 그때.

“사숙!”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백천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틀어 검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했다. 단, 검날이 아닌 검면으로!

파앗!

그러자 뒤쪽에서 날다람쥐처럼 날아온 무언가가 그의 검에 둔중한 무게를 실었다. 그 감각이 채 머리로 전달되기도 전에 백천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 그 위에 실린 것을 멀리 날려 버렸다.

쇄애애애애애액!

한 줄기 검은 빛살이 장강의 물 위를 가르며 날았다.

“뭐, 뭐야!”

무언가가 포탄처럼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보며 수적들이 기겁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백천이 날린 인간 포탄은, 이윽고 백뢰포를 쏘아 대던 배의 갑판 위에 운석처럼 틀어박혔다.

단단한 목재로 만든 갑판이 두부처럼 부서지며, 산산조각 난 목재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여기저기 날린 그 목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섬뜩한 검기가 갑판 위의 수적들을 종횡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서걱. 서걱!

하늘로 솟구친 목재에 붉은 피가 튀었다. 그렇게 백뢰포를 쏘아 대던 수적들을 단번에 갈라 버린 청명의 얼굴에도 수적들의 피가 검붉은 얼룩을 남겼다.

“아……. 아아…….”

파아앗!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 낸 청명이 아직 살아 있는 수적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순간, 청명의 입가가 비틀리며 그의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이건…….”

그의 목소리에는 흡사 피비린내가 섞인 듯했다.

“너희가 시작한 싸움이야.”

쾅!

갑판을 박찬 청명이 수적들의 한복판으로 파고들었다. 십여 개의 목이 일제히 허공으로 치솟고, 그 자리에서 솟구친 붉은 피가 장강 위로 쏟아졌다.

화산의 악귀.

마교의 마두들마저 공포에 떨게 했던 그 화산의 악귀가 장강 위에 현신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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