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7화. 화산은 어디에 있소? (1)
풍덩!
수면에 떨어진 남궁도위가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
안다. 슬퍼해서는 안 된다. 슬퍼할 시간 따위는 없다.
그는 발작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었다. 이제 그리 멀지 않은 저 강변만을 바라보면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의 입에서 처절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 터져 나왔다.
울분, 슬픔, 고통, 분노.
수많은 감정이 제멋대로 뒤섞여 짐승 같은 울부짖음으로 솟구쳤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게 피인지, 눈물인지, 강물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발작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가 이곳에서 죽으면 저곳에서 스러져 간 이들의 마지막이 개죽음이 되어 버릴 테니까.
그러니 가야 한다!
“으아아아아아아!”
처절한 고함과 함께 나아가던 남궁도위는, 몇 장 채 전진하기도 전에 멈춰 서야 했다. 앞쪽에 포진하고 있던 수적들이 그를 빠르게 포위한 것이다.
남궁도위는 핏발이 선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검을 뽑았다.
‘흥분하지 마.’
마음 같아서야 저들에게 쌓인 분노를 풀어내고 싶다. 이성을 모조리 내려놓고 검을 휘두르다 지쳐 쓰러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 그의 목숨은 그만의 것이 아니니까.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반드시!
파아아아아앗!
그의 검이 달려드는 수적의 허리를 단번에 갈랐다.
갈라진 수적의 시신에서 뜨거운 피가 훅 뿜어져 나오며 남궁도위의 얼굴을 뒤덮었다. 차가운 강물과 뜨거운 피가 뒤섞였다.
콰득!
날아든 작살이 그의 팔을 스치며 살을 한 움큼 파냈다. 하지만 그 고통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수적을 찌른 남궁도위는 수면을 내려치며 앞으로 전진했다.
‘살아야 해!’
콰득!
물속에서 날아든 작살이 그의 배로 파고들었다. 손을 뻗어 박힌 작살의 대를 부러뜨린 남궁도위가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다.
‘반드시!’
이제 강변이 멀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그가 발작하듯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백색 검기가 수적들의 몸을 갈랐다. 뜨끈한 피를 온 얼굴에 뒤집어쓰면서도 그의 팔다리는 멈추질 않았다.
‘반드시…….’
조금만 더 가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귀를 파고든 불길한 파공음에 남궁도위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묵색의 도강.
그 남궁황마저 쓰러뜨렸던 도강이 남궁도위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는 감히 받아 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강한 일격.
눈을 부릅뜬 남궁도위의 동공이 떨렸다.
‘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바로 그때, 일직선으로 날아들던 도강이 허공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남궁도위를 뒤쫓던 수적들은 그 거대한 기의 폭발에 휩쓸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남궁도위는 순간 당황했다.
‘뭐지?’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가?
하지만 그는 더 고민하는 대신 곧장 몸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하다.
“비켜라, 이 개자식들아아아아아아!”
처절한 고함과 함께 남궁도위는 뭍을 향해 나아갔다.
“이…….”
분노한 흑룡왕의 두 눈에 핏발이 불거졌다.
“이게 무슨 짓이오!”
노기가 충천한 얼굴.
흑룡왕은 단 한 번도 이런 분노를 억눌러 본 적이 없다. 이만큼 화가 났다면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달려들어 끝장을 보아야 하는 것이 그의 성미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는 화를 내고는 있지만 차마 상대를 향해 달려들진 못했다.
이유야 너무도 간단하다.
지금 그를 분노케 한 상대가 다름 아닌 패군 장일소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내 공격을 막았냐고 묻지 않았소!”
그는 분명 끝장을 내기 위해 도격을 날렸다. 방해만 없었더라면 남궁도위는 그 자리에서 분명 절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격은 남궁도위에게 채 도달하기도 전에 장일소가 날린 장력에 부딪혀 폭발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저 장일소가 남궁도위를 살려 준 것이다.
“흐음.”
장일소는 작게 콧소리를 내더니 심드렁한 얼굴로 흑룡왕을 바라보기만 했다.
“련주!”
“쯧쯧.”
결국 흑룡왕이 참지 못하고 다시 소리치자 장일소가 가볍게 혀를 차며 힐난하듯 그를 흘겨보았다.
“사람이 그리 박정해서야…….”
“……뭐라 하셨소?”
장일소가 붉은 입술을 곱게 휘며 웃었다.
“실로 눈물겹지 않소?”
“…….”
“제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저리 애를 썼는데, 아비도 죽이고 그 자식마저 죽이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그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잖소.”
흑룡왕이 이를 갈았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라는 말인가?
“하하하하핫.”
그 표정을 보며 크게 웃어 댄 장일소가 남궁도위를 슬쩍 보았다. 그는 수적들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헤쳐 나가고 있었다. 장일소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보고 싶지 않소이까?”
“……뭘 말이오?”
“저자가 저 강변에 도착해서 소림을 마주하는 순간을 말이오.”
무어라 말하려던 흑룡왕이 입을 닫았다. 장일소가 느리게 말을 이었다.
“사람이란 그렇지 않소? 스스로 치부라 생각하는 것은 가리고 숨기고 외면하는 법. 하지만…… 살다 보면 반드시 온단 말이지. 자신의 치부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순간이.”
“…….”
“그때…….”
일소가 붉은 입술을 천천히 핥으며 흑룡왕에게 시선을 주었다.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소?”
흑룡왕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는 도무지 이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장일소가 가진 악의는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생생하게 전해지니까.
“이제 보게 될 거요.”
장일소의 가벼운 목소리를 들으며, 흑룡왕은 조용히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도 먼저 시선을 피한 건 결국 흑룡왕 쪽이었다.
“시신들을 수습해라!”
거친 목소리로 명령한 흑룡왕은 영 못마땅하다는 듯 몸을 돌려 장일소에게서 멀어졌다.
이 모든 대화를 듣던 호가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기분이야 알겠지만, 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머지않았다.’
날카로운 눈으로 흑룡왕의 뒷모습을 노려본 호가명은 씻은 듯 안색을 바로 하고 장일소에게 말을 건넸다.
“련주님, 이제…….”
“쉬잇.”
그때 장일소가 조용히 하라는 듯 호가명의 말을 막고는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을 움켜잡았다.
새하얀 술병을 가만 내려다보던 그는 난간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병을 천천히 기울였다.
졸졸졸졸.
흘러나온 술이 차가운 장강의 수면 위로 뿌려졌다.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한 호가명이 묘한 눈으로 장일소를 바라보았다.
“련주님께서는 멍청한 자들을 싫어하지 않으십니까?”
“싫어하지.”
장일소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증오하지는 않는단다.”
“…….”
어느새 장강에는 다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살짝 가라앉은 장일소의 눈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이루고자 하던 건 이뤘으니 후회는 없겠지.”
장일소가 흘려 낸 술이 장강 위로 비처럼 흩뿌려졌다.
발끝에 땅이 닿았다.
첨벙.
남궁도위가 천근 같은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이쯤 되니 수적의 추격도 멈추었다.
그가 지나온 검은 강에 피의 길이 생겨났다. 그 끝에서, 남궁도위는 휘청이면서도 끊임없이 걸음을 떼었다.
목까지 잠겨 있던 물이 가슴께에 닿고, 이내 그의 상체가 온전히 물 밖으로 드러난다.
첨벙. 첨벙.
“살아…….”
그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연신 중얼거렸다.
눈은 반쯤 감겼고 동공도 흐릿하게 풀렸지만, 남궁도위는 그저 나아가고 또 나아갈 뿐이었다.
“살아야 해…….”
첨벙. 첨벙.
이윽고 그의 발이 물 밖으로 드러났다.
턱.
뭍에 다다른 그는 흐느적대며 걸었다. 물 밖으로 나온 그의 검에서 강물이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강변에 선 이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가 물에서 빠져나오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휘청이며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감히 무엇도 하지 못했다.
죄스러워서. 염치가 없어서.
차마 휘청이는 그를 부축할 엄두조차 들지 않았다.
터벅. 터벅.
마침내 그들의 앞에 도달한 남궁도위가 검을 바닥에 내리찍고는 몸을 기댔다.
실로 처참한 꼴이었다.
전신에 상처가 없는 곳이 없고, 그의 몸에서 떨어지는 물은 피가 섞여 선홍빛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피가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다. 그의 옷자락이 붉어지는 만큼 이 모습을 보는 이들의 가슴도 욱신거렸다.
“쿨럭! 쿨럭!”
젖은기침을 토해 낸 남궁도위의 상체가 크게 흔들리다 힘겹게 제자리를 되찾았다.
이윽고 아주 천천히,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억겁처럼 느껴지도록 느릿하게 남궁도위의 고개가 들렸다.
누가 감히 그 눈을 마주 볼 수 있으랴.
남궁도위의 고개가 들렸건만,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맞닿질 못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곳에 망부석처럼 서서 장강의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던 소림승들도.
뒤늦게 장강에 도착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공동의 문도들도.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오직 협의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고 자부했던 개방의 거지들조차도.
그 누구도 남궁도위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심지어 소림의 방장인 법정은 아예 먼 하늘로 그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사람이라면 응당 그럴 것이다. 한 가닥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는 이라면 차마 그 눈을 볼 수 없다.
“흐…….”
남궁도위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흐…….”
그리고 그 일그러진 음성은 이내 나직한 웃음으로 화했다.
이곳의 누구도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거기에 묻어나는 한 가닥의 자조와 한 가닥의 비애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쿨럭! 쿨럭!”
다시 한번 크게 기침하며 쓰러질 듯 휘청였던 남궁도위가 검을 꽉 누르며 몸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순간 그곳의 모두가 겁에 질렸다.
저 입에서 나올 말이 통렬한 지적이든, 준엄한 질책이든, 그게 아니면 노골적인 비꼼이든…… 그들은 저항할 수 없으니까. 그저 눈을 감고 들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들이 남궁도위라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예상되는 말들은 너무 많고 또 고통스러웠다. 하나같이 아프지 않은 게 없었다.
그리고 그 길고도 짧은 고통의 시간 끝에…… 마침내 남궁도위가 말문을 열었다.
귀를 막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이겨 낸 그들은 남궁도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남궁도위의 입에서 나온 건 지적도, 질책도, 비꼼도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그 누구 하나도 예상하지 못한, 아주 뜻밖의 말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지금 무언가를 잘못 들은 게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자연히 그 많은 시선과 남궁도위의 시선이 맞닥뜨렸다.
남궁도위의 시선에는, 그 어떠한 기대도, 감정도 없었다. 그저 무심하고 어두운 그 눈을 본 순간 모두가 깨달았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 순간 남궁도위가 다시 한번 또렷하게 말했다.
“……화산은.”
감정 하나 실리지 않고 선명해서, 외면하기도 힘든 목소리였다.
“……화산은 어디에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