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6화. 고개 숙이지 마. (6)
콰아아아아앙!
빛이 연신 명멸한다. 고요하던 장강에는 이제 굉음과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심지어 배들이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으니,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수는 없었다.
꾸우욱.
강변에 선 소림의 제자들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앞쪽으로 기울어진 몸은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앞에 선 법정의 등이 그들의 발을 단단히 묶어 놓고 있으니까.
으득.
이를 갈아붙인 소림승들은 핏발 선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니, 노려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저 강 한중간, 그들은 발을 들이지 못하는 사파의 땅이 되어 버린 그곳에서 남궁의 이름을 가진 몇몇이 마치 승냥이 떼에 물어뜯기는 양처럼 허덕이고 있다.
“방장!”
누군가가 소리쳤다. 하지만 법정은 돌아보는 일도 없이 그저 차가운 눈으로 그 광경을 응시할 뿐이었다.
“방장!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다려라.”
“방장!”
“기다리라고 하지 않느냐!”
법정이 고함치듯 답했다.
“남궁조차 자신들의 전력을 기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남궁 대신에 피를 흘려 주어야 한단 말이냐!”
“…….”
“너희 눈에는 만인방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장일소와 흑룡왕이 직접 나섰다면 이미 정리가 되고도 남았을 일이다! 그들이 왜 지켜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으…….”
법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유인당하면 모두 끝이다. 저들뿐 아니라 매화도에 남아 있는 이들과 우리마저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분명 갈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저들을 도우러 갈 수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존재하는 이들을 그저 외면만 해야 하니까.
누군가가 고개를 숙였다. 차마 그 광경을 볼 수 없다는 듯이.
“고개 숙이지 마!”
하지만 그 순간 혜방의 입에서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사, 사숙…….”
“똑똑히 봐라! 그 두 눈으로 보란 말이다! 용기도 내지 못하는 주제에 외면까지 하겠다고? 대체 얼마나 비겁해질 셈이냐!”
“혜방!”
법계의 질책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혜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저 광경을 똑똑히 새겨 넣겠다는 듯이 부릅뜬 눈으로 강을 바라볼 뿐이었다.
법계의 눈이 질끈 감겼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말인가.’
분명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남궁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넘쳐났었건만, 이제는 그들 안에서도 선명한 균열이 느껴진다. 지휘를 하는 이들과 그 명을 따라야 하는 이들 사이에 좁히지 못할 간극이 생겼다.
힘겹게 눈을 뜬 법계의 시선이 다시금 강으로 향한다. 남궁황이 쏟아 내는 흰빛 검기가 아프도록 시리게만 느껴졌다.
촤아아아아악!
검 끝이 무뎌졌다. 정확하게는 그 검을 휘두르고 있는 팔이 무뎌진 것이다. 남궁황의 검은 더 이상 날렵하지도, 강력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서걱!
“끄륵…….”
괜찮다. 그의 검은 있어야 할 때,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수적들이 쏟은 피는 이 어둠에 잠긴 장강마저 선명한 붉은색으로 바꾸었다. 간간이 튀어 오르는 포말마저 흰빛이 아닌 핏빛이었다.
그 붉게 물든 장강을 남궁황은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파아아아앗!
그런 그를 향해 십여 개의 작살이 또다시 날아들었다.
모두 막아 내는 것? 불가능하다.
남궁황이 검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휘둘러졌다. 그의 검이 가장 먼저 쳐 낸 건 가장 위험한 급소를 노려 오는 작살이 아니라 그를 넘어 남궁도위에게 닿을 수 있는 작살이었다.
카가가가강!
작살이 남궁황의 검에 맞아 튕겨 나갔지만, 미처 쳐 내지 못한 두 개는 남궁황의 몸을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피부를 뚫고 들어온 작살이 근육을 찢으며 단단히 박혔다.
“가주님!”
남궁도위의 고함과 동시에 휘둘러진 남궁황의 검이 작살을 찔러 대던 수적들의 목을 쳐 날렸다.
“그 정도는 저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저를…….”
“도위.”
“…….”
남궁도위가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나 쩌렁쩌렁했던, 그렇기에 듣는 이들을 자연히 이끌던 그 목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집념만큼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끝까지 봐라.”
그뿐이었다.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말을 한 남궁황은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으로 파고들면, 이내 밀려온 파도가 다시 씻어 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흐아아아아아악!”
“죽어라! 이 괴물아아아아!”
그저 끝없이 찌르고, 베어 낸다. 허벅지 쪽에 뭔가 박히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허리 아래로는 감각이 무뎌진 지 오래였다.
‘장로들은?’
아직은 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는 산 목숨이 아니었을 테다. 그가 버텨 내는 만큼 그들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그 목숨을 모조리 불태우면서.
이 강을 물들인 피에는 그들의 피 역시 섞여 있을 것이다. 얼굴로 쏟아지는 붉은 포말을 바라보며 남궁황은 실소하고 말았다.
‘무엇을 위해?’
그들은 무엇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가?
남궁을 이 위기로 끌고 들어온 것을 속죄하기 위해서?
아니면 저 섬에 남은 남궁세가의 식솔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라도 찾아 주고 싶어서?
글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푸욱! 푸욱!
남궁황이 눈에 띄게 기운을 잃어 간다는 것을 느낀 수적들이 더욱 가열하게 달려들었다. 붉은 파도와 뒤섞여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모습들은 지옥의 아귀가 따로 없었다.
이 순간 그가 해야 할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도위!’
- 그걸로는 안 되겠습니까?
안 될 리가 있나.
남궁황의 입가에 새하얀 미소가 어렸다.
고오오오!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경련하는 아랫배에서 기운을 짜 내니 내력이 울컥울컥 토해져 나왔다.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도 남았을 단전을 쥐어짜니 어찌어찌 팔까지 타고 흐른 내력이 검까지 밀려들어 갔다.
그 순간 남궁황은 자신의 어깨를 움켜잡는 남궁도위의 손을 느꼈다. 작기만 했던 그 손이 어느새 이리 커져 있다.
‘열어 주마!’
그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이곳에서 남궁도위를 살려 내보내는 것이다.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오오오오오오!”
있는 힘껏 사자후를 터뜨린 남궁황의 눈에 수십의 수적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검을 움켜잡은 그는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과 기운을 일시에 해방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백색 검기가 장강을 타고 오르는 거대한 용처럼 솟구쳤다.
무시무시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 없는 검격이었다. 약해진 남궁황을 보고 달려들던 수적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단번에 분쇄되어 장강 위로 흩뿌려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남궁황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우득.
그는 제 가슴에 박힌 작살을 부러뜨렸다. 파고든 촉은 살을 찢어 내지 않고는 뽑을 길이 없으니까.
우득. 우득. 우득.
가슴, 배, 어깨에 박힌 작살을 차례로 부러뜨린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의식도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콰득!
그런 남궁황의 정신을 되돌려 준 것은 다름 아닌 허리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이었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물속에서부터 공격해 온 수적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물 안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
깊디깊은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장로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짓깨문 남궁황이 고개를 들고 다시 앞을 노려보았다.
“가주님!”
“가자……. 도위.”
슬픔 따위는 느낄 필요 없다. 그 역시 저들과 같은 처지가 될 테니까.
그는 물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간다.
달려드는 수적의 목을 베어 내고, 찔러 오는 작살을 덥석 손으로 움켜잡았다.
베고, 베고, 베고, 또 베고.
어느새 산발이 된 그의 머리가 물에 젖어 형편없이 들러붙었다.
콰득! 콰득!
작살이 옆구리와 허벅지를 난자하는데도 남궁황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저 공격해 온 이들을 두 쪽 내며 앞으로만 나아갔다.
너무 많은 피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강 위에 또 하나의 강이 생겨나는 듯했다.
남궁황은 지옥에서 온 수라처럼 날뛰었다. 수없는 전투를 치러 온 수적들마저 질려서 주춤거릴 정도였다.
“흐으…….”
“쿨럭. 쿨럭!”
고통 섞인 기침을 토한 남궁황이 피에 젖은 이를 드러냈다. 거친 숨이 바람 새는 것처럼 연신 그의 입과 코에서 쏟아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앗!
귀청을 찢는 것 같은 강력한 파공음이 남궁황의 귀를 파고들었다. 머리가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그의 본능이 먼저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배 위에서부터 날아온 막강한 도격과 충돌한 그는 이내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이!”
흑룡선의 선수에 올라선 흑룡왕이 범처럼 포효했다.
“다 죽어 가는 놈을 앞에 두고 뭘 겁내고 있느냐! 모조리 달려들어 곤죽을 만들어 버려라!”
“예!”
흑룡왕의 패기에 짓눌린 수적들은 다시 이를 악물며 남궁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주! 아버님! 빌어먹을! 아버니이임!”
남궁도위가 필사적으로 물을 박차고 나가 물 위에 떠 있는 남궁황의 앞을 막아섰다.
핏발이 선 그의 두 눈에 결코 남궁황을 저들에게 내어 주지 않겠다는 필사적인 의지가 어렸다.
하나…….
턱.
그런 남궁도위의 어깨에 부들부들 떨리는 남궁황의 손이 얹혔다.
“아, 아버…….”
“……물…러서…….”
“아버지!”
“……어서.”
두 눈은 퉁퉁 부어 이제 거의 감긴 거나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담긴 처절한 빛은 감히 남궁도위가 거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등……으로. 내 등……뒤로…….”
남궁도위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안다. 알고 있다.
목숨과 바꿔서라도 그를 이 섬에서 내보내 달라고 한 것은 바로 남궁도위다. 그러니 무엇이 우선인지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하지만!
“너는…… 남궁의 차기 가…주다.”
“…….”
“내 등으로…….”
남궁도위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없이 물살을 가르며 남궁황의 뒤로 가 그의 등을 움켜잡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비의 등에 업히듯이.
“흐…….”
남궁황의 뒤틀린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푸욱!
또다시 다리가 무언가에 찔리는 느낌이 났다. 아랫배 역시 마찬가지. 물 아래서의 공격은 더 이상 막아 낼 수가 없다.
하지만 괜찮다.
그가 남궁도위를 업고 있는 이상, 이 공격은 아들에게 닿지 않을 테니까.
“도위.”
별안간 선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궁도위가 그런 그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아, 아버…….”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남궁황의 몸이 수면을 박차며 섬전처럼 솟아올랐다. 마지막 남은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끌어내어 한순간 자신의 힘을 되찾은 것이다.
“막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수적들이 찢어질 것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수면에서 솟아올라 앞을 막아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단번에 검을 휘둘러 수적들을 산산조각 내 버린 남궁황은 수면을 박차며 나아갔다.
“오오오오오오오!”
백색 검기가 사방으로 솟구치며 폭죽처럼 번져 나갔다. 수적들은 기겁하며 물 안으로 파고들었다. 저 검기에 대항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콰앙!
수면을 박찬 남궁황은 그들을 둘러싼 배 사이를 뚫고 전진했다.
한 걸음! 이제 한 걸음만 더…….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앗!
흑룡선 위에서 날아든 묵빛의 도강이 남궁황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남궁황이 혼신의 힘을 다해 뽑은 백색 검기를 너무도 쉽게 가른 도강은 남궁황의 육체에 고스란히 틀어박혔다.
콰드드득!
“이…….”
휘청이는 남궁황을 보며 흑룡왕이 다시 무어라 외치려는 그때였다.
쾅!
남궁황은 쓰러지지 않고 다시 수면을 박찼다.
피에 젖은 수라 같은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남궁황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빛났다.
그의 몸에서 튀어 오른 핏방울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 순간 남궁황이 등에 업힌 남궁도위의 팔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으오오오오오오오오!”
그리고 남은 모든 힘을 다해 남궁도위를 강변 쪽으로 집어 던졌다.
“아버지이이이이이이이!”
남궁도위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날아가는 그의 눈에, 모든 힘을 잃은 듯 나부끼며 강 위로 추락하는 남궁황의 모습이 보였다.
뒤집힌 세상 속에서, 남궁황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풍덩.
강에 처박힌 남궁황은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어둡기만 한 세상에 잠겨 들며 그는 생각했다.
‘이걸로 됐나…….’
모르겠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
그가 한 모든 것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마지막까지 최선은 다했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남궁의 이름을 이어 갈 그의 아들을 믿고 맡기는 것뿐이다.
‘……도위…….’
검디검은 장강 바닥으로 잠겨 드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좋은 아버지가 되어라.’
그 희미한 웃음을 마지막으로, 남궁황의 눈이 마침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