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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955화 (956/1,567)

955화. 고개 숙이지 마. (5)

파아아아앗!

남궁도위의 검이 달려드는 수적들의 육체를 비정하게 갈랐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그 검 끝에 어린 독기가 지금 남궁도위의 결의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아래에서 남궁황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흐아아아아압!”

콰아아아아아아!

솟아오른 눈부신 백색의 검기가 전방에서 달려드는 수적들을 일거에 쓸었다.

명불허전.

아니, 그 기세를 설명하기에 이 말도 부족한 감이 있다.

“와라! 더러운 수적 놈들아!”

폭풍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어두운 강 위에서 남궁황의 눈빛만은 선명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불타오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쇄애애애액!

작살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카강!

남궁황은 날아드는 작살을 단번에 두 동강 내어 버렸지만, 정작 작살을 던진 수적을 베어 낼 틈은 없었다. 검을 재차 휘두르기도 전에 또 하나의 작살이, 그리고 그 작살이 채 남궁황의 지척에 이르기도 전에 또 다른 작살이 또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작살이란 전쟁이 아니라 사냥을 위한 무기다.

창보다 훨씬 얇은 작살은 서로 얽혀 들지 않는다. 끝에 달려 있는 갈고리는 한번 몸을 파고들면 살을 찢어 내지 않고는 뽑을 수 없다.

무인과 무인이 서로 대결할 때야 불리함밖에 없는 무기지만, 지금처럼 소수를 사냥할 때는 그 어떤 병기보다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작살이다.

수적들의 두 눈에 어린 광기는 사위가 어두운 와중에도 번들거리며 빛났다. 십여 개 넘는 작살이 힘껏 남궁황과 남궁도위를 향해 날아들었다.

“얕보지 마라!”

남궁도위가 물 위를 박차고 다시 뛰어올라 작살을 찔러 오는 수적들에게 검기를 뿌렸다.

철검십이식(鐵劍十二式).

강대한 내력을 필요로 하는 제왕검형과는 다른, 남궁세가의 기본이 되는 검식. 간결한 검식은 이런 상황일수록 힘을 발휘했다.

간결하기에 쾌속하고, 쾌속하기에 강한 힘을 발휘한다. 백색의 검기가 날아드는 작살을 가르고 부수며 수적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아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악!”

수적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들이 흩뿌린 피가 장강에 퍼져나갔지만, 내려앉은 어둠은 그들의 피도, 시신도 그저 무심하게 먹어 치울 뿐이었다.

파아아아앗!

하지만 동료가 허리째 베여 죽어 갔음에도 날아드는 작살은 멈출 줄을 몰랐다.

“오오오오오오!”

이번엔 남궁황이 고함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솟구친 검기가 폭발하듯 터지며, 사방으로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냈다. 물 위로 솟구쳐 올랐던 수적들은 그 가공할 기세의 파도에 휩쓸려 튕기듯 밀려 나갔다.

하지만…….

“죽여라아아아아!”

“놈들은 소수다! 모조리 죽여!”

“제왕검의 목은 내가 벤다!”

죽이고 또 죽여도 더 많은 이들이 달려들고, 거듭 밀어 내도 더 많은 이들이 쫓아온다.

아니, 겨우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바로 앞에서 동료가 죽어 가고 있음에도 수적들은 피 냄새를 맡은 굶주린 상어 떼처럼 더욱 날뛰기만 했다.

“쏴라아아아아!”

파아아아아아아앗!

그 순간, 그들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던 배 여러 척에서 수백 발의 화살이 솟구쳤다. 하늘을 가려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솟은 화살 비는 일시에 방향을 바꿔 남궁황과 남궁도위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놈들이……!”

남궁황의 입에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카강! 카가강!

내력을 실은 화살들이 가공할 속도로 파고들었지만, 저런 조잡한 화살에 당할 남궁황이 아니었다. 그 화살에 피해를 입은 것은 다름 아닌 두 사람에게 달려들던 수적들이었다.

“커억!”

“아아악!”

수적의 뒤통수를 뚫은 화살이 얼굴 앞으로 삐죽이 솟아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던 이들은 날아든 화살을 피하지 못했고, 순식간에 수십 발의 화살에 꿰뚫려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다.

“이……!”

남궁황의 두 눈이 분노로 타올랐다.

제 동료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화살을 쏘아 댄다. 아무리 화살을 날려 봐야 남궁황에게는 생채기밖에는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저들의 목숨이 남궁황의 생채기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흑룡와아아아아아아앙!”

“쏴라!”

남궁황이 노기에 찬 고함을 터뜨렸지만, 흑룡왕은 심드렁한 얼굴로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상처를 내지 못해도 좋다. 기운만 빼놓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검수의 힘은 하체에서 나오는 법. 발 디딜 곳이 없는 곳에서는 어떤 검이라도 제 위력을 내기 힘들다. 그 말인즉 평소와 같은 위력의 검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배는 더 많은 내력을 소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나 일 검, 일 검에 막대한 내력을 싣는 남궁황이라면 얼마 가지 않아 지치고 말 것이다. 한동안 저 매화도에서 혹사당하며 몸을 건사하지 못했으니 더더욱.

남궁황의 기운이 충분히 빠지고 나면 흑룡왕이 직접 나서서 그의 목을 베어 버리면 그만이다.

“멍청한 놈.”

흑룡왕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발로 이 강에 뛰어든 순간부터 남궁황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펑! 펑! 펑!

강렬한 내력을 담은 화살이 수면을 꿰뚫고 아래로 파고들었다.

분명 그 화살들은 남궁황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남궁황에 한정된 이야기.

물 위에서 화살을 상대하는 그들이야 눈으로 보고 막으면 그만이지만, 물속에서 수적들을 상대하고 있는 장로들은 입장이 전혀 달랐다.

아래에서 솟구치는 수적들을 상대하느라 물 밑을 바라보고 있던 그들을 향해 난데없이 화살이 내리꽂혔다. 내력을 실은 화살은 수면을 꿰뚫고도 그 위력이 줄어들지 않았고, 일시에 등 뒤로 날아든 수십 발의 화살을 맞이해야 했던 그들의 운명이야 뻔한 것이었다.

콰드드득!

남궁의 장로라는 이름이 헛되지 않았다는 듯, 순간적으로 화살들을 쳐 내기는 했지만, 화살을 모두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날카로운 촉이 등과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콰득!

“삼장로!”

남궁황의 입에서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온다.

몸에 박힌 화살에 움찔한 삼장로가 되레 물 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남궁황이 이를 악물었다.

몸을 돌볼 틈 같은 건 없다. 그들이 전열에서 빠지는 순간, 남궁황은 물 위만이 아니라 물속에서 날아드는 작살마저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삼장로는 제 목숨을 돌보지 않고 수적들을 상대하기를 택한 것이다.

남궁황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이 없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강인지, 아니면 그 강을 채우고 있는 수적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남궁황은 이를 악물었다.

“도위!”

“예!”

“내 등 뒤로!”

남궁도위가 순간 남궁황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던 남궁도위는 이내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깨물며 말을 삼켰다.

그가 수면을 걷어차듯 날아 남궁황의 뒤로 몸을 옮기는 순간 남궁황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도위!”

“예, 가주님!”

그 혼란한 와중에도 남궁황이 슬쩍 도위를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눈으로 그를 보던 남궁황의 입이 작게 열렸다.

“애비의…… 등에서 떨어지지 마라.”

“…….”

그 말이 전부였다. 남궁황은 다시 한번 검을 콱 움켜잡았다.

어차피 이런 곳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그러나 그들이 해야 할 것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것.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장로들은 도위를 지켜라!”

그의 목소리가 물을 뚫고 아래에 전해졌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라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남궁황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찬란한 빛.

어둠이 내린 하늘을 순간적으로 푸른 하늘(蒼天)로 되돌려 버릴 것만 같은 찬란한 빛과 함께 남궁황의 검기가 전방을 휩쓸었다.

강력한 검기가 일순간 말 그대로 장강을 갈라 버린 것이다. 검기가 뻗어 나가는 경로를 채우고 있던 수적들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분쇄되었다.

“간다!”

밀려났던 물들이 다시 들이차면서 마치 폭풍이 이는 바다처럼 강이 요동쳤다. 남궁황이 물속을 걷어차며 직선으로 나아갔다.

“죽어라!”

“이 괴물 놈!”

수적들은 두 눈을 까뒤집으며 그런 남궁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또다시 일 검!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남궁황이 뿜어낸 검기가 달려들던 수적들을 강물과 함께 쳐 날렸다.

욱신! 욱신!

단전을 누군가 대바늘로 찔러 대는 것만 같았다. 강에 뛰어들 때부터 이미 온전한 몸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검기를 뿌려 대고 있으니 내력이 바닥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남궁황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뒤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앞만이 존재할 뿐이다.

“오오오오오오오!”

남궁황의 검이 다시 한번 크게 움직였다. 화려하게 명멸하며 피어오른 백색의 검기가 그들이 나아갈 길을 강 위에 그려 내는 것만 같았다.

“와라!”

콰아아아아아아아!

그 검기에 격중된 수적선 바닥은 마치 거대한 거인이 손으로 뜯어 내기라도 한 양 터져 나갔다.

“와라!”

남궁황이 목을 젖혀 포효했다.

몸에는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질 않았다. 이제 단전은 칼로 난도질당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물로 뛰어들기 전보다 평온했다.

또다시 검기가 발출되었다.

‘이제야…… 알겠군.’

그는 때때로 고민했다. 제왕검형이라는 반쪽짜리 검법에 대해서.

극단적인 공격 일변도. 비상식적일 정도로 막대한 내력을 사용해 강대한 파괴력을 내는 반면, 등 뒤를 방어하는 데에는 취약하기 짝이 없는 이 괴이한 검.

그렇기에 남궁은 언제나 강호 최정상의 검수를 배출했지만, 언제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천하제일검의 칭호는 언제나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그의 선조들은 이런 검법을 남궁의 성명절기로 삼았던가?

하지만…….

‘이제는 안다.’

등을 지킬 필요가 없다.

지금 그의 등 뒤엔 아들이 있으니까.

제왕검형. 제왕의 검.

그 검은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적을 쓰러뜨리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등을 보며 따라오는 이들을 지켜 내기 위한 것이다.

그게 남궁이 바라는 제왕의 상이었다.

‘아니……. 가주의 길이라 해야겠지.’

그의 검이 말한다.

남은 모든 것을 쥐어짜 내서라도 그의 아들을 지키라고 말이다.

남궁황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휘몰아치는 파도가 연신 얼굴을 때려 대고, 비릿한 강물이 목구멍으로 밀려들어 왔지만 그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기만 했다.

“도위!”

“예!”

“똑똑히 지켜봐 둬라!”

이건 그가 가는 길. 그리고 언젠가는 그의 아들이 가야 할 길이다.

콰아아아아아아!

그가 뿜어낸 무시무시한 검기가 포기를 모르고 달려드는 수적들을 휩쓸고 쳐 날렸다.

콰득!

하지만 이제 완전할 수 없는 그 검기 사이로 날아든 작살이 그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남궁황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파아아아앗!

단번에 제 배를 찌른 이의 목을 쳐 내고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수적들의 목을 연이어 날렸다.

콰득! 콰득!

물속에서 날아든 작살이 다리에 박히고, 쏟아진 화살이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그럼에도 남궁황은 오직 앞만을 응시했다.

‘열어라.’

모든 것을 불태워서라도.

남궁이 걸어갈 길을.

그의 아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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