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3화. 고개 숙이지 마. (3)
“힘을…….”
남궁도위가 찢어지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힘을 내라.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알고 있다. 미친 듯이 내력을 밀어넣고 자꾸만 떨어지려는 손을 부러지도록 부여잡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살릴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이해하고 있다.
처음도 아니니까.
이 빌어먹을 상황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니까.
피가 말라붙어 검붉게 변한 손이 덜덜 떨며 그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소…가주…….”
“그래, 진아.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된다. 조금만 더 버티면 지원이 올 거다! 그럼 남궁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때까지만…… 힘을…….”
남궁도위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그러지는 얼굴을 펼 수가 없다.
뻔한 거짓말이다. 하는 이도, 듣는 이도 알고 있다. 이 말이 얼마나 황당한 거짓인지를.
하지만 남궁도위는 그 뻔한 거짓말을 필사적으로 해 대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소…… 소가…주님…….”
“남궁진…….”
“바, 반드시…… 살아남…….”
“…….”
남궁도위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다. 이미 그가 이리 보낸 이가 몇이나 된다. 하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잡은 손에서 체온과 힘이 빠져나가는 이 서늘하고 엿 같은 감각만은 몇 번을 느껴도 처음처럼 고통스러웠다.
“나, 남궁…을 한 번은 더…… 보고 싶…….”
힘겹게 말을 이어 가던 남궁진의 동공이 느슨하게 풀렸다. 그와 동시에 남궁도위가 부여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남궁진!”
“남궁진! 이 새끼야!”
그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던 이들에게서 격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울음기가 섞이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감당하지 못해 내지르는, 악에 받친 목소리.
하지만 남궁도위만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피가 말라붙은 남궁진의 가슴에 이마를 파묻을 뿐이었다.
‘울어선 안 돼.’
찢어진 입술을 타고 진득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남궁도위는 남궁진을 위해 피는 흘려 줄 수 있을지언정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그까지 눈물을 보이는 순간 모두가 무너질 테니까.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남궁도위는 땅을 뜯어내기라도 할 듯 움켜쥐었다.
살릴 순 없었을까?
정말 살릴 수가 없었을까?
제대로 된 의원에게 제때 치료만 받았어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하다못해 가문에 그렇게 널려 있는 영단이라도 챙겼다면 모두는 몰라도 몇은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이들을 치료해 줄 이도, 생명을 이어 줄 영단도.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적막하기 짝이 없는 땅, 무심히 흐르는 지긋지긋한 강물. 그리고…….
남궁도위가 원독에 찬 눈으로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 섬을 포위한 사패련의 배와 그 광경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정파들을 노려보았다.
“으…….”
그 눈에 어린 독기가 진정으로 향한 곳은 어쩌면 사패련이 아니라 그들 너머에 선 구파일방일지 모른다.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남궁세가가 저지른 일이다. 그 결과를 다른 이들에게 미루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수없이 스러져 간 죽음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남궁세가가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뿌득.
남궁도위는 이를 갈아붙였다.
차라리 저들이 외치고 소리치지 않았더라면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원을 수호하고, 협의를 드높인다고 떳떳하게 떠들어 대지 않았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협의는 어디에 있는가?
양민들을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이들이 이 차디찬 땅에서 죽어 갈 동안 저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가?
“으으…….”
그 순간 남궁도위의 신경을 잡아끄는 소리가 있었다. 부상으로 허덕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신음이었다.
그는 갈라진 입술 새로 길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남궁진의 눈을 감겨 준 뒤 몸을 일으켰다.
말없이 남궁진을 내려다보던 그는 메마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시신을 수습해라.”
“……소가주님.”
“마음은 안다. 하지만 아직 성치 못한 이들이 있다. 저들의 죽음에 슬퍼할 시간이 있다면 살아 있는 이들을 살리는 데 써야겠지.”
그 말에 울분이 치솟지 않는 이가 누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두 눈을 붉힌 남궁세가의 검수들 중 누구도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남궁도위는 평소에 유독 남궁진과의 친분이 깊었다. 그런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잘게 떨리는 어깨가 보여 주고 있었다.
남궁도위는 그대로 몸을 돌려 멀어졌다.
“소가주…….”
반사적으로 그를 불러 세우려던 이가 말끝을 흐렸다. 남궁도위에게는 홀로 있을 시간이 간절히 필요한 걸 알기에.
힘없이 걸어 강변에 도달한 남궁도위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매화도의 상황에는 관심도 없는 듯 유유히 조금씩 이동하면서도 자리를 지키는 사패련의 선단들, 그리고 그 너머에 선 구파일방.
뒤를 돌아보니 남궁진의 시신이 옮겨지는 게 보였다. 정신을 영 차리지 못하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이들의 모습도. 그 손길에 힘이라고는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저 모든 행위가 무의미할지 모른다는 의혹과 두려움이 계속해서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을 테니까.
며칠의 시간이 더 남았을까?
사흘? 이틀?
쩍쩍 갈라진 입술 새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마 저 만인방과 수로채가 함께 매화도로 밀고 들어온다면, 그땐 변변한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죽어야 할 것이다. 장일소가 준 닷새 동안 그들은 힘을 비축하기는커녕 더 메말라 갈 뿐이니까.
“크윽…….”
남궁도위는 버석해진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얼굴을 쥐어뜯듯 움켜쥔 손길에 괴로움이 가득했다.
알고 있다.
저들은 남궁을 돕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남궁도위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남궁도위를 정말로 미치게 만드는 것은…… 저들이 돕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음에도, 마지막 한 가닥 남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흐…….”
신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강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떤 기분이지?”
중얼거리는 목소리엔 피 냄새가 밴 듯했다.
“거기에서 이곳을 지켜보는 건 어떤 기분이지……?”
묻고 싶다.
너무도 묻고 싶다.
어제까지 얼굴을 맞대던 가족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 기분이 어떤지 아느냐고, 살이 썩어 들어가 고통에 울부짖는 이를 보면서도 조금의 도움조차 주지 못하는 이의 기분이 어떤지 아느냐고.
아마 남궁도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런 일을 겪고, 눈으로 보고, 그 고통에 신음하지 않았더라면 저 건너편에서 머리를 굴리며 남궁에 가장 이득이 될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에게는 이득을 따져서는 안 돼.’
그와 같은 일을 겪은 이라면 누구나 다 그처럼 생각할 것이다. 누구라도!
“흐으으…….”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사실을 너무도 늦게 알아 버린 것을.
피눈물 맺힌 남궁도위의 몸이 옆으로 쓰러질 듯 기울던 바로 그때였다.
그는 불현듯 땅을 짚고 제 몸을 지탱했다. 의욕 한 점 남아 있지 않던 그의 퀭한 눈이 확연하게 커졌다.
“……저……?”
시야가 흐릿한 가운데, 분명 보였다.
그는 거칠게 제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눈을 똑바로 뜨고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으득!
남궁도위가 입술을 강하게 깨문다. 흐릿하던 정신이 일순 돌아왔다.
아마 저 건너에 서 있는 구파일방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옆이나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강변을 바라보는 남궁도위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저 옆, 구파가 포진한 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강가. 녹색 옷을 입은 누군가가 이곳을 바라보면 관찰하는 모습이 말이다.
‘당가!’
분명 사천당가였다. 이미 장강에서 철수했다고 알려진 당가의 무인이 이곳을 확인하고 있다.
남궁도위는 순간적으로 제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아니, 아니야…….’
섣부른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저 정탐을 위해 한 사람을 장강으로 보낸 것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남궁도위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석상처럼 그곳에 앉아 당가의 무인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사패련과 정파의 움직임, 그리고 매화도 내부의 상황까지 모두 꼼꼼히 살피더니 몸을 돌려 멀어졌다.
잠시 후, 남궁도위는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금 본 것이 현실인지 환상이었는지를 구분하려는 듯 한참 동안 먼 곳을 응시했다.
‘당가가 이곳에 있다면…….’
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동안 섬의 모든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신 차리라고! 이 새끼야! 죽으면 안 돼!”
“빌어먹을……. 왜 우리만…….”
“크흐흐흑.”
비탄에 빠져 하루하루 죽어 가는 이들. 부상자를 수습하며 울분을 참지 못하는 이들. 썩어 버린 피 냄새와 시취(屍臭). 그리고 거대한 절망이 풍기는 악취.
남궁도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건 멍청한 짓이야.’
안다.
‘아무 소득도 없을지 모른다. 상황만 나빠질 거야.’
그것도 안다.
‘그런데 왜?’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이곳에 앉아 죽음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그에게는 이곳에 있는 이들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는 남궁세가의 소가주니까.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한 곳은, 그새 십 년은 더 늙어 버린 듯한 남궁황의 앞이었다.
남궁도위는 가만히 남궁황을 바라보았다.
부상자에게 내력을 밀어 넣느라 기운을 모조리 소진해 버린 남궁황은 포격에 부서진 바위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에서 짙은 회한과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질식할 것만 같은 무거운 책임감이 말이다.
기척을 느낀 남궁황이 천천히 눈을 떠 남궁도위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남궁도위가 말없이 남궁황을 빤히 바라보았다. 부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얽혀 들었다.
“전에 말씀하셨잖습니까?”
“……무엇을?”
“마음만 먹으면 가주님은 이 섬에서 빠져나가실 수 있다고.”
남궁황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지 않는다.”
그의 입가에 자조 섞인 웃음이 어렸다.
“남궁의 가주인 내가 이들을 버리고 어딜 가겠느냐. 나는 이곳에서 저들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그리고……. 쿨럭.”
마른기침을 한 그는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때는 몰라도 지금은 무리다.”
“혼자서는요.”
남궁황이 슬쩍 고개를 들어 남궁도위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마침내 결심을 굳힌 남궁도위가 남궁황을 노려보듯 응시했다.
“아버님 혼자서는 무리겠지만, 장로들과 힘을 합치시면 이 섬에서 한 사람 정도는 내보낼 수 있겠죠.”
“……도위?”
“장일소는 사파지만, 스스로 뱉은 말을 어길 이는 아닙니다. 그 역시 노리는 것이 있으니 우리가 탈출을 시도하더라도, 탈출을 저지할지언정 그 보복으로 섬을 공격해 오지는 않을 겁니다. 다시 말해…….”
남궁도위가 씹어뱉듯 말을 이었다.
“한 사람 정도는 내보내 볼 만하다는 겁니다.”
“…….”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 가주님.”
그의 눈에 결연한 의지와 분노가 동시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목숨을 버려서라도 저를 살려서 저 뭍에 닿게 해 주십시오.”
창백해진 남궁황이 아들을 가만 바라보았다.
언젠가 아버지는 자식이 자신과 같은 눈높이에 서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남궁황은 그게 어떤 감정인지를 여실히 느꼈다.
그렇기에 묻지 않았다.
무엇을 하려는지, 왜 그가 아니라 남궁도위가 가야 하는지.
그런 건 의미가 없으니까.
“……그 대가는?”
궁금한 건 오직 이것뿐이었다.
“네 말대로, 나를 비롯하여 모든 장로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다. 마지막 순간 모두의 삶을 한순간이라도 더 지켜야 할 우리가 그 목숨을 내어 놓는 대가가 무엇이냐?”
남궁도위의 눈엔 결의가 곧게 서 있었다. 지금의 남궁황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
“…….”
“그걸로는 안 되겠습니까?”
잠깐 침묵하던 남궁황은 피식 웃고 말았다.
“안 되냐고?”
“…….”
남궁황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두 눈에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다 커 버린 아들의 눈에 어린 것과 같은, 단단한 결의가.
“……충분하다.”
그의 손이 남궁도위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