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4)
“엄마, 나 다리 아파.”
“조금만 더 가면 된단다. 조금만 참아.”
“다리 아픈데…….”
봇짐을 짊어진 여인이 소동의 등을 두드려 달랬다. 당장이라도 업어 주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하겠냐마는, 그녀가 짊어진 봇짐도 그리 작은 크기가 아니었다.
아니, 일반적인 여인의 몸으로 들기에는 과하게 무겁고 큰 봇짐이었다.
“빌어먹을.”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이가 울분과 회한이 실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들은 막 장강 유역을 떠나오는 길이다.
평생 장강에서 밭을 일구고, 그물을 던지며 살아왔건만, 장강 전역을 긴장으로 밀어 넣은 전화 앞에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하나가 아닌가?
“사흘은 가야 민가가 나올 텐데…….”
안사람이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는 모습을 보며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간다고 한들…….’
평생 한곳에 살던 이들이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저곳에서 버티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전쟁이 끝난다 해서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삼 년 전의 난리에도 꿋꿋하게 장강에서 버티고 살아간 이들도 이번 전쟁을 보면서는 결국 제집을 비우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쉬어 갑시다.”
“……그래요.”
사내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려던 바로 그때였다.
“으응?”
무언가를 발견한 사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빤히 어딘가를 보다 이내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저, 저게 뭐야?”
“뭐가요?”
“저, 저기!”
사내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뭔가 희뿌연 것이 밀려들고 있었다.
“모래바람인가?”
“바람 한 점 안 부는데 무슨 모래바람……. 저, 저거 더 커지는 것 같지 않소?”
“그러고 보니…….”
사내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그들이 지나온 길 끝에서 피어오른 희뿌연 먼지가 점점 그 크기를 불려 나가더니 이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먼지구름이 되어 그들을 향해 맹렬하게 다가왔다.
“기, 길옆으로 빨리!”
사내가 대경하며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만약 저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이들이 장강을 넘어선 사파의 군세라면, 그야말로 목숨이 위험해지지 않겠는가?
“저기로!”
겁먹은 세 사람은 황급히 길옆으로 비켜섰다.
‘어떻게 하지? 도망을 쳐야…….’
일단은 숲으로 달아나야 하는가 고민하는 찰나, 그의 눈에 괴이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레?’
일반적으로 짐을 옮기기 위해 사용하는 것보다 세 배는 커 보이는 수레가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 거대한 수레가 아니었다. 그 수레를 끄는 것이 문제였다.
소나 말이 아니라 사람이 수레를 끌고 있다.
“세, 세상에…….”
황당한 동시에 놀라웠다. 저런 큰 수레를 말이나 소가 아니라 사람이 끌고 있다는 게 황당했고, 짐이 가득 실린 수레가 저런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건 놀라웠다.
‘이게 대체 뭔…….’
그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도 수레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순식간에 그들 앞을 지나쳐 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지이이이이이이!”
콰가가가가가가가각!
누군가의 호령이 울리자, 반쯤 정신 나간 얼굴로 수레를 끌던 이들의 발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단단한 땅의 토사가 긁히며 위로 솟구쳤다.
후드드득.
치솟았던 흙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짐과 동시에, 앞으로 기우뚱 기울다 못해 허공으로 반 남짓 들렸던 수레들이 텅, 텅, 소리와 함께 바닥에 도로 내려앉았다.
“…….”
사내는 어안이 벙벙하여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사파는 아닌 것 같은데…….’
다소 건장한……. 아니, 과도하게 건장한 저 덩치를 보고 있으면 오금이 절로 저려 왔지만, 저들에게는 뒷골목 파락호에게서 느껴지는 껄끄러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되레…….
“쿨럭! 쿨럭!”
“주, 죽는다……. 이러다 죽어.”
“물……. 물 한 모금만……. 처, 청명아 물…….”
“어허!”
알 수 없는 친숙한 느낌이 있었다.
그때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쌓인 짐 위에 앉아 있던 청년이 혀를 찼다.
“물 먹으면 퍼진다니까!”
“……물 안 먹으면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내가 다 해 봤어.”
“너는 안 해 본 게 뭐냐……. 이 미친 새끼야…….”
낄낄 웃어 댄 청년이 고개를 획 돌려 사내를 바라보더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예? 아……. 예! 예!”
사내가 얼른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 악의가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의 눈에는 이들의 허리춤에 매달린 긴 검이 가장 먼저 들어왔으니까.
칼을 든 이는 조심해야 한다. 그게 누구든.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짐이 많으신 것 같은데?”
“저, 저희는 그저 길을 가는 이들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디 가시냐고요?”
“그게…….”
“타세요.”
“네?”
청년이 씨익 웃었다. 티 한 점 보이지 않는 맑은 웃음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웃음이 참 기분 좋게 느껴졌다. 사내는 지니고 있던 경계심을 저도 모르게 슬며시 풀었다.
청년이 다시 말했다.
“어디 가시는지는 몰라도 가시는 길까지 태워 드릴게요.”
“저, 저희는…….”
“이건 사천으로 가는 짐이거든요. 일단 여기서 무한까지는 모셔다 드릴 수 있어요.”
“저, 저희도 사천으로 가는 길이긴 합니다만…….”
“그럴 것 같았어.”
청년이 짐 위에서 훌쩍 뛰어내린다. 그리고 휘적휘적 걸어 그들에게 다가왔다.
“보아하니 애가 다리가 아파 보이는데, 굳이 걸어갈 것 없이 타고 가시죠. 오전에 이미 사람 한 번 실어 날랐거든요.”
“사, 사람을 나르다니…….”
당황한 사내는 순간 청년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가슴에 새겨진 매화 문양에 눈에 띄었다.
“호, 혹시……?”
“응?”
“화산파 분들이십니까?”
“크으으으으으으!”
청년이 과하게 뿌듯해하며 손뼉을 짝짝 쳤다.
“이래서 사람을 유명해지고 봐야 한다니까! 말 안 해도 이렇게 알아봐 주잖아.”
“……좋겠다.”
“즐거워 보이네.”
청년, 청명이 낄낄 웃으며 다가와 아이의 머리를 과격하게 쓰다듬는다.
“다리 아프지?”
“……네.”
“읏차!”
청명이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제 목에 태웠다. 그 광경을 본 화산의 제자들이 한마디씩을 늘어놓았다.
“와, 안 우네.”
“저 새끼 목에 타는 게 호랑이 등에 타는 것보다 무서울 텐데.”
“굉장히 대가 센가 봐. 애가 아주 장군감인 듯?”
“얼마나 지쳤으면……. 가엾게도.”
그러자 청명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소리쳤다.
“뭘 쫑알거리냐, 이것들아! 짐 실어라!”
“……예, 예.”
“아주 생색은 지가 다 내지! 수레 끄는 건 우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백천을 필두로 한 화산의 제자들은 일사불란하게 달려와 부부가 지고 있는 봇짐을 받아 들었다.
“이,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내를 향해 백천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저기 실린 짐이 아주 무겁거든요.”
“예?”
“……사람 둘 더 싣는다 해도 별 차이가 안 느껴질 만큼요.”
“…….”
그것참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이리 주십시오.”
“그래도 될지…….”
사실 다른 이들이 수레에 태워 주겠다 했다면, 사내는 절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가? 아내와 아이를 지켜야 하는 가장이 몸 잠깐 편하자고 모험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과 그 가슴에 새겨진 매화 문양이 사내의 손과 어깨에서 힘을 빼 놓았다.
‘화산…….’
적어도 이 장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이들에게만큼은 화산의 이름은 협의와 신뢰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이 정말 화산파의 사람들이라면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수 있으리라.
더구나…….
사내의 고개가 앞쪽으로 돌아간다.
갑자기 나타난 청년의 목에 얌전히 앉아 있는 아이를 보니 더욱 신뢰가 갔다. 낯선 이를 더없이 경계하는 그의 아들이 저리 편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닐 테니까.
“……그럼 염치 불고하고.”
화산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수레에 오른 부부가 어색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수레에, 그것도 이리 높은 짐 위에 앉아 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기분이 이상했다.
“읏차!”
마지막으로 수레에 오른 청명이 목말 태운 아이를 제 앞에 내려놓았다.
“꽉 잡으세요!”
“예?”
“가자! 사형들아!”
“에라! 썩을!”
“좀 죽어! 좀!”
수레가 다시 격하게 출발했다. 수레에 올라탄 부부가 화들짝 놀라 아래의 짐들을 얼른 움켜잡았다.
수레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세, 세상에.”
무서울 지경이었다. 어찌 사람이 끄는 수레가 말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린다는 말인가?
사내가 제 아내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옆을 휙휙 스치는 풍경에 그도 오금이 저리는데, 이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런데…….”
“네?”
청명이 슬쩍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 무한으로 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아, 아침에 다녀오셨다는 말은?”
“네, 다녀왔는데요?”
“무한에요?! 거, 거긴 말을 타도 하루 만에 왕복하지 못하는 거린데…….”
“에이.”
청명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도 사람 새끼들인데, 말보다 못해서야 쓰나요?”
“…….”
“걱정 마세요.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셔다 드릴 테니까. 뭐 하냐! 해 떨어지겠다, 이것들아! 달리라고, 기지 말고!”
“에라이, 씨바!”
누군가의 울부짖음과 함께 수레가 한층 더 빠르게 무한으로 나아갔다.
무한 근처에 임시로 만든 거처 정문.
“도착!”
털썩. 털썩.
마침내 도달한 화산의 제자들이 손잡이를 놓고 땅에 엎어졌다.
“사형.”
“……왜?”
“살아 있습니까?”
“……당연히 죽었지.”
윤종은 고개를 돌릴 힘도 없어 땅에 얼굴을 박은 채 숨만 몰아쉬었다.
‘진짜 죽을 것 같다.’
구강 근처에서부터 무한까지 짐을 나른다?
사실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평범한 이들에게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들은 중원특급배송 화산파가 아니던가? 이딴 짐 따위 북해에서 운남까지도 날라 줄 수 있다.
문제는 그걸 전력 질주로 해야 한다는 것.
- 시간이 돈이고 시간이 금인데! 어디 설렁설렁 뛰어다녀! 제일 늦게 도착하는 새끼는 대가리 빡빡 밀어서 소림으로 보내 버릴……. 아니, 혜연이 너는 빼고. 아, 울지 말라고!
화산의 마귀 놈은 사람이 쉬는 꼴을 못 본다.
“주, 죽는다. 진짜……. 진짜 죽는다.”
“귀신 이 새끼들은 빠져 가지고, 저 새끼 안 잡아가고…….”
“토할 것 같아…….”
짐 위에서 훌쩍 뛰어내린 청명이 혀를 차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니, 뭘 얼마나 달렸다고 이거 가지고 헉헉대! 나 때는 성도에서 북경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고도 힘든 줄을 몰랐는데! 젊은것들이, 에잉!”
“……네가 젤 어려, 미친 새끼야.”
“제발 좀 죽어. 제발…….”
그때 장원의 정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을 한 이가 걸어 나왔다.
“고생 많았네.”
수레로 옮겨진 짐들과 사람을 보며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이게 다인가?”
“네?”
그러자 청명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에이. 아직 술시 초밖에 안 됐는데요. 한 번은 더 다녀올 수 있어요.”
“……또 간다고?”
“그럼요.”
“마, 많이 지쳐들 보이는데?”
“하하. 별걱정을 다 하시네요. 짐 내리고 돌아갈 때는 빈 수레로 가잖아요. 그때 쉬면 되죠.”
“…….”
당군악은 말없이 수레 쪽을 바라보았다. 온갖 금속에 통달한 그가 저 수레의 무게를 짐작 못 할 리 없다. 저 거무튀튀한 빛깔의 철 수레는 분명 어마어마한 무게를 자랑할 것이다.
‘가주님!’
‘말리십쇼, 좀!’
‘살려 주세요! 도움!’
엎어져 있던 화산 제자들이 고개를 번쩍 들고 당군악에게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안쓰러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던 당군악은 이내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래 주면 고맙긴 한데.”
그리고 시선을 슬쩍 돌려 버렸다.
“배신자!”
“악마!”
“아빠아아아!”
마지막 한 외침이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지만, 당군악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외면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빨리 옮겨야 희생자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일의 효율을 위해 화산이 장강 사람들을 무한으로 일 차로 옮기면 당가가 그들을 사천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우선은 언제 전쟁터가 될지 모르는 저 일촉즉발의 구강에서 양민들을 빼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어쨌든 조금 쉬도록 하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강철이 아니잖은가.”
“에이, 잘 모르시네.”
“응?”
“강철은 부러지면 끝이지만, 부러진 뼈는 다시 붙어요.”
“…….”
“사람이 쇠보다 단단하다니까?”
이 새끼는 안 된다. 일단 말이 안 통한다.
“크흠.”
헛기침한 당군악이 안색을 고치고 말했다.
“이보게, 화산검협.”
“네?”
“……장강의 소식이 들어왔네. 들어 보겠는가?”
웃음기 어려 있던 청명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