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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932화 (933/1,567)

932화. 벌써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죠. (2)

“경계 중 이상 없습니다!”

“음.”

남궁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에 호위하듯 따라붙은 남궁도위가 날카로운 눈으로 경계를 하는 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경계는 아무리 과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도록 전력을 기울여라.”

“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남궁명이 남궁도위를 대동하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어찌 생각하는가, 소가주?”

“예, 숙부님.”

남궁도위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매화도를 돌아보며 말했다.

“섬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 다행입니다. 이 정도라면 수적들이 쳐들어온다 해도, 지켜 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내 생각도 그렇네.”

지금 매화도를 지키는 이들은 창궁검대뿐만이 아니다. 남궁황의 명으로 세가를 지키던 다른 무력대들도 속속들이 매화도에 합류했다. 못해도 남궁세가 전력의 팔 할은 이곳 매화도에 모여 있다.

그 정도 전력이라면 저 장강수로십팔채와 자웅을 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섬이 좁다는 것은 우리에게 되레 이점이 될 것이다.”

“무사의 질보다는 그 수로 승부하는 수로채의 장점이 발휘되기 힘들 테니 말이지요?”

“바로 그렇다.”

그 대답이 흡족한 듯 남궁명이 미소 지었다.

훗날 남궁세가의 가주가 될 그의 조카는 과연 기재라 부를 만했다. 무재도 뛰어나거니와 전황을 읽는 눈에도 부족함이 없다.

“형님을 보고 잘 배우거라.”

“예, 숙부님.”

“훌륭한 무인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하고 정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한 가문을 이끌어 나가는 이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과감해야 하고, 좀 더 멀리 볼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항상 되새기고 있습니다.”

“좋구나.”

남궁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검협에게 고맙다고 해야겠군.’

과거 남궁도위는 종종 오만한 모습을 보여 남궁명의 걱정을 자아내곤 했다. 남궁세가 특유의 기질과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자신감이 가득한 것과 오만한 것은 결코 같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화산검협에게 패배한 이후로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장강참변을 겪고부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대로 연륜이 쌓여 간다면, 어쩌면 저 남궁황을 능가하는 가주가 될지도 모른다.

‘쉽지는 않겠지만.’

남궁황 같은 사람은 가르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그 스스로 타고난 패도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가주께서 어째서 이곳을 점령했는지 알고 있느냐?”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숙부님.”

남궁도위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검은 어둠이 내린 장강은 그에게 알 수 없는 불안함을 전해 주었다.

“저희가 수로채와 씻을 수 없는 원한을 맺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굳이 저희가 단독으로 수로채와 맞상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남궁세가는 천하에 그 의지를 똑똑히 알리지 않았습니까?”

“네 말이 옳다.”

남궁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매화도를 점거하고 있으면, 결국 우리는 튀어나온 송곳이 될 수밖에 없다. 까딱하다가는 수로채뿐 아니라 사패련을 홀로 맞상대하게 될지도 모르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득보다는 실이 많습니다.”

“그래. 옳은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의 생각이지.”

“……예?”

남궁명이 빙그레 웃었다.

“가주께서도 그 생각은 하고 계실 것이다. 그럼에도 가주께서 이 험난한 길을 선택하신 이유는 따로 있다.”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여기서 물러나 버리면 결국 우리가 소림의 명을 듣는 모양새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지 못한 대답에, 남궁도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대세가. 참으로 허울 좋은 이름이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오대세가를 결국 저 구파일방에 딸린 무언가로 생각한단다.”

“숙부님, 그건…….”

“그게 현실이다. 저 수로채가 구강을 장악했을 때, 구강 사람들이 우리를 생각했겠느냐? 아니면 소림과 구파일방을 생각했겠느냐?”

남궁도위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주께서는 위험을 무릅쓰신 것이다. 지금 오대세가는 그리 입지가 좋지 않다. 우리와 함께 오대세가의 주축을 이루던 당가가 오대세가와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지.”

“……예.”

“이런 때에 저 소림의 뜻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우린 영원히 구파일방의 이름 아래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남궁도위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생각해 보면 무척 좋은 때다.

저 소림의 호출에 다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은 이 먼 구강까지 들려왔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저 소림과 구파일방의 영향력이 낮아진 때다. 그러니 이때가 아니라면 언제 이런 일을 시도하겠는가?

“가주께서는 이 일에 구파일방과 소림이 아닌, 오대세가와 남궁세가가 이름을 떨치길 원하신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생각이시란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발을 재촉하던 남궁명이 그 자리에 멈춰 남궁도위를 돌아보았다. 남궁도위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분명 그 이유도 있겠지만, 아버님께서는 그런 이유만으로 일을 벌이실 분이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가슴에 협의가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남궁명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물론 그게 첫 번째겠지.”

“저희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명성이야 자연히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저…… 화산처럼 말입니다.”

남궁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할 것이다.”

화산.

불과 몇 년 전에는 기억에서조차 사라졌던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 화산의 명성은 오대세가의 수장으로 불리는 남궁세가마저 뛰어넘는 면이 있었다.

힘이 아닌 의기로, 화산은 남궁세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쟁취한 것이다.

“대단한 이들이지.”

“예, 대단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할 수 있습니다.”

남궁명은 남궁도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젊은 혈기는 때로 식어 가는 그의 피조차 뜨겁게 만든다.

“그래. 할 수 있을 것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던 남궁명의 시선이 순간 강 쪽으로 획 돌아갔다. 그 사뭇 진지한 표정에, 남궁도위도 안색을 굳히며 그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남궁도위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잔잔한 물결뿐이었다.

“……숙부님?”

“흠!”

남궁명의 검이 빛살처럼 뽑혀 나왔다. 빠르게 발출된 새하얀 검기가 수면을 거칠게 파고들어 강 아래로 들어갔다.

파아아앗!

물보라가 일었다. 그리고…….

파문이 가라앉은 곳에 뭔가 커다란 것이 둥둥 떠올랐다.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남궁명의 얼굴이 그제야 느슨하게 풀렸다.

“……잉어인가?”

“사람만 해 보이는군요. 숙부님이 착각하실 만도 합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남궁명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잉어가 흘린 피가 불 밝혀진 장강 수면에 붉게 퍼져 나갔다.

“시간을 낭비했구나. 남은 이들을 모두 확인하고 태세를 점검하려면 잘 시간도 부족하다. 가자꾸나.”

“예, 숙부님.”

남궁도위를 이끌며 앞으로 걸어 나간 남궁명이 슬쩍 다시 물을 돌아보았다.

‘불길하군.’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이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오래 있을 곳은 아니겠어.”

그는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 시각.

어둠에 잠긴 장강의 수면으로 물고기의 머리 같기도 하고, 작은 공 같기도 한 것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을 뚫고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눈이 좋은 이라면 그것들의 정체가 특수하게 제작된 의복을 뒤집어쓴 사람의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주.”

“적의 배는?”

“모두 다섯 척입니다. 모두 남쪽 부두에 접안해 있습니다.”

“다섯이라…….”

대주라 불린 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는?”

“대단치 않습니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남궁세가군요. 설마 그 기척을 알아챌 줄이야.”

조장 중 하나가 굳은 얼굴로 제 어깨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피부가 쩌억 벌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순간적인 기지로 옆을 지나치는 잉어를 베어 버리지 않았다면 일이 허사로 돌아갈 뻔하지 않았는가?

“상대는 남궁세가다. 일말의 방심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

“예, 대주.”

“단숨에 끝낸다.”

“예!”

그가 손짓으로 몇 가지 지시를 하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다시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모두가 잠영을 시작한 걸 확인한 대주는 매화도의 모습을 두 눈에 한 번 담고는 뒤따라 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깊이 또 깊이.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 어두운 강을 끝도 없이 잠수해 들어간 그들은 강바닥까지 내려가 바닥을 짚으며 이동했다. 아무리 감각이 좋은 이라고 한들, 이 장강의 바닥을 타고 이동하는 이들의 기척을 잡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머리 위로 그들보다 커다란 기척을 내는 물고기들이 수도 없이 오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섬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물은 점점 얕아지고, 그들의 기척이 들킬 확률은 훨씬 더 커지니까. 절대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할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강바닥을 기듯이 이동한 그들은 일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보통 부두란, 강과 땅이 만나는 곳에서도 가장 수심이 깊고 급격한 경사를 보이는 곳에 지어지기 마련이다.

고개를 든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배의 밑면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나약한 속살을 있는 대로 드러낸.

‘그리 멍청하지는 않군.’

남궁세가 검수들 몇이 배를 호위하며 주변을 유영하고 있었다. 이 말인즉, 저들도 이 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어둠이란 물 밖보다 물속에서 더 짙어진다. 저들이 아무리 각별하게 경계를 한다고 한들, 이 물속에서 그들의 종적을 찾아낼 순 없을 터.

대주는 발아래에 있는 그들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는 남궁세가 검수들을 비웃어 주었다.

‘남궁세가?’

물론 더없이 강하고 위험한 상대다.

이곳이 장강의 한중간이 아니라면 말이다.

장강 한중간에 섬이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들은 이해했어야 한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다.’

대주가 손짓으로 위쪽의 배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모든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제히 수면을 향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급격한 움직임이 만들어 낸 기포가 마치 폭죽처럼 수면으로 함께 솟아올랐다.

그들의 손에 잡힌 작살이 각기 새파란 기운을 머금었다.

콰아아아아!

이윽고, 뾰족한 작살 끝이 일제히 뻗어지며 날카로운 경기가 숱하게 물을 가르고 나아갔다.

콰아아앙!

그리고 커다란 폭음과 함께 일제히 배의 바닥에 틀어박혔다.

두꺼운 목재로 만들어진 배의 바닥이 뒤틀리고 끊어지며 시커먼 물이 순식간에 배 안으로 쏟아지듯 밀려들었다.

“뭐, 뭐냐!”

“습격이다! 빌어먹을! 야습이야!”

폭음에 이어 배가 기우뚱하는 것을 본 남궁세가의 검수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마, 막아! 배를 지켜야 한다!”

비명과 고함, 그리고 혼란이 매화도의 밤을 물들인다.

긴 시간 꺼져 있던 도화선에 마침내 다시금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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