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916화 (917/1,567)

916화. 있더라고, 미친놈이 하나. (1)

“아, 어떻게 됐냐고오오오오!”

“…….”

홍대광은 넋이 아주 나간 얼굴로 청명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이 미친 인간을 그리워했을까? 존재만으로도 그의 모든 평화를 파괴하는 이 악마 같은 인간을? 내가?

“저기…… 화산신룡……. 아니, 화산검협.”

“왜요?”

“정보라는 게 그렇게…… 응? 딱 내놓으라고 한다고 거기에 딱 있는…… 응? 그런 게 아니거든?”

“뭔 소리예요! 개방에 정보가 없으면 어떻게 해!”

“그런 말이 아니라……. 정보는 있는데, 그 정보가 자네가 원할 때 딱딱 있고 그런 게 아니라…….”

“아니이이이!”

홍대광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여튼 이놈의 거지들은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빌어먹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시원찮은 양반들이 정보도 딱딱 못 내놓으면 뭘 먹고 살아!”

“……걱정해 줘서 고맙긴 한데…….”

그걸 굳이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응?

하지만 그런 홍대광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명은 쉴 새 없이 그를 볶아치고 닦달했다.

“아,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홍대광은 해탈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참 많다. 지금 그의 앞에서 발악해 대는 이가 청명이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홍대광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보게, 소형제. 본단에 요청한 정보가 전서구를 타고 여기까지 도착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네. 내가 직접 새처럼 날아가 정보를 가져올 수도 없고, 닦달한다고 시간이 단축되는 것도 아니니 마음 느긋하게 기다리게나.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개방의 위엄을 아는 이들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거나, 감히 생각 없이 개방분타주를 닦달한 것을 죄스럽게 여길 것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이는 청명이었다. 이 인간은 개방의 위엄 따위는 길에 굴러다니는 개뼈다귀 취급도 해 주지 않는 인간인 데다가, 상식도 논리도 없는 인간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능해 빠진 거지 놈들이! 그렇게 느긋해 자빠졌으니 빌어 처먹고 살지.’라면서 쌍욕을 해 대겠지.

“끅…….”

아니면 저렇게 혼자 제 화를 못 이겨 뒤로 넘어가거나.

점점 달아오르는 청명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털이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마치 화약고를 향해 점점 번져 가는 불길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저 불이 기름통에 닿는 순간 펑 하고 터질 게 분명하다.

저 얼굴이?

아니, 바로 여기 분타가.

‘제발! 제발! 좀 서둘러 봐라, 이 새새끼야!’

초특급으로 요청했으니, 아마 개방의 천리청구(千里靑鳩)가 지금쯤 정보가 적힌 서찰을 발에 달고 날개가 빠지도록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이 분타가 박살이 나느냐 아니냐는 오로지 그 날갯짓의 속도에 달려 있다.

“끄으!”

급기야 청명의 눈이 뒤집어지기 시작하고, 홍대광이 지금이라도 당장 뒤도 안 보고 내빼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바로 그 일촉즉발의 상황.

삐이이이이이익!

“왔다아아아아아!”

마침내 울리는 소리에 홍대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봐도 이렇게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홍대광은 할아버지는 고사하고 아버지 얼굴도 모르기는 하지만, 여하튼 넘어가고!

“어디!”

“저기! 저기 온다!”

그 순간 활짝 열린 창문으로 푸른빛 날개를 가진 비둘기가 쏜살같은 속도로 날아 들어왔다.

“읏차!”

홍대광이 손을 뻗어 재빨리 천리청구를 손으로 받아 내고는, 그 발목에 묶인 조그만 전서구 통을 열어젖혔다.

돌돌 말려 있는 서찰을 꺼내자마자 청명이 잽싸게 낚아채 갔다.

“어디!”

서찰을 펼친 청명의 눈이 광속으로 좌우 왕복했다.

“뭐라고 적혀 있는데?”

“그…….”

“응?”

서찰을 모두 읽은 청명이 고개를 들어 홍대광을 바라보았다. 어째 표정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괴이했다.

“거지 아저씨.”

“왜?”

“……아무래도 댁들 망한 것 같은데?”

“……뭐? 무, 무슨 소리냐, 그게?”

“아니. 나는 그…… 없을 줄 알았는데…….”

청명이 허허 실없이 웃더니 뒷머리를 긁적였다.

“있더라고, 미친놈이 하나.”

“으응?”

홍대광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청명을 멍하니 보았다.

* * *

구강.

수로채가 완전히 장악한 매화도 인근에는 삭막한 긴장감이 흘렀다.

언제나 활기가 넘쳤던 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가는 사람 찾아보기도 어려웠으며, 대문을 활짝 열고 호객에 열성이던 주루도 모두 창문까지 꽉꽉 닫아걸었다.

매화도와 함께 생겨난 도시 가장 외곽의 작은 주루에 슬며시 모여든 이들도 거리를 오가는 수적들을 보며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대로 지내야 하는 건가?”

주루 앞을 지나가는 수적들의 뒷모습을 창문 틈으로 본 이가 한숨을 푹 쉬며 탄식했다.

“사실 큰 문제는 없지 않나? 수적들이 사람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큰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안 생긴 거지, 이 양반아.”

답답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상인 중 하나가 가슴을 치며 말한다.

“범도 배가 부를 때는 옆을 지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는 법 아닌가? 저 수적 놈들이 지금이야 잠잠하다지만,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그 말도 맞네만…….”

상인들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분명 수로채가 매화도를 장악한 지도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 수적들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평생을 두려워하던 수적들을 편한 마음으로 보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나 장강을 오가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상인들은 더더욱.

“어떻게든 잘 지내 봐야지. 예전에도 배를 타고 가다가 수적을 만나면 통행세를 내지 않았던가? 그거랑 같은 결이라 생각하면…….”

“그게 어떻게 같은가? 몇 주에 한 번, 몇 달에 한 번 잠시 잠깐 마주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이렇게 매일같이 저놈들을 마주하고 어떻게 살라는 건가?”

“…….”

“그리고 그때야 옮기던 물건만큼만 삯을 치르면 그만이었네. 그런데 이제는 창고에 있는 물건에까지 세금을 거둔다지 않는가. 빌어먹을 안 그래도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저놈들이 요구하는 돈까지 내고 나면 우린 뭘 먹고 살라고.”

상인들의 입에서 일제히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매화도를 점령했던 화산은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받고 창고를 빌려줬을 뿐, 그곳에 있는 물건마다 세를 매기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상 상인들이 매화도를 이용하면서 내는 돈은 배에 물건을 실어 옮기는 통행세뿐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시설을 이용하는 데 비용이 나가기는 했지만, 그거야 천하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런데 저 수적놈들이 매화도를 장악하더니 단번에 통행세를 두 배로 올리고 매화도 내에 대기하는 짐들에도 세를 매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리되니 말이 두 배지, 실제로는 세 배, 네 배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정말 이대로 참아야 하는가?”

“아서게. 어제 매화도를 나가서 강을 탄 동해상단 있잖은가?”

“동해상단? 아, 그렇지. 그랬었지. 동해상단이 왜?”

“……다 죽었다는구먼.”

“뭐?! 그게 무슨 소린가?”

“저 빌어먹을 놈들이 머리를 쓰는 모양이야. 매화도 밖에서 강을 건너려는 상선은 모조리 침몰시키고 있는 모양이네. 죽고 싶지 않으면 매화도를 이용하라는 거지.”

“……세상에.”

모두가 얼어붙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전에는 도하하다 수적을 만난다 해도 사람이 상하는 일은 드물었다. 보통은 통행세로 해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개 같은 놈들이 이렇게 나와 버리면 감히 강을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물론 장강은 워낙에 넓으니 무조건 수적에게 걸리란 법은 없다. 운 없이 맞닥뜨릴 확률은 십분지 일 정도라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간 큰 인간이 십분지 일의 확률에 제 재산과 목숨을 한꺼번에 건단 말인가?

“……이젠 정말 꼼짝없이 다 뜯기게 생겼군.”

“화산이 있을 때가 좋았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상인들은 화산이 매화도를 점거하고 얼마나 그들을 보호해 주었는지를 새삼 뼈저리게 실감했다.

“없는 이들을 찾아서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구파일방의 소식은 아직인가? 지금 이놈들이 여길 차지하고 나선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제 상인들에게 남은 활로는 구파일방이 이곳을 되찾아 주는 것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장강을 오가는 수적들을 다시금 소탕해 주어도 좋을 것이다.

“……듣자 하니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더군.”

“아직도?”

상인 중 하나가 화를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그 구파 놈들이 여길 그냥 수적들에게 내어 주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서,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이곳은 강북인데.”

“아니면 왜 지금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건…….”

상인들은 불안한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미 한차례 사패련에 겁을 집어먹고 발을 빼지 않았는가. 이번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정파라는 놈들이…….”

“정파? 정파를 따질 거면 삼 년 전에 그랬어야지! 구파 놈들이 목숨이 아까워 수적들에게 머리를 조아린 건 사실 아니냐 이 말일세.”

“…….”

“설마 이번에도…….”

“거 재수없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 그때는 상황이 안 좋지 않았나. 구파가 본격적으로 나서기만 한다면 수적 놈들은 물론이고 저 흑룡왕도 금세 목이 떨어질 거라 이 말일…….”

콰아앙!

그때, 주루의 문이 부서질 듯 격하게 열리더니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

수적 특유의 딱 달라붙는 푸른 무복에 살기 어린 얼굴.

주루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흐음.”

사내가 냉막한 눈으로 안을 둘러보았다. 그 시선에 닿은 상인들은 모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수적이 입을 열었다.

“방금 여기서…….”

잔혹해 보이는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구파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그, 그게…….”

“흑룡왕의 목이 떨어져?”

상인들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이 수적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들보다 잘 아는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래서 쓸데없는 온정을 베풀면 안 되는 것을. 흑룡왕께서 그토록 배려해 주셨건만, 그 은혜도 모르고 함부로 주둥아리를 털어 대다니.”

일그러진 사내의 얼굴에 분노가 스쳤다.

“아무래도 본보기로 몇 놈 정도는 잡아 죽여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야.”

“그, 그게 아니옵고…….”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상인들이 황급히 손을 휘저어 가며 변명했지만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턱짓했다.

“끌어내라.”

“예!”

수적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상인들이 사색이 되어 비명을 내질렀다.

“오, 오해입니다! 나으리! 나으리!”

“살려 주십시오!”

“히익! 저, 저는……!”

수적들에게 붙들린 상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사정했지만, 옭죄어 오는 손은 매정하기만 했다.

“끌어내 모조리 쳐 죽여라. 감히 흑룡왕을 욕보인 죄, 그 목숨으로도 갚을 수 없다!”

소리친 사내가 혀를 차 댔다.

그리고 주루를 빠져나오며 중얼거렸다.

“흑룡왕께서는 왜 저런 놈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지 모르겠군. 모조리 죽이고 빼앗으면 그만일 텐데. 상인 놈들이건, 정파 놈들이건 말이야.”

“죽이고 빼앗아?”

그때 사내의 등 뒤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의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그는 혀를 차며 돌아보았다. 또 어느 겁대가리 없는 놈…….

콰득!

하지만 그 순간 우악스러운 손이 사내의 목을 그대로 움켜잡았다.

“켁!”

갑작스레 목이 조여 오는 고통에 사내가 혀를 빼물었다. 금방이라도 목을 쥐어짜고 터트려 버릴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압력이었다.

얼굴이 금세 검붉어진 그는 황급히 목을 잡아챈 이를 바라보았다.

그게 누구인지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수적의 두 눈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경악이 들어찼다.

새하얀 백의와, 그에 대비되는 억세고 검은 머리칼.

두 눈은 마치 범의 그것과 같은 호목(虎目)이었고, 선 굵은 얼굴은 한 마리 사자를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오른쪽 가슴팍에 용사비등한 필체로 새겨진 창천(蒼天)이라는 두 글자였다.

“나, 남……. 켁! 남궁…….”

콰아아아아아아앙!

목을 틀어쥔 그는 단번에 수적을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사람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금 전까지 기세 좋게 상인들을 몰아치던 수적은 피떡이 되어 나뒹굴었다.

“수로채.”

단숨에 수적 하나를 처리한 자.

그 얼굴을 본 수적들의 입에서 절망과 경악이 뒤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삼 년 전, 그들의 수장인 흑룡왕과 호각으로 맞섰던 그 절대에 가까운 이름을.

“제, 제왕…… 제왕검!”

“이…….”

제왕검 남궁황의 입에서 거대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이 버러지 같은 수적 놈들이! 감히 내 눈앞에서 강북 땅을 밟아? 모조리 쳐 죽여 주겠다!”

삼 년 동안 웅크리고 있던 안휘의 사자가 마침내 창공을 향해 울부짖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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