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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912화 (909/1,567)

912화. 아귀다툼이 따로 없구나. (2)

“낄낄낄낄낄.”

“…….”

“낄낄낄낄낄낄낄.”

“…….”

조걸과 윤종이 불안 가득한 얼굴로 백천을 돌아보았다.

“사, 사숙.”

“……왜?”

“저, 저거(?) 왜 저러는 겁니까, 저거?”

“…….”

그러자 백천은 세상 의미 없다는 얼굴로 ‘저거’를 흘끗 보았다.

도무지 사람이라고 불러 주기 싫은 무언가가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서찰을 든 채 마귀처럼 낄낄 웃어젖히고 있었다. 심지어 한참을 말이다.

“걸아, 종아.”

“……예, 사숙.”

“새삼스럽게 뭘 그러느냐…….”

“아, 아니. 저 새끼가 정신이 나간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건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늘따라 정도가 심하지 않습니까. 사숙, 저것 좀 보십시오.”

윤종이 가리킨 곳을 본 백천은 순간 움찔했다.

웬만해서는 청명의 몸에서 떨어지는 일이 잘 없는 백아가 저 멀리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발을 빼고 있었다.

‘하얀 게 덜덜 떠는 걸 보니 되게 귀엽기는 하네.’

……아, 이게 아니지.

저건 호랑이 귓방망이도 날리는 영물인데, 생긴 것에 속으면 안 되지. 성격이라도 좋으면 말도 안 해…….

백천이 청명에게로 시선을 틀었다.

확실히 그가 보기에도 오늘따라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기는 했다. 등 뒤에 잔영처럼 아수라 상이 피어오르는 착시가 생길 정도다.

사람이 온몸으로 즐거워하는데도 저리 음산한 기운을 뿜어낼 수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하지 않은가?

“크흐흐흐…….”

그때, 크게 한탕 해 처먹은 사기꾼 같은 표정으로 청명이 혼자 뇌까렸다.

“이 새끼들이 나를 엿 먹이려고 해? 백 년은 멀었다, 이 조무래기들아!”

그 혼잣말을 들은 백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들을 리는 없겠지만, 이 말은 꼭 해 주고 싶었다.

‘청명아…….’

네가 상대하는 사람이면 이미 조무래기 소리를 들을 사람은 아니란다……. 그 말 듣는 조무래기는 얼마나 억울하겠니?

“낄낄낄낄낄. 으히히힛! 으헤헤헤헤헷! 꺄르르르르륵!”

“……미쳤네.”

“응. 미친 듯.”

“보통 미친 게 아니네.”

청명이 기분 좋게 술병을 입에 꽂았다. 울대가 경쾌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지켜보는 이들이 다 시원해질 정도였다.

“……대체 왜 저러는 거랍니까?”

백천이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는 아직 저놈을 잘 모르는구나.”

“……예?”

“저 사갈 같은 놈이 저렇게나 진심으로 좋아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그, 그게 뭔데요?”

“막대한 돈을 벌었을 때나, 누군가를 제대로 엿 먹였을 경우지.”

“…….”

“웃는 낯을 자세히 보아하니 이번에는 후자 같은데…….”

조걸과 윤종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청명학(?)에서 손꼽히는 수재인 백천이 그리 말하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

“구파?”

“오대세가?”

“장일소? 사패련?”

“아, 아니, 종남일 수도 있지 않나?”

생각나는 이름들을 줄줄이 읊어 보다 그들은 새삼 깨달았다.

청명이 엿 먹이고 싶어 하는 이가 세상에 너무 많다는 것을.

‘아니, 이 정도면 천우맹을 제외한 세상 모두가 저놈의 적이 아닌가?’

이쯤 되면 누가 이 모든 일의 원인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흐으으음! 날씨도 기막히게 좋고오오!”

쿠르르릉!

……비 온다, 미친놈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청명은 더없이 유쾌하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낄낄낄낄. 다 뒈져라! 다! 으헤헤헤헤헷!”

도사의 입에서 결코 나와서는 안 될 말이 숨 쉬듯이 나오고 있다.

저게 도사면 지렁이도 용이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으냐?”

결국 백천이 슬그머니 다가가 물으니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렸다.

“아, 사숙! 한잔할래?”

“대낮부터 술 처먹는 놈이 화산에 너 말고 또 있더냐?”

“없긴 한데, 오늘부터 사숙도 그러면 되지.”

“……사양할게.”

백천이 고개를 젓고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데?”

“아, 별건 아냐. 그냥 뭐…….”

“응.”

“구파일방 오대세가 새끼들이랑 사패련 새끼들이 한판 붙을 것 같아.”

“아, 그렇구나. 그럼 됐……. 뭐, 뭐, 이 새끼야?”

눈이 휘둥그레진 백천이 청명의 멱살을 덥석 움켜잡았다.

“누, 누구랑 누가 붙는다고?”

“구파랑 사패련.”

“전쟁?”

“응, 전쟁.”

백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야, 이 새끼야! 그게 별일 아니면 화산이 무너져도 별일 아니겠다!”

“에이. 진짜 별일 아니라니까 그러네.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게 어떻게 상관이 없어, 이 미친놈아!”

“괜찮아, 괜찮아.”

청명이 손을 뻗어 백천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우리 동룡이 소심해 가지고는. 우린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 낄낄낄낄낄!”

청명의 멱살을 툭 놓은 백천이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원시천존이시여.’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새끼한테 그런 무재를 주셨습니까……. 왜…….

무언가를 고뇌하는 듯하던 백천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쳤다.

“아, 일단은 북해랑 운남에 서찰을 좀 보내 놔야겠네.”

“야, 야수궁이랑 빙궁에?”

“응.”

괴로워하던 백천이 얼른 고개를 번쩍 들고 반색했다.

‘그래, 이 새끼가 말은 악독하게 해도 이 상황을 그냥 쉽게 받아들이고 있을 리 없지. 분명 미리 증원을 요청…….’

“이 좋은 소식을 나만 알고 있을 수는 없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는 법이라잖아. 같이 웃어야지! 으헤헤헤헤헷! 친구니까!”

“…….”

꾸역꾸역 밀려든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처연한 얼굴로 그 양을 올려다보는 백천의 어깨를, 어느새 다가온 윤종이 툭툭 두드렸다.

“울지 마십시오, 사숙.”

“안 울어…….”

백천은 훌쩍이며 윤종의 손을 밀어 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우리도 당장 장강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전쟁이라면 우리도 손을 보태야지. 어쨌든 사패련을 상대하는 일인데.”

청명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당연하지! 당연히 우리도 싸워야지!”

“그, 그렇지?”

“그렇긴 한데…….”

“응?”

단호하던 청명의 얼굴이 나른하게 풀렸다. 마치 배부른 고양이 같은 얼굴로, 청명은 다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늘어졌다.

“당장은 좀 귀찮으니까 천천히 가자고, 천천히……. 아주 처언천히.”

“…….”

“걔들끼리 싸울 만큼 싸우고, 코피 터질 만큼 터진 다음에.”

“…….”

“이왕이면 양패구상해서 둘 다 망해도 좋고.”

백천이 아연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청명에게 한 가닥 기대가 있는 백천과는 달리 조걸은 이미 모든 기대를 버린 뒤였다. 그렇기에 청명이 뭔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상황을 파악했다.

“그런데 청명아.”

“응?”

“이거 잘못하면 우리한테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

“뭐가?”

“생각해 봐. 우리는 사패련이랑은 싸울 수 있지만,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랑은 싸울 수 없잖아?”

“왜 못 싸워. 후려 까 버리면 그만이지.”

“아, 아니, 아니. 정말 전쟁할 수는 없는 거잖아. 막 서로 죽이고 피 흘리고 그런 건 어렵잖아.”

“……응?”

그 말을 들은 청명이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모두가 그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를 직감했다.

‘할 생각이네.’

‘이해를 못 하네.’

‘엄마. 나 쟤 무서워.’

대체 이놈의 머리 안에서 사파와 정파는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여하튼 그래서?”

“그, 그렇지. 어……. 그런데 이대로 전쟁이 나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사패련을 쓸어 버리기라도 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한 채로 그냥 구파와 오대세가에 주도권을 내주는 것 아니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되는 것 아니냐고.”

“어?”

“……음?”

조걸의 말이 끝나니 모두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짝짝짝짝짝.

청명이 감탄했다는 듯 박수를 쳤다. 조걸의 어깨에 슬그머니 힘이 들어갔다.

“그렇지? 내 말이 맞지?”

“아니? 하나도 안 맞는데?”

이 새끼가?

“……그럼 박수는 왜 쳤는데?”

“새삼 우리 사형이 이제는 구파일방이랑 오대세가를 당연히 사패련쯤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감탄했지.”

“사갈 같은 놈.”

“사파 같은 놈.”

“…….”

조걸이 억울한 마음에 항변하려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한 사람을 빼고는.

“아니, 일리가 있는 말 아니냐?”

“사숙!”

조걸의 두 눈에 감격의 눈물이 차올랐다. 역시 백천은 백천이다. 과연 다음 대의 장문인이 될 만한…….

“보통 저놈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냥 개소리지만…….”

아니네. 다음 장문인은 윤종이 해야겠네.

“어쨌든 우리가 늦게 끼어들수록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입지가 강해진다는 건 사실 아니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사패련에 패할 것 같지는 않다.”

사패련이 지난 삼 년간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였다고는 하지만, 구파일방은 구파일방이고, 오대세가는 오대세가다.

그들이 전력을 다한다면 아무리 사패련이라고 한들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그게 백천의 상식이었다.

가만 듣던 청명이 히죽 웃었다.

“틀린 것도 있고 맞는 것도 있는데, 사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애초에 사숙이 생각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아.”

“응? 어째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전력을 동원할 수 없을 테니까.”

백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야. 소림이 아무리 지껄여 봐야 다들 안 모인다니까?”

“아, 아니 강호의 위기인데?”

“그렇지, 위기지. 그런데 말이야.”

청명이 비뚜름하게 웃었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는 급한 줄을 모르거든. 그리고 사숙이 말했잖아. 구파가 전력을 다하면 사패련쯤은 잡을 수 있다며?”

“……그렇지.”

“그런데 미쳤다고 앞장서겠어? 그럼 내 피해가 더 커질 거고, 조걸 사형이 말한 대로 전쟁에서 이기고 나면 전력이 약해져서 다른 정파 놈들한테 밀릴 텐데?”

“저, 전과(戰果)가 남지 않느냐?”

“아아, 전과? 그 공치사 한 번 해 주고 나면 쓸데도 없는 미묘한 그거?”

“…….”

“인생은 실리예요, 실리. 이 사람아!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온 병사보다 고리대금으로 돈 번 병역 기피자가 떵떵거리며 사는 게 이놈의 세상이에요!”

“그, 그렇긴 한데…….”

“강호 전부가 똘똘 뭉쳐서 싸워도 이길까 말까 했던, 마교가 쳐들어왔을 때도 제 잇속 때문에 엉덩이를 슬슬 빼던 놈들인데, 뭐? 사패련?”

“…….”

“아이고오. 참 잘도 열심히 싸우시겠네.”

백천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그, 그럼 사패련이 이긴다는 거냐?”

“거기는 뭐 다를 것 같아? 장일소가 북 치고 장구 치면 뒤에서 다른 신주오패 수장들이 박수 칠걸? 빨리 앞에 나서서 싸우다가 콱 뒈지라고.”

“……아니.”

백천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가 생각하던 구파와 사패련의 싸움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정과 사가 서로 치열하게 맞붙는 과정일 줄로만 알았는데…….

이건 숫제 눈치싸움에 아수라장이 아닌가?

“뭔 전쟁이…….”

“아니지.”

“응?”

청명이 코웃음을 친다.

“뭔 전쟁이 이런 게 아니라 전쟁은 원래 그래. 적당히 역사에 몇 줄 남겨 놓으니까 그게 잘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거지.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하나하나 다 남겼으면 사관 놈들은 전부다 고혈압으로 단명했을걸?”

백천은 아무래도 저 역시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생각했다. 저놈의 개소리가 그럴싸하게 들리는 걸 보면 말이다.

“사숙, 그러니까 우리는…….”

시원하게 술을 잠시 들이켠 청명이 다시 낄낄 웃었다.

“저놈들 대가리 터지는 거 지켜보면서 술이나 먹으면 된다니까. 낄낄낄낄. 대왕 대머리 이마에 핏대 섰을 생각하니 삼 년 전에 체한 게 한꺼번에 소화되는 기분이네! 으헤헤헤헷!”

청명은 멀찌감치서 눈치를 살피다 아예 달아나려는 백아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 쪼그만 얼굴을 보며 신나게 광소를 터트렸다.

“……미친놈.”

질려 버린 백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화산으로 돌아왔단 게 새삼 절절히 실감되었다.

앓느니 죽어야지.

앓느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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