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화. 잘 돌아왔네, 화산검협. (2)
객을 맞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아마 사람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는 마음이라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예의라 할지도 모른다. 혹은 포근한 잠자리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척박한 산 정상에서 살아가는 게 습관이 된 이들의 생각은 평범한 이들과 조금 궤를 달리하는 모양이었다.
“마셔라아아아아아!”
“고기! 고기이이이이!”
“크흑. 토끼고기가 아니야! 돼지! 돼지다!”
“으하하하! 한 잔 더 받으시고!”
도포를 입은 도사들이 반쯤 웃통을 까 젖히고 술과 고기를 탐하는,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광경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드높은 산 위에 있는지라, 이 참혹한 사태를 지켜볼 만한 눈이 없다는 것이다.
눈치 볼 일이 사라진 화산의 제자들은 지난 삼 년간의 회포를 이 한순간에 모조리 풀어 버리겠다는 듯 과격하게 술을 들이켜고, 고기를 뜯어 댔다.
미리 주문해 둔 음식을 날라오자마자 동이 나기를 반복하니, 몇 번이고 새로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제자들이 번갈아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야 했다.
그 왁자지껄한 술판 중앙에서 청명과 마주한 당군악은 가만히 잔을 들어 내밀었다. 그러자 청명도 씩 웃으며 술병을 들어 올렸다.
당군악의 표정은 꽤 편안해 보였다.
청명의 성장도 넘칠 만큼 확인했고, 비장의 수도 실전과 같은 비무에서 사용해 보았으니, 장강에서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보람은 이미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때요?”
“뭘 말인가?”
“삼 년 동안 놀고먹은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하셨나요?”
“……흐음.”
당군악이 고심하듯 눈을 찌푸린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듯 말이다.
“확실히.”
“네.”
“여러 검을 겪어 보았지만, 그런 검은 처음 봤네.”
“흐으음.”
“과거에 화산의 검이 어떻게 천하를 논할 수 있었는지 완벽하게 이해되더군.”
“흐으으으음.”
“지금 당장 천하를 뒤진다 해도 검으로 자네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텐데.”
“흐으으으으으음!”
“고생이 많았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하나, 피나는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지. 칭찬받을 만해.”
아예 날 잡고 띄워 주는 당군악의 발언에 청명의 턱이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저러다가 하늘 보겠네.”
“이미 보고 있습니다. 사숙.”
“멍청이.”
백천과 조걸이 혀를 차 대고 유이설이 힐난했지만, 이미 의기양양하게 번쩍 들린 청명의 턱은 조금도 내려올 줄 몰랐다.
“그리고…….”
당군악의 날카로운 시선이 청명의 주변에 둘러앉은 오검에게로 향했다.
“……강해진 건 청명 자네만은 아니로군.”
당군악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공치사는 됐어요.”
어느새 턱을 내린 청명이 당군악을 보며 말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주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나 말인가? 어째서?”
“그 일 수.”
청명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그 마지막 일 수가 궁금했던 것이다.
“가주님이 만드신 거죠?”
“……어떻게 알았나?”
“뭐, 이유야 간단하죠. 음. 그전까지 보이던 것과 전혀 궤를 달리한다는 것과…….”
당군악의 살짝 의혹 어린 눈초리를 본 청명이 씨익 웃으며 뒷말을 꺼냈다.
“뭐가 좀 어설퍼서.”
“크흐음!”
당군악은 크게 헛기침하며 속이 탄다는 듯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니, 사실 속이 탄다기보다는 민망해 보였다.
“어설프다고?”
“그게?”
백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청명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어지간한 일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유이설조차 ‘이 인간이 처돌았나?’라는 감정을 가득 담아 청명을 노려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군악이 마지막에 보여 준 것은 그들이 보기에도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그 수가 어설프다니.
하지만 당군악은 기분 나쁜 기색은커녕 되레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연신 헛기침을 했다.
“티가 많이 났는가?”
“좀 심하게……?”
“끄응.”
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볼 수 없는 당군악의 그런 모습에 당소소는 신기해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청명이 툭 던지듯 물었다.
“미완성이죠?”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요.”
당군악이 한숨을 푹 내쉰다. 냉정하게 말해 그 수는 아직 실전에서 사용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게 미완성이라는 겁니까? 위력이 정말 어마어마하던데.”
백천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당군악이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위력이 전부가 아니라 그렇네.”
“……예?”
“그 수는 내력의 소모가 너무 심하네. 한 번 쓰고 나면 탈진해서 더 싸우기가 힘들 정도지.”
“일격필살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 한 번으로 반드시 상대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못 쓰러뜨렸잖은가.”
“……아, 아니. 그건…….”
백천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렇지. 그래, 못 쓰러뜨렸지. 그런데 그건…….
‘아니, 이걸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해?’
그걸 막아 낸 이 새끼가 이상한 거지 그 수가 잘못된 게 아니다?
조금만 더 정교했으면 저 새끼 목을 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둘 중 어느 것도 좋은 대답이 아니었다.
“덜 정교하기에 일격필살이 되지 못했고, 일격필살도 아니면서 막대한 내력을 소모하지. 그러니까 이런 걸…….”
“빈 수레가 요란하다?”
“…….”
청명의 말에 당군악의 눈썹이 꿈틀했다.
“응? 아닌가? 그럼 빛 좋은 개살구?”
챙!
당군악의 손에 잡힌 술잔이 단번에 깨져 나간다.
“음……. 화산의 술잔이 재질이 좋지 않은 모양이로군. 당가에 말해 술잔을 새로 보내도록 하지.”
‘쇠로 만들었어도 깨졌을 것 같은데…….’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어 지적하지 않았다. 당가에서 주는 건 일단 독이라도 받아먹는 게 이득이니까.
파들파들 떨던 당군악이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완성이지. 언제 완성이 될지도 모르는.”
“아아. 그러니까, 그 미완성인 위험한 초식을 비무에 쓰셨다?”
꿈틀.
당군악의 눈썹이 다시 한번 움찔했다.
“……미완성이니 비무에 쓴 거지. 완성이었으면 차마 자네에게 쓸 수 있었겠는가? 기껏 얻은 친구를 죽일 것도 아니고.”
“완성돼도 안 죽을 것 같은데…….”
“장담하다 목이 달아나는 법이지.”
“장담해도 목 안 잘리던데.”
“…….”
“…….”
당군악과 청명이 죽일 듯한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 기세에 질린 이들이 당소소를 돌아보았다. 어떻게든 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 좀 해요! 애들도 아니고!”
“크흠.”
“쯧.”
그제야 당군악과 청명이 서로 고개를 돌리고 술병째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때 가만 지켜보던 임소병이 혀를 찼다.
“하여튼 칼 든 양반들이란…….”
당가주와 화산의 도사가 산적에게 비난받는 이곳은 화산이었다.
“확실히.”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듯 당군악이 입을 열었다.
“아직 비무나 실전에서 사용할 만한 수는 아닐세. 욕심이 과했지. 위력을 포기하더라도 좀 더 정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네.”
“뭐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응?”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력 소모가 과한 건 위력이 과해서가 아니라, 내력을 밀어 넣는 방식이 너무 우격다짐이라 그런 것 아닐까요?”
“방식?”
“네. 그거 회전으로 끌어당기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응축해서 터뜨릴 게 아니라, 애초에 기운을 비도 안에서 회전시켜야죠. 고여 있던 게 일시에 돌아갈 때 제일 소모가 심하니까.”
“으응?”
당군악의 눈이 반짝였다. 뭔가 실마리를 잡은 듯한 표정이었다.
“……병기의 방향과 기의 방향의 일치화라……. 기본이지. 기본 중의 기본. 그런데…….”
“네.”
청명이 당군악이 다음에 할 말이 뭔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상승을 노릴 때는 당연하다는 듯 잊게 되는 거죠.”
“……그렇군. 내가 그 뻔한 실수를 하다니.”
물론 청명의 말처럼 단순한 건 아니다. 고정되어 있는 비도 안에서 기운이 회전하게 만드는 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방식이니까. 하지만 잘 풀어낼 수만 있다면 분명 내력의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위력도 더 올라갈지도.’
그렇게만 된다면 십이비도는 더 이상 십이비도가 아니게 될 것이다.
‘십삼비……. 아니. 그냥 십이비도라고 하자.’
이름 한번 더럽게 구리네…….
“그렇군. 그래, 그럴 수 있겠어.”
당군악이 혼잣말처럼 중얼대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청명이 슬그머니 다시 운을 뗐다.
“미완성인 건 그것만이 아니죠?”
“음?”
당군악이 짐짓 모른 척 묻자 청명이 씨익 웃었다.
“원래는 바닥에 떨어진 비도들까지 동시에 날아오는 거겠죠?”
“……자네 혹시 전생에 당씨였는가?”
전생에 당씨는 아닌데 그 비슷한 무언가이기는 했지. 내가 당가 가면 가주가 버선발로 뛰어나왔지. 응. 사고 치지 말라고.
“그렇지. 그래야 완성이지. 하지만…… 지금 내 실력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하네.”
“내력의 소모를 줄일 수 있으면 분명 가능할 거예요.”
“……그럴까?”
“물론이죠.”
청명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가공할 위력으로 날아드는 한 자루의 비도. 그리고 그 사방을 덮쳐 오는 암기들과 열한 자루의 비도들.
그건 분명 환상과도 같은 초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초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에는 세상에 또 한 사람의 암존(暗尊)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응?”
“갑자기 새 초식은 왜 만드신 거예요?”
“흐음.”
청명의 물음에 당군악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 지닌 것도 완전히 익히지 못했는데, 새로운 초식을 만든다는 건 과한 일이긴 하지.”
“…….”
청명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한 가지 이유는 당군악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지금의 당군악보다 뛰어난 무인이었던 당보조차 십이비도의 새 초식은 고안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군악이 새로운 초식을 창안한다는 것은 확실히 무리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정반대였다.
그런 당군악이 만들어 낸 새로운 초식이 그가 아는 십이비도의 기존 초식들을 넘어서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이 초식을 만들어 낸 이유를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밖에 없겠군.”
“그게 뭔가요?”
“필요하니까.”
당군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당가의 비도술과 암기술은 확실히 훌륭한 무학이라네. 하지만…… ‘절대’라 불릴 만한 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분명 부족한 면이 있어. 특히나 던지면 던질수록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의 가짓수가 한정되는 비도의 특성상 그런 고충은 더욱 심해지지.”
“그렇죠.”
“비도를 회수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절대의 고수를 상대한다면 그럴 틈도 잘 주어지지 않을 테지.”
청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분명 당보도 고민하던 일이었다. 오죽하면 비도 끝에 질긴 은사를 달 생각까지 했겠는가? 물론 그러면 비도의 궤적에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접긴 했지만.
“내내 고민하며 수련을 하던 찰나에 바닥에 널브러진 비도들을 보고 생각했지. 왜 내 손에 들린 비도만을 써야 할까? 하늘에 흩뿌려진 암기만이 내 암기가 아니고, 내 손에 들린 비도만이 내 비도는 아닐진대.”
“아…….”
당군악이 쑥스럽다는 듯 헛기침했다.
“뭐,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네만…… 아직은 잘 안 되는군. 부족한 걸 보여 주어 민망하네.”
“아니요.”
청명이 진지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최고였어요.”
“…….”
“정말로요.”
그런 그를 빤히 보던 당군악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었다.
“……고맙네.”
“천만의 말씀.”
청명이 당군악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러자 당군악이 그 술병을 이어받아 청명의 잔을 채웠다.
“마시지.”
“네.”
청명이 기분 좋게 잔을 비웠다.
‘나아간다…….’
지난 삼 년간 화산은 확실히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노력한 것은 화산뿐만이 아니다.
그의 후손이 과거 당보조차 만들지 못했던 초식을 만들어 낸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이 초식 역시 다른 십이비도처럼 완벽해질 것이다.
당군악이 하지 못한다면 그의 뜻을 이은 누군가가, 그리고 그 뒤를 이을 또 누군가가 조금씩 완성해 가겠지.
무학이란 그렇게 발전하는 법이니까.
‘그렇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가볍게 물은 청명이 미소를 지으며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응? 뭔가?”
청명은 장난스럽게 낄낄 웃으며 물었다.
“비도가 부족해진다는 것 때문에 그러는데, 왜 비도를 열두 개만 쓰는 거예요? 무슨 이유가 있나요?”
“……응?”
“십이비도라고 해서 꼭 비도를 열두 개만 쓸 필요는 없잖아요. 어차피 암기들 덕지덕지 몸에 붙이고 다니는데 비도가 한 스물네 개쯤 되면 비도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
“동시에 열두 자루 다루는 게 최종 목표라고 해서 꼭 열두 자루를 들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예비용이 있어서 나쁠 게 없으니까……?”
“…….”
장난스러운 청명과는 달리 당군악의 얼굴이 점점 희게 질려 갔다.
“…….”
그리고 그걸 본 청명 역시 더는 웃을 수 없게 되었다.
……저기요?
저기? 설마…….
생각 안 하셨음? 진짜?
- 와, 그 생각을 못 했네.
아무래도…… 이어지는 건 의지만은 아닌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