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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97화 (894/1,567)

897화. 용이 되어 올 줄 알았더니. (2)

쾅!

“으아아아아! 도착했다!”

“화산이다!”

“아이고, 어머니!”

본산의 산문을 걷어차다시피 열어젖히고 들어선 화산의 제자들이 감회에 젖은 눈으로 전각들을 바라보았다.

험하디험한 화산을 단숨에 뛰어 올라왔지만, 힘이 들기는커녕 되레 활력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아아.”

“화산…….”

금방이라도 모두가 감격에 젖어 눈물이라도 쏙 뺄 듯한 모양새였다.

현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도 좋을까?’

하기야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화산의 제자들은 대부분 화산을 오래 떠나 본 적이 없는 이들이다. 그런 곳을 2년을 훌쩍 넘게 떠나 있다 돌아왔으니 당연히 감격스러울 만도 했다.

현종의 마음이 훈훈해진다.

이는 즉, 화산의 제자들이 이곳을 제 집처럼 여긴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장문인으로서 기껍지 않을 수 없…….

“어흑! 지붕이다! 지붕이야!”

“눈물 나려 그래.”

“이제 더는 자면서 벌레에 물어뜯기지 않아도 되는구나.”

“풀밭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등이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도 이제 안녕이야!”

“밥! 사람 같은 밥을 먹을 수 있다! 밥!”

“…….”

현종이 입을 주먹으로 가리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거 민망하게.’

이제는 나름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할 수 있는 화산이건만, 제자들이 지붕이 있는 전각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개방도 이러지는 않을 텐데…….

물론 전후 사정을 알면야 당연하다 여길 일이다.

외인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인적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련을 했다. 좋게 말하면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수련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산속에서 거지처럼 유리걸식했다는 뜻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친놈처럼 칼을 휘두르다가 먹을 수 있는 건 아무거나 긁어다 주워 먹고 흙바닥에 엎어져 잠드는 생활을 그렇게나 오래 했으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을 보고 감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은하상단에 잠시 머무르기는 했지만, 그곳 역시 제자들에 마냥 편한 곳은 아니었을 테다.

“침상! 침상에 누워 봐야지!”

“비켜! 내가 먼저야!”

“식당에 뭐가 있지 않을까?”

“있긴 뭐가 있어. 몇 년을 비워 놨는데.”

“그래도 혹시…….”

제자들이 이성을 잃어 갈 때쯤, 화산의 군기반장이 발을 굴렀다.

쿵!

제자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쪽으로 돌아갔다.

“쯧쯧쯧.”

혀를 차며 제자들을 둘러본 현영이 말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할 건 해야지.”

그리고 턱짓으로 전각들을 가리켰다.

“보이느냐?”

“예?”

제자들이 영문을 모르는 모습을 보이니 현영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저기 전각에 쌓인 뽀얀 먼지들이 보이냐 이 말이다.”

“…….”

“내가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보수공사까지 오늘 끝냈으면 좋겠지만, 나도 사람이니 거기까진 안 바란다. 하지만!”

모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하는 걸 보며 현영이 히죽 웃었다.

“일단 비워 둔 동안 쌓인 먼지는 청소해야겠지?”

‘악마!’

‘꽉 막혀서는!’

‘융통성이라고는 진짜!’

제자들이 마음으로 항변하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건지 현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불만이라도?”

“아, 아닙니다!”

“설마요!”

“당연히 대찬성입니다!”

아무리 무학이 고강해졌다고는 하나, 감히 현영의 말에 토를 달 만큼 간이 커진 이는 아직 없었다.

현영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힘차게 외쳤다.

“좋아. 움직여라! 후다닥 끝내자!”

“예!”

화산의 제자들이 쏜살처럼 달려 나갔다.

“와아…….”

조금 뒤늦게 오른 홍대광은 멍한 얼굴로 화산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바라보았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개방 윗분들에게 보여 주면 뭐라고 할까? 아마 강호에 상식처럼 통용되는 문파의 사업 분야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을까?

“빨리 날라!”

“지금 간다! 비켜!”

“거기! 거기 쓸라고, 거기!”

화산 제자들이 가공할 속도로 화산을 청소해 나가고 있었다. 그저 쓸고 닦는 수준이 아니다. 사람만 한 물동이를 짊어진 화산 제자들이 아래의 개천으로 달려가 물을 길어 와 말 그대로 전각을 ‘씻어 대고’ 있었다.

수십 개의 물동이가 연이어 날라져 물을 뿌려 대니 흡사 하늘에서 비라도 쏟아지는 듯한 모양새였다.

“……굉장하네.”

전에 당가를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무인들이 호위나 표사를 하는 건 사실 인력 낭비가 아닐까? 토목 공사를 하는 데 투입하면 숙련된 인부 열 명 몫은 쉽게 할 것 같은데…….

먼지가 쌓여 뽀얗던 전각들이 순식간에 제 색을 되찾는다.

‘그러고 보니 화산검협은?’

다른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그 인간이 청소를 열심히 할 것 같지는 않은…….

“먼지가 덜 닦였잖아!”

“꺄울!”

때마침 제 사형의 엉덩이를 가차 없이 걷어차는 청명의 모습이 보였다.

“위패! 어디 선조의 위패에 먼지가 쌓였는데! 그걸 대충 닦고 넘어가?”

“아, 아니 깨끗하게 닦았다고…….”

“여기! 여기 먼지 안 보여? 여기?”

“……청명아. 매도 그건 못 보겠다.”

“오늘 여기 먼지 하나라도 남으면 사형들은 다 뒈지는 거야! 빨리빨리 닦아!”

“아, 알았다고.”

옥천원을 점거한 청명이 눈을 까뒤집으며 사자후를 질러 댔다.

그리고 자신도 깨끗한 무명천을 들고 위패를 열성적으로 깨끗하게 닦아 내기 시작했다.

“호오. 호오!”

뽀독. 뽀독.

“호오! 호오!”

뽀독! 뽀독!

눈을 희번덕대며 ‘대 화산파 십삼 대 장문 청문’이라 새겨진 위패를 닦는 모습을 보며 백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위패를 닦는 손동작에선 광기마저 느껴졌다.

‘저 새끼는 버릇이 없는 거야? 버릇이 과한 거야?’

사형들은 걷어차 대면서 얼굴도 못 본 선조들은 저렇게 깍듯하게 모시다니.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뒤틀려 있기에 저런 끔찍한 인간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뽀각!

“히익! 위, 위패에 금이! 아이고오! 장문사혀어어어어엉! 그, 아교! 아교오오오!!!”

“……미친놈.”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백천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물론 홍대광도 마찬가지였다.

반짝. 반짝.

불과 한 시진 만에 화산이 온전한 제 모습을 되찾았다. 때가 묻고 얼룩이 졌던 기와들은 제 색을 되찾아 반짝이고 있었고, 탁하게 빛바랬던 기둥과 벽면들도 기름칠이라도 한 듯 선명해졌다.

길게 설치된 빨랫줄에 널어 둔 침구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야말로 평화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자, 이제…….”

현영이 날카로운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핀다.

제자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런 현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느냐로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뭐, 이 정도면…….”

썩 마음에 차진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인정해 줄 만하다는 듯 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장문인.”

“그래.”

“아이들이 그간 고생을 했으니, 오늘은 편히 먹고 쉴 수 있게 해 주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다만, 화산에 지금 딱히 먹을 음식이 있더냐? 숙수를 모두 내보내서 음식을 할 사람도 없을 텐데.”

“올라오는 길에 화음의 주루에 들러 음식을 주문해 뒀습니다. 내려가서 가져오기만 하면 됩니다.”

“꾀는 네가 다 부려 놓았구나. 허허.”

기분 좋게 끄덕이려던 현종의 눈에, 청명이 슬그머니 현영의 뒤로 가 속닥대는 모습이 걸렸다.

“장로님. 술, 술…….”

“이……! 야, 이놈아! 술 처먹다가 그렇게 혼쭐이 나 놓고는 그 조동아리에서 술이라는 말이 또 나오느냐?”

현종이 냅다 소리를 지르니 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닙니까! 애가 술이 좀 고플 수도 있지!”

“끄으으으응.”

현종이 막 한소리를 더 하려는 찰나.

“술은 여기 있지.”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닫혀 있던 화산의 산문이 천천히 열리며 한 사람이 모습이 드러냈다. 한 손에 새하얀 술병을 든 그 중년인은 전신을 녹의(綠衣)로 감싸고 있었다.

“오!”

현종의 두 눈에 반가움이 한껏 차올랐다.

“가주님!”

“아버님!”

마찬가지로 당군악을 발견한 이들이 반가움을 누르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그 환대에 당군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산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더니, 현종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가주님.”

현종이 얼른 그의 양팔을 잡아 일으켰다.

“맹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가주님께 짐을 떠넘긴 죄인입니다. 이런 예는 받을 수 없습니다.”

당군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역할을 하지 못하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리 빨리 오셨습니까?”

현종이 놀라운 얼굴로 묻자 당군악이 겸연쩍은 얼굴로 답했다.

“서찰을 받고 곧장 달려왔습니다. 화산이 봉문을 풀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몸이 달아 도무지 버틸 수가 있어야지요.”

“잘 오셨습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현종의 두 눈에 반가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피어났다.

화산이 봉문에 든 동안 당군악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 그 먼 장강에서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끄응. 누구는 환대받고, 누구는 짐이나 나르고.”

그때 문 안으로 임소병이 들어오며 너스레를 떨었다.

“녹림왕?”

“오셨소?”

현영이 임소병을 맞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로님.”

“그간 별일 없으셨소?”

“별일이라……. 그건 가져온 장부를 장로님께서 보신 뒤에야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통과가 되어야 별일이 없었던 것이라.”

“하하하. 그럼 당연히 별일이 없었겠구려.”

현영이 너스레를 떨어 대는 임소병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손길에는 확연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거.”

그때 청명이 당군악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시선이 당군악이 들고 있는 술병에 꽂혀 있었다.

“엄청 좋은 술로 보이는데…….”

자기의 빛깔과 그려져 있는 산수화가 범상치 않다. 저런 술병에 담긴 술이 평범한 술일 리가 없다.

“물론 좋은 술이지.”

당군악이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한잔 기울이려고 고르고 골라 가져온 술이니까.”

“크으.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청명이 시시덕대려는 순간 당군악의 눈빛이 살짝 어둑해졌다.

“하지만…….”

“네?”

“그 전에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지.”

현종의 앞에서 살짝 물러난 당군악이 청명을 보며 똑바로 섰다. 그의 몸에서 진득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흡.”

“…….”

화산 제자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사천당가의 가주라는 직위에 걸맞은, 가공할 위압감이 사위를 짓누른다.

“연락도 없이 몇 년을 은거했던 친구가…….”

“…….”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얻어 왔는지 확인부터 해 봐야, 술맛이 더 살아날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는가?”

당군악의 날카로운 눈빛이 청명에게로 쏟아졌다. 기운을 억제하지 않고 풀어낸 당군악의 기세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을 받은 청명은 그 기세를 정면으로 받고도 되레 히죽 웃을 뿐이었다.

“확인이라…….”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린 청명이 오랜만에 만난 친우를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그걸 확인하려면 그 술 한 병으로는 부족하실 텐데?”

당군악의 입가에도 청명과 똑같은 미소가 걸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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