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3화. 어떻게 죽고 싶냐? (2)
‘신기하군.’
갈천립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생각했다.
일반적인 이들이 생각하기에 전투란 어느 한쪽이 모두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겠지만, 실제 전투는 그렇지 않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일 할만 죽어도 진영은 붕괴되고 그 뒤로는 일방적인 학살과 추격이 이어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법에서 말하는 대패는 한쪽이 삼 할 이상의 병력을 잃는 것이다. 삼 할의 병력을 잃은 쪽은 더는 사기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기지 마라. 이 사파 새끼들아!”
“내가 아직 살아 있다!”
이놈들은 대체 뭔가?
이미 수도 없는 이들이 처참한 시체가 되어 널브러졌음에도 이들의 두 눈에서는 투지가 가시질 않는다. 정말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결사항전 할 기세다.
다리가 베이고 배에 칼이 박힌 이가 땅에 쓰러져서도 칼을 휘둘러 대고, 목이 반쯤 베인 이가 피를 뿜으면서도 허우적대는 양팔로 필사적으로 적을 잡고 늘어진다.
‘정파 놈들은 다 이런 건가?’
그럴 리가 있나?
정파들이 모두 이렇게 싸웠다면 세상에 사파란 이름은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깊게 들어갈 것도 없다. 아마 저 장강에서 사패련이 발호하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 거파들조차 제 목숨이 아까워 사파와 협상을 벌였는데, 이들이 대체 뭐라고 이곳에서 목숨을 던져 가며 싸운단 말인가?
“묘하군.”
하지만 그래 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 저들은 이쪽에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으니까. 기껏해야 조금 더 시간이나 끌 뿐이다.
“앞에서 시간을 끌 동안 달아났으면 살 수 있었을 놈들이 꽤 될 텐데. 멍청하기 짝이 없군.”
갈천립은 노골적인 비웃음을 내건 채 점점 더 지독해져 가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카각!
철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앞에 선 놈의 머리통을 부숴 놓으려는 순간, 그를 향해 다섯 개의 검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큭!”
철귀는 뒤로 한 발 물러나며 날아드는 검을 모조리 쳐 냈다. 외공(外功)을 익혔으니 웬만한 검 정도로는 치명상을 입지 않고 그냥 몸으로 받아 낼 수 있지만, 굳이 상처를 입을 필요는 없다.
‘끈덕지군.’
기세가 달라진 건 조금 전 저 거지 놈이 뛰어들고부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거지 놈의 입에서 ‘화산’이라는 이름이 나온 뒤부터다.
그때부터 이놈들이 바로 옆에서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고 달려들고 있다.
전투는 참으로 묘하다. 한쪽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들면 결착이 빨리 날 것 같아도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저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놈의 목을 날리는 대신에 팔 한쪽을 내어 주고 싶어 할 이는 없기 때문이다.
“죽어어어어엇!”
그 순간 저 망할 화영문인가 뭔가 하는 문파의 문도가 날린 검격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미친놈들 중에서도 저 무복을 입은 놈들은 유독 미쳐 날뛰는 중이다.
“미친…….”
잇새로 중얼거린 철귀가 자신에게 날아드는 검을 손등으로 쳐 내고는 텅 비어 버린 화영문도의 가슴에 매의 발톱 같은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콰득!
“끅…….”
그가 손을 움켜쥐어 살점을 뜯어내려는 순간 그의 목을 향해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철귀가 섬전같이 손을 빼내 날아드는 검을 후려쳤다.
콰앙!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내부가 진탕되었음이 분명한데도 날아들었던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검을 다시 휘둘렀다.
카각!
철귀의 어깨가 살짝 갈리며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
한 발짝 물러나 제 어깨를 내려다본 철귀의 눈이 살짝 일그러진다.
휘청이며 자세를 잡은 화영문주 위립산이 부들대는 다리를 억지로 진정시키며 검을 겨누고 있었다.
철귀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전신의 곳곳이 베여 피를 줄줄 흘려 대고 있는 위립산의 몰골을 보니 화도 나지 않았다.
“……다 죽어 가는 놈이.”
“하지만 아직은 살아 있지.”
“문주님!”
“문주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저 악적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화영문도들이 비명을 질러 댔지만, 위립산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제자들을 죽이려면 나부터 죽여야 한다. 그게 화산 속가의 법칙이지.”
“아주 잘나셨군. 그 주둥아리만큼 검에도 힘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을.”
“너 하나 물고 늘어질 힘은 있지.”
“……아무래도 화산에서는 주둥아리 놀리는 법부터 가르치는 모양이군.”
그 비아냥거리는 말에 위립산이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뭐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뭐?”
“오너라, 악적아. 내 검에도 발목을 잡힌다면 너는 화산의 삼대제자 하나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오, 그래?”
철귀가 단숨에 달려들어 위립산을 들이받는다. 그 순간 위립산이 날카롭게 검을 휘둘러 그의 어깨를 내리쳤지만, 검은 채 반 치도 파고들지 못했다.
대신.
쿠우우우웅!
성난 황소 같은 철귀의 어깨가 위립산의 가슴을 들이받는 순간, 가슴이 움푹 꺼졌다. 위립산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쿵!
“문주니이이임!”
“이, 이 개 같은 놈이 문주님을!”
“물러서라!”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려는 화영문도들을 향해 거친 일갈이 쏟아졌다. 화영문도들이 떨리는 눈으로 쓰러진 위립산을 보았다.
위립산은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어떻게든 땅을 밀어 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입에서 울컥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검을 들어 올린 그가 철귀를 다시 겨누었다.
“나부터…… 넘어야 할 거다. 이 악적 놈.”
“하하하핫! 좋군! 아주 좋아!”
철귀가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며 위립산을 향해 돌진했다.
휘이이잉!
창끝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마치 귀곡성(鬼哭聲) 같다.
소름 돋는 바람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창끝이 타구봉의 끝을 쳐 내고 홍대광의 가슴을 파고든다.
푸욱!
창날이 반 이상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회수된 창이 이번에는 홍대광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서걱!
옆구리가 뼈가 드러날 만큼 깊게 갈라졌다.
“크핫!”
하지만 홍대광은 그토록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조금도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그는 제 옆구리를 베고 회수되는 창대를 한 손으로 움켜잡아 세우고는 회선창귀의 턱을 향해 타구봉을 휘둘렀다.
“허?”
회선창귀가 놀란 얼굴로 창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창날이 홍대광의 손아귀를 베어 내고 회수되어 타구봉을 튕겨 냈다.
타탓.
일방적으로 상처를 입혔지만, 물러난 것은 오히려 회선창귀였다. 회선창귀는 영 못마땅한 얼굴로 홍대광을 노려보았다.
‘내가 전신에 바람구멍이 나도 그따위로 지껄일 수 있는지 보자고 했던가?’
그 결과는 나왔다. 홍대광은 제 몸에 구멍이 몇 개가 뚫리든 똑같은 말을 지껄일 수 있는 이라는 걸 지금 증명하고 있으니까.
어깨와 가슴, 배와 다리.
몸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구멍이 열 개 가까이 뚫려 있음에도 홍대광은 쓰러지기는커녕 되레 그를 비웃어 댔다.
그가 걸친 누더기가 붉다 못해 검게 물들어 있음에도 말이다.
“도망이라니……. 겁이라도 먹으…셨나?”
“……미친놈.”
“흐……. 네가 거지를 잘 모르는 모양…인데. 가진 것 없는 놈은 죽는 게 두려울 것도 없…는 거야.”
홍대광의 두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그 모습을 보며 회선창귀가 짧게 혀를 찼다.
약해 빠진 놈이 같이 죽자고 달려들어 대니 제대로 마무리를 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선두로 나선 저놈이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서 다른 놈들도 의욕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의욕이 전황을 뒤집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비해 확연히 뭔가 껄끄러워졌다.
“다시 말하면…….”
회선창귀가 기괴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
“너를 처참하게 죽이면 이들의 사기도 떨어진다는 거겠지. 그래, 어디 한번 버텨 봐라. 열 개의 구멍은 버티겠지. 그런데 스물은? 서른은?”
“…….”
“네놈이 몸에 피 한 방울 남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을 때도 과연 저들의 표정이 지금과 같을지 보자꾸나.”
그의 창이 새파란 경기를 머금고 홍대광을 향해 날아들었다.
카앙!
휘두른 검이 묵직한 도에 부딪히며 튕겨 나온다. 그의 검을 튕겨낸 칼은 그 기세를 조금도 잃지 않고 날아들어 목을 긁고 지나갔다.
목에서 섬뜩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얼마나 베였는지 확인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는 순간, 굳이 목이 얼마나 베였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어질 게 분명하니까.
‘무력해.’
질끈 깨문 입술에서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가 이름도 모르는 사파 놈의 칼에 밀려 물러나는 와중에도 또 하나의 목숨이 죽어 간다.
그가 좀 더 강했더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저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어째서 좀 더 수련에 매진하지 못했던가? 어째서 그는 그들처럼 강하지 못한가?
화산에 입문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처럼 강해져야 했다. 위소행은 이 순간 이해했다. 힘이 없는 이는 그 무엇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아아아악!”
‘무력해…….’
또 하나의 생때같은 목숨이 스러진다. 그들이 밟은 땅은 이미 누군가가 흘린 피로 검붉게 물들어 있다.
그 피의 주인이 누구겠는가?
이곳을 지키겠다고 목숨을 건 이들의 것이다. 그 눈부신 의기도, 용맹도, 저 악적들의 칼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하다.
그가 화산에 정식으로 입문해 검을 익혔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챙!
날아드는 칼을 막아 낸 그의 검이 위로 튕겨 올라갔다. 뒤이어 날아든 발에 가슴을 정통으로 걷어차이고 말았다.
쿠웅!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과 함께 위소행은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갔다.
“소문주!”
“빌어먹을! 소문주님!”
머리부터 땅에 처박힌 그는 흙을 그러쥐었다. 가슴과 머리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보다 코로 밀려 들어오는 피에 젖은 흙내가 더욱 괴로웠다.
꿈틀대던 위소행은 다시 몸을 뒤집고 상체를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아아아악!”
죽는다.
“악소! 악소! 으아아아악! 이 개 같은 놈들아아아아!”
힘겹게 버텨 내던 이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 간다. 쓰러진 이의 부릅뜬 눈이, 차마 죽어서도 감지 못한 그 눈에 남은 서글픔이 위소행의 가슴을 헤집는 듯했다.
“아…….”
위소행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소문주.”
어느새 그에게 달려온 황종의가 위소행의 어깨를 움켜잡으며 부축했다.
“괜찮소, 소문주?”
하지만 위소행의 귀에 황종의의 말은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아…….”
모두 죽을 것이다. 모두.
함께 웃던 이들, 싸우고 화내던 이들. 그리고 서로 경쟁하던 이들까지. 가족 같았고 때로는 원수 같기도 했던 이들이 오늘 모두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가슴속에 들어차는 울분과 서글픔을 억누르며 위소행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안다.
어차피 그는 죽는다.
하지만…….
‘청명 도장이라면 죽는 그 순간까지 우는소리를 하지 않았을 거야.’
눈물로 범벅이 된 위소행은 검을 부러져라 움켜잡았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짊어졌는지. 얼마나 큰 두려움 속에서 싸워 왔는지.
검을 잡은 위소행의 눈에 누군가의 피가 하늘로 흩뿌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보이는 붉은 피는 마치 피어오른 붉은 매화 같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휘청거리다 다시 애써 몸을 세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움켜잡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위립산이 적에게 칼을 맞는 모습이 보였다. 일그러진 위립산의 얼굴과 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홍대광의 어깨에서도 창날이 삐죽이 뚫고 나왔다. 홍대광이 창대를 부여잡고 휘청이는 모습이 뿌옇게 흐려진 위소행의 두 눈을 파고들었다.
‘나는…….’
“아아아아악!”
또 누군가의 비명이 울린다.
막을 수 없다 해도, 적어도 뒤에서 지켜봐선 안 된다.
“나는 화영문의 소문주다! 이 개자식들아!”
위소행이 다시 한번 검을 들고 앞으로 짓쳐 달려 나갔다.
“소, 소문주!”
“소문주님!”
누군가가 발견하고 만류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위소행의 시선은 오로지 눈앞에서 화영문도의 배에 칼을 박고 있는 악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가슴을 불사르는 것 같은 분노를 터트리며 달려든 그는 전력을 다해 검을 전개했다.
쾌속하고 화려한 검초.
위소행의 평생을 통틀어 가장 위력적으로 전개된 그 검초는…… 상대가 무심하게 휘두른 도격과 맞부딪혀 단숨에 어그러졌다.
챙!
손아귀를 찢으며 튀어 오른 검이 회전하고는 하늘로 솟구쳤다.
‘아…….’
일순 세상이 느려졌다.
분명 빠르게 회전하고 있을 검이 위소행의 눈에는 너무도 느릿하게 보였다.
그리고.
젖혀진 팔 덕분에 완전히 열려 버린 가슴을 향해 거친 도기를 머금은 칼이 날아드는 모습도 분명히 보였다.
누군가의 고함 소리.
얼굴로 흘러내리는 진득한 땀.
찢어진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떨림.
그리고 그보다 더 확연하게 다가온 죽음의 냄새까지.
‘나는…… 겁쟁이는 아니었어.’
가슴에 느껴질 통증과 그 뒤를 이어 다가올 죽음까지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위소행은 느리게 두 눈을 감았다.
‘도장…….’
마지막 순간에 히죽 웃는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복수를 바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그가 보고 싶기 때문일까.
훗날 저승에서 그를 만나서, 나는 마지막까지 비겁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음까지의 길이 멀다.
아직도 악적의 칼이 심장을 베어 내지 않은 것인지, 이미 죽은 그의 생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턱.
무언가가 머리에 가볍게 툭 닿는 듯한 느낌이 위소행을 삽시간에 현실로 끌어 올렸다.
살짝 커다랗고 따뜻한 손.
“잘했다, 꼬맹아.”
위소행이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건 그의 가슴을 꿰뚫어 버린 칼도, 그 칼을 쥔 이도 아니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누군가의 커다란 등이었다.
“어…….”
위소행의 눈이 점점 커지다 이내 입까지 벌어졌다.
“처…… 청…….”
어찌 모르겠는가?
저 등을. 저 사람을.
위소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 마디만 더하면 울음이 터져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럼에도 끝끝내 참지 못한 한마디가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도장.”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이의 등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