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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70화 (866/1,567)

870화. 이곳은 화산의 땅이다. (5)

“허억! 허억! 허억!”

홍대광의 입에서 거친 숨이 쏟아졌다.

높고 가파르기 짝이 없는 화산을 전력을 다해 단숨에 뛰어올랐으니 아무리 개방의 분타주인 그라고 해도 숨을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폐가 터질 것 같고 단전이 바늘로 찔러 대는 듯 아파 왔지만 발을 멈출 수는 없었다.

“크윽!”

마지막 절벽을 단숨에 솟구쳐 오른 홍대광의 두 눈에 마침내 굳게 닫힌 화산의 산문이 들어왔다.

짓쳐 달려간 홍대광이 지체 없이 산문을 쿵쿵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산신룡! 화산신룡! 이 새끼야!”

쾅! 콰앙!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화산파 여러분! 빌어먹을! 잠깐 나와 보시란 말입니다! 지금 큰일이 났다고!”

내력을 힘껏 실은 홍대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안에선 여전히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

홍대광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봉문 한 문파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부터가 이미 도의를 벗어난 짓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그의 두 눈이 화산의 낮은 담벼락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어.’

봉문 한 문파에 침입하는 것은 그 문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보이지 않는 행위. 화산이 그를 불공대천의 원수로 여기고 공적으로 선언한다 해도 천하의 누구도 그를 비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개방조차 손을 떼 버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홍대광은 망설이지 않았다.

‘화산신룡이 별것도 아닌 예의를 따질 리가 없지.’

되레 이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봉문을 풀고 나온 화산신룡에게 맞아 죽는 일만 남을 것이다.

결심을 굳힌 그는 심호흡을 하고 단숨에 화산의 담을 넘어섰다.

“화산파 여러분! 지금…….”

담을 뛰어넘으며 소리를 지르던 홍대광은 채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입을 다물었다.

“뭐, 뭐야?”

눈에 들어온 화산의 광경이 그가 예상하던 것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말 그대로 박살이 나 있다.

과거 깨끗한 청강석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연무장은 곳곳에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부서져 파여 있고, 연무장에 맞닿은 전각들도 반쯤 무너져 있다.

“이게…….”

홍대광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흡사 누군가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모양새가 아닌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 홍대광이 흠칫 정신을 차렸다.

‘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전각 꼴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 외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화산 제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당장 지원하지 않으면 은하상단을 비롯한 서안의 양민들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화산신룡!”

홍대광은 쩌렁쩌렁 소리를 치며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나마 멀쩡한 전각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지금 밖에…….”

하지만 이번에도 홍대광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열어젖힌 전각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홍대광을 더 당황케 한 것은 전각 안이 텅 비어 있단 사실이 아니라, 그 전각의 안에 쌓여 있는 뽀얀 먼지였다.

최소 몇 달은 사람이 발길조차 들인 적 없어 보이는 먼지 말이다.

홍대광은 떨리는 눈으로 돌아 나와선 다른 전각의 문도 황급히 열어젖혔다.

벌컥.

……없다.

전각 이곳저곳의 문을 죄다 열어젖히는 그의 얼굴은 흡사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전각을 여는 그 순간까지 화산에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안 돼…….”

쉰 목소리로 중얼거린 홍대광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하얗게 질린 머릿속에 이윽고 온갖 상념이 소용돌이쳤다.

“어째서…….”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만인방이라도 쳐들어왔나?’

그럴 리가 없다.

만인방이 아니라 사패련이라고 할지라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이곳 섬서까지 와서 화산을 소리 소문도 없이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그럼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홍대광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이럼…… 이러면 서안은…….”

그의 두 눈에 절망이 가득 들어찼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지금 이 순간 확실한 것은 저 서안을 지켜 싸울 화산이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다.

“빌어먹을…….”

앓는 듯 욕지거리를 한 홍대광은 이내 핏발 선 눈으로 악을 썼다.

“망할! 이러면 서안 사람들이 다 죽는단 말이다! 화산신룡! 화산파 이 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

폐가 목으로 튀어나올 기세로 소리를 지른 홍대광이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그리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깨물었다.

‘……가야 해.’

화산이 이곳에 없다면 그라도 가야 한다. 가서 손이라도 보태야 한다. 자리에서 벌떡 난 그는,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주먹을 꽉 쥐고 화산의 정경을 두 눈에 담은 후에야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빌어먹을!”

그의 커다란 목소리가 고요한 화산 안에 거칠게 울려 퍼졌다.

홍대광이 떠난 화산에 무거운 고요함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 * *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주님.”

황종의가 위립산의 양손을 꽉 움켜잡았다. 그러자 위립산이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감사를 받을 일이 아닙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문주님…….”

“서안의 문파가 서안의 사람들을 지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화산의 속가가 은하상단을 지키는 것 역시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말은 쉬우나…….”

그걸 목숨 걸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황종의의 가슴에 격정이 차올랐지만,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느끼고 있는 깊은 고마움을 위립산 역시 미루어 짐작하고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감사는 제가 아니라 저분들께 해야 할 것입니다.”

황종의가 위립산의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들…….”

서안 중소 문파의 문주들이 제자들을 이끌고 와 있었다. 그중에는 화산이나 화영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이들도 있었지만, 은근히 그들과 대립하는 종남의 속가들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뭐…….”

서월문의 문주 심원검(心源劍) 남자명이 조금 겸연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서월문은 서안 종남 속가의 대표격인 문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화산의 속가인 화영문이나, 화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은하상단과 좋은 관계일 수 없다.

예전처럼 대립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미묘한 껄끄러움이 남아 있는 사이다.

하지만.

“화영문주께서 말씀하셨듯, 이건 뭐 당연한 일이니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안을 지키는 일을 저 화산에만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문주…….”

“크흠.”

남자명이 크게 헛기침을 했다.

과거 적사대 사태 때, 그도 느낀 바가 컸다.

‘문파라는 건 누가 더 강한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당장은 그게 더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문파의 미래는 강함에 달려 있는 게 아니었다. 적사대 사태 때 꽁지를 빼고 달아났던 문파들은 몇 해 동안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종남이 서안에 가지고 있던 영향력이 박살 난 것은 물론이고, 화영문에게 서안 대표 자리를 빼앗겼다. 그리하여 여러 문파가 종남을 벗어나 화산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을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딱히 들지 않았다. 그건 그들이 저지른 실수에 따른 대가였으니까.

‘힘없는 양민들을 지켜 주지 않는 무인은 칼 든 무뢰배나 다름이 없다.’

남자명과 서안의 문파들은 그 교훈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 이곳으로 몰려오는 사파들의 쟁쟁한 위명을 그들이 왜 모르겠는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만으로 그들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당랑거철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밀려오는 수레와 맞서야 할 때가 있는 거겠지.’

그들이 그토록 무시했던 화산이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것을 보며 알게 되었다.

섬서 사람이 아닌 이들은 화산이 강해졌기에 그토록 명성을 떨친다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섬서인들은 안다. 화산이 지금처럼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이유는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마지막 제자 하나까지 목숨을 걸고 싸울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문주.”

그때 의검문(義劍門)의 문주인 동방회(東方廻)가 떨떠름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남 문주. 왜 굳이 이 은하상단에 진을 치는 겁니까.”

“음?”

“아니. 저놈들이 재물에 관심이 있다면 은하상단부터 쳐들어올 거라는 건 압니다만…… 차라리 성문을 닫고 성벽 위에서 막아 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는 화영문주 위립산이 대신 대답했다.

“그건 하책(下策)입니다.”

“하책이요?”

위립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 위에는 많은 이들이 오를 수 없고, 저만한 고수들에게 성벽의 높이 따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저들이 성벽 위로 뛰어오른다면 그 위를 점거한 이들만으로 막아 낼 수 있겠습니까?”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구려.”

“그리고 우리만으로 이 넓은 성벽 위를 모두 막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수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이곳이 낫습니다.”

은하상단의 장원은 서안에서 가장 큰 편이다. 이 안에서 똘똘 뭉친다면 오히려 적을 상대하기 용이할 수 있다.

“혹 적들이 이곳으로 바로 오지 않고 양민들부터 공격할까 우려가 되어…….”

“그럼 가서 응전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을 겁니다. 은하상단이 달아났는지부터 제일 먼저 확인하려 들 테니까요.”

“음, 알겠습니다.”

위립산의 말에 문주들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위립산의 설명까지 듣고 나니 정말 그들만으로 저 사파들에게 대적해야 한다는 실감이 난 것이다.

“……빌어먹을 사파 놈들. 왜 하필 또 서안인가.”

“그늘이 없어졌으니 그런 것 아닌가? 빌어먹을! 종남이 봉문 하지 않았다면 얼씬도 하지 못할 놈들이.”

“종남이 봉문 했다 한들 화산만 있었다면…….”

마지막 말이 화영문이 아니라 종남의 속가인 의검문의 동방회에게서 나왔다는 게, 지금 서안에서 화산의 달라진 위상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다들 미묘한 불안함을 느낄 바로 그때였다.

“문주!”

밖에서 개방도가 사색이 된 얼굴로 박차고 들어왔다.

“성밖에 사파 놈들이 당도했습니다!”

위립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벌써?’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다. 그 말은 저들의 무위가 알려진 것 이상이라는 의미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이 더 많겠구나.’

마음을 단단히 다진 그는 동요하는 문주들을 향해 당부했다.

“저들이 노리는 곳은 다름 아닌 이 서안이요.”

“…….”

“그러니 당연히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겠소? 적들이 얼마나 강하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오. 중요한 것은 서안의 양민들이 우리를 믿고 있다는 사실이지.”

남자명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 그건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우린 이 서안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니까!”

외부에서 굴러들어 온 주제에 잘난 체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 말에 위립산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든든하구려.”

“흥.”

남자명이 단호한 얼굴로 외쳤다.

“저 악적 놈들에게 서안이 용담호혈이라는 것을 알려 줍시다!”

“예!”

“사파를 무찔러라!”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한 고함이지만, 분명 효과는 있었다. 사기를 끌어 올린 이들이 진형을 갖출 때, 황종의가 조용히 위립산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주님?”

그 말에 위립산이 조용히 웃었다.

“상단주님. 제가 아는 게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 정도는 압니다.”

“그게…….”

“은혜를 입었으면 갚을 줄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

“화산에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겨우 주어졌는데 기쁘면 기뻤지, 두려울 게 있겠습니까?”

미소 짓는 그를 본 황종의는 결국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서안 성문 앞에 거친 살기를 뿜어내는 일련의 무리가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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