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1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1)
“부, 분타주님! 큰일 났습니다! 또 싸움이 터졌습니다!”
“뭐? 또야?”
홍대광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 싸움 못 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처붙었나!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자꾸 싸움박질이야!”
분기탱천하는 그의 기세에 거지들이 움찔하더니 슬슬 눈치를 살핀다.
“이번에는 어딘데?”
“그…….”
“또 호북이냐? 아니면 안휘? 아니, 아니지! 하남? 하남은 소림 땡중 새끼들이 아직 눈 시퍼렇게 뜨고 있어서 설치지 못할 텐데.”
“그, 그게…….”
“빨리 말해! 바쁘니까!”
“서, 섬서입니다.”
“……어디?”
“섬서…….”
홍대광의 두 눈이 지진을 일으켰다.
“섬서?”
“……예.”
“섬서라고 했냐? 지금? 섬서?”
“그, 그렇습니다.”
홍대광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안 돼! 섬서는 안 돼!”
순간적으로 눈알을 좌우로 뒤룩뒤룩 굴린 홍대광이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거지! 싸움 거지 새끼들! 지금 손 남는 놈들이 누가 있냐?”
“……남는 거지가 어디 있습니까? 그나마 주먹질 좀 한다는 놈들은 죄다 호북이랑 안휘에 끌려갔는데.”
“없어?”
“지금은 딱히…….”
“없으면 끝나?”
홍대광이 더러운 탁자 위에 놓인 쪽박을 들어 앞의 거지들에게 냅다 집어 던졌다.
“히익!”
“없으면 만들어라도 와야지! 이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지금 섬서에 싸움이 났다잖아, 이 새끼들아! 누구 뒈지는 꼴 보고 싶어?”
격분한 홍대광의 눈치를 살피던 거지 중 하나가 살짝 불뚝대며 입을 뗐다.
“아니, 분타주님. 지금 다른 데는 다들 난리도 아닌데, 이게 뭐 그렇게 유별히 큰일이라고…….”
“뭐?”
홍대광의 눈이 입을 연 거지에게 확 꽂혔다.
그 눈빛에 움찔한 거지는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도 잃을 것 없는 거지답게 할 말은 하고 말았다.
“사실이 그렇잖습니까? 그냥 적당히 내버려 두시…….”
“이 새끼가!”
결국 탁자를 훌쩍 뛰어넘은 홍대광이 말을 한 거지의 가슴팍에 양발차기를 날렸다.
“아아아악!”
거지가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지자 홍대광의 입에서 소림도 무색하게 만들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이 새끼가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팔 하나 뒤로 뒤틀어서 구걸하기 쉽게 만들어 줄까? 엉?!”
“아이고! 참으십쇼, 분타주님!”
“이 새끼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놈입니다!”
“하남 촌놈(?)이라서 섬서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저, 씨!”
홍대광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이 새끼야! 섬서에 사고 하나 터지면 우린 다 뒈지는 거야. 뭐? 사파? 사패련? 그런 걸 무서워하는 새끼들은 아직 세상 쓴맛을 덜 본 새끼들이야! 대가리 깨져 봤냐, 인마?!”
난데없이 얻어맞은 거지, 봉오(奉五)는 영문을 모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홍대광이 저렇게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다른 거지들 역시 딱히 반박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그가 봉오를 더 두들겨 패지 못하도록 말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게 뭔 일이지?’
개방이 왜 개방인가?
쪽박이 깨지고 매타작을 당해도 바른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가진 것 없는 거지들이 모여 있기에 개방이 아닌가?
상관이고 나발이고 틀린 건 곧 죽어도 틀렸다고 하는 놈들이 바로 개방 놈들이다. 그런데도 반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거지들도 지금 홍대광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니, 섬서가 뭐?’
섬서에 대체 무슨 특별한 일이 있다고.
“거지새끼들 있는 대로 다 동원해!”
“얼마 전 호북에서 벌어진 소집령 때문에 주먹질 좀 하는 거지들은 모조리 다 끌려갔다니까요! 남은 무력대가 없습니다.”
“그럼 니들은 뭔데, 이 거지새끼들아!”
홍대광이 눈을 부라렸다.
“아, 아니, 저희는…….”
“저희가 없으면 정보 취합은 누가 합니까? 저희가 가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요?”
홍대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지들아.”
“예?”
“잘 생각해 봐라. 그 새끼가 산문 걸어 잠근 지 지금 얼마쯤 됐냐?”
“한…… 천 일쯤 됐죠?”
“그럼 저 문이 곧 열리겠냐? 안 열리겠냐?”
“……열리겠죠.”
“그럼.”
홍대광의 눈이 번뜩였다.
“그 새끼가 산문 열고 나와서 섬서가 개판 되어 있는 걸 보면 제일 먼저 어디로 향할 것 같냐?”
“……종남? 아악!”
대답한 거지를 가차 없이 걷어차 버린 홍대광이 악을 썼다.
“종남은 뭔 얼어 죽을 종남이야, 이 새끼야! 봉문한 지 오 년 다 되어 가는 새끼들을 찾아가서 뭐 하게! 여기! 그 새끼는 분명히 여기로 튀어온다고 이 새끼야!”
“히익!”
“아, 안 돼……!”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순간 거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오로지 봉오 하나만이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여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저…… 지금 나누시는 대화가 통 이해가 안 가는데……. 대체 누가 온다는 겁니까?”
“악마.”
“마귀.”
“짐승.”
“……예?”
옆에 서 있던 거지가 봉오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스산하게 속삭였다.
“야. 거지새끼야.”
“예?”
“네가 섬서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해를 못 하는 모양인데. 섬서에서 그나마 밥이라도 빌어먹고 살고 싶으면 하나는 확실하게 머리에 박아 넣어 둬. 알았어?”
“……뭐를요?”
“화산에는 마귀가 산다.”
“…….”
“잘못 걸리면 뒈지도록 처맞고, 또 처맞고, 다시 처맞은 다음에 속곳 속에 숨겨 놓은 비상금까지 모조리 털리고, 모자라면 구걸해서 상납까지 해야 한다.”
“그건 기분 좋을 때 이야기지! 기분 나쁠 때 걸리면 진짜……. 헉! 아이고, 종팔아! 정신 차려라!”
“저 새끼 누가 찬물 좀 먹여라. 누가 종팔이 앞에서 청명 도장 이야기했냐!”
얼굴이 파랗게 질리다가 급기야 거품을 물고 쓰러진 거지를 다른 거지들이 질질 끌고 나갔다.
“여하튼 백날 들어 봐야 소용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어. 어차피 너도 곧 알게 될 테니까.”
초조해하던 홍대광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빌어먹을 섬서까지.’
호북과 안휘, 그리고 하남에서야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섬서에서까지 일이 터지기 시작한다? 이건 곧 강북 전체가 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거란 사실을 의미한다.
“망할 구파 새끼들!”
“분타주. 이러다가 거지들 다 죽습니다. 구파에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면, 뭐?”
“예?”
“이 새끼야, 구파일방이라도 다 같은 곳인 줄 아냐? 구파에서 강북에 있는 문파가 몇이나 되냐? 해남파는 저 강남 너머의 섬에 박혀 있지! 점창은 운남! 곤륜은 청해! 청성이랑 아미는 사천에 있다, 사천에!”
“…….”
“공동도 저 북해 넘어가는 길목에 박혀 있는데! 호북에서 일 터졌으니까 그 양반들보고 처리하러 오라고 할까?”
“……그건 어렵죠.”
“강북 노른자 땅은 소림이랑 무당, 종남이 다 처먹고 있다고! 남은 데는 남궁세가가 쪽쪽 빨아먹고 있고. 그런데 그중에 지금 세 곳이 봉문 한 상황 아니냐! 그런데 말해서 뭘 어쩔 건데? 북경에 있는 하북팽가 새끼들한테 구경 오라고 할까?”
“지, 진정하십시오, 분타주.”
“내가 이러니까 진작에 구파 털고 천우맹에 가입하자고 했잖아!”
“그 천우맹이라고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오.”
홍대광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그나마 예전이었다면 중원 외곽에 있는 구파일방에게 어떻게든 구원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 문제를 일으킨 문파에게 직접 해결하라고 해라.
물론 답변이야 구구절절한 문장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잔가지를 쳐내면 결국은 이 말이었다. 장강으로 쳐들어갔다가 망신당하고 돌아온 놈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단 소리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
다른 구파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상황인데, 미쳤다고 무당이나 남궁세가를 도와주기 위해서 호북과 안휘까지 달려와서 대신 싸움박질해 주겠는가? 누구 좋으라고?
장강참변은 구파일방의 결속에도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 냈다. 이 균열을 다시 봉합하기 위해선 대체 몇 해가 필요할지 아득할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황이 끔찍해질 수가 있지?’
지켜보고 있으면 황당함을 넘어 공포가 밀려들 정도다.
구파일방의 관계에는 균열이 갔고, 오대세가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중원 곳곳에서 소요와 환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억지로 틀어막고는 있지만, 조금만 더 상황이 심각해지면 둑이 무너진 것처럼 단번에 혼란이 번지게 될 것이다.
“분타주.”
“왜?”
“진짜 괜찮을까요?”
“뭐가?”
“중원 말입니다.”
뜬금없는 질문에 홍대광이 눈을 가늘게 떴다.
“비싼 밥 처먹고 갑자기 뭔 개소리냐?”
“아, 아니.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저 사패련을 그리 대단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저놈들이 대단한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함께 나서면 사패련이 상대나 되겠습니까?”
“…….”
“그런데 상황이 그게 아니잖습니까. 사패련 놈들은 강남에 칩거해서 하루하루 힘을 키우는데, 구파일방은…….”
뒤의 말은 안 들어도 뻔하다. 단합해도 모자랄 판에 쩌적쩌적 분열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감정의 골이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 홍대광의 머리에도 이제는 구파일방이 누군가의 지시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양새가 도통 그려지질 않았다.
“이러다가 갑자기 사패련이 강북으로 밀고 올라오기라도 하면…….”
“…….”
끔찍한 일이 터질 것이다.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저 사패련은 강남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까지 이상해질 수가 있습니까?”
“……안 움직였는데 이렇게 된 게 아니라, 안 움직여서 이렇게 된 거다.”
“예?”
홍대광은 쓰게 웃었다.
만일 강남불침의 조약 이후 사패련이 재빠르게 강북으로 밀고 들어와 전쟁을 걸었다면 구파는 어쩔 수 없이 뭉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급한 불을 끄고 봐야 하니까.
하지만 장일소가 움직이지 않고 강남에 칩거해 버린 덕에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그 시간적 여유는 외려 구파 사이에 생긴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설마 이걸 다 노린 건 아니겠지?”
“예?”
“아니, 아니다.”
홍대광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장일소가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움직인 거라면 중원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이 말도 안 되는 가정이 사실이라면…….
‘장일소의 머리에는 이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이용할 다음 계책이 반드시 있다는 소리겠지.’
생각이 털어 내지기라도 할 것처럼 홍대광은 고개를 빠르게 젓고 귀를 후볐다.
이건 너무 나간 생각이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분타주님?”
“끄응.”
얼굴을 벅벅 문지른 홍대광이 말했다.
“한번 터진 일이면 앞으로도 터진다는 소리겠지. 임시 땜빵에도 한계가 있을 테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와줄 만한……. 아! 화영문! 그래, 화영문에 연락해 봐라! 하북이면 몰라도 섬서의 양민들을 지키는 일이면 반드시 도와줄 거다!”
“예! 빠르게 연통을 보내 보겠습니다!”
“서둘러! 이 거지새끼들아!”
“예!”
거지들이 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듯 뛰어나가고 나자, 홍대광은 비척비척 걸어 다 부서진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썩을.”
저 높이, 구름에 가려진 화산의 정상이 보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망할 화산신룡 같으니.”
그 인간이 사고 치고 다니는 걸 수습할 때가 지금보다 백배는 더 편했다. 적어도 그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
모르더라도 저 망할 놈이 멱살을 움켜잡고 질질 끌어갔었고.
지금 저놈이 있었다면 이리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너무 오래 걸리잖아. 빌어먹을 놈이!”
예상한 이 년의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 버렸다. 그럼에도 닫힌 화산의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휴우.”
홍대광은 깊은 한숨과 함께 시선을 먼 남쪽으로 돌렸다.
‘제발…….’
굳게 닫힌 산문이 열리기 전에는 제발 큰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