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화. 화산은 강해질 테니까. (5)
매화도는 수많은 상인이 몰려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처음 화산이 매화도를 만들 때도 그 규모가 작지 않았지만, 해가 갈수록 더욱더 커지더니 이제는 웬만한 상단은 그 규모로 따지면 가져다 댈 수도 없을 만큼이 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매화도는 강남과 강북의 물류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정파와 사파가 전쟁을 벌이든, 선을 긋고 으르렁대든,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고, 입어야 밖으로 나설 수 있다.
강남에 물건을 대려 하는 강북의 상인이나, 강북에서 물건을 구매하려는 강남의 상인이나 하나같이 매화도를 최우선으로 이용하다 보니 이제는 배 열 척으로도 버거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뭐 하러 산적질이나 하고 살았을까?”
“……이게 평생 가겠습니까?”
“일장로는 너무 부정적인 게 문제야.”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요. 요즘 녹림의 위엄이 말이 아닙니다.”
“위엄 찾다 굶어 죽지 말고 맡은 일이나 잘해.”
“끄응.”
“준비하던 일은?”
“……거의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거 정말 해도 되는 일입니까? 저희는 녹림입니다. 그런데 녹림이 상단을 호위한다니…….”
“돈 되는 일이면 못 할 것도 없지. 애초에 우리도 그 명분으로 통행료를 받은 것 아닌가?”
“그래도 근본이라는 게…….”
“변해야 살아남지.”
임소병이 히죽 웃었다.
사파 놈들이 점점 더 날뛰면서 이제는 매화도를 건너 상행을 하는 이들마저 피해를 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큰 상단이야 호위를 고용할 수 있지만, 작은 상단은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매화도를 건너는 상단들을 모아 배 단위로 상행을 조직하고, 그 상행을 녹림에서 호위해 주는 상품을 적용하려 준비 중이다.
“이것만 되면 돈이 또 들어오겠지. 요즘 산적질도 못 해서 놀고먹는 놈들이 늘어났는데, 노는 놈들 부려서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있나?”
“……불만이 커질 텐데요?”
“본보기로 두엇 정도 처리하면 없어질 거야.”
그 평온한 말을 들으며 일장로는 마른침을 삼켰다.
겉으로야 저리 허허 웃어 대지만, 이럴 때 보면 이 사람이 근본은 확실히 녹림왕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그럼 매화도는 더 탄탄대로에 오르겠지.”
“사패련이 발호할 때까지의 한시적인 이득일 뿐입니다.”
“그럼 뭐 어때? 그 전에 최대한 뽑아 먹으면 그만이지. 지금 하루에 벌리는 돈이 얼만 줄 알아?”
“그래서 불만이라는 거지요. 일은 저희가 다 하는데, 그 돈에서 일부만 먹는 것 아닙니까?”
“쯧쯧. 어리석기는. 이걸 온전히 우리가 했으면 매화도에 상인들이 얼씬거렸을 것 같나? 화산과 천우맹의 이름이 있으니 상인들이 믿고 오는 걸세. 아니, 그 전에 우리끼리 매화도를 먹었으면 수로채와 만인방 놈들부터 가만있지 않았겠지.”
일장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압니다. 아는데…… 그래도 저들은 너무 쉽게 돈을 벌지 않습니까. 저희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먹어도…….”
“일장로.”
순간 임소병의 목소리가 스산해졌다. 일장로가 몸을 바짝 세웠다.
“죄, 죄송합니다. 녹림왕이시여.”
“사람이 왜 죽는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지. 오늘 강바닥에 가라앉는 놈처럼 말이야.”
“…….”
“나는 일장로가 그런 멍청이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일장로도 산적이니 욕심이야 좀 나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손대서는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야.”
일장로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명심하겠습니다.”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좋아, 적당히.”
임소병이 평소의 생글거리는 얼굴로 돌아갔다.
“다만…….”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벽에 나 있는 창 너머로 도도히 흐르는 강과 매화도의 모습이 보인다.
“……일장로의 말대로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매화도에 자라난 매화나무가 유독 눈에 걸렸다.
“매화가 있어 매화도가 아니라, 매화 같은 사람들이 있어 매화도이거늘…….”
그의 두 눈에 잠시 옅은 그리움이 스쳤다. 나지막이 한숨을 쉰 그가 말했다.
“아무튼, 바삐 움직이게. 도장이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매화도 꼴이 개판이면 강 한가운데 수장되는 건 다름 아닌 나와 일장로가 될 테니까.”
“……진짜 끔찍한 말씀이시군요.”
“예전에도 감당이 안 됐는데, 지금은…….”
임소병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끔찍하지. 으으, 끔찍해.”
하지만 일장로는 엄살을 피우는 입소병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솔직히 우리는 사정이 좋은 편이지.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는 양반들에 비하면 말이야.”
“그건 확실히 그렇지요.”
“그러니 엄살 피우지 말자고. 우리가 우는소리 하는 걸 그 양반이 들으면 이마에 독침을 박아 버리려고 할 테니까.”
그런데 순간 일장로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그놈들 요즘 너무 건방집니다.”
“일장로.”
“제 기분만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의 불만이 치솟고 있습니다.”
“휴우.”
임소병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부채로 제 이마를 꾹꾹 눌렀다.
“최대한 자중하라고 해.”
“하지만…….”
“알아. 아니까 말하는 거야.”
“……예, 녹림왕이시여.”
일장로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래. 나가 봐.”
그가 밖으로 나간 후, 임소병은 굳은 얼굴로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슬슬 한계인가?’
겉으로 보기에야 더없이 좋은 일만 가득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임소병은 내부의 균열을 누구보다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화산의 부재가 너무 크다.’
임소병과 당군악이 최선을 다해 틀어막고는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천우맹은 결국 내부에서부터 붕괴하기 시작할 것이다.
애초에 화산이 아니었다면 녹림이 당가와 함께 서 있는 상황이 벌어질 리도 없으니까.
“거 너무 느리시네. 쯧.”
앙상한 매화나무를 바라보던 임소병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조금 서두르십시오, 도장. 저도 더는 한계입니다.”
머나먼 섬서까지 닿기에는 너무 작은 목소리였다.
* * *
“보고드립니다.”
상석에 앉은 당군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그가 보고받는 곳은 당연히 사천당가에 위치한 가주의 집무실이어야 하겠지만, 지금 그가 자리한 곳은 사천당가가 아닌 한 장원의 커다란 방이었다.
상석에 앉은 당군악이 굳은 얼굴로 앞을 응시했다.
그를 아는 이들이라면 표정만 보아도 그가 조금 더 진중해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육안(六安)에서 사파와 정파의 충돌이 또 일어났습니다.”
보고를 받은 당군악의 미간이 슬쩍 일그러졌다.
“또인가…….”
“예. 아무래도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번질 것 같습니다.”
당군악은 손가락으로 천천히 탁자를 두드렸다.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그 소음이 당군악의 불편한 심경을 대변했다.
슬쩍 그의 눈치를 본 당패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육안은 안휘성이니만큼, 원래대로라면 남궁세가가 중재에 나서야 하지만…….”
그 남궁세가는 여전히 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이다.
딱히 봉문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봉문과 별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남궁세가는 외부에서 방문하는 이를 딱히 거부하지는 않는다는 점만이 달랐다. 대외활동은 일절 하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예전이었다면 감히 남궁세가가 자리한 안휘, 그것도 합비 근처에서 사파가 정파와 충돌을 일으키는 일은 벌어질 리 없었을 터.
그러나 지금 세상은 과거와 너무도 달라졌다.
“없는 이들을 찾는다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겠지.”
“그렇습니다.”
“사람을 보내 중재해라.”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말로 해서 들어 먹을 상황이 아닌 듯합니다.”
“그럼 가솔들을 보내 무력으로라도 진압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당패의 입에서 다시 한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안휘는 분명 남궁세가의 영역이다. 그런 곳에 무력대를 보내 진압을 시도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질 상황이 아니다.
‘너무 급박하게 흘러가는군.’
세상이 너무도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확연히 바뀐 것은, 과거에는 대부분 강남에 자리했던 사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강북으로 몰려들었단 점이다.
강북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은 사파들은 기존의 정파는 물론, 정파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던 기존의 사파들과도 충돌을 일으켰다.
남의 구역에서 자리를 잡으려 한다면, 최소한 기존의 질서를 존중해 자중하려는 모양새는 보여 주어야겠지만, 그게 된다면 그들이 사파겠는가?
“……진즉에 막았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당군악이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사파들이 강북으로 건너올 때, 이런 일들이 벌어지리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앞을 막지 않았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들 역시 살고자 하는 것을 어찌 막겠느냐? 사파라 해도 사람인 것을.”
“……그렇긴 합니다만…….”
만일 그들이 강북을 침탈하러 온 거였다면 당연히 막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주한 사파들은 강북을 치기 위해 넘어온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강을 건넌 이들이다.
강남을 휩쓴 사패련은 오직 굴종만을 강요했다.
무릎을 꿇고 사패련의 휘하에 들어오거나, 그게 아니면 멸망하거나.
대부분의 사파는 무릎을 꿇고 굴종하기를 택했고, 소수의 사파는 저항하다가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대신 강북으로 몸을 피한 것이다.
“그 사정이야 알겠으나…… 그럼 적어도 조용히 지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당군악은 이번에도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무인이라는 족속들은 혼자서는 쌀 한 톨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들이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그 영역 안에서 흘러나오는 돈을 거머쥐지 못하면 그저 칼 든 거지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강북으로 넘어온 사파들도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든 영역을 확보하려 들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양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하겠습니다.”
“그 외에는?”
당패가 당군악의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가주님. 지난 한 달간 저희가 개입한 크고 작은 소요만 해도 일곱 회가 넘습니다.”
“그랬지.”
“과거에는 연에 두어 회밖에 되지 않았던 일입니다.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건 너무 버겁습니다.”
“알고 있다.”
사파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자리를 잡은 곳은 바로 호북과 안휘.
그 두 곳은 과거 사파들이 가장 기를 펴지 못하던 곳이다. 천하의 무당과 남궁세가가 관리했던 곳이니까.
하지만 두 문파가 문을 걸어 잠근 지금, 그곳은 역설적이게도 사파가 자리하기 가장 좋은 자리가 되어 버렸다. 먹을 것은 넘쳐나는데 땅에 주인이 없으니까.
속가들과 중소 문파들만으로는 이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당가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중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대체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맹의 명성을 위한 일이다.”
“알고 있습니다, 가주님. 하지만 가문 내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맹이라고는 하지만, 야수궁과 빙궁은 중원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 실질적인 일은 모두 저희가 처리하고 있잖습니까?”
“…….”
“일은 화산이 벌였는데 그 뒷감당은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녹림도들이 도와주는 형국인데……. 이렇게 실속 없는 일을 떠맡을 거라면 차라리 장강에 오지 않았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습니다.”
말을 하던 당패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사천을 구경한 지가 대체 몇 년째입니까. 왜 저희만…….”
“그만하거라.”
“가주님.”
“이득만 좇을 거라면 이곳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도 저들과 같은 모리배가 되고 싶은 것이더냐?”
“……아닙니다.”
“그리고.”
당군악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가장 힘든 이는 우리가 아니다. 바로 화산이지.”
“…….”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가주님.”
“그래. 나가 보거라.”
“예.”
당패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당군악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쉽지 않구나.’
세상은 점점 더 그들을 조여 오고 있었다.
강남일통을 마무리한 사패련은 내부 정비에 들어갔고, 그 정비만 끝나면 언제든 강북으로 밀고 들어올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기에 강북의 혼란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앞둔 이들의 심정이야 다들 비슷할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강북 안정에 나서야 할 거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봉문을 해 버리니 그 공백이 너무도 큰 것이다.
그리고 그 공백을 감당하는 건 당가조차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예전이었으면 간단하게 해결했을 일조차 지금은 큰 문제가 되어 버린다. 당가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고.
당군악은 제 눈두덩을 가볍게 문질렀다.
‘천 일이나 지났거늘.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건가?’
당군악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스쳤다. 새삼 제 그릇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의 불만도 완벽히 다스리지 못하는 그가 천우맹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깊이 한숨을 내쉰 그는 먼 북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도장.’
당군악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조금 더 서둘러 주시게. 조금만.”
이제 곧 매화 향이 그득할 그곳에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