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9화. 화산은 강해질 테니까. (4)
“예약하는 줄을 서셨다고요?”
“예. 여, 여기라고 하시기에. 그런데 저분이…….”
“잠시만요.”
사내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마철을 진정시키더니 뭔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정말로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처럼 고함을 버럭 내질렀다.
“목오(木五)! 목오 이 새끼 어디에 있느냐!”
“아, 아이고, 대형! 지금 갑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쪽에서 웬 사내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저건 또 뭐지?’
얼굴에 커다랗게 칼자국이 나 있는, 꿈에 볼까 무서운 인상의 사내가 기겁을 하며 달려와 커다란 장정 앞에 섰다.
“자, 잠시 측간을…….”
콰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정의 주먹이 목오의 머리를 내리쳤다. 단박에 땅에 처박힌 목오가 제 머리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끄아아아악!”
‘와…….’
방금 얻어맞을 때 땅이 잠깐 울렸던 것 같은데?
“일어나라, 이 쓸모없는 놈!”
“예! 예, 대형!”
칼자국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래 다소 말상으로 길었던 얼굴이 조금 짧아진 느낌이 들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겠고…….
“안내하라고 했더니 그새 자리를 비워?”
“진짜 측간에 잠시 다녀온 겁니다! 정말입니다, 대형!”
“한 번만 소란이 더 일면 오늘 아주 네 껍데기를 벗겨서 술안주로 쓸 것이다! 알았느냐?”
“예! 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장정은 위협하는 듯 눈을 부라리더니 마철에게로 획 시선을 돌렸다.
‘히이이익!’
그 부리부리한 눈과 마주친 순간,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전신에서 땀이 삐질삐질 솟았다. 어쨌든 소란을 피운 것은 사실이니 분명 큰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장정의 행동은 이번에도 마철의 예상을 벗어났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
“저희가 미리 안내해 드렸어야 하는 건데, 저 쓸모없는 놈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바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장정이 그 커다란 덩치를 구겨 가며 굽실대기 시작한 것이다. 마철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다만.”
“예?”
그때, 사내가 굽혔던 허리를 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매화도에서는 싸우셔도 안 되고, 소란을 피우셔도 안 됩니다. 초행인 것 같으셔서 한 번 사정을 봐드리는 것이니 앞으로는 주의해 주십시오.”
“예? 아…… 예! 예! 당연한 일이지요! 예!”
소란 못 피우지.
저 근육을 보고 무슨 수로 소란을 피운다는 말인가? 머리통 한 번 내리쳐서 사람을 바닥에 냅다 꽂는 걸 봤는데.
“이곳은 상선할 이들이 줄을 서는 곳입니다. 상선 예약은 저 뒤쪽에 있는 전각에서 받고 있으니 그리로 가시면 됩니다.”
“예? 여, 여기가 아니라고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럼, 여기 있는 분들이 전부 오늘 짐을 싣는…….”
마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에 있는 상인들만 해도 눈이 돌아갈 만큼 많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라니!
‘그, 그렇지.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하지.’
그러니 저 뒤에 객잔이 있고, 창고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예. 저쪽으로 가서 예약하시면 됩니다. 그럼 상선할 수 있는 날짜를 정해 드릴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지옥의 옥졸 같은 외모나 덩치와는 다르게, 그 목소리는 사근사근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예, 그럼.”
사내가 몸을 획 돌리더니 소리쳤다.
“구경하지 말고 짐을 실어라! 이 밥버러지들아! 오늘 상선이 늦어지면 밤에 밥 처먹을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알겠느냐!”
“예!”
“알았으면 얼른 날라!”
당황한 마철이 그 모습을 가만 보고 있는데, 주변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인부장께서 기분이 좋으시군. 이걸 봐주시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오늘따라 표정도 굉장히 좋지 않습니까?”
“허허. 나는 부처라도 본 줄 알았네.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보지.”
저게? 표정이 좋아?
이 사람들 다들 눈이 삐었나?
“워, 원래 이런 겁니까?”
황당한 건 마철과 싸우던 상인도 마찬가지였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뭐가 말이오.”
“아, 아니, 저분이…….”
“아아, 인부장? 원래 그렇소.”
“…….”
“겉으로 보기에야 흉신악살 같지만, 상인들에게는 더없이 친절하시지. 사실 여기 매화도 사람들이 다 그렇소이다.”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모른다더니.”
“그게 아니외다.”
“예?”
상인들이 고소를 머금었다.
“매화도 초기에 상인들에게 막 대하던 이들이 몇 번 도주에게 정말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얻어맞아서 그렇소.”
“으. 아직도 기억나는군. 나는 그때 옆에서 봤는데, 사람이 그렇게까지 두들겨 맞을 수 있는지 난생처음 알았소. 뭐라더라? ‘이게 도장님에게 배운 사람 패는 법이다!’였나?”
“하하하. 도주님은 정말 농담도 잘하시는군. 도사에게 사람 패는 법을 배웠다니. 하하하핫.”
아니, 이 양반들아. 이게 웃을 일이오?
“사, 사람을 그렇게 패도 됩니까?”
“안 될 건 뭐 있나. 맞은 사람들은 그래도 운 좋은 사람들인데.”
“예?”
상인이 히죽 웃으며 저 뒤에 보이는 산을 향해 턱짓했다.
“저기 저 산 보이는가?”
“……예. 저도 눈이 있으니.”
“몇몇 놈들은 상인들 물건에 손을 대다 저 산에 묻혔다더군.”
마철의 두 눈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무, 묻혀요?”
“그렇다니까. 내가 그때 똑똑히 들었네. 도주께서 환하게 웃으며 ‘이 새끼들 숨만 붙어 있을 정도로 팬 다음에 산 채로 묻어 버려.’라고 하시더구먼.”
“…….”
“그러고는 상인들에게 백배사죄하시면서 물건 값을 열 배로 보상해 주셨었지.”
“그냥 물건만 돌려주셔도 되는데, 참 대인배시라니까.”
“아암. 도주께서는 군자시지. 군자고말고!”
이 양반들이 진짜 다들 미쳤나?
지금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나? 사람을 데려다 묻었는데 군자라고? 군자아아?
“그…… 도주라는 분도 굉장히 무서운 분인가 봅니다?”
“이 사람이 뭘 들었는가? 군자시라니까? 천생 서생이시네!”
마철은 더 이상 이들의 말을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사실 그놈이 군자든, 사람 파묻는 흑도 무리든 그와는 관계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그런 그의 생각을 깔끔하게 부숴 놓았다.
“뭐 궁금하면 그 눈으로 보면 될 것 아닌가?”
“예?”
“자네 지금 예약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그렇지요.”
“도주께서 예약을 받으시니까, 가서 보면 될 걸세.”
“…….”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말조심은 하는 게 좋을 걸세. 도주께서는 군자시지만, 보필하는 양반들은 군자가 아니거든.”
“낄낄. 실수하면 목이 슥삭!”
“시원해지겠지. 아암. 하하하하핫.”
마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 매화도는 점소이고, 인부고, 상인이고 제정신인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 * *
“……크다.”
“진짜 크다…….”
“장강의 돈은 매화도가 다 쓸어 담는다더니.”
눈앞에 있는 전각의 위용에, 모두의 입이 절로 쩌억 벌어졌다.
담벼락의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도 중원 이곳저곳을 오가며 수많은 지역을 눈에 담았건만, 이만한 크기의 전각을 본 기억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중원상단 본단도 이보다는 작았던 것 같은데.”
“그, 그렇지?”
“……여기도 사람이 넘쳐나네요.”
전각 대문으로 드나드는 이들이 바글바글했다. 하나 차이가 있다면 아까 부두와는 달리 이곳에는 짐을 가져온 이가 없다는 것.
“숙소 잡고 수레 두고 오는 게 맞았네.”
“그냥 시키는 대로 할걸.”
헛수고하게 된 상단원들이 원망 어린 시선을 보냈다. 마철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까는 입도 안 뗀 놈들이…….’
꼭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자기 탓을 한다. 상인이란 것들은 하여간!
“일단 들어가 보세.”
“예.”
대문을 통과해 들어서니 커다란 대청이 나왔다. 앞에 선 이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자 꽤 생경한 광경이 펼쳐졌다.
웬만큼 잘사는 집의 열 배는 될 듯 커다란 실내에, 책상들이 줄을 지어 놓여 있고, 그 앞에 앉은 이들이 연신 무언가를 쉬지 않고 기입하며 작성해 대고 있었다.
“여기 있던 전표 어디 갔습니까?”
“장부! 어제자 하역 장부! 내가 가져다놓은 거 누가 가져갔어!”
“오늘 수금 날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악, 미치겠네! 숫자가 안 맞는다고! 누가 틀렸어!”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저게 다 장부라고?’
대체 얼마나 많은 물건이 오가면 저 많은 이들이 모두 장부 쓰는 일에 동원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중원 최대의 상단들도 이리 많은 인원을 장부 작업에 쓰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인원이 이토록 눈코 뜰 새 없이 일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쪽입니다. 이리로 줄을 서십시오.”
그곳을 지나쳐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이 보였고, 그 끝에는 커다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오…….”
십장생이 그려진 커다란 병풍이 책상 뒤에 펼쳐져 있고, 책상과 병풍 사이에 앉은 한 사내가 부드러운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뭔가 굉장한 느낌입니다.”
“그러게?”
새하얀 문사복과 머리에 쓴 커다란 관. 눈이 조금 가늘어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입에 걸린 부드러운 미소 덕분에 그마저도 온화한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손에 든 깃털 부채까지…….
“……제갈량의 현신 같습니다.”
“그, 그렇구나. 딱 그 느낌이로구나.”
앞쪽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까지 합쳐 보니 정말 그런 느낌이 났다. 과거 촉나라의 승상부가 딱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은…….
“그런데 매화도의 도주님은 산적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
“그럼 저분들도 다 산적인데?”
어?
마철이 눈을 끔뻑이며 다시 주위를 살폈다.
‘다시 보니…….’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다들 깨끗한 문사복을 입고 열심히 장부를 작성하고 있지만, 얼굴을 가만 살펴보면 문사라기보다는 어디 뒷골목에서나 보일 파락호에 가깝다.
‘아니……. 다들 뭐 어디 칼 밭에 구르다 오기라도 했나?’
커다란 소매 사이로 슬쩍슬쩍 드러나는 손목이나, 옷깃 사이로 보이는 목, 심지어는 얼굴에 대놓고 그어진 칼자국이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여긴 대체 뭐 하는 데지?’
왜 저런 양반들이 장부를 쓰고 있는가? 왜? 뒷골목에서 영업(?)은 안 하고.
“이쪽입니다.”
당황하여 연신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금세 그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예!”
안내받은 대로 앞쪽으로 가니 제갈량 같은 복색의 도주가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다복상행에서 오신 분들이시라 들었습니다.”
“예, 예. 그렇습니다. 이곳이 처음이라 상선 예약을 하려고…….”
“잘 오셨습니다. 제가 매화도의 도주, 임소병입니다.”
“아……. 예! 다복상행의 행수를 맡은 마철입니다.”
“처음 오신 분들이라 제가 따로 모셨습니다. 매화도에 방문하신 것을 정말 환영합니다. 서로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아무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려야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임소병이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 티 한 점 없이 맑은 웃음에서는 도무지 음습하거나 위험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오해 아닐까?’
이 사람이 사람을 묻었다고?
토끼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서생이 어찌 그런 흉악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분명 뭔가 오해가…….’
그때였다.
전각 안으로 한 사람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오더니, 임소병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웃는 낯 그대로 그 말을 듣고 있던 임소병이 입꼬리를 더욱 끌어 올렸다.
“그래?”
“예, 도주님.”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밤까지 적당히 주물러 주다가 해가 지면 강 가운데다 던져서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려라.”
“그놈이 수공이 능수능란하니 그래도 빠져나오지 않을까요?”
“쯧쯧. 그런 것까지 내가 일일이 말해 주어야 하느냐?”
순간 임소병의 얼굴이 스산해졌다.
“팔다리 힘줄을 끊고, 손발을 쇠줄로 묶어 버려. 혹시 모르니 단전도 부숴 버리고. 그리고 발에 추를 달아서 다신 떠오르지 못하게 하고. 아, 참. 힘줄 끊은 상처에다 소금도 뿌려 놔라. 곱게 기다리다 가기에는 지은 죄가 크니까.”
“알겠습니다.”
“깔끔하게 처리해, 깔끔하게.”
“예! 도주님.”
“여하튼 태생이 도적놈들이라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일을 벌인단 말이야. 함부로 물건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알려 줘라. 모두 똑똑히 지켜보라 하고.”
“그리하겠습니다.”
손을 휘휘 저어 사내를 내보낸 임소병이 혀를 차더니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철을 바라보았다.
“아이고, 실례했습니다. 저희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었지요?”
“…….”
“행수님?”
“……살려 주십쇼.”
“예?”
아무래도……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