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858화 (855/1,567)

858화. 화산은 강해질 테니까. (3)

시간은 공평하다.

지나는 하루를 뼈저리게 아쉬워하는 노인에게도, 기나긴 하루의 지루함을 하품과 함께 견뎌 내는 장년인에게도, 하루가 짧도록 마을을 뛰어다니는 아이에게도 시간은 그저 공평하게 흐를 뿐이다.

그리고 그건 장강을 오가는 상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

마철이 놀란 눈으로 눈앞의 광경을 보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왜 그러십니까?”

“여, 여기에 왜 도시가 있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철은 어안이 벙벙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르는 상단원들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내가 구강 출신 아닌가?”

“그렇지요. 간만에 고향에 들른다고 신나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희 상단에 적을 두시기 전에는 구강에서 일도 하셨다고.”

“그렇지. 내가 구강을 떠난 지 이제 겨우 다섯 해가 지났는데…… 그때까지는 저기가 허허벌판이었단 말일세.”

“예? 설마요…….”

“이 사람아! 내가 비싼 밥 먹고 실없는 소리를 하겠는가? 정말이라니까!”

“그렇다면야…….”

상단원이 슬쩍 마철의 눈치를 살피다 앞쪽을 바라본다.

대답이야 그렇게 했지만, 내심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저기 보이는 것은 분명 커다란 도시다. 그런데 저런 도시가 불과 다섯 해 만에 생겼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아니, 그가 듣기로는 이곳에 상인들이 왕성히 오가기 시작한 것은 아직 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불과 삼 년 만에 저만한 도시가 생겼다는 건데,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그 말은 믿지 않을 것이다.

“일단 가 보세나.”

“예, 행수님.”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상관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야 하는 것이 상단원인 것을.

“허허. 거참.”

마철은 아무리 봐도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눈앞에 보이는 도시를 향해 상행을 이끌고 나아갔다.

“…….”

도시 외곽에 접어든 마철이 이번엔 입을 쩍 벌렸다.

막상 도시 안으로 들어서니, 멀리서 보던 것과는 또 달랐다. 커다란 대로를 사이에 두고 커다란 건물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어서 눈길을 잡아끌었다.

‘이건 구강보다 더 번화한 것 같지 않은가?’

건물들은 당연히 모두 번쩍번쩍한 새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허허벌판이었으니까.

그를 놀라게 하는 것은 지어진 건물이 하나같이 커다랗다는 사실과, 그 사이를 바삐 오가는 이들의 수가 되레 구강의 거리를 오가는 이들보다 더 많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여기 술 좀 빨리 주시오! 먼 길 왔더니 목이 타 죽겠소!”

“네네! 지금 갑니다!”

“소면 멀었어?”

“아이고! 곧 나갑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전각 안에도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복잡하고 활기찬 도시는 마철이 느긋하게 감상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눈을 채 돌리기도 전에 어디선가 튀어나온 두 사람이 그의 좌우를 잡고 늘어졌다.

“아이고오, 상인님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십시오! 매화도에서 가장 좋은 객잔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허! 이놈이 또 사기를 치는구나! 어디 신풍객잔 따위가 매화도에서 가장 좋은 객잔을 자처하느냐! 우리 용화객잔이 있는데!”

“뭐, 이놈아? 지난주에 힘들다고 도망간 숙수는 잡아 오고 하는 말이냐? 상인님들, 저 헛소리는 듣지 마십시오! 저기 가시면 맛도 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드시게 될 겁니다! 음식은 저희 신풍객잔이 최고입니다!”

“이놈이 또 멋모르는 소리 하네! 우리 객잔이 무한 최고의 주루인 화평루의 숙수를 고용했다는 소문도 못 들었느냐! 화평루 출신 숙수가 하는 음식에 비하면 너희 신풍객잔의 음식은 개밥만도 못하지! 상인님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희 객잔에 지금 방이 딱 하나 남았습니다!”

“방이 하나면 이분들이 어떻게 다 주무시느냐, 이놈아!”

“어이쿠야! 내가 두 개인데 한 개라고 잘못 말했구나!”

정말이지 그 사이에 낀 마철은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고 호통을 칠까도 고민해 봤지만, 슬쩍 보니 저 앞에 가는 상단도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상행도 마찬가지다.

‘여기는 이게 일상인가?’

뭔 놈의 객잔이 대로변까지 나와서 호객을 한단 말인가?

“근데 이놈이?”

“오늘 진짜 한번 붙어 볼 테냐?”

호객하러 나온 점소이들이 금방이라도 드잡이할 듯 팔뚝을 걷어붙이자 마철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싸, 싸우지들 마시오. 우린 일단 부두부터 들러 볼 테니…….”

“엥? 오늘 가 봐야 나흘은 지나야 상선이 가능할 텐데요?”

“그, 그렇게나 오래 걸리오?”

“아이고, 행수님. 매화도가 처음이십니까?”

“그, 그렇습니다만.”

점소이가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실 수 있지요. 매화도에서는 사나흘 기다리는 건 일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상인 분들이 다들 뭐 하러 숙소를 잡고 쉬시겠습니까?”

“아…….”

“운이 좋으면 나흘이고, 운이 나쁘면 열흘도 갑니다.”

“여, 열흘이라니? 그렇게나 걸린단 말이오? 폭우가 내리거나 폭풍이 칠 때를 말하는 것이오?”

“아니지요. 아니지요. 매화도의 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상선을 멈추는 법이 없습죠. 그렇게 실어 대도 사람이 많이 몰릴 때는 열흘도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니 숙소부터 먼저 잡으시는 게 낫습니다.”

“……이, 일단 내 눈으로 확인부터 해 보겠소.”

“거, 의미 없다니까 그러시네요.”

“저, 저 싸가지없는 놈 같으니. 아이고, 상인님. 당연히 확인을 해 보셔야지요. 대신에 돌아오시면 다른 데서 사기당하지……. 아니, 손해 보지 마시고 저희 용화객잔으로 바로 오시면 됩니다.”

마철이 혼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하나 물어도 되겠소?”

“예? 얼마든지 물으십시오.”

“여기는 강가이지 않소?”

“그렇지요?”

“그…… 강가에 이렇게나 번화한 곳이 있는데…… 그…… 수로채가 약탈을 오지는 않소?”

“예? 수로채요?”

점소이들은 언제 서로 으르렁거렸냐는 듯 마주 보더니 동시에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아하하하하핫! 수로채요?”

“하핫! 이야, 이런 말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보네.”

마철은 영문도 모르고 두 눈만 끔뻑거렸다.

“내가 뭐…… 이상한 소리라도 한 거요?”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 본 말이라 그렇지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매화도가 생긴 이후로 수적들이 근처에 접근한 적은 없으니까요.”

“때때로 강을 지나쳐 갈 때는 있지만, 공격해 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들도 눈치가 있는데 천하의 천우맹이 지키는 여기를 무슨 배짱으로 쳐들어오겠습니까!”

“여기가 장강에서 제일 안전한 곳입니다. 그러니 이 많은 상인 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매화도를 찾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그리 듣고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들으며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 눈으로 보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이, 일단 알겠소이다. 부두부터 들르고.”

“예이. 살펴 다녀오십시오.”

“용화객잔입니다! 용화객잔!”

두 점소이들을 겨우 물리고 나서도 새로 들러붙은 몇몇 점소이들에게 더 시달려야 했고, 그들을 모조리 물린 뒤에야 겨우 길을 재촉할 수 있었다.

“허허. 뭐 이런 곳이…….”

시달리지 않고 편히 걷게 되자 주변의 모습이 더욱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없는 게 없다.

주루, 객잔, 다점, 식당…….

“저긴 도박장인가?”

“……진짜 없는 게 없네.”

구강이라기보다는 항주나 소주에 가까워 보인다. 오직 환락을 위한 그곳에 비하면 실용적인 곳이라는 점이 다를 뿐.

객잔 거리를 지나 부두에 가까워지자 좌우로 커다란 창고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그 창고마저 지나니 우글우글 몰려 있는 사람과 짐수레가 보였다.

“저기인 것 같습니다.

”일단 가 보세.“

마철이 부두로 다가가 근처에 서 있는 상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

“뭐요?”

“지금 막 도착한 사람입니다만. 예약하려면 어디에 줄을 서야 합니까?”

먼저 줄을 서 있던 상인은 힐끔 마철을 바라보더니 턱짓으로 제 뒤를 가리켰다.

“여기에 서면 되오.”

“아, 감사합니다. 얘들아, 수레 이쪽에 대라.”

“예!”

줄을 선 마철은 새삼스레 주변을 살폈다. 부두를 꽉 채운 사람들과 부두에 정박한 다섯 대의 커다란 배. 그리고 그 배에 물건을 옮겨 싣고 있는 인부들까지.

활력이 넘친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것이리라.

“굉장하구나.”

“……배가 다섯 대입니다. 저 큰 배가.”

“저런 배가 다섯 대나 있는데도 나흘 넘게 기다려야 한다니. 대체 이 부두에 얼마나 많은 짐들이 온다는 겁니까?”

“장강에 있는 물건은 모조리 여기서 하역을 하니 별수 없잖은가? 수로채에 털리는 것보다는 백배 나으니. 그래도 우린 다행이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도강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요, 행수님.”

마철은 여전히 얼떨떨하여 헛웃음을 흘렸다.

‘상전벽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고작 다섯 해 만에 세상이 이리 바뀔 줄이야. 아니, 다섯 해도 아니다. 이제 겨우 세 해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때였다.

“당신들 뭐야? 왜 끼어들어?”

“예?”

갑자기 우르르 몰려든 한 무리의 사내들이 마철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윽박질렀다.

“끼어들다니요? 우린 그저 줄을 선 것뿐인데요?”

“짐을 두고 잠시 볼일을 보러 다녀온 참인데, 그새 자리를 차지해 놓고는 뭐가 어째? 잔말 말고 당장 비켜! 혼나기 싫으면!”

“아니, 그게 무슨 억지요!”

“뭐? 억지? 이놈들이?”

상인이 달려들어 마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줄 한번 잘못 섰다가 내 앞에서 순번이 끊기면 하루는 더 날려야 하는데, 그럼 손해가 얼만 줄이나 알아! 이게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그, 그럼 자리를 지켰으면 될 일 아니오? 어쨌건 나는 못 비키오!”

상인은 일단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

그 사실을 아는 마철이 덩달아 언성을 높이자 멱살을 잡은 상인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오냐.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너 어디 오늘 한번 뒈져 봐라.”

그들의 다툼이 커져 가자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혀를 차 댔다.

“거기! 어이! 거기!”

“……예?”

“여기가 어디라고 자꾸 소리를 쳐 대는 거요?”

“여기가 어디냐니…….”

마철의 멱살을 잡은 상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낯이었다.

그러자 끼어든 염소수염 상인이 알 만하다는 눈으로 두 무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둘 다 매화도를 잘 모르시는군. 초행이오?”

“…….”

“…….”

두 무리가 모두 눈을 끔뻑이자 염소수염 상인은 혀를 차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가 찍히기라도 하면 바로 쫓겨나고, 한 달은 짐을 실을 수 없게 되오. 여기가 매화도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괜히 쫓겨나 목숨 걸고 도강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조용히 하시오. 둘이 싸우다가 우리한테까지 피해가 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아시겠소?”

마철은 어안이 벙벙하여 되물었다.

“소란을 피우면 짐을 실을 수 없다고요?”

“그렇다니까.”

“아,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래 봐야 돈 받고 짐을 옮겨 주는 곳 아닙니까?”

“……뭐?”

“허허, 저런.”

“이래서 애송이들은.”

주변의 상인들이 되레 눈을 휘둥그레 뜨고 혀를 차니 마철은 순간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다.

“그, 아주 초행이오?”

“……예. 저희는 작은 상단인데, 전임 행수가 병이 나 급작스레 그만두는 바람에…… 제가 급하게 상행을 나왔습니다.”

“쯧쯧쯧. 그러니 멋모르고 이러시는구먼. 이보시오. 여기는 매화도요. 다른 곳의 상식을 여기에 적용하면 큰일 나오. 매화도의 법칙은 아주 간단하지. 사고 치지 말 것. 소란 피우지 말 것. 그리고 계산을 확실히 할 것.”

“…….”

“그중 제일 중요한 건 사고 치지 말 것! 그 법칙을 어겼다가 쫓겨나서 망한 상단이 어디 한둘인 줄 아오?”

“…….”

“괜한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시……. 이런, 망할! 늦었군!”

“예?”

그때였다.

웅성웅성.

앞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상인들이 좌우로 분분히 물러났다. 상인들 사이로 길이 열리자 한 무리의 사내들이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걸어왔다.

칠 척은 될 듯한 거대한 키.

삐죽삐죽 솟은 가시 같은 수염.

부리부리한 눈.

상의는 어디다 벗어 던졌는지 깔끔하게 드러난 상체는 터질 듯한 근육이 울룩불룩했다. 지금까지 짐을 옮기다 왔는지 그 근육의 굴곡을 타고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그 압도적인 모습에 바짝 쫄아 버린 마철이 목을 움츠린 바로 그때, 걸어 나온 이들이 세상 모든 짜증을 얼굴에 담아 이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마철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마철의 일행을 위아래로 훑어본 사내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동시에 마철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제 우린 죽었다.’

아이고, 어쩌자고 여길 와서는…….

노기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사내는 그 커다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이내 호랑이가 포효하듯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고객님?”

“…….”

“무슨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금방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에서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그게…….”

아니.

여긴 대체 뭐 하는 데냐?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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