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6화. 화산은 강해질 테니까. (1)
수련하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현종의 얼굴이 침중하기 그지없었다.
악귀 같은 청명을 이리 같은 제자들이 둘러싸고 공격하고 있었다.
과격하기가 이를 데 없는 광경이다.
목검이라고는 하나, 평범한 양민들이 얻어맞았다면 당장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들이 짧은 틈에도 몇 번이고 오갔다. 청명은 물론이고, 그를 상대하는 제자들도 두 눈에서 진심 어린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 대고 있었다.
‘살기라…….’
검이란 결국 상대를 상하게 만들기 위한 것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사형제들끼리 서로 살기를 뿜는 꼴이 현종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너무 과격하지 않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운암 역시 앓는 소리를 내며 우려를 표했다.
“과격이라…….”
현종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부정할 수 없다.
저건 수련이라기보다는 악에 받친 이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에는 분명 저토록 과격하지는 않았는데, 하루하루 날이 흐를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지독해지고 있다.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련에 있어서는 엄하기 이를 데 없는 현상의 입에서도 우려의 말이 쏟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화산은 도가입니다. 도를 좇는 이들이 저리 사특한…….”
“되었다.”
“……장문인.”
하지만 고민하던 현종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 몰라서 저러는 게 아니잖느냐?”
그리고 가라앉은 눈으로 제자들 사이에서 날뛰고 있는 청명을 바라보았다.
“수레를 끄는 이에게 느리다 재촉하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일지 모른다. 빠르다 힐난하는 것 역시 귀찮은 일일 수도 있지. 하지만 어쨌든 그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어떤 소린 줄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수레를 모는 자세가 바르지 않다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현종이 현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침식을 잊어 가며 채찍질하는 이에게 그게 어디 할 소리더냐?”
“……압니다. 장문인. 하지만 저러다가…….”
“안다.”
현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러다 제자들이 축나기라도 하면 의미가 없다는 말 아니냐.”
“……그렇습니다.”
“청명이 그걸 모를 녀석이 아니다.”
현종이 안타까운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제자들을 아끼는 녀석이다. 그런 놈이 저리도 고생하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초를 쳐서야 되겠느냐. 일단은 믿고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현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운암이나 현상 역시 제자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말하는 것임을 안다.
하지만 청명을 탓할 일은 아니다. 탓해야 한다면 제자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그들의 잘못이다.
‘아니면 내 욕심이겠지.’
화산의 제자들을 모두 상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호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포기하고 오래도록 봉문 한 채 섬서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사이에 저 사패련이 강북으로 밀고 들어온다고 한들, 섬서는 위치상 전화에서 가장 벗어난 곳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 방법을 쓸 순 없다. 결코 옳은 길이 아니니까. 그리고 화산이 강호에 대한 개입을 포기하는 순간 지금껏 제자들이 피 흘려 쌓아 온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그건 굉장히 역설적인 일이었다.
화산이 과거처럼 이름 없는 작은 문파에 지나지 않았다면, 세상을 뒤덮을 전화 역시 화산을 피해 갔을 것이다. 섬서에 있는 몰락한 문파에는 사파든 정파든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화산은 천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파. 그리고 그 영향력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문파다.
‘책임이라…….’
현종이 눈을 감았다.
그 책임을 현종이 혼자 지는 것이라면, 그는 불구덩이 속에서도 웃을 수 있을 것이다. 화산을 다시 부흥시키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으니 그 대가로 목숨을 던진다 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
그렇기에 지독히 가슴이 아팠다.
화산이 얻은 것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그가 아니라 제자들이라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에.
‘모르겠구나.’
이게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화려한 꽃을 피워 내는 것이 땅속 깊게 박힌 뿌리이다. 이처럼, 그가 평생 소원했던 화산의 부흥은 수많은 것을 양분으로 잡아먹어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원시천존.’
지그시 감았던 눈을 떴을 때도, 청명은 변함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새긴 것처럼 박혔다.
그렇게 차마 볼 수 없는 수련이 몇 날 며칠을 이어졌다.
날이 지날수록 화산 제자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죽어 갔다.
그럴 만한 일이다.
아무리 무학을 익히는 문파의 제자라 해도 하루 열두 시진을 모두 수련에 쏟아붓지는 않는다.
화산은 도가이기에 도사로서 해야 하는 일도 있고, 이만한 큰 문파를 유지하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하는 시간도 있다. 설사 그런 의무가 없다 해도, 수련하는 모든 시간 동안 힘을 짜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화산이 봉문을 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사람을 몰아친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보다 더욱 힘든 것은,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에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신을 날카로운 칼로 쉴새 없이 깎는 느낌.
서로를 어떻게든 베기 위해 있는 모든 살기를 끌어내는 대련. 아무리 가족 같은 사이라도 악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화산에는 아무런 문제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사이가 극도로 가깝기 때문이 아니라, 악감정을 곱씹을 여유마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한의 전장에선 감정 따위는 사라지는 법이니까.
한계까지 몰아붙인 정신.
그리고 한계까지 몰아붙인 육체.
이런 수련은 실력을 향상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몸을 축나게 할 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모두를 혼란스럽게 할 무렵.
그 일이 일어났다.
따악!
“…….”
“…….”
딱 소리가 울려 퍼지며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윤종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피를 줄줄 흘리던 이는 제 코에서 흐르는 피를 막는 것도 잊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얻어맞아 쓰러졌던 이가 몸을 벌떡 일으켜 입을 쩍 벌렸다.
달려들던 이가 그 자리에 그 자세로 굳었으며, 지쳐 주저앉았던 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
윤종의 두 눈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목검.
격한 수련을 하느라 여기저기가 움푹움푹 파인 그의 목검이 누군가의 옆구리에 닿아 있었다.
“……닿았네?”
윤종의 두 눈이 다시 격하게 흔들렸다.
수련을 하고 있으니 공격이 성공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누가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왜냐면 목검이 닿은 옆구리의 주인이 바로 청명이니까.
“어?”
스스로 믿지 못해 눈만 끔뻑이던 윤종은 입을 서서히 벌렸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지금껏 청명과 몇 년 동안 수련을 해 왔지만, 그의 검이 청명의 몸에 닿은 것은 이게 처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화산 제자 전체를 통틀어도 이게 처음이다.
“다, 닿았다! 빌어먹을! 닿았다고!”
윤종의 목에서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오는 순간.
퍼억!
청명이 냅다 윤종의 명치를 걷어찼다. 윤종이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는 아프지도 않은지 용수철처럼 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찔렀다! 찔렀다고! 으아아아아아아!”
그러자 동시에 주변 화산 제자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해냈다! 해냈어! 으아아아아아!”
“저 망할 새끼한테 드디어 한 방 먹였다고!”
“어떠냐 이 새끼야!”
대체 다들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는 서 있는 것도 힘겨워하던 이들이 머리를 쥐어뜯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오르고 고함을 쳤다.
“으아! 사형!”
“윤종이, 너 이 새끼!”
“이야! 내가 저 인간이 밥값 하는 걸 보네!”
대단한 일일 수 없다.
대단한 일이어서도 안 된다.
수십이 동시에 달려들어 한 사람에게 겨우 칼질 한 번을 성공시킨다는 건, 사실 기쁘기는커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상식 같은 건 지금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절대 닿지 않을 것 같았던 거리. 너무도 까마득해서 차마 바라보는 것조차 껄끄러웠던 그 거리가 지금 이 순간 분명 좁혀졌기 때문이다.
“쯧.”
청명은 제 옆구리를 손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옆구리에서 둔중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 느낌이 참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기분이 나쁘질 않다. 아니, 오히려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고 입술이 잘게 떨렸다.
청명이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딱 한 번 운 좋게 닿았다고 좋아하기는. 한심하게.”
그 싸늘한 일갈에 윤종이 굳은 얼굴로 청명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쭉 펴며 그 자리에 섰다.
“너.”
윤종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청명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청명을 똑바로 바라보던 윤종은 뻗은 손가락으로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지금 한 번 죽었어.”
“…….”
굳어 있던 청명의 표정이 일순 뒤틀렸다.
“그…….”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어떠냐?”
“아니…….”
“우와! 시체가 말을 하네! 동네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시체가 말을 합니다!”
“당장 도사 불러!”
“우리가 도사야, 이 미친놈들아!”
“으하하하핫! 여기 강시가 있다!”
우득.
목검을 잡은 청명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근데 이 사형 새끼들이…….”
“하.”
그 순간 조걸이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덮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빌어먹을, 내가 처음이었어야 했는데. 이걸 사형이 먹네.”
“괜찮아. 목은 남았어. 옆구리론 안 죽어.”
“맞아요. 사고! 대가리는 제 거예요!”
“크흠.”
가만 듣고 있던 백천이 크게 헛기침하더니 말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그래도 이건 이 사숙에게 양보해야지.”
“화산에 위아래가 어딨어요!”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만, 소소 네가 말을 하니 유별하게 들리는구나.”
그렇지, 막내야?
모두가 흥분을 가라앉히질 못하고 방방 뛰었다.
사람이 지치는 건 힘겨울 때가 아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다.
지쳐 가던 그들에게, 윤종의 검은 분명 희망을 보여 주었다. 아주 작고 미약하지만, 더없이 확실하게.
“저 새끼가 수도 없이 한 말이 있지.”
백천이 검을 들고 히죽 웃으며 청명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다른 화산의 제자들도 낄낄대며 청명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뭐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별거 아냐.”
“맞죠?”
“아암, 그렇지.”
포위망을 좁혀 오는 사형제들의 모습을, 청명은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는 모양새가 숫제 토끼를 포위한 들개떼 같았다.
“하…….”
청명이 입꼬리를 뒤틀며 입을 뗐다.
“운을 실력이라고 착각하면…….”
하지만 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사방에서 고함이 왁왁 터져 나왔다.
“운도 실력이다!”
“왜? 전장에서 칼 맞고 뒈지고 나서 운이 나빴다고 염라대왕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하게?”
“시체가 하는 변명을 누가 들어 주냐? 어?”
“…….”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저건 다 청명이 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아미타불.”
그때 한참을 조용하던 혜연이 불자답게 근엄한 얼굴로 불호를 외었다.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혓바닥이 기오, 시주. 뒈지셨으면 누우시오. 내가 염불 정도는 외어 드릴 테니.”
“낄낄낄낄.”
“으히히히힛!”
“이야! 스님에 도사까지 이리 많으니 우리 청명이 극락왕생은 따 놨네. 따 놨어!”
사방에서 고소하다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명의 이마에 핏대가 연이어 돋아났다.
“오냐…….”
그의 두 눈이 불길을 내뿜었다.
“오늘 어디 한번 뒈져 보자! 이 망할 사형 새끼들아!”
“죽여!”
“눌러!”
“모가지는 내 거다!”
화산의 제자들이 화산이 떠나가라 고함을 내지르며 다시 청명을 향해 돌진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
전신에서 느껴지는 격통.
하지만 그 힘겨움 속에서도 화산 제자들의 입가에는 확연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