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4화. 그냥 나왔는데요? (4)
“으…….”
곽회가 검게 죽은 얼굴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들어섰다기보다는 용케 쓰러지지 않고 제 몸뚱이를 끌어다 옮겼다는 말이 좀 더 적절할 것이다.
비틀대던 그는 이내 의자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죽을 것 같다.
심심하면 써 오던 말이다. 하지만 곽회는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 말이 그리 함부로 써선 안 될 말이란 걸 이제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죽을 것 같기 때문에?
아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죽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 사숙. 괜찮으……십니까?”
곽회가 떨리는 눈으로 백천을 보았다.
백천이 고개를 느리게 들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곽회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할 뻔했다.
‘세상에…….’
실로 참혹했다.
아마 화산을 열흘쯤 떠나 있다 돌아온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저 사람이 백천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헌앙하기로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던 백천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두 볼은 퀭하게 들어가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고, 눈가는 푹 파여서 목내이가 따로 없었다.
항상 윤기가 흘렀던 밝은 피부는 검게 죽어서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어졌으며, 정광이 흐르던 두 눈은 흐릿해지다 못해 썩은 동태를 연상케 했다.
‘사람 몰골이 아니네.’
겉모습만 보면 어디 묻혔던 사람을 파내서 앉혀 둔 것만 같았다.
“……아이고. 사숙…….”
“아이고…….”
그 모습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왜 백천이 이렇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백천의 몸에 이미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퀭해진 얼굴 아래 아직 흰 빛을 유지하고 있는 목.
그곳엔 붉은 선이 수도 없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
그 상처를 보며 곽회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날 이후 청명은 심심하면 백천과 맞붙었다. 그리고 붙을 때마다 반드시 백천의 목에다 상처 하나씩을 남겼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대련이 끝날 때마다 큰 외상도 없는 백천의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지는 이유를 말이다.
하지만 곽회 역시 금세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오검들을 모조리 기절시켜 버린 청명이 삼대제자들을 뭉텅이로 모아 대련을 시작했을 때 말이다.
곽회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목을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날아들던 청명의 검에는 분명 곽회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휘둘러진 검이 목에 싸늘하게 닿았을 때, 곽회는 분명 죽음을 느꼈다. 순간 의식이 끊기고 전신이 무저갱으로 추락하는 듯한, 끔찍한 감각.
- 너 지금 한 번 죽었어.
정신을 차렸을 때, 분명 쥐고 있었던 검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곽회는 바닥에 주저앉아 몸도 가누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그로부터 삼 일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눈만 감으면 검이 날아와 목이 잘리는 꿈을 꿨다. 고함을 내지르며 깨어났다가 겨우 다시 잠들면 다시 그 목이 달아난다.
그제야 곽회는 실감했다.
입버릇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깊고 무거운지 말이다.
‘난 겨우 한 번으로도 이 꼴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상황을 겪어야 하는 백천이 겪는 고초야 말로 해서 뭐 하겠는가?
털썩.
“사, 사고!”
“사고 괜찮으십니까?”
“아니, 청명이 이 새끼……. 진짜 해도 해도…….”
비틀대며 걸어온 유이설은 백천의 옆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녀의 꼴도 백천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지금 모습을 보면 누구도 평소의 유이설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백천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면, 유이설의 얼굴은 시체처럼 핏기 하나 없이 희게 질려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때 유이설이 부르튼 입술을 억지로 열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예, 사고?”
“……에.”
“예?”
마른침을 몇 번이나 삼키고서야 유이설이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밖……에……. 걸이……. 윤종이.”
“……예. 지금 데리고 오겠습니다.”
보나마나 연무장에 윤종과 조걸이 널브러져 있을 테니 데리고 오라는 말일 것이다. 모두가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어떻게든 두 사람을 수습하려 몇몇이 발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끼이이이익.
문이 참 매가리도 없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두 사람을 짊어진 채 느리게 들어섰다.
“히이이익.”
“스, 스님!”
혜연.
그가 널브러진 윤종과 조걸을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하며 힘겹게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빠, 빨리 받아 드려!”
“이리 주십시오, 스님!”
그 혜연 스님인데, 사람 둘 정도 짊어진다고 별일이야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혜연의 몰골을 보면 달려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
십 년은 쫄쫄 굶으며 면벽한 것 같은 얼굴.
혜연은 비틀대며 의자를 붙들었다.
백천과 유이설, 그리고 혜연은 말없이 그저 풀린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배어나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봉문이 이런 걸 줄 누가 알았냐고.’
그냥 죽어라 열심히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
“……하나는 알겠네.”
“뭘 말입니까?”
백상이 헛웃음을 지었다.
“……봉문 하는 게 맞았어. 이런 광경은 확실히 남에게 보여 줄 만한 게 아냐.”
“…….”
그 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이 사형제를 정말로 죽일 듯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누구에게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사실 그들이야 함께 싸우며 이미 몇 번이나 봤다.
그놈이 실전에 들어가 칼을 들고 설칠 때는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도, 화산의 제자라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몰랐다.
그 검이 자신들을 향해 겨눠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금껏 청명을 상대했던 이들이 대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만인방이 백배는 낫지.’
사파 중에서도 지독하고 악랄하기로 유명한 만인방을 상대했을 때도 이런 두려움은 느끼지 못했다.
“……진짜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들이 해 왔던 수련은 노력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련을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가 깨달았다.
이번 수련은 노력의 과정이 아니다.
이건 극복의 문제다.
실전과 같은, 아니 실전보다 더한 대련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그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 내고 자신의 검을 찾을 수 있느냐다.
‘진짜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모두의 내심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형. 죽이라도 좀 드십시오. 아니면 못 버팁니다.”
백상이 들고 온 미음을 백천에게 내밀었다. 멍하니 천장만 보던 백천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 죽 그릇이 보이기는 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눈동자에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턱.
돌연 죽 그릇을 낚아챈 백천이 입을 크게 벌리고 죽을 단번에 털어 넣었다.
“사, 사형?”
“욱!”
몸이 죽조차도 못 받아들일 정도인지, 토악질이 밀려드는 모양새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백천은 그대로 꾸역꾸역 그 죽을 삼켜 냈다.
꿀꺽.
그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해 그릇을 싹 비운 백천은 덜덜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옆에 세워 두었던 검을 움켜잡고 비틀대며 문 쪽으로 향했다.
“어, 어디 가십니까? 사형!”
“……수련.”
“예? 수, 수련……. 미치셨습니까? 좀 쉬셔야 합니다! 그 몰골로 어디를 간다고요!”
“……해야 해.”
“예?”
백천이 멍한 얼굴로 백상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오후에 한…… 수련은 실전……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아. 검술 수련……은 따로 해야 한다.”
“…….”
“하루도…… 빼먹으면 안 돼. 하루도.”
이 인간이 정말 미쳤나?
손이 덜덜 떨려 검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심지어 다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시나무처럼 떨려 금세 또각 부러질 것만 같은 모양새다.
그런데 그 몸으로 검술 수련을 하겠다고?
“정도껏 좀……!”
그때였다.
턱!
유이설이 탁자에 놓인 죽 그릇을 움켜잡더니 백천처럼 입 안에다 그대로 털어 넣었다.
“저……. 저저?”
혜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바닥에 엎어져 있던 윤종과 조걸도 끙끙대며 몸을 일으키더니 죽 그릇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입에 밀어 넣었다.
“머, 먹어야…… 먹어야 산다…….”
“우우욱! 욱!”
두 사람은 어떻게든 죽을 배 속으로 욱여넣고 몸을 일으켰다.
“끄으…….”
“죽겠네, 진짜…….”
검을 든 그들이 비틀대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 아니. 사형!”
“야, 인마! 다들 미쳤어?”
조걸이 시체 같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사숙 말 못 들었……어요?”
“…….”
“검술 수련……은 따로라잖아요.”
제자들이 입을 쩍 벌렸다.
“……사숙이 배는 더 힘들 텐데…… 내가 어떻게 엄살을 부립니까. 제기랄.”
“가자.”
“……예.”
윤종과 조걸마저 비틀대며 밖으로 나가자 식당 안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
“저러고도 버틸 수 있나?”
열린 문 틈으로 연무장으로 나간 오검이 검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해는 한참 전에 졌건만…….
모두가 아연실색하여 말을 잇지 못할 때, 곽회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청명이는 어디 있습니까?”
“……청명이는 아직 덜 끝났어.”
“예? 뭐가요?”
백상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우리 수련 끝나면 사숙 분들과 수련하고, 그 뒤에는 장로님들과 수련하는 걸로 알고 있다.”
“…….”
“아마 그러고 나서는 제 개인 수련까지 할걸.”
곽회는 순간 눈앞이 다 아득해졌다.
그들은 돌아가며 청명이 놈과 대련을 한다. 하지만 지금 백상의 말대로라면 청명은 새벽부터 다시 새벽까지 끝도 없이 싸우고 또 싸우고, 거기에 개인 수련까지 따로 한다는 말이 아닌가?
“……사람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언제부터 그놈이 사람이었다고.”
백상이 짜증 난다는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옆에 놓인 그릇을 잡더니 입 안에 단숨에 털어 넣었다.
“아오. 빌어먹을. 더럽게 밍밍하네. 소금 좀 더 치라고 해라.”
“사숙?”
백상이 검을 잡고 밖으로 나간다.
“가자.”
“……그, 그러다 쓰러집니다, 사숙.”
“그게 뭐?”
백상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제 재경각도 할 일 없어. 봉문 했잖아.”
“……예?”
“쓰러진다고 해서 별일 생기지도 않는다는 거야. 그런데 쓰러지는 게 뭐가 문제야.”
“…….”
“어차피 실력으로는 못 이기잖아.”
백상이 식당 안에 있는 모든 제자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럼 적어도 근성으로는 지지 말아야지. 빌어먹을. 내가 실력이 없지, 근성이 없냐?”
그 말이 불씨를 당긴 듯했다. 화산 제자들의 두 눈에 다시 독기가 실린 것이다.
모두가 짠 듯이 앞에 놓인 죽 그릇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쿵!
죽 그릇을 강하게 내려놓고 하나둘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누가 진다고 그럽니까?”
“우리도 할 말 많습니다. 청명이가 사숙들이랑 사형들을 주로 데리고 다녀서 그렇지, 그 자리에 제가 있었으면 달랐을 겁니다.”
“한번 화산오검이 영원한 화산오검은 아니지. 봉문 끝날 때는 다시 정해야지!”
식당 안에 있던 이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손님을 받지 않으니 평소처럼 불을 환하게 밝히지 않은 화산의 연무장.
그 어둠이 내린 연무장에서 검 휘두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지켜보지도, 강요하지도 않는 수련.
한계를 넘고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은 반드시 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화산 제자들의 검 끝에 단단한 각오가 어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의 검 끝에 평생을 머무를 단단한 각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