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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51화 (848/1,567)

851화. 그냥 나왔는데요? (1)

화산이 봉문을 했다는 소식이 중원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과거였다면 딱히 관심을 끌지 못했을 소식이지만, 현재 강호에서 화산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은 과거와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참으로 한결같았다.

“바, 방장!”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법계가 방문을 콱 열어젖혔다. 불공을 드리던 법정이 굳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찌 이리 망령되이 군다는 말이더냐?”

“크, 큰일입니다, 방장!”

“또 무슨 일이냐.”

“화, 화산이……!”

화산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법정의 눈썹이 눈에 띄게 치켜 올라간다.

“……화산이 또 무슨 짓을 했기에 경거망동이야. 이번에는 강남으로 넘어가 사패련과 싸움이라도 벌였다더냐?”

법정은 이제는 화산이……. 아니, 정확하게는 화산신룡이 무슨 짓을 벌여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인간에게는 상식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실감했으니까.

“화, 화, 화산이! 화산이 봉문을 했습니다!”

“그래, 봉문. 그것 참 큰일……. 뭐라?! 봉무우우우운?”

법정의 눈이 순간적으로 툭 튀어나왔다.

“봉문? 지금 봉문이라고 했느냐?”

“예, 방장! 개방에서 전해 온 소식입니다!”

“그, 그럴 리가 있느냐? 뭔가 잘못 전해진 것이겠지. 그게 아니면 개방이 뭔가 잘못 알았거나!”

“저도 너무 당황하여 몇 번이고 확인을 해 봤으나……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잠깐 말을 잃었던 법정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정말 봉문을 했다는 말이더냐?”

“예. 그렇다 합니다.”

“……왜?”

“…….”

법계는 평생 법정을 봐 왔다. 그리고 맹세컨대, 법정이 이토록 멍청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건 난생처음 보았다.

하지만 딱히 이를 두고 법정을 탓할 순 없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법계는 이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멍하니 서서 몇 번씩 말도 안 된단 소리나 중얼댔으니까.

“아, 아니. 대체 왜?”

“진정하십시오, 방장.”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수십 년의 수양도 도움이 되지 않는지, 법정은 연신 불호를 외어 대고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이고 나발이고! 화산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대체 무슨 생각을! 이런 정신 나간…….”

“바, 방장! 제자들이 듣습니다! 소, 소리를 조금 낮추셔야…….”

“끄으으응…….”

법정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안타깝게도 쥐어뜯을 머리가 없어 민머리를 긁어 대는 모양새였지만 말이다.

“대체…… 대체 그 화산은 왜 매번 이런 식이냔 말이냐! 왜? 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법정은 알고 있다. 화산……. 아니, 그 화산신룡이 저지르는 일들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기껏 천우맹의 이름을 구파와 대등하게 만들 수 있는, 천고에 다시 없을 기회를 손에 넣어 놓고 그냥 봉문을 해 버린다고?”

동남풍은 매번 부는 것이 아니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 하는 법이고,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

화산과 천우맹에게 어쩌면 지금 시기는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인지도 모른다.

무당이 봉문을 하고, 소림이 다른 구파의 반발 때문에 발이 묶이고, 저 남궁이 침묵하는 시기는 절대 두 번은 오지 않을 테니까.

사람이든 세력이든 머리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화산이 동일한 활약으로 인망을 얻었다 한들, 소림과 무당, 남궁이 건재한 상황이라면 그들이 세력을 굳히게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딱히 방해를 할 필요도 없다. 세 문파가 평범하게 활동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본디 사람들은 새로운 바람을 원하는 동시에, 익숙한 것을 가장 편히 여기니까.

법정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그 화산신룡이 이 사실을 모를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체 무슨…….”

“화, 화산에 연통을 넣어 볼까요?”

“……봉문을 했다면 사람이 들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연통을 넣어 무엇 하겠느냐?”

“그도 그렇습니다만…….”

법정이 반쯤 해탈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이럼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가?’

계산이 단번에 헝클어졌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강호의 정세를 수도 없이 되뇌고 또 되뇌어 가며 정교하게 짜 맞추고 있었는데, 일거에 다리가 잘려 뒤집어엎어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저 화산만 얽히면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좌시하실 생각이십니까?”

“뭘 어쩌겠느냐? 일을 벌인 것도 아니고, 얌전히 봉문 하겠다는데, 왜 봉문을 하냐고 달려가 따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더냐?”

“…….”

“게다가 어떤 이유에서건 봉문 한 문파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강호의 율법이니…….”

법정이 결국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구나.”

“이리 무책임하리라고는…….”

“무책임이라…….”

법계의 말을 들은 법정이 고소를 머금었다.

법정은 안다.

손에 쥔 모든 것을 그냥 내던져 버리는 것은 무책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용기다. 제 손에 쥔 쌀 한 톨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하물며 이리 큰 것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하겠는가?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로구나.”

먼 서쪽을 바라보던 법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눈에는 현기가 가득 담겨 있어, 법계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마 지금 법정은 그는 생각지도 못할 무언가를…….

“자, 잠시.”

“예?”

법정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봉문을 했다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방장.”

“그럼…… 혜연은?”

“예?”

“혜연은 어떻게 되었느냐?”

“…….”

법계가 무척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그…… 듣기로는 섬서로 향하는 화산을 따라갔다고.”

“뭐, 뭐라? 그럼 설마 혜연이 봉문 한 화산에 있단 말이더냐?”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 남의 문파의 제자를 데리고 봉문을 한다고?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혜연이를?”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법정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봉문 한 놈들에게 달려가서 제자를 내놓으라고 따질 수도 없고……. 아니, 화산 놈들은 경우란 게 뭔지를 모르나……. 대체…… 이게 뭔…….”

혼자 미친 것처럼 중얼거리는 법정을 보다 법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만은 소림이 화산에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봉문?”

“그리 들었습니다.”

“흥.”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황이 조소했다.

“장문인? 아니, 아니지. 그 장문인에게는 그만한 강단이 없을 터. 화산신룡인가?”

“……이제는 화산검협입니다.”

“거창하기 짝이 없는 별호로군.”

남궁황은 이를 빠득 소리 나게 갈아붙였다.

화산검협이라는 별호가 날카로운 바늘처럼 남궁황의 위장을 찔러 댔다. 오로지 화산에만 협의가 있다고 말해 대는 것처럼 들려서였다.

“……그래. 틀린 말도 아니지.”

“예?”

“흥.”

남궁황이 코웃음을 쳤다.

“……화산신룡. 아니 화산검협이라. 역시나…… 만만히 볼 수 없는 자로군.”

남궁황은 청명을 인정한다. 아니, 그곳에 있었던 자라면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장일소는 결코 흑룡왕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가 눈으로 보고 느낀 것뿐이 아니다. 아무리 이득이 있다고 해도 흑룡왕 같은 이가 자신보다 약한 이의 밑으로 들어갈 리가 없다.

최소한 호각 정도는 될 것이다.

‘그 어린놈은 그런 장일소와 잠시나마 호각을 다투었다.’

물론 장일소가 전력을 다했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청명이 그곳에서 이뤄 낸 것은 그 빛이 조금도 바래지 않는다.

그 어마어마한 위업에 비한다면 화산검협이라는 이름조차 하찮다.

하지만…….

“일신의 실력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어린 나이에 화산을 이끌 정도의 실력과 결단력. 거기에…… 화산의 봉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과감함까지 갖췄단 거지…….”

남궁황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도위.”

“예, 가주님.”

“냉정하게 말해 네 상대로는 버겁다. 저건 백 년에 한 번 나오니 어쩌니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종자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나직이 대답한 남궁도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굳건한 눈으로 남궁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남궁가의 후예가 목표로 할 사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궁황은 말없이 아들의 눈을 주시했다. 두 눈에 아직 패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남궁황이 씨익 웃었다.

“화산이 봉문 한 것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리 없다. 놈은 아는 것이겠지. 금력이니, 세력이니 하는 것들을 백날 모아 봐야 제 손의 힘이 부족한 이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

“잊지 마라, 도위. 남궁세가가 천하제일세가일 수 있는 이유는 재력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도 아니고, 안휘 곳곳에 그 세력이 미치기 때문도 아니다.”

남궁황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선언하듯 말했다.

“남궁세가가 강하기 때문이다.”

남궁도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표정을 굳힌 남궁황이 이를 갈아붙였다.

“지금의 남궁세가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로도 안 된다. 나는 흑룡왕을 이겨 내지 못했고, 남궁세가는 사패련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잊지 마라, 도위. 우리가 이 끔찍한 굴욕을 겪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예.”

남궁황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많은 것을 이뤄 낸 화산조차 제 실력을 쌓기 위해 봉문에 들어가는데, 우리라고 뒤지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 가솔들의 외부 활동을 모두 금한다. 앞으로 한동안 남궁세가는 내실을 기하며 다가올 환란에 대비할 것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가주님.”

남궁도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남궁황의 두 눈은 점점 어둡게 침잠했다.

‘흥.’

그만한 것들을 이루어 냈으면 좋아서 길길이 날뛰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을.

심지어 그 청명이 코앞에서 허세를 떨며 제 능력을 뽐낸다 해도 남궁황은 되레 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 장강에서 청명이 보여 준 능력은 분명 칭송받아 마땅했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굶주림이 가시지 않는다는 건가? 게걸스럽기는.’

강호의 어른으로서 체면이 살질 않는다.

“괜한 미련을 떠는군, 화산. 이제 화산이 활약할 일 따위는 없을 텐데.”

우드드득.

남궁황은 마디가 희게 질리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다시 또 그런 굴욕을 겪을 바에야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낫다.’

알고 있다. 그에게 허도진인을 비난할 자격 따윈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를 몰아붙였던 건, 차마 당당한 죽음을 택할 용기가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못나게도 남에게 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다시는 그런 굴욕을 겪지 않을 것이다.

“삼 년쯤이야 금방 간다. 저 강남불침의 조약이 끝나는 순간, 내 손으로 흑룡왕과 장일소를 찢어 죽여 이 굴욕을 되갚아 줄 것이다.”

남궁황의 두 눈에 단호한 의지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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