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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42화 (839/1,567)

842화. 사람을 엿 먹여도 정도가 있지! (2)

“큽!”

“풉……!”

“웁!”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입을 틀어막았다.

심지어 현종까지도 볼을 푸들푸들 떨어 가며 입을 막았지만, 어깨가 들썩거리고 몸이 진동했다.

그 격한 반응 속에서 유일하게 청명의 얼굴만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현종이 억지로, 겨우겨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 뭐라고?”

정말로 제대로 듣지 못한 건지, 그냥 다시 한번 듣고 싶은 건지 그 의도는 명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홍대광은 성실하게 다시 대답했다.

“그러니까, 화산신룡의 별호가 새로 붙었는데.”

모두의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홍대광이 극을 하는 변사처럼 과장된 얼굴로 팔을 휘저었다.

“크으! 저 장일소와 맞상대를 하는 그 드높은 무공! 거기에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드높은 의기! 모두가 제 살길을 찾아 협의를 저버릴 때 협심을 잃지 않는 그 기상을 칭송하여…….”

모두의 몸이 다시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세인들이 칭하기를 드높아라, 그 이름!”

거의 쓰러질 정도로 경련하는 이들의 귀에 네 글자가 못을 때려 박듯 들려왔다!

“화! 산! 검! 협!”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끄읍! 끄으으읍! 끕! 나 죽는다! 아이고 나 죽어어어어!”

“검협이래! 검혀어업!”

“화산검협(華山劍俠)! 크으! 멋지다! 조오타!”

청명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이…….”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별호를 누가 붙여 퍼뜨렸는지 말이다.

“이……. 이 새끼가…… 사람을 엿 먹여도 정도가 있지!”

장일소.

그 망할 새끼가 붙인 별호인 게 분명하다.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 별호에 너무도 노골적인 의도가 들어가 있으니까.

보통 화산 출신의 검술을 칭송할 때는 별호에 ‘매화’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화산검존이 아니라 매화검존인 것이다.

장일소가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청명의 검술을 칭송할 것이라면 매화검협이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청명의 새 별호에는 화산이 붙어 있다.

청명이 화산파 사람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리겠다는 의도다.

게다가 거기에 붙은 말이 다름 아닌 ‘협’이 아닌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협’이라는 글자가 붙은 별호가 천하로 퍼져 나간다는 것은 명백한 의도가 있는 일이다.

그러니 속이 뒤집어질 수…….

턱.

그때 청명의 어깨에 턱 손이 얹혔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검협!”

“…….”

“크흐흡! 협객! 오오! 협개애애……. 아아아아악!”

깐죽거리다 청명에게 걷어차인 조걸이 붕 날아 벽에 처박혔다. 하지만 고통에 겨워 꿈틀거리면서도 자꾸 입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검협이래!”

“이렇게까지 안 어울리는 별호가 있을 줄이야.”

“와. 협객이래, 협객! 청명이가 협객이래! 장문이이이인! 화산이 협객을 배출했습니다! 이건 문파의 경사입니다!”

현종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흔히 하는 행동이었지만, 오늘은 명백히 그 의도가 달랐다. 청명은 쉴 새 없이 들썩이는 현종의 어깨를 망연히 보았다.

어쩌면 지금 저 손 사이로 침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웃겨?”

“큽!”

“푸웁!”

“우우우웁!”

심지어는 그 유이설마저 고개를 돌린 채 먼 곳을 보며 잔경련을 일으키고 있고, 근엄한 당군악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먹을 꽉 움켜쥐며 뭔가를 참고 있었다.

“하…….”

장문사형.

제가 이런 취급을 받고 삽…….

- 푸웁…….

이 양반이?

댁이 웃으면 안 되지, 대현검(大賢劍)주제에!

분명 좋은 별호다. 하지만 청명을 아는 사람은 하필이면 그 ‘청명’에게 이런 별호가 붙었다는 사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흐흠!”

현종이 크게 헛기침을 해 웃음기를 애써 날려 보려 했다.

“그…… 참 좋은……. 크흡! 큽…….”

“……그냥 웃으세요. 그냥…….”

“아, 아니다. 제자가 이런 좋은, 크흡. 별호를 얻었는데 마땅히 축하해 줘야지.”

“퍽이나요…….”

청명의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갔다.

천하의 청명도 이렇게 고급지게 사람을 엿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여하튼.”

홍대광이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화산검협이라는 이름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기괴할 정도로 빠르게.”

“……일부러 퍼뜨리니까 빠르게 퍼지겠지.”

“그리고 동시에 화산신룡……. 아니, 화산검협의 협명 역시 굉장히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별호는 의심을 사기 마련이지만, 그 별호의 출처가 사파 놈들이다 보니 의심을 가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저놈들이 괜히 자기들의 위상을 깎아 먹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여튼…….”

청명이 헛웃음을 흘렸다.

“미친놈이 진짜 미친 짓 하나는 정말 제대로 하네…….”

강호에서 패군이 가지는 위상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

그렇기에 그 패군과 화산파의 일개 후기지수의 이름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패군은 상대적으로 제 이름을 깎아 먹게 된다. 그런데 장일소는 그런 상황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었다.

“명성에 초연하다는 건가?”

“그럴 리가.”

백천의 의문에 청명이 코웃음을 쳤다.

“명성에 집착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런 놈이. 정확히는 본인이 올라가는 것보다 남을 깎아내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겠지.”

“남?”

“구파일방.”

“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협의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다. 그 사실이 천하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는데, 신성처럼 협객이 나타난다?

그 이름이 빛나는 만큼 상대적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성은 더욱 진흙탕을 구르게 될 것이다.

“화산검협의 이름과 함께 화산, 그리고 천우맹의 이름이 점점 더 크게 퍼지고 있습니다. 중인들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대신 장강을 안정시키고, 수로채와 맞서 상로를 뚫은 천우맹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홍대광이 거기까지 말하고는 뒷머리를 긁었다.

“제 입장에서는 이게 좋아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좀 애매하긴 한데…….”

아무래도 개방도 구파일방 소속이다 보니 심사가 복잡할 것이다.

“여튼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강호의 정파를 대표하는 이름이 구파일방이 아니라 천우맹인 것이 사실입니다.”

“으음.”

현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계속 커져 나가더니 결국은 여기까지 와 버렸다. 장강으로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촤악!

그때 임소병이 부채를 활짝 펴서 팔랑이며 말했다.

“사람이란 불안함을 느끼면 그 불안을 해소시켜 줄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러니 강남에서 흉흉한 소식이 들려올수록 의지할 만한 곳을 찾으려 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천우맹과 화산검……. 큽! 화산검협의 이름은 분명 큰 울림을 가질 겁니다.”

“중간에 큽은 뭔데? 큽?”

임소병이 청명의 말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커다란 둑도 본디 작은 구멍에서부터 무너집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사패련이 악명을 날리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면……!”

따악!

임소병이 접은 부채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탈이 시작될 겁니다.”

“이탈?”

“예.”

임소병이 고개를 끄덕인다.

“천우맹을 가장 과소평가하는 곳은 천우맹입니다. 이미 사천을 비롯한 중원 서부의 문파들은 천우맹에 적을 둘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천우맹은 명분과 힘을 증명했습니다. 조금만 더 고삐를 쥐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질서에 순응하던 이들이 몰려와 천우맹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겁니다.”

당군악도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런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임소병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요. 그러니 그걸 이제 제가 잘 조율하면 될 일이지요.”

“그걸 왜 네가 조율하는데?”

“하하하. 제가 적임자 아니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보통은 제 영역의 문파들을 다스릴 뿐, 천하에 흩어진 문파들을 관리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 이 녹림왕! 구주(九州)에 흩어진 산채들을 관리하는 몸이시다, 이거지요!”

“그러니까 네가 왜? 이 사파 놈아!”

“끄응. 역시 대단한 화산검협이시라 산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거, 거기 똑바로 잡아 주십시오! 저 죽습니다!”

급기야 청명이 눈을 까뒤집고 일어나려 하자 백천과 조걸이 얼른 꾹 잡아 눌렀다.

당군악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마 자네의 별호는 더 크게 번질 걸세.”

“……왜요?”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가. 의지할 곳을 찾는 이들은 현실보다 영웅담을 더 좋아하지. 저 사파의 마귀와 호각으로 맞서 싸운 호협(豪俠)한 젊은 검객. 이만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도 없지.”

“……끄으응.”

“그리고 뭐 그리 틀린 이야기도 아니잖은가.”

“협(俠)만 빼면.”

“호협(豪俠)만 빼면.”

“호각으로 맞섰다도 빼야 하는 거 아냐?”

마지막은 어떤 새끼야?

“애초에 천우맹은 실적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었네. 그런 와중에 자네가 이름을 떨쳤으니 좋은 일이지. 천우맹도 이 이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네.”

“이 별호를요?”

“그렇지.”

“이걸요?”

“그렇다니까.”

“왜요?”

“…….”

청명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며 당군악이 고소를 머금었다.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다.

“보통 별호에 협이 붙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거늘.”

“자기도 웃었으면서!”

“크흠.”

당군악이 차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고 입을 가렸다.

모두가 이 어이없는 상황에 웃어 댔지만 가장 신난 건 역시 오검이었다.

“크으, 내 사질이 검협이라니! 그것도 화산검협! 이 사숙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흐즈믈르그.”

“훌륭해. 기특.”

“…….”

얼굴값 못하고 능글맞게 웃는 백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 유이설이 저런 표정으로 웃음 참는 걸 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크으! 부럽다! 나도 새 별호 하나 받았으면!”

“으…….”

하지만 사질을 비웃은 대가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

홍대광이 백천을 보며 미묘하게 웃었다.

“부러울 것 없네. 자네도 새 별호를 받았으니까.”

“예?”

갑작스런 소식에 백천의 두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왜, 왜요? 제가 뭘 했다고?”

“나야 모르지. 원래 별호라는 건 남이 붙여 주는 거니까. 이유가 어디 있는가?”

“…….”

백천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그 별호가 뭡니까?”

“걱정할 것 없네. 딱히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까. 자네는 이제 화정검(花正劍)이 아니라 화산정검(華山正劍) 백천일세.”

“…….”

“화산검협을 도와 악적과 맞서 싸운 정의로운…….”

“그, 그만!”

살려 주십쇼! 그만! 제발 그만!

볼 수가 없다. 금세 마귀처럼 시선을 던지며 초승달처럼 눈을 휘고 웃기 시작하는 사제와 사질들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게 이렇게 부끄러운 거였나?’

쥐구멍에 파고들어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급류에 몸을 던져서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화산저엉거어어엄?”

특히나 저 새끼 눈에 띄고 싶지 않다. 악착같이 기회만 노리고 있었을 저 작은 악마 새끼 눈에는……!

그때 홍대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한 명……. 그…… 유이설 소협은…….”

벌떡!

유이설이 자리에서 빛살처럼 일어나 문으로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지만 시도에 그쳤다. 당소소가 그녀의 손을 꽉 움켜잡은 것이다.

“에이. 들어야죠, 사고.”

“…….”

“빙검매화(氷劍梅花) 유이설! 얼음 같은 검기와 드높은 의기를 보여 준 절세의 검수!”

유이설은 사람 손에 붙들린 길고양이처럼 격렬히 도망가려 했지만 당소소의 손은 굳건했다.

“가만히 있어요, 사고! 왜! 별호 예쁘고 좋구만!”

아주 귀에 걸린 입이 사특해 보이지만 않았어도 참 좋은 의도로 보였겠지만…….

귀는 물론이고 목까지 새빨개진 유이설이 시선을 벽에 고정했다.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정말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사고 얼굴색이 원래 변할 수 있는 거였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사형 눈이 잘못된 겁니다.”

“그치?”

윤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俠)에, 정(正)에……. 좋은 건 다 가져다 붙였구만.”

청명이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리자, 조걸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눈을 빛냈다.

“분타주님! 그럼 저는요?”

“응?”

“제 별호는요? 제 별호! 그럼 나는 화산성검(華山聖劍)?”

“저게 미쳤나?”

“어디다 성(聖)자를 붙여. 상스러운 게!”

“아, 가만히 있어 봐요! 뭐라도 붙었겠지!”

조걸이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홍대광을 바라보았다.

“어…… 그…….”

“예. 저요, 저!”

그 순간 홍대광이 슬쩍 시선을 돌려 버렸다.

“…….”

“……없어?”

홍대광은 어색하게 웃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곧 생기지 않겠나? 크흠.”

“…….”

조걸의 두 눈에서 삽시간에 혼이 빠져나갔다.

“……더러운 세상. 똑같이 싸워도 누군 검협이고, 빙검이고, 정검인데, 나는 지나가던 화산 검수 을(乙)이네……. 내가 제일 많이 얻어맞았는데…….”

“억울하면 너도 잘생기든가.”

“그게 사형이 할 소립니까! 똑같이 별호 없으면서!”

“나는 그래서 입 닫고 있지 않느냐.”

“……눈물이나 닦고 이야기하십쇼.”

“…….”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실감하는 조걸과 윤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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