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9화. 협의지문이 아직도 있었구나. (4)
“사패련이라 하셨소?”
살짝 격앙된 현종의 목소리에 홍대광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장문인. 사패련이 사도일통(邪道一統)을 선언했습니다.”
“사도일통…….”
다시금 읊조리는 현종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조걸은 그 말을 듣고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의아한 얼굴로 윤종을 돌아보았다.
“저…… 사형.”
“왜?”
“그, 사도일통이 뭡니까?”
경악한 윤종이 조걸을 획 돌아보았다. 그 표정에 어린 경멸을 읽은 조걸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아, 아니, 뜻은 알지요! 사파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 안다니 다행이구나.”
“아니, 그런데 이미 사파는 일통된 것 아닙니까? 신주오패가 하나로 뭉쳤고…… 물론 녹림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녹림은 반은 천우맹 소속에, 산적질에서도 거의 손을 떼서 사파라고 하기도 애매하니…….”
그 말을 들은 홍대광이 조걸 쪽으로 시선을 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예?”
“신주오패가 사파를 대표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신주오패가 사파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 세상에는 수많은 사파들이 있지 않느냐?”
“그, 그렇죠.”
조걸이 정리했던 갈호문만 해도 사파 중 하나였으니까.
“지금 사패련은 그 모든 사파를 모두 자신들의 휘하에 넣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예? 모든 사파를요?”
그제야 사파일통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한 조걸이 크게 당혹했다.
“그게 됩니까? 아무리 그래도…….”
“어려운 일이지. 애초에 사파의 습성이 그러하거든.”
“습성이요?”
조걸이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듯 묻자 홍대광이 혀를 찼다.
“생각해 보게. 저들은 사파란 말일세. 사파! 규율이나 규칙 따위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이들이지. 그런 이들이 다른 이의 밑에 고개를 숙이겠는가? 자네 사파가 왜 정파에 밀린다고 생각하는가?”
“……무공이 약해서요?”
“틀렸네.”
“그럼요?”
“큰 세력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지.”
백천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신주오패는 구파일방에 맞먹는 거대 문파잖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딱 거기까지가 한계일세. 사파는 그 이상으로 커지질 못했어. 그 이상 세력을 확장했을 때 수장의 지배력이 구석구석 미치지 못하면 항상 내분이 나고, 문파가 쪼개졌지.”
“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다들 몇백 년은 된 문파들이란 말일세. 하지만 사파는 거대 문파라 해도 채 백 년을 버티지 못하네. 왜냐면 시일이 지나면 스스로 무너지거든.”
홍대광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그러니 생각해 보게. 사파는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는 게 일상인데, 더 강한 문파에게 진심으로 복속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현종이 고민에 잠겨 있다 침음성을 흘리고는 입을 뗐다.
“홍 분타주.”
“예, 장문인.”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사파들 역시 강한 문파에게 줄을 대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그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릅니다. 화산 인근에도 화산에 줄을 대는 문파들이 있잖습니까.”
“…….”
“……없습니까?”
“그…… 어…….”
그때 청명이 슬쩍 옆구리를 찌르듯 말했다.
“아, 이제 서안에 좀 있잖아요.”
“그, 그렇지! 있네! 있어!”
“…….”
홍대광은 못 할 말을 한 것 같은 기분에 슬쩍 현종의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예……. 그, 어……. 여하튼 줄을 대는 문파가 있다고 해서 윗 문파가 아래 문파에게 일일이 지시할 수는 없습니다. 정파의 개념으로는 속가에게조차 그럴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
“줄을 대는 이유는 그저 이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파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지금 사패련이 말하는 일통은 하위 문파들에게 줄을 대라는 게 아닙니다. 그들을 복속시켜서 수족으로 부리겠다는 거지요. 세상에 넘쳐나는 사파를 사패련의 이름 아래 하나로 모으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홍대광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천하에 사파는 오직 사패련만 남게 되는 겁니다. 사파가 곧 사패련이 되고, 사패련이 곧 사파가 되는 거지요.”
“그, 그게 무슨?”
현종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이제야 이 사도일통의 선언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말인지를 이해한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가능했다면 지금까지 그런 시도를 한 이들이 수두룩하게 있었겠지요. 하지만…….”
홍대광이 말을 망설이자 청명이 대신 말을 이어 받았다.
“지금은 가능하죠, 그 불가능한 일이.”
“으응?”
“사패련이 생기면서 강대한 문파들이 서로 견제를 할 수 없게 됐고, 적당한 시기에 끼어들어 실속을 챙길 정파 놈들도 강남으로 접근하지 못하니까요.”
“으으음……. 그게…….”
“다만.”
청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피식 웃었다.
“내부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역으로 나오시겠다? 아직 칼 맞은 곳이 아물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장일소 이 새끼…….”
청명이 보기에 지금의 장일소는 과식을 한 돼지나 다름없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수로채와 흑귀보, 하오문을 통째로 집어삼키고도 탈이 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니 한동안은 그걸 정리하느라 골머리를 썩을 줄 알았는데, 청명의 예상과는 반대로 움직여 버린 것이다.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으으음.”
청명의 시선을 받은 임소병이 턱을 긁는다.
“사실…… 이건 극단적이긴 하지만, 또 동시에 합리적인 수입니다. 내부에 분란이 있을 때는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게 기본이니까요.”
“그렇죠.”
“만일 이대로 내부 정비에 들어간다면 결국 사패련끼리 권력 싸움을 해야겠지만, 강하든 약하든 칼날을 바깥으로 돌린다면 그동안은 서로를 물어뜯지 못하게 됩니다. 아마 장일소가 노리는 건 그거겠지요.”
청명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그게 전부가 아니겠지.”
“예?”
“사도일통. 이 전쟁은 다름 아닌 사패련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전쟁이야.”
“……그건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다시 말하자면 복속되는 이들도 사패련의 이름으로 복속된다는 거야.”
“아!”
임소병이 그걸 놓쳤다는 듯이 움찔했다.
“그렇군요. 그게 그렇게…….”
둘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한 현종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청명아. 그게 무슨 말이냐.”
“신주오패가 각자 서로의 영역에 있는 사파를 복속시키게 되면 복속된 사파들은 각 문파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죠. 그런데 사패련의 이름을 앞세워 저들을 복속시키면 그들은 사패련의 명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패련주인 장일소의 세력이 된다는 것이냐? 지금부터 휘하에 들어오는 모두가?”
“정확해요.”
청명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미친놈이 딱 지 같은 짓을 해 대고 있는 거죠.”
세상 모든 일에는 단계라는 게 있다. 그 단계를 밟아야 하는 이유는 이를 무시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연합의 형태를 이루었는데 내부 정비를 팽개쳐 두고 배를 불린다? 그것도 아직 자신에게 완전히 굴복했다 볼 수 없는 신주오패의 다른 세력들을 이끌고?
이건 다른 신주오패의 수장들에게 거는 노골적인 도발이나 다름없다.
백천이 굳은 얼굴로 묻는다.
“당연히 반발이 있을 텐데?”
“찍어 누를 자신이 있겠지. 성공한다면 그 이득은 확실하니까.”
신주오패에 속한 문파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다른 사파들을 모조리 끌어모은다면 그 세력을 만만히 여기진 못할 것이다. 아니, 적어도 그 머릿수로는 신주오패를 압도하고도 남을 터.
그렇게만 된다면 흑룡왕, 천면수사, 만금대부까지도 감히 장일소에게 범접할 수 없게 된다.
“실패한다면?”
“죽겠지.”
청명이 낄낄대며 웃었다.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가장 처참하게 죽겠지. 아마 놈도 알고 있을 거야.”
반발하는 중소 사파들을 모조리 짓밟으며 복속시킨다. 그 와중에 언제 그의 등에 칼을 찌르려 들지 모르는 다른 신주오패의 수장들을 견제해야 한다.
이건 지독하리만큼 위험한 외줄타기다.
그런데 전쟁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지금, 장일소는 그 외줄을 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냐?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백천의 물음에 청명이 미간을 찌푸린다.
“……사 할. 아니, 삼 할인가……. 어쩌면 이 할일지도 모르겠네.”
“이 할?”
그 정도면 승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깝다.
“그 장일소인데도?”
무의식적으로 장일소를 높이는 발언을 해 버린 백천이지만 굳이 그 말을 정정할 필요는 없었다.
“장일소나 되니까 이 할까지 쳐주는 거야. 다른 사파 놈 같으면 벌써 목이 잘려 개먹이가 되었겠지.”
오히려 청명이 장일소를 더 높이 평가해 버렸으니까.
“그럼…….”
백천이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과연 이걸 물어야 하는가를 입을 떼는 순간까지도 고민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장일소가 성공하게 된다면. 그러니까, 만약 일통을 이뤄 내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냐?”
“성공하면?”
“그래, 성공하면.”
청명이 어두운 얼굴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겉으로야 사패련이 사도를 일통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만인방이 사파를 모조리 집어삼킨 꼴이 되겠지. 다시 말해…….”
“…….”
“이제껏 단 한 번도 출현한 적이 없었던, 전무후무한 사도 문파가 태어나게 될 거야.”
백천의 등을 타고 소름이 내달렸다.
“그리고 장일소는 역대 최대의 사파 세력을 이끄는 유일한 존재가 되겠지. 강호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장내에 쥐죽은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너무 엄청난 말이라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적막을 뚫고 청명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키득키득 울렸다.
사람들이 아연한 얼굴로 그런 청명을 바라본다.
“미친놈이 딱 미친놈 같은 짓을 저지르는군. 전부 얻지 못할 거라면 갈기갈기 찢겨 죽어도 상관없다 이거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장일소는 참고 또 참아 냈을 것이다.
그 장일소가 지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세상을 모두 집어삼키거나 모조리 불태우기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집어삼킨 것이 과해 배가 터져 죽는다 해도, 스스로 지른 불에 그 자신마저 타 죽는다 해도!
그게 장일소 같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한편 청명을 바라보는 백천의 얼굴은 한없이 굳어 있었다.
모두가 장일소가 벌인 일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지만, 청명만은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그저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궁금하네.”
그때 청명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일소가 정말 사파 전체를 자기 휘하에 둘 수 있을 만한 그릇인지, 아니면 삼키지도 못할 것을 처먹어서 배가 터지고 뒈질 멍청이인지 말이야.”
청명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 너머의 어떤 곳을 향했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청명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청명을 덮쳐 오기 시작했다.
‘이래야 재미있지.’
청명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결과는 마찬가지야. 네가 저지른 실수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내가 증명해 줄 테니까.”
남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먼 곳의 누군가도, 지금쯤 이쪽을 보며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