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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37화 (834/1,567)

837화. 협의지문이 아직도 있었구나. (2)

“낄…….”

“…….”

“낄낄…….”

“…….”

“낄낄낄낄낄낄낄낄낄낄!”

“…….”

“으헤헤헤헤헤! 으헤헤! 꺄르르륵! 꺄륵!”

“…….”

녹림의 일장로가 임소병의 귓가에 조심스레 속삭였다.

“괜찮은 겁니까?”

“……그냥 즐기시게 내버려 둬.”

“…….”

어느새 비단옷을 차려입은 청명이 전신에 값비싼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는 은자를 한가득 끌어안고 있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리다 못해 뒤통수에 가서 붙을 지경이다.

“으헤헤헤! 으헤헤헤헤헤헷!”

이게 다 돈이다.

이게 고작 이틀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돈이야 질릴 정도로 벌어 보았지만, 하루하루 돈이 쌓여 나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현금 장사의 묘미 아니겠는가?

“크으으으으! 역시 장사는 돈 많은 놈들 상대로 해야지!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놈들이 바로 상인들 아니겠어? 으헤헤헤헤헷!”

장강의 상인들은 대체로 돈이 없어서 문제인 이들이 아니라 돈이 돌지 않아 문제인 이들이다.

섬의 통행료를 사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액수로 책정했지만, 강만 건널 수 있으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던 상인들은 군말 없이 돈을 지불했다. 너무 흔쾌히 돈을 내니 통행료를 너무 싸게 책정하지 않았는지 고민까지 될 정도였다.

어쨌든 그 덕에 지금은 말 그대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이 산처럼 쌓이는 상황이었다.

“으헤헤헤! 으헤헤헤헤헤헷!”

자지러지는 청명의 모습을 본 일장로가 고개를 내저었다.

저게 어딜 봐서 도사의 모습인가? 본디 도사란 금전을 멀리하고 선도에 힘써야 하는 법이거늘.

‘돈 귀신이라는 상인들도 저만큼 돈을 좋아하지는 않겠다.’

대체 어디서 저런 도사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크으. 수고했어. 수고했어. 역시 녹림왕이야. 수금 하나는 확실하구만!”

“낄낄. 이게 또 제 전공이죠.”

“역시 믿을 만해! 역시!”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게 다 화산과 도장님의 명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낄낄낄낄.”

“낄낄낄낄.”

도사와 산적이 서로를 칭찬하며 간사하게 웃어젖히고 있다. 누가 봐도 뱃속이 시커먼 놈들이 음모를 꾸미는 모양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지금 부두로 모여드는 상인들은 기껏해야 구강 주변의 상인에 불과합니다. 소문이 더 퍼지면 장강에 있는 상단이란 상단은 모조리 이곳으로 몰려들 겁니다.”

“그렇겠지?”

“그때는 적당히 통행료를 낮춰 줘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벌 수 있을 테고요.”

“부두를 증축해야겠네! 인부도 더 끌어오고.”

“그렇지요! 그렇지요!”

“사람이 더 몰려들 테니까. 섬뿐만 아니라 부두 쪽에서 시설을 확충해야겠고?”

“역시 뭘 아시네, 역시!”

일명 매화도라 명명된 지금 이 섬에는 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상인들이 같이 거하고 있다. 수적의 약탈에 대한 불안이 폭증한 상인들이 부두에서도 도통 마음을 못 놓다 보니, 화산이 지키는 섬 안에서 하루를 묵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섬 안에 포진한 화산 제자들과 섬을 호위하듯 배치된 백뢰포의 모습을 보며, 다들 화산의 위용에 박수를 보냈다.

상인들은 안심하고 짐을 나를 수 있어 좋고, 화산은 돈을 벌어 좋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닌가?

“다만 섬도 섬이지만, 주변을 좀 더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기껏 강을 건너게 해 줬더니, 강 건너에서 약탈을 당한다면 섬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니까요. 문제는 이게 화산과 저희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건데…….”

“그건 괜찮아.”

“예?”

청명의 말을 들은 임소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한동안이야 별문제가 없겠지만, 여기에 계속 계실 생각은 아니시잖습니까? 화산이 빠지면 문제가 생길 텐데요.”

청명이 히죽 웃었다.

“아냐. 문제 될 건 없어. 그놈도 상권이 막히는 건 원치 않을 테니까. 곧 알아서 직접 안정화시킬 거야.”

“아…….”

임소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장일소가 돈줄이 막히는 걸 두고 볼 리가 없다. 다른 사파 놈들이라면 작은 돈에 욕심을 내어 지속적으로 약탈을 해 댈 수도 있지만, 그 장일소라면 돈이 순환해야 더 큰 돈이 된다는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야 돈만 벌면 그만이지. 괜히 장강에 와서 주구장창 개고생만 하다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죽어라고 굴러다닌 보람이 있네!”

청명이 은자를 들고 머리 위로 집어 던졌다. 반짝반짝 비처럼 쏟아지는 은자를 보며 청명의 얼굴이 헤벌쭉 풀어지던 바로 그때였다.

“장문인!”

“아니, 내게 말을 해도…….”

문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여긴 섬서가 아니지 않느냐.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몇 달은 걸린다.”

“그렇게까지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끄응. 그래, 내가 그건 아는데……. 내가 돈 꾸러미를 가져온 것도 아니잖으냐. 딱히 방법이랄 게…….”

벌컥.

곧 문이 열리며 오만상을 찌푸린 현종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오검이 간절한 얼굴로 따랐다. 현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나를 닦달해 봐야 돈이…….”

힘없이 말하던 현종의 눈이 순간 청명의 주변에 수북히 쌓인 은자 더미에 가 꽂혔다.

“……있네?”

“있구먼.”

“쌓여 있네.”

“…….”

은자를 뚫어져라 보는 장문인과 오검의 모습에 청명이 두 눈을 부라렸다.

“하하하. 우리 청명이가 이리 또 돈을 모아 뒀구나. 우리가 돈이 궁한지는 어찌 알고.”

“으…….”

머리털을 바짝 곤두세운 청명이 은자를 쓸어모으고 고개를 저어 가며 저항했지만, 현종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다가올 뿐이었다.

“자자, 착하지. 뒤로 조금 물러나 보거라.”

그리고 오검도 눈치를 살피더니 슬금슬금 청명을 향해 다가왔다.

“아니. 나쁜 데다 쓰려는 게 아니라.”

“지금 장강 주변이 말이 아니거든. 사파 놈들이 날뛰다 보니 주변 양민들이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있어.”

“고깃배 띄워서 연명하던 사람들도 지금 쫄쫄 굶고 있다니까?”

“돈 내놔.”

“조금만 쓸게, 조금만.”

“하아아악!”

청명이 하악질을 했지만 결국 오검과 장문인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잡아!”

“눌러!”

“은자 빼내! 빨리!”

팔다리를 잡힌 청명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저항했다.

“으아아아! 이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아! 너희들이 이러고도 도사냐!”

“좀만 쓰고 돌려준다니까!”

“화산에서 돈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잖아!”

“자자, 가만히 있어!”

“으아아아아! 이 날강도 같은 것들! 으아아!”

청명이 눈물을 쏙 빼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꿰에에에엑!”

정면에서 희희덕대며 청명을 내리누르던 조걸이 뭔가에 걷어차여 날아가더니 벽에 처박혔다.

콰앙!

벽에 박힌 조걸이 아래로 스르륵 흘러내리더니 이내 거품을 물고 경련했다.

“뭐, 뭐야?”

“적이냐?”

“누구?”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오검의 눈앞에 전신에서 새파란 기운을 뿜어내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자, 장로님?”

현영이 귀기를 뿜으며 뿌득뿌득 이를 갈더니 씹어뱉듯 말했다.

“이것들이……!”

“…….”

그의 살기에 완전히 쫄아 버린 오검이 놀라 목을 움츠렸다.

“보자보자 했더니, 이제는 단체로 사제의 돈을 강탈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저, 저희는……!”

무어라 변명해 보려던 오검은 일제히 빠르게 누군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현영이 화났을 때 말릴 수 있는 사람은 현종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건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벽을 보고 서 있는 현종의 뒷모습뿐이었다.

와…….

와아…….

“내가 오늘 너희의 정신머리를 뜯어 고쳐 주마! 이리 와라, 이놈의 자식들!”

“아악, 장로님!”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벽을 보고 서 있던 현종은 말없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하다.’

근데 뭐 별수 없잖니.

허허. 무량수불.

“…….”

단체로 무릎을 꿇은 오검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눈만 슬그머니 치켜떴다.

살기를 뿜어내는 현영과 그 옆에 앉아 당과를 쩝쩝대는 청명의 모습이 보였다. 현영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꺄륵꺄륵 잘도 웃는 청명을 보니 위장이 제멋대로 꼬이고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얄밉다.’

‘우리가 잘못한 건 아는데, 그래도 얄밉다.’

‘한 대만 패고 싶다.’

“팔 똑바로 안 드느냐!”

벼락같이 떨어지는 불호령에 오검이 찔끔하여 팔을 바짝 들어 올렸다.

“이 산 도적 같은 놈들이! 이제는 남의 돈을 제 것처럼 써 대려 하는구나! 그래도 명색이 도사라는 놈들이!”

구석에서 눈치를 보던 산 도적 둘, 임소병과 일장로가 괜히 찔끔해서 목을 움츠렸다. 그들도 어디 가서 주눅이 들 만한 사람들이 아니지만, 천하의 화산오검을 개 패듯 패고, 화산 장문인을 말 몇 마디로 침묵시키는 사람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그…… 저희가 쓰려고 한 게 아니고요.”

“돈이 너무 급한데, 화산에서 곡식이랑 돈을 가져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아니, 그래도 이놈들이!”

현영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자 오검의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도인이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시켜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게 어디 너희 돈이더냐?”

“…….”

“배곯는 사람을 위하는 건 좋다! 하지만 멀쩡한 사람의 돈을 훔쳐 구휼을 하면 그게 어찌 정당한 일이더냐! 돈이 급하면 나가서 돈을 벌든, 빌리든 해야지! 어디 남의 돈을 강탈해서 생색을 내려고 해!”

“자, 잘못했습니다.”

오검이 너무 욕을 얻어먹으니 내심 찔렸던 현종이 넌지시 입을 뗐다.

“현영아……. 그게 뭐 꼭 나쁜 뜻으로 한 일은…….”

“장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

“이게 화산 돈입니까? 화산이 여기서 뭘 했다고 이 돈을 가져다 씁니까! 계획은 청명이가 다 세우고, 일은 녹림이 다 했는데! 전각은 당가가 다 세웠고!”

“그, 그렇긴 한데, 그래도 상황이라는 게…….”

“일 다 끝나고 느릿느릿 와서 구경이나 한 게 다인 양반이! 뭘 했다고 제자 돈을 제 것인 양 쓰려고 듭니까! 화산 문하 돈은 다 장문인 겁니까? 왜? 그럼 아예 내 돈도 다 가져가시지? 예?”

“그,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저, 정말이다!”

“그럼 뭐요? 멀리 갈 게 뭐가 있습니까, 그게 강도짓이지! 어디 화산 장문인이라는 양반이 제자 돈을 강탈해서 면을 세우려고 합니까! 이게 도문입니까? 이게 도문이야? 이 사파 같은 것들이!”

급기야 현영이 도로 눈을 까뒤집자 현종이 슬그머니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돈이라고는 한 푼도 못 벌어 오는, 순 밥버러지 같은 것들이! 안 그래도 지들이 부자인 줄 알고 남이 벌어 온 돈 펑펑 써 대는 꼴 보는 것도 속이 뒤집어졌는데! 뭐? 이젠 풀뿌리나 벗겨 먹고 살아야 하는 팔자 고쳐 준 사람 돈을 뺏으려고 들어? 배은망덕도 정도가 있지!”

“헤헤. 장로님,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사형과 사숙이고, 그래도 장문인인데.”

청명의 말 한마디에 현영의 까뒤집혔던 눈이 급격히 온화한 빛을 띠었다. 그는 격하게 청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아이구! 아이구, 우리 청명이! 마음씨도 곱지. 어떻게 이리 착할까. 어떻게 이렇게, 응?”

“에헤헤헷! 에헤헷!”

백천은 맹세컨대, 망설임 없이 단언할 수 있었다.

중원에 사람이 모래알처럼 많지만, 저 망할 마귀 놈을 두고 착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현영 장로 단 한 명뿐이라고.

“한 번만 더 애 돈에 손대려고 하면 다들 남은 평생 피죽만 먹고 살 줄 아십쇼! 아셨습니까?”

“……예.”

천우맹의 맹주이자 화산의 장문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한쪽 손을 들었다.

“저기 그런데…… 현영, 아니……. 재경각주님.”

“뭡니까?”

“……지금 정말 돈이 급해서 그러는데,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돈이 급하면 빌려야지! 정당하게 이자 내고 빌리십쇼!”

“이, 이자?”

현종이 떨떠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현영을 보다가 슬그머니 청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청명아. 내가 돈이 급히 필요해서 그러는데, 정말로 곧 갚아 줄 수 있다. 그 전에 잠깐만 돈 좀 융통하려 하는데, 이자는 얼마나…….”

“아, 이자요?”

“그, 그래. 이자.”

“아아아, 이자?”

청명이 촵촵 맛깔나게 씹던 당과를 꿀떡 삼키고 빙긋 웃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데요?”

“…….”

인생이란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는 현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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