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5화. 그건 너희 대가리한테 가서 따지시고. (5)
“여기인 것 같은데요, 행수님?”
“그, 그래 보이지?”
수레를 끌고 온 이들이 말 등을 두드리며 세웠다. 눈앞에 커다란 부두와 수많은 인파가 펼쳐져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습니까?”
“그, 그러게?”
짐이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러고도 뒤로 줄 세워진 수레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다.
지금 장강에 배를 띄우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런데 오로지 이곳만은 안전하게 배를 띄울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장강에 배를 띄워야 하는 상단들은 모조리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의미다.
“……장강에 상단이 이렇게 많았을 줄이야.”
“평소에는 이렇게 몰려 있는 걸 볼 일이 없으니까요.”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행수가 긴장한 낯으로 앞을 응시했다.
“여하튼 조심하도록 하게, 이곳은 일반적인 부두가 아닐세. 바로 저 화산과 천우맹이 운영하는 곳이 아닌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바로 험한 꼴을 보게 될 걸세.”
“정파 분들인데 설마 그렇기야 하려고요.”
“모르는 소리!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니 하는 이들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행수는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인들이 고관대작보다 더 대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바로 명문정파일세. 정파라는 말만 믿고 마음을 풀었다가 낭패를 본 게 한둘이 아닐세. 그러니 절대 긴장 풀지 말고, 드높은 고관을 대한다고 생각하게나.”
“명심하겠습니다.”
“……가세나.”
마른침을 삼킨 행수는 상단을 이끌고 부두로 다가갔다.
‘그런데 누구한테 이야기를 해야 하지?’
생전 처음 보는 체계다 보니 그도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주변이 하도 정신이 없으니 더 그랬다.
연신 두리번거리던 행수의 눈길이 중앙 쪽에 있는 한 서생에게 닿았다. 커다란 책자를 들고 있는 모양새가 남들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저긴가?’
행수는 슬그머니 서생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저기…… 여, 여기에서 배를 타면 됩니까?”
획!
그러자 서생이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더니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
“얘들아, 물! 시원한 물이랑 물수건 가져와라! 당장!”
“옙!”
서생의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이들이 부리나케 달려가 궤짝을 열더니 얼음물 속에 담가 두었던 물과 차갑게 식혀 둔 수건을 꺼내 달려왔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자자! 여기.”
행수는 얼떨결에 그들이 내미는 것을 받아 들었다. 손에 차가운 호리병을 쥐니 이곳까지 온 노고가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처음 오셨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상단주님께서 여기서 배를 타면 된다고 하셔서…….”
“아, 그렇습니까? 혹시 어느 상단이신지?”
“저희는 환호상단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환호상단?”
서생이 손에 든 명부를 촤라락 넘겼다.
“어디 보자, 환호상단, 환호상단……. 아! 여기 있군. 미시 초에 예약! 미시 초면 이번 배로군! 얘들아! 손님 받아라!”
“예에에에엡!”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락부락한 장한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수레에 실린 짐들을 배 위로 들어 나르기 시작했다.
“허, 허억……? 저 무거운 걸 저리 번쩍번쩍?”
상단에는 기본적으로 짐을 나르는 게 일상인 이들이 모여 있다. 그럼에도 몰려온 장한들이 짐을 나르는 모습에는 신기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어지간한 장정도 끙끙대며 들어야 할 무거운 짐을 저들은 두세 개씩 휙휙 들어 나르고 있다.
그 모습만 봐도 범상치 않단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힘이 좋으…….”
“날라! 빨리 날라!”
“뛰라고, 이 새끼들아!”
“늦으면 다 죽는다! 날라!”
“…….”
상인들은 악을 쓰며 죽기 살기로 짐을 나르는 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굳이 저렇게까지 한다고?’
짐을 나르는 모양새가 상인들보다도 배는 더 필사적이다. 인부들이란 기본적으로 어떻게든 일을 조금이라도 쉽게 하려고 애쓰는 이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 괴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서생은 그조차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이놈들이 피죽만 퍼먹었나? 빨리빨리 나르라고! 오늘 내로 이 짐들 다 못 나르면 나도 죽고 너희도 죽는 거야! 그 양반 성질 알아, 몰라?”
“끄으으응.”
그 말에 인부들이 앓는 소리를 내더니 더 속도를 붙였다.
“날라! 빨리 날라!”
“아니! 이 배는 더 못 실어! 더 실으면 가라앉는다고!”
“그럼 빨리 다음 배 대라고 해! 수적 새끼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빨리빨리 배 안 빼고!”
“거기! 거기 더 올리지 말라고!”
악착같이 짐을 나르는 인부들의 모습을 보던 행수는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훔쳤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지?’
바로 그때였다.
“관홍이 아닌가?”
“응?”
익숙한 목소리에 행수가 옆을 돌아보았다.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오? 이몽 형님!”
“자네도 여기로 왔는가? 하기야 지금 장강에서 벌어먹고 산다는 이들 중에는 여기로 오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
“예, 형님. 형님도 와 계셨군요.”
이몽이라 불린 상인이 다가와 껄껄 웃었다.
“정신없겠구먼.”
“예. 도통 뭐가 뭔지…….”
“곧 익숙해질 걸세. 나도 이제야 겨우 적응했으니까.”
이몽이 주위를 쭉 둘러보더니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역시 화산은 화산이네요. 대체 언제 이런 부두를 만들고, 어디서 이런 인부들을 구했는지. 보아하니 도사들 같지는 않은데…….”
“응? 자네 모르는가?”
“예?”
“저기 보게, 저기.”
이몽은 앞쪽에서 짐을 나르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를 조심스레 가리켰다. 행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분이 왜?”
“유심히 잘 좀 보게. 자네가 저이를 모를 리가 없으니.”
“예?”
잠시간 눈을 끔뻑이며 사내를 보던 행수가 순간 움찔했다.
“저, 저……. 설마?”
“맞네. 태평대도(太平大刀)일세.”
“저,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태평대도.
구강 위쪽의 태평산맥에 위치한 청림채(靑林砦)의 유명한 산적이다. 어마어마한 신력과 포악한 성정으로 이 구강 일대의 상인들 중에서는 그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행수 역시 몇 번 그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저 태평대도의 악명 때문에 태평산에서는 다른 산보다 더 많은 통행료를 내야 했다.
그만큼 괴물 같은 신력으로 유명한 이건만.
“끄으으응!”
그 태평대도가 짐을 나르며 끙끙대자 지나가던 이가 그의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아악!”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빨리 날라, 이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행수 유관홍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이, 이게 무슨…….”
저 태평대도가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사과까지 하고 있다. 그럼 대체 저들은 뭐 하는 이라는 말인가?
“다들 녹림에서 오신 분들 같더구먼.”
“이, 이 인부들이요? 전부?”
“그렇다니까.”
“…….”
유관홍의 전신이 식은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상단의 짐을 나르는 산적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게 낫지.
“괘, 괜찮은 겁니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일은 아닐세. 보게나. 지금 이곳을 가장 노리고 있는 이들이 누구겠나? 수적들 아닌가?”
“그렇지요.”
“그런 수적들에게 맞서려면 산적 정도는 돼야지. 녹림도가 이리 우글대는 곳에 수적들이 쉽게 올 수 있겠는가?”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산적인데…….”
“쯧쯧. 별걱정을 다 하는군. 저길 보게.”
“예?”
유관홍은 이몽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그 위로는 삐뚤삐뚤한 필체로 무언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저게 뭘 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글귀를 읽은 유관홍이 입을 쩌억 벌렸다.
이제는 놀랄 기운도 없다.
“……저게 뭡니까?”
“그 화산신룡이 직접 적고 간 글귀라더군. 산적들이 아무리 간이 커도 화산에 대항할 수야 있겠나?”
“…….”
유관홍은 문득 현기증이 일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가 아는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도사가 만든 부두에서 산적들이 일을 한다. 심지어 그 도사는 산적들을 세상에서 가장 잘 때려잡는 것으로 유명한 화산 사람이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생각하려 하지 말자. 어차피 돈만 벌면 그만이다.
“자네 짐이 다 실린 모양이군.”
“버, 벌써요?”
선적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걸리는 게 보통이다. 배 하나를 가득 채우려면 숙련된 인부를 있는 대로 다 동원해도 하루가 꼬박 걸린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다. 배에 짐이 쌓이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다. 어린아이가 장난감 나무토막을 마구잡이로 쌓아 올려도 저보다 빠르게는 못 할 것이다.
“그럼 섬에 가서 보세.”
“건너편이 아니라 말입니까?”
“쯧쯧. 이 사람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왔구먼. 이곳에서는 섬을 통해 이동하게 되어 있네. 괜히 짐을 싣고 물길로 가다가 수적이라도 만나면 골치 아프다고 일부러 그렇게 해 놓았다는구먼.”
“하지만 그래서는 선적와 하역을 두 번 반복해야 하지 않습니까?”
“뭔 상관인가? 우리가 하는 것도 아닌데.”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
“물론 뱃삯을 두 번 내야 하지만, 물건만 옮길 수 있으면 뱃삯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여하튼 나는 지금 가야 하니 이따 보세나.”
“예, 형님.”
배 쪽으로 바삐 향하는 이몽을 보며 유관홍은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그때 이쪽저쪽 분주하게 지시를 해 대던 서생이 쪼르르 달려온다.
“환호상단의 행수님이시지요? 선적이 다 끝났습니다. 배에 오르시면 바로 섬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서, 섬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걱정 마십시오. 하역은 모두 해 드립니다. 다만 가져오신 수레는 배에 실으실 수 없으니, 그곳에서 수레를 빌려 건너편으로 짐을 옮기시기 바랍니다.”
“아, 수레를…….”
“한 대당 한 냥입니다.”
“…….”
서생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시간이 이를 땐 상관이 없지만, 만일 늦은 시간에 섬에 도착할 때는 섬에서 하루 주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요즘 사파 놈들이 워낙 난리라서 밤에 이동하시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섬에 여러분이 기거하실 수 있도록 숙소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이런 감사할 때가…….”
“방 하나당 다섯 냥입니다.”
“…….”
“물론 식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건 얼만데요?”
“하하하핫. 식사야 원하는 대로 드시면 될 일이지요.”
“…….”
분명 그 식사도 절대 싸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그,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예, 얼마든지요.”
“저기에 지금 뭘 짓고 있는 것 같은데, 저건 뭡니까?”
“아아.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몰려서 대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쉴 수 있도록 숙소를 만드는 중입니다.”
“아. 그럼 확실히 편해지겠…….”
“거기에 간단히 식사를 하실 수 있는 음식점과 차를 즐기실 수 있는 다관, 술을 드실 주루와 심심풀이를 할 수 있는 도박장까지 들어설 겁니다.”
“…….”
“아무쪼록 자주! 자주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예.”
“그럼 저는 이만.”
사람 좋게 웃은 서생이 몸을 돌리며 우렁차게 외쳤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이놈들아! 손님들 기다리신다아아아!”
뛰어가는 발걸음에 흥이 넘쳤다. 유관홍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여기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구나.’
제법 오래 살고 돌아다니며 숱하게 많은 걸 봐 왔는데도, 세상일이란 언제나 그의 상식을 뛰어넘는 모양이었다.
인부들이 금품을 요구하거나 불필요한 대가를 바랄 시 즉시 신고 바람. 해당 인부의 뼈와 살을 분리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