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화. 그건 너희 대가리한테 가서 따지시고. (4)
수적들이 날뛸수록 장강의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졌다.
곳곳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과 모든 재물을 빼앗기는 이들이 속출하니 이 악물고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지쳐 버린 이들이 관에 가서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건 황궁에 토벌을 의뢰하겠다는 형식적인 대답뿐이었다.
애초에 관의 행정력은 장강에 미치지 못한다. 이 너른 강 곳곳에 숨어 있는 수적들을 찾아내어 처리할 능력이 있었다면 진즉에 그리했을 것이다.
게다가 마적들이야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세수를 줄이니 어떻게든 잡아 내야 하지만, 수적들은 양곡에 손을 댈 일이 없으니, 마적처럼 급히 처리해야 할 것도 아니다.
수적들 역시 생각이라는 걸 하니, 관이 운송하는 물품은 철저할 만큼 손대지 않았다.
그러니 관에서도 딱히 급하게 손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답답함에 땅을 치던 이들은 이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아닌 장강에 인접한 중소 문파들을 찾아가 읍소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난색을 표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 저희는 수전을 치러 본 경험이 없습니다. 괜히 나서 봐야 방해만 될 것입니다.
- 인근 마을이야 저희가 어떻게든 보호를 해 보겠지만…….
- 저 구파도 어쩔 수 없는 걸 저희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국 양민들은 힘없이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구파와 오대세가도 포기한 일을 그들이 어찌하겠냐는 말이 가장 절망적이었다.
장강을 오가는 상가들이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라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기껏해야 호위를 고용하고 상선 주변에 호위선을 배치하는 정도일 텐데……. 돈 몇 푼으로 구할 수 있는 호위가 신주오패 중 하나였던 수로채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러는 와중에도 피해는 점점 늘어만 가고, 답답한 마음에 모두가 입을 모아 구파와 오대세가를 성토하는 와중에 괴이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구강 주변에는 수적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 화산을 중심으로 한 천우맹이 구강에 자리를 잡았다. 수로채의 수적들이 구강 주변에서 노략질을 하다가 화산에 손에 걸려 개작살이 났다.
- 화산을 위시로 한 천우맹이 구강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선포하고 구강을 오가는 상선들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소식을 들은 상인들은 크게 술렁였다.
삼삼오오 부두에 모여든 이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가며 상황을 파악했다.
“아니, 정파는 장강에 오지 못하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조약을 맺었다고 했잖아?”
“아니지, 아니지! 정파가 못 오는 게 아니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못 오는 거지! 천우맹과 화산은 구파일방도 오대세가도 아니잖은가?”
“그, 그러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구파와 오대세가의 선택에 너무 큰 충격을 받는 바람에 천우맹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이들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 그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괜찮을까? 천우맹이 구파나 오대세가보다 대단한 곳은 아니잖은가? 사패련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꼭 그렇게 생각할 일만은 아니네. 애초에 저 수적 놈들을 토벌하기 시작했던 곳이 바로 화산 아닌가?”
“그, 그렇지!”
상인 중 하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벌어진 일들이 워낙 대단해서 잊힌 것이지,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은 화산이 대경채를 치면서 시작된 것이다.
“화산이 수로채를 두려워했다면 애초에 그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겠지. 벌써 구강 주변에 접근했던 수적 놈들이 모조리 박살이 났다고 하지 않는가? 화산이 직접 배를 몰고 다니면서 단속을 하고 있다네.”
“그럼 수, 수로채는? 수로채는 별 반응이 없고?”
“그런 모양일세.”
“그게 말이 되는가?”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닐세. 이번 전쟁에서 제일 큰 피해를 입었던 곳이 바로 수로채 아닌가?”
“그야 그렇지. 수채들이 수도 없이 무너졌으니까.”
“아마도 지금 수로채도 화산을 상대할 만한 여력이 없을 걸세. 그리고 애초에 화산은 수로채를 두려워하지 않던 문파 아니었나. 원래도 상대할 자신이 있던 곳이 약해지기까지 했는데 뭐가 겁이 나겠는가?”
“세상에……. 화산이 그리 강한 문파였나? 그 수로채를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최근에는 화산의 이름이 소림이나 무당보다 더 많이 들렸잖은가. 아무래도 우리가 화산을 과소평가했던 모양이지.”
또 누군가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소식이 진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구강에 상로가 열렸다는 것이다. 지금 장강의 상인들은 배를 띄우지 못해 하루하루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그럼 어쨌거나 화산이 버텨 주는 동안에는 구강의 상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겠지.”
“자, 잠시만……. 그…게 의미가 있나? 수적들이 장강을 장악하고 있으니 여기서는 배를 띄울 수가 없는데, 구강까지 어찌어찌 물품을 옮겨 봐야 어차피 운송할 배가 없지 않나?”
“그게 그렇지 않다더군. 화산이 구강에다 장강을 넘는 다리를 놓았다고 하네.”
“다, 다리? 장강에?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이 넓은 장강에 다리를 놓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아니. 들어 보게. 장강 중앙에 있는 섬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부두를 빼 놓았다고 하네. 물건만 가져가면 그곳에 있는 배에 실어서 옮겨 준다고 하는군.”
“저, 정말인가?”
“그렇다니까. 다만 섬에서는 통행료를 받는다고 하던데? 상로를 지키는 데 막대한 자금이 든다고.”
“야, 이 사람아! 지금 통행료가 문제인가! 창고에서 물품들이 썩어 가고 있는데, 그거 어차피 배를 못 띄우면 다 버려야 하는 것들일세! 구강…… 구강이라고 했지? 내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상단에 알려야겠어!”
상인들을 중심으로 소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퍼져 나갔다.
수적들 때문에 배를 띄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이들에게 이 소식은 한 줄기 광명과도 같았다. 소식을 들은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구강으로 달려갔다.
“지, 진짜구나!”
구강에 도착한 이들이 본 것은 이전과는 지형 자체가 바뀌어 버린 강어귀와 그 강 주변에 정박된 수십 척의 상선이었다.
“이, 이보시오. 말씀 좀 묻겠소.”
배를 정비하고 있던 녹림도가 고개를 돌려 달려온 상인들을 바라보았다.
“뭐냐……. 아니, 그…… 어, 무슨 일이십니까?”
험상궂게 답하려던 이가 돌연 양손을 모으며 공손하게 답하자 상인들의 반응이 살짝 떨떠름했다. 그때 상인 중 하나가 재빨리 입을 뗐다.
“그…… 화산이 이곳에서 물품을 강 건너로 옮겨 준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화산이 아니라 천우맹이오, 천우맹!”
“예! 예! 천우맹이요. 혹시 그 말이 사실인지?”
“당연히 사실이지. 그럼 이 배들이 다 뭐 하는 것들 같소? 대신에 섬에 물건을 내려주면 반대편으로 옮기는 건 그쪽들이 해야 하오. 물론 수레는 빌려주지. 돈은 받지만.”
상인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사, 사실이라시는데?”
“잠시만, 그럼 뱃삯도 두 번 내야 하고, 수레를 쓰는 데도 돈을 내야 한다는 말 아닌가?”
“그게 뭐 어쨌는데? 그럼 수적 만나서 죄다 탈탈 털리시든가!”
“누가 잘못됐다고 했는가? 이, 이보오! 이 배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녹림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옮겨 줄 테니 오시오. 배도 빌려드리고, 원한다면 짐꾼도 빌려드리니까. 자세한 가격 흥정은 저쪽에서 하시고.”
“저쪽?”
상인들의 시선이 빛살처럼 돌아갔다.
과연 배들이 줄지어 정박된 선착장 앞쪽에 조그마한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지어져 있었다.
그 순간 상인들의 눈에 광기가 스쳤다.
“비, 비키게!”
“나와, 이 새끼야!”
“내가 먼저다!”
상인들이 앞다투어 선착장의 예매소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서로 엉키며 내달리는 상인들을 보며 녹림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이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세상일은 정말 알 수가 없다.
* * *
촤아아아아악!
배가 물살을 가르며 섬으로 접근했다.
“저, 저기 오신다!”
“움직여! 빨리!”
그 모습을 본 수적들이 기겁을 하며 물가로 달려 나갔다.
텅!
선착장에 배가 서고, 그 배에서 한 사람이 뛰어내리자 일렬로 도열한 수적들이 즉시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오셨습니까, 대형!”
“대혀엉?”
세상에서 제일 심술궂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 하나같이 목을 바짝 움츠렸다.
“하……. 하하하…….”
수적들 중 하나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이제 한 식구도 되었으니까…….”
“한 식구우우우?”
“…….”
청명이 눈을 희번덕대며 빈정거렸다.
“세상 조오오아졌다, 응? 수적 새끼가 도사랑 식구도 먹고? 어?”
‘저 나쁜 새끼.’
‘대접을 해 줘도 지랄이야.’
하지만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저 인간이 더럽게 세고 성격이 쑥대밭이라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세고 물불을 안 가리는 인간일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설마 패군이랑 맞붙는 인간일 줄이야.’
‘목숨이라도 건진 게 다행이지.’
‘소름 돋네, 진짜.’
청명이 광기 어린 눈으로 수적들을 훑어보았다.
“얘들아.”
“예!”
그래도 우렁찬 대답은 흡족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라는 건 나름의 가치가 있어요.”
“예!”
“근데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잖아. 어디 수적 새끼들이 사람 취급을 받으려고 해. 그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아, 안 됩니다!”
“그래, 잘 아네. 그러니까 팔이 부러져라 일해. 제대로 일 안 하고 노는 새끼 있으면 사지 묶어서 물에 던져 버릴 테니까. 그렇게 수공을 잘한다면 팔다리 묶여도 살아남겠지. 그치?”
“…….”
“왜 대답이 없어?”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좋아.”
청명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배에서 내리던 조걸이 그 꼴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너무 잘 어울리는데.”
“천직이지, 천직.”
“아까 배 들이받을 때도 혼자 신나서 날뛰던데, 이 기회에 전업이라도 시켜 줘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불한당.”
오검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섬을 한차례 훑어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눈에 담았다.
“거기! 거기 기둥 똑바로 세워!”
“자재가 부족하잖아! 운송선은 멀었어?”
“지, 지금 최선을 다해 나르고 있습니다요. 하지만 이게 배로 나르는 거다 보니…….”
“좀 더 서두르게!”
“예!”
섬 한중간에 커다란 전각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건축을 진두지휘하는 이들은 당연하게도 당가의 식솔들이었다.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숙부님들을 모셔 오는 건데.”
“싸우러 오는 줄 알았는데, 그분들을 모셔 올 수는 없었지. 그리고 뭐 그렇게 대단한 걸 짓는 것도 아니잖으냐.”
“그래도 아쉽잖습니까. 거기! 아니, 거길 그렇게 대면 안 된다니까! 비켜 봐!”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당가의 식솔들을 보며 백천이 살짝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상황이 달라졌으니까요. 청명이 놈이 그랬잖습니까. 구강뿐만 아니라 인근의 상인들도 모조리 몰려들 것이라고요. 그럼 당연히 증축을 해야죠. 도로도 더 닦아야 하고.”
조걸의 말에 백천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역설적이게도 장강 전체에 난리가 난 것이 화산에게는 더 도움이 되고 있었다. 수적들이 거칠게 날뛰면 날뛸수록 안전한 상로를 찾는 상인들이 구강으로 몰려들 테니까.
청명이 수적들을 향해 턱짓하며 물었다.
“그래. 손님은 좀 왔어?”
“지, 지금 건너편으로 끝도 없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녹림왕께서 곧 장사를 시작하신다고.”
“걘 어디 있는데?”
“손님 받고 계신데요? 그게 천직이시라고.”
“…….”
어……. 그치 산적이 원래 손님 받는 직업이긴 하지.
근데 그거 좀 의미가 다른 것 같은데…….
‘모르겠다. 일만 잘하면 되겠지.’
청명은 복잡한 생각일랑 치우고 저 건너 강가에 정박된 상선들을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돈은 돈이지. 이제 싹 끌어모아 보자고! 낄낄낄낄!”
구파 새끼들 엿도 먹이고, 돈도 벌고, 그 와중에 수적 새끼들도 때려잡고. 이게 바로 도랑 치고 가재…….
아……. 가재는 먹을 게 없어서 별론데.
잉어는 못 잡나?
에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