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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30화 (827/1,567)

830화. 다른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5)

그러니까…….

청명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두 눈을 멍하니 끔뻑였다.

‘다시 일어나야 하는데…….’

슬쩍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려 했다. 하지만 머리가 침상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를 꽉 매어 놓은 단단한 동아줄 때문이다.

패앵.

거의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조여진 동아줄이 머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

청명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아주 살짝 움직였다. 침상 옆에 서 있다가 그의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게 된 윤종이 움찔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흠.”

작게 헛기침을 한 윤종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저…… 소소야.”

“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뭐요?”

“……아니, 나는 그냥…….”

당소소의 이마에 시퍼런 핏대가 살기등등하게 섰다.

“이 인간들은 진짜 사람 몸이 무슨 수레쯤 되는 줄 아나? 적당히 굴리다가 새 바퀴로 갈아 끼우면 다시 잘 나갈 줄 알아? 왜? 진짜 갈아 끼우게 해 드려?”

“……아니요. 절대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소소가 내뿜는 살기에 윤종이 얼른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평소 당소소는 생글생글 잘 웃어서 인상이 퍽 좋아 보이지만, 환자가 걸렸다 하면 눈빛으로도 사람을 잡을 것처럼 살기를 내뿜는다.

‘아니, 생각해 보면 거꾸로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환자를 웃음과 자비로 돌봐야…….’

그때 당소소가 고개를 획 돌려 청명을 노려보았다. 굵은 동아줄로 칭칭 묶인 채 침상에 꼼짝없이 붙들린 청명의 꼴을 보며 그녀는 이를 박박 갈았다.

“몸뚱이가 걸레짝이 됐으면 얌전히 치료나 받을 것이지! 그새를 못 참고 기어 나가?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어?”

“내가 사형이야…….”

“나도 알아!”

예.

아신다면 다행입니다.

“아니! 대체 이 인간은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남들 같으면 열 번은 더 죽었을 상처를 입고도 눈 뜨자마자 술을 찾으러 나가냐고!”

“술 찾으러 간 거 아닌…….”

“닥쳐요!”

“……네.”

청명이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왠지 옛 생각이 났다.

- 아니, 다쳤으면 치료를 하라고, 이 양반아! 이리 와 보쇼!

- 저리 꺼져. 돌팔이 주제에.

- 돌팔이? 이 양반이 대 사천당가 장로를 뭐로 보고! 내가 의원을 차렸으면 떼돈을 벌었을 사람이에요! 잔말 말고 이리 오라니까. 아니, 그 술 작작 처먹으라고! 소독하려고 가지고 온 거라고!

‘당보야…….’

나 아직도 이리 산다.

너희 집안은 왜 항상 날 이렇게 못살게 구냐…….

보통 무인이란 놈들은 칼을 맞고 피가 철철 흘러도, 대충 진흙 바르면 낫는다고 쓱쓱 문질러 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저 당가 놈들만은 예외라 몸에 생채기만 나도 사람이 죽는다고 저렇게 악을 써 댄다.

예전에도 사람을 죽어라 귀찮게 굴더니, 이젠 아예 대를 이어서…….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구원처럼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음?”

당군악이었다. 그는 침상에 묶인 청명의 꼴을 보더니 얼굴을 왈칵 찌푸렸다.

“아이고, 당가주님!”

청명이 구조를 요청하는 듯 소리치자 당군악의 눈이 스산해졌다.

“누가 이랬느냐?”

그 차가운 목소리에 당소소가 찔끔하여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아버지가 청명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피 섞인 아들들에게도 청명에게 보였던 만큼의 호의는 건넨 적 없던 사람이 당군악이다. 그런 그의 눈에 청명의 사제인 당소소가 청명을 장난스레 묶어 놓은 꼴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아무리 가장 아끼는 딸이라 해도 말이다.

“제, 제가…….”

“네가?”

“……예.”

당소소가 어깨를 움츠렸다.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던 당군악이 차게 일갈했다.

“내 너를 그리 가르쳤더냐?”

“죄송해요. 사형이 워낙 말을 안 들어서.”

“화산신룡을 밧줄로 묶어 놓다니! 세상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면 뭐라 하겠느냐?”

혀를 찬 당군악이 뒷짐 진 손으로 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밀었다.

“저런 걸로 될 리가 있느냐.”

“…….”

그의 손에 들린 건 쇠줄이었다. 순간 당소소의 얼굴이 멍해졌다.

“특수하게 제작한 쇠줄이니 부상자 정도는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다시 묶어라.”

“…….”

“어서.”

“네.”

당소소가 재빨리 당군악이 내민 쇠줄을 받아 들었다. 청명은 멍한 눈으로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당군악은 혀를 차며 나지막이 말했다.

“여하튼 무인이란 것들은……. 제 몸뚱이가 대충 고쳐 쓰면 되는 건 줄 알지!”

청명의 두 눈에서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망할 당가 새끼들.’

대대로 난리네. 대대로…….

아니, 저 말이 가훈이라도 되나? 뭔 백 년이 지나도 똑같은 말을 해?

“흐음.”

당군악이 청명에게로 다가오더니 이곳저곳을 살폈다.

“내출혈이 있는 곳은 침만으로 잡기는 어렵다. 약재를 함께 쓰도록 해라.”

“저 양반이 쓰다고 잘 안 먹어요.”

“……강제로 부어라.”

“예!”

청명이 고개를 억지로 돌리며 백천을 바라보았다.

“동룡아.”

“왜, 인마.”

“가서 장문인 좀 모셔 와. 당가가 화산 제자를 핍박한다고 좀…….”

“박수 치실 것 같은데?”

멎었던 눈물이 다시 청명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내 편이 없네. 내 편이 없어.’

장문사형.

저 옛날이 그립습…….

- 옛날에도 똑같았어, 이 새끼야. 네가 똑같은데.

“…….”

아 외롭다. 더럽게 외롭네.

그때 당군악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물어왔다.

“몸은 좀 어떤가?”

“보고도 모르세요?”

“좋아 보이는군.”

“……근데 이 양반이?”

청명의 몸이 들썩거렸다.

“불편한 건 없고?”

“아, 없어 보이냐고!”

“없는 것 같군.”

“……내 말이 안 들리나?”

속에서 천불이 난단 얼굴로 당군악을 흘기던 청명이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밥 먹는 게 너무 불편한데, 밥 먹을 때만이라도 좀 풀어 달라고 해 주세요.”

“음, 하긴 그렇겠군.”

당군악이 당소소를 보며 말했다.

“식사는?”

“제때 먹이고 있어요.”

“밥을 먹는다는 말이로군. 지금부터 미음으로 바꿔라. 환자에게 화식(火食)은 좋지 않다. 삼시 세끼 미음만 주도록 해라.”

“…….”

청명은 서러운 마음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장문사형.

……외롭습니다.

- 낄낄낄낄.

야, 이 망할 인간아!

웃지 마!

* * *

어떤 소문은 폭풍보다도 더 빠르다.

“점소이! 여기 화주 한 병 더 주게.”

“예! 지금 가져갑니다요!”

객잔에 둘러앉은 이들이 술병에 남은 마지막 술을 따를 때였다.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더니 땀에 젖은 사내 하나가 다급하게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섰다.

“여길세. 여기! 뭘 그렇게 급하게 오는가?”

“시켜 놓은 술을 우리가 죄다 먹어 버릴까 봐 겁을 집어먹은 모양인데?”

왁자지껄 웃음이 터졌다. 저를 부르는 소리에 두리번거리던 사내는 후다닥 달려와 다짜고짜 외쳤다.

“그, 그 이야기 들었는가?”

“무슨 이야기?”

“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사파 놈들과 불침 조약을 맺었다네!”

그 말을 들은 이들이 피식 웃어 버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앉게. 새로 한 병 시켜 놓았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니까!”

“알았네. 알았어.”

“지금 밖에는 난리가 났네! 구파와 오대세가가 앞으로 삼 년간 장강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지 않은가!”

외치는 이의 얼굴이 워낙 창백하니 듣던 이들의 얼굴도 점점 굳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가 혀를 찼다.

“쯧쯧. 농담도 정도껏 좀 하게. 구파와 오대세가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 사파 놈들과 조약을 맺는단 말인가?”

“그, 그냥 사파가 아닐세. 신주오패가 하나로 뭉쳐서 사패련이라는 새로운 세력을 만들었다네!”

“사패련?”

“그렇다니까! 장강으로 갔던 소림과 무당이 사패련의 공격을 당해 내지 못하고 화의를 맺었다더구먼!”

“……사파 놈들이 하나로 뭉쳤다고?”

“그렇다니까!”

“에이, 말도 안 되네. 아무리 사파 놈들이 한곳에 모였다고 한들, 소림과 무당이 사파와 화의라니! 이 사람 큰일이 날 소리를!”

사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제 가슴을 쳤다.

“못 믿겠거든 나가 보게! 밖은 지금 난리도 아니란 말일세! 온 세상이 지금 그 일 때문에 난리가 났네!”

“……뭔 말도 안 되는…….”

모두가 점점 말을 잃었다.

저 절박한 얼굴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믿을 수는 없었다.

정파와 사파가 화의를 맺는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없다. 애초에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기에 정과 사가 나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그 둘이?

“자, 잠깐만. 불침이라고 했나?”

“그렇다니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장강에 더는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했다고? 그럼 지금 장강에 있는 문파들은?”

“모두 장강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군.”

“구파와 오대세가가 장강을 들쑤셔진 벌집 꼴로 만들어 놨는데, 그곳의 수적들을 놔둔 채 물러선다고? 그, 그럼 그곳에 있는 양민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걸 누가 알겠는가.”

“허……. 허허……. 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단 말인가?”

참던 이들의 입에서 결국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거면 차라리 긁어 대지나 말 것이지. 호기롭게 쳐들어가서 꽁지를 빼고 달아났다고? 그것도 모자라서 앞으로 삼 년 동안 장강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굴욕적인 조약까지 맺고?”

객잔 안에 있던 모두의 얼굴에 황망함이 가득했다. 그들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니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수적 놈들이 어찌 나올지 몰라서 그런단 말인가? 수채가 수도 없이 무너졌으니 독이 올라 날뛸 텐데, 그 뒷감당은 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어떻게 정파라는 이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수 있느냐고!”

“나는 못 믿겠네! 내가 아는 소림은, 내가 아는 무당은 그럴 곳이 아니야!”

여기저기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지만, 그렇다고 이미 터진 둑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자네가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한 게 아닐세. 벌써 장강 주변의 사람들은 짐을 싸고 있다더군. 이제 구파와 오대세가도 없으니 수적들의 패악을 막을 사람이 없잖은가. 앉아 있다 죽을 바에야 차라리 고향을 버리겠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야.”

“허……. 허허…… 거참.”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들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몇몇 이들이 사색이 되어 객잔 안으로 박차고 들어와서 같은 소식에 대해 떠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소림과 무당이, 남궁세가가 양민들을 버리고 제 살길을 찾을 줄이야……. 그럼 지금까지 그들이 외쳐 오던 협의는 다 뭐였단 말인가? 그러고도 정파라 자부를 한다고?”

“우리가 왜 지금까지 그들을 지지해 주었는데! 이러면 그것들도 도적놈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사기꾼 같은 놈들이야, 사기꾼! 애초에 그놈들도 돈과 이득에만 정신이 팔린 놈들이었던 게지! 우리가 속았네. 완전히 속았어!”

분노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본디 악인에게 피해를 입었을 때보다 믿고 있던 이들에게 배신당했을 때 훨씬 더 큰 분노를 느끼기 마련이다. 구파와 오대세가에 주었던 믿음이 컸던 만큼 그들의 선택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어마어마했다.

장강으로부터 각 성으로, 한번 퍼진 소문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중원 전체를 휩쓸며 나아갔다.

마교와의 전쟁 이후로 백여 년,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 고요했던 중원을 지진처럼 뒤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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