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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20화 (817/1,567)

820화. 우리 애들은 조금 거칠거든. (5)

콰아아아아아아앙!

암석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튀었다. 그 충격에 절벽은 금방이라도 통째로 무너져 내릴 듯 뒤흔들렸다.

“아아아아악!”

“떨어진다! 아아아악!”

매달려 있던 구파일방의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풍랑을 만난 배처럼 뒤흔들리는 절벽을 꽉 부여잡았다.

몇몇은 이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절벽에서 튕겨 나가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누구도 떨어지는 이를 수습하거나 도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더 큰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릉! 쿠르르릉! 쿠릉!

“저, 저……!”

진현이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장일소와 청명이 처박혀 파고든 부근의 절벽에 거미줄 같은 금이 번져 나가고 있었다.

‘무, 무너진다…….’

쿠르르릉!

모두가 숨을 멈췄다.

이내 상부의 암석이 통째로 절벽에서 떨어져 나왔다.

어지간한 전각보다 더 큰 암석이 서서히 기울며 절벽에서 미끄러지는 광경을 직면한 순간, 전신의 털이 모두 거꾸로 서고 등골이 찌릿찌릿했다. 온몸이 도망치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기울어진 암석은 태양을 가리고, 절벽 아래로 긴 그림자를 컴컴하게 드리웠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마침내 암석이 추락하기 시작하자 모두의 입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피해애애애애애애애애!”

“으아아아아아악!”

이성이 아닌 본능의 외침이었다.

“막아라아아아아아!”

각 파의 장로급이 사색이 된 얼굴로 암석을 향해 일제히 뛰어올랐다.

이런 게 절벽을 굴러 버리면 아래에 매달린 제자들 중 최소 삼 할은 즉사한다. 그 꼴을 보기 위해서 여기까지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게 아니다!

검기, 도기, 기리고 권력.

희고, 푸르고, 노란 기운들이 추락하는 암석을 향해 무수히 쏟아졌다.

콰르르릉! 콰르르르르릉!

거대한 암석이 가공할 공격을 받으며 으스러졌다. 하지만 저렇게나 큰 바윗덩어리를 짧은 시간 내에 모두 부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비켜라!”

그 순간 적을 제쳐 두고 절벽 앞으로 뛰어오른 남궁황과 법계가 목이 터져라 고함쳤다.

남궁황의 검이 백색의 태양을 머금었다.

극성으로 전개된 창궁무애신공(蒼穹無碍神功)이 내력을 남김없이 모조리 끌어 올려 검에 담았다.

제왕검형(帝王劍形) 제왕현신(帝王現身)!

“으아아아아아!”

남궁황이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사람이 만들어 냈다고는 믿기지 않는 크기의 거대한 검강이 남궁황의 검 끝에서 쏘아져 떨어지는 암석에 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백색 검강이 암석에 절반쯤 틀어박힌 순간, 남궁황의 아래에서 법계가 솟구쳤다.

“아―미―타―불!”

그가 허공에서 가부좌를 트니, 이내 전신에서 눈부신 황금빛 서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 서광이 점점 형태를 갖춰 갔고, 이내 법계의 몸을 뒤덮으며 거대한 금불(金佛)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바,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이다!”

“자, 장로님이 반야대능력을!”

놀란 소림 제자들의 탄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법계에게서 웅혼한 불호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몸을 뒤덮은 황금의 형상이 암석을 향해 날아들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암석과 암석이 충돌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추락하던 암석이 일순 그 기세를 잃고 허공에서 멈춰 섰다.

쩌적! 쩌저저저적!

암석의 아랫부분부터 퍼져 나간 금이 이내 전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앙!

조각조각 부서진 암석이 아래로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작게는 사람만 하고, 크게는 집채만 한 바위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광경은 이전과는 또 다른 공포를 안겨다 주었다.

“펼쳐 내라!”

“예!”

대기하고 있던 무당의 장로들이 일제히 허공에 원을 그려 냈다. 희고 검은 검기들이 서로 얽혀 들었다. 십여 개의 거친 태극의 형상이 허공을 화폭처럼 물들인다.

소림과 남궁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소림이 뿜어내는 권력과, 남궁이 발출하는 패도의 검기가 쏟아지는 암석을 연신 부수고, 가르고, 으스러뜨렸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압!”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낸다.

이곳에서 피해를 크게 입는다면 어차피 절벽 위로 올라간다 하더라도 미래가 없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기에 단 한 점의 힘조차 남기지 않는다.

퍼억!

쏟아진 돌무더기에 얻어맞은 진현의 머리가 깨어지며 진득한 피가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흐으…….”

진현의 두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이곳은 어디인가?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고개를 들어 보면 이미 빛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늘을 뒤덮으며 떨어지는 암석과 그 암석들을 향해 날아가는 살기등등한 경기뿐이다.

“아아아아악!”

“사혀어어어어어어어엉!”

이 순간에도 바위의 비에 얻어맞은 이들이 손닿지 않을 아래로 속절없이 추락한다. 진현이 흘린 눈물이 피와 뒤섞여 흡사 피눈물처럼 붉었다.

“이게…….”

뿌드득.

꽉 깨문 그의 입술이 찢겨 피를 보이고 말았다.

“이게 대체 뭐냐고! 이 개 같은 자식들아아아아아아아아!”

참을 수 없는 울분이 터져 나왔다.

검을 익히고 무학을 익혀 강호에 나서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생사를 가르는 것은 오직 검, 일신에 쌓인 무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순진한 착각이었을 뿐이다.

전장에는 마귀가 산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마귀가. 그 마귀는 전쟁에 휩쓸린 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리지 않고 그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울 뿐이다.

저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사형제들은 그토록 익혔던 검을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했다.

이 절벽을 자욱하게 뒤덮은 지독한 악의(惡意) 앞에서는 평생에 걸쳐 쌓아올린 무학조차 무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

절벽 위에 있던 사파들도 절벽의 붕괴에 휩쓸려 연신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적이라 불러야 할 이들. 아니, 지금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증오스러운 이들.

하지만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하는 만인방도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진현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사람의 생명 따위, 이 전장 위에서는 한 푼의 가치조차 없다. 인간이 인간으로 죽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전장이다.

“올라가아아아아!”

그 순간 남궁황이 목소리가 우레처럼 터져 나왔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올라라! 당장 올라가! 더 공격받으면 못 버틴다! 올라라! 당자아아아아앙!”

콰득!

본능적으로 힘이 들어간 진현의 손이 절벽을 파고들었다.

위.

그래, 위다.

사람으로 죽고자 한다면 이 절벽을 아득바득 올라야 한다.

섬뜩한 소리를 내며 이를 갈아붙인 진현의 두 눈에 붉은 핏발이 곤두섰다.

‘나는 살아남는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퍼억!

또다시 떨어져 내린 암석이 머리를 후려쳤지만, 이제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저 손톱이 너덜거리도록 절벽을 움켜잡고 이를 악문 채 위로, 또 위로 올랐다.

* * *

“처, 청명…….”

백천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도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뒤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싸우던 곳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장일소와 청명이 충돌한 여파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아비규환.

아래에서는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 경악스러운 광경도 백천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처…… 청명…….”

절벽이 무너졌다.

그럼 그 절벽 아래로 파고들었던 청명은?

‘아, 안 돼…….’

정처 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망연히 아래를 보던 백천이 다급히 외쳤다.

“빌어먹을! 내려간다!”

“사, 사숙!”

당장 아래로 뛰어내리려는 백천을 조걸이 덮치듯 몸을 날려 붙들었다.

“놔! 이 새끼야!”

“지금은 안 됩니다! 또 무너질지도 모른다고요!”

“그게 뭐 어쨌는데!”

“죽는다고요! 죽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게 어쨌냐고, 이 새끼야! 놔!”

백천은 팔을 휘둘러 조걸을 힘껏 후려쳐 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조걸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하지만 조걸의 손은 여전히 백천을 꿋꿋하게 붙들고 있었다.

“진정하십시오, 사숙!”

급히 달려온 윤종이 조걸을 거들어 백천을 움켜잡았다.

“진정?”

백천의 눈에 섬뜩할 만큼 핏발이 섰다.

살기까지 뿜는 그의 모습에 윤종이 입술을 짓씹다 냉정히 외쳤다.

“사숙만 속 터지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이런 일로 죽을 놈이 아니잖습니까!”

“…….”

“조금만 더 사, 상황을…….”

백천의 살기등등한 눈빛에 윤종은 살짝 말을 더듬다 말꼬리를 흐렸다.

윤종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이건 그냥 대책 없는 믿음이다. 아무리 청명이라고 해도 저 암석이 추락하는 데 휘말렸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저벅. 저벅.

그 순간 한 사람이 무덤덤한 걸음으로 절벽을 향해 다가갔다.

“사고!”

“아니, 저 양반은 또 왜 저래! 미치겠네!”

무표정한 유이설이 미련 없이 뛰어내리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릉!

한차례의 진동과 함께 그녀의 걸음이 멈추었다. 시선이 절벽 아래가 아닌 자신의 발 아래로 향했다.

쿠르릉!

“…….”

빤히 발아래를 바라보던 유이설이 뒤로 한 발 성큼 물러섰다.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그녀가 서 있던 곳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아래에서 한 사람이 솟구쳐 올랐다. 유이설은 반쯤 솟아오른 이의 손을 움켜잡고는 곧바로 당겨 올렸다.

“청명아!”

“청명아아아아아! 이 새끼야아아아아아아!”

나머지 오검이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솟아오른 청명을 향해 달려갔다.

“이……. 이…… 망할!”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그 말이 아니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바닥을 뚫고 나온 청명의 몰골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얼굴은 종횡으로 그어진 자상에 피투성이가 되었고, 상의는 모조리 뜯겨 나가 검게 죽은 것처럼 멍이 든 피부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곳곳의 살이 파여 시뻘건 속살을 드러냈고 흘러내린 피로 바지가 온통 젖어 있었다.

백천이 달려들어 청명의 어깨를 잡았다.

“처, 청명아! 괜찮으냐!”

“…….”

“소소! 빌어먹을, 누구라도 당장 소소를 불러…….”

그때 눈을 뜬 청명의 입이 열렸다.

“사숙.”

“그, 그래! 청명…….”

“비켜 봐.”

그 순간 청명이 백천을 옆으로 밀어 내고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반쯤 의식이 날아가는 동안에도 결코 놓치지 않았던 암향매화검을 움켜잡은 채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었다.

“처, 청명…….”

백천이 입을 다물었다.

무시무시한 살기로 번들대는 청명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몸은 죽어도 눈빛만은 죽지 않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백천이 입을 다문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청명의 눈에 살기가 남아 있다는 건,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서, 설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그들의 앞쪽 땅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바위와 흙더미가 역류하는 폭포처럼 솟구치니 절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다시 한번 크게 진동했다.

흙비가 쏟아졌다.

그 안에서 흘러나온 나직한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백천의 귀를 파고들었다. 심장께가 조여들었다.

“이런……. 이런.”

흙먼지가 가라앉자 그곳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머리에 썼던 관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늘 강박적일 정도로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머리는 산발이 되어 바람이 불 때마다 사자 갈기처럼 휘날렸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도 그의 위엄을 해치진 못했다. 오히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그의 야성이 굶주린 짐승의 목울음처럼 흘러나왔다.

부우욱.

사내는 걸레짝이 되어 버린 옷자락을 잡아 뜯어 버렸다. 그러자 켜켜이 무수한 흉터로 뒤덮인 사내의 상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

백천은 잠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

‘대체 뭐냐…….’

장일소.

너무도 다른 모습의 장일소가 피에 젖은 이를 드러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의 두 눈이 거친 광기를 담고 일렁였다.

“나를…….”

상처 입은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한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즐겁게 해 주는 놈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백천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달려들어 청명을 지키듯 막아섰다. 하지만 검을 움켜잡은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이 사내는, 너무도 거대하다.

살면서 처음 겪는 공포에 영혼이 뒤틀리는 듯했다. 그럼에도 백천은 걸음을 물리지 않았다.

그 순간 청명이 그런 그의 어깨를 짚고 앞으로 나섰다.

“청명…….”

백천은 무어라 만류하려다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지킬 수 있는가?

내가 정말 청명을 지켜 낼 수 있는가? 저 장일소에게서?

“퉷!”

입 안에 가득 찬 피를 뱉어 낸 청명은 입가를 대충 훔치고 검을 틀어쥐었다.

“……착각하는 모양인데.”

청명의 입이 열리니 장일소가 색이 옅은 눈으로 섬뜩하게 바라보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이런 건 싸움이라고 하지도 않아.”

“…….”

청명의 검이 장일소를 겨누었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듯 검 끝이 답지 않게 흔들렸다. 하지만 검을 든 이의 눈빛은 여전히 북해의 빙굴처럼 차갑고 고요했다.

“진짜 싸움이 뭔지 알려 주지. 애송아.”

“하……. 큭……. 큭큭큭…….”

말이 없던 장일소의 입에서 나직하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허탈한 마음에 터진 듯한 작은 웃음은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이 공간을 뒤흔들 만큼 커다란 광소가 되어 오검을 짓눌렀다.

“크하하하하하하핫!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웃음에 실린 광기가 오검의 심장을 콱 부여잡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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