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화. 우리 애들은 조금 거칠거든. (1)
조걸의 등이 어느새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마교의 주교를 상대할 때조차 단 한 번도 패기를 잃지 않았던 조걸은 지금 이제껏 단 한 번도 유례가 없었을 만큼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검을 잡은 손끝이 잘게 떨렸다.
저도 모르게 꽉 문 입술이 희게 질렸다.
마치 거대한 범이 그의 얼굴 바로 앞에서 입을 벌리고 으르렁대는 것 같다. 저 입이 닫히는 순간 목이 뜯겨 나가고 피가 솟구칠 것 같은 압박감에 숨조차 쉬기 힘들다.
“후욱…….”
짧게 심호흡한 그는 마음을 다잡듯이 검을 꽉 움켜잡았다.
‘이게 장일소…….’
독사?
저건 고작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저건 최소한 이무기, 아니, 차라리 악룡(惡龍)이라 불러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조걸뿐만이 아니었다.
‘강하다.’
백천 역시 긴장이 역력한 눈으로 장일소를 주시했다.
‘주교? 아니……. 그 이상이다.’
물론 주교는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그때의 그들이 주교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반쯤 운이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려울 만큼.
하지만 단 한 번의 교환만으로 확연히 알게 되었다. 저 장일소는 주교보다 강하다.
과거의 주교는 말하자면 자연재해였다.
믿기 힘들 정도의 막대한 내력으로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것 같은 이였다.
그러나 그건 굳이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다섯 살짜리 아이가 제 열 배는 되는 거대한 도를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내력의 크기야 하늘에 닿았지만, 초식의 정교함에서는 딱히 대단치 않았다.
하지만 장일소는 다르다.
‘저놈은 그냥 강하다.’
빠르고, 정교하며, 능숙하기까지 하다.
청명이 처음 장일소를 보고 했던 말이 백천의 뇌리를 스쳤다.
- 저건 숫제 괴물이다.
돌이켜 보면 청명은 그 누구에게도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 제정신이 아니라 그런 것이라 넘겨 버리기는 했지만, 저 소림의 방장 앞에서도 제 할 말을 다 하는 건 물론, 아예 삿대질까지 하던 게 청명이다.
그런 청명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했어야 했다.
‘주교보다 명백히 강해.’
마교의 주교보다 강한 이가 세상에 있다는 거야 크게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그 비교의 대상이 이미 부상을 입고 있었던 게 분명한 주교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 대상을 눈앞에 대면하면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백천은 저도 모르게 흘끗 청명의 얼굴을 보았다. 왠지 지금 저놈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
그리고 이내 백천의 몸에선 절로 힘이 빠져나갔다.
청명이 웃고 있다. 즐거워 미치겠다는 얼굴로.
그러니까…… 마치 장일소처럼.
“제법이다?”
청명이 역으로 들었던 검을 고쳐 잡으며 입을 열었다.
“사파 놈이 우쭐대기는.”
“흐음.”
“하지만 거기까지 기어 올라간 건 칭찬해 주지.”
장일소가 가볍게 콧소리를 흘리며 미소 지었다.
“이런……. 천하에 명성 자자한 화산신룡의 칭찬을 받다니,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구나.”
장일소가 나지막이 큭큭거렸다. 몸 곳곳에 패용한 장신구들이 날카롭게 짤그랑거렸다.
청명의 송곳니가 슬쩍 드러났다.
역시 장일소의 여유는 지나치리만큼 거슬렸다.
장일소가 청명을 앞에다 두고 여유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 여유는 익숙함에서 나오는 게 분명하다.
장일소에겐 익숙한 것이다.
이 지옥 같은 전장 속에서 싸우는 게.
누군가가 제 목숨을 노려 합공을 해 오는 게.
건너편에 선 이들이 다른 이들은 몰라도 너만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기를 쏟아내며 발목을 잡아 오는 게.
익숙하다.
백전을 넘어 천전을 치르고, 만전에 이르는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느긋함.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를 밥 먹듯이 치러 낸 이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
그래, 마치…… 과거의 매화검존처럼.
으드드득.
이를 갈아붙인 청명이 자세를 낮추었다. 그의 눈빛이 차갑고 섬뜩하게 가라앉았다. 흡사 작은 맹수와도 같아 보였다.
“건방진 새끼가.”
그의 두 눈이 사냥감을 똑바로 응시하며 쫓고 있었다.
“흐음.”
장일소는 그런 청명을 보며 생각했다.
‘묘하군. 너무도 묘해.’
이놈들은 이상하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정신이 나가 버린 놈들 같다.
그는 지금껏 수많은 이들을 상대해 왔다. 그중에는 강호에서 수십 년간 손발을 맞춰 온 이들도 있었고, 전문적으로 합격을 연마해온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놈들조차 장일소에게 이런 기분을 안겨 주지는 못했다.
완벽하게 이어지는 연계?
말하지 않아도 나뉘는 역할과 자신과 동료의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썰미?
‘하찮은.’
그런 것쯤이야 신물이 나도록 봤다.
장일소를 정말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놈들이 제 목숨을 완전히 옆에 있는 자에게 내맡긴다는 점이다.
자신의 머리로 떨어지는 공격을 누군가 막아 주리라 믿고 공격을 한다?
그래, 뭐 굳이 따지자면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동작 안에 일말의 의심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건 신뢰의 영역이 아니라 광기의 영역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해 왔기에 이 정도의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거지?’
그리고…….
‘저놈.’
장일소의 눈이 뱀처럼 청명을 쫓았다.
가장 괴이한 건 바로 저놈이다.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저놈의 검은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기괴하고 신랄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화산신룡의 검은 뭔가 뒤틀려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커다란 도끼를 들고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검술을 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젓가락을 들고 천하무쌍의 패도(覇刀)를 펼치는 것 같기도 하다.
검술과 내력, 육체가 모두 다 제멋대로 돌아가는 듯한 강렬한 위화감.
‘저게 하나로 합쳐진다면?’
어느 날 저 검이 조화를 이루어 낸다면 대체 무슨 일이 펼쳐지겠는가.
“……오싹하군.”
전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산사태가 자신을 휩쓸어 오는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진다. 커다란 웃음이 얼굴에 번졌고, 이내 그는 이를 드러내며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저놈은…… 아니, 저놈들은 강해진다.
손을 섞어 보니 확실해졌다. 이놈들은 언제고 정파의 정점에 설 것이다. 한 문파에 무려 다섯이다. 이들이 제 가능성을 완전히 개화시키는 날에는 천하의 어떤 문파도 감히 화산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 무한한 가능성을 미리 그의 손으로 찢어발기고 짓밟아 한낱 쓰레기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이건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이다.
“개새끼들인가 했더니, 그래도 호랑이 새끼쯤은 된다는 거구나. 하지만 그게 너희에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호랑이 새끼를 살려 두는 사람이 아니거든.”
짤랑. 짤랑.
그의 마음속에 살심이 일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신구들이 요란하게 울어 대기 시작했다. 끌어 올린 공력에 장신구들이 호응하며 요동치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죽어라!”
스슷.
장일소의 몸이 그 자리에서 퍽 꺼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놀랄 틈도 없이 청명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윤종이 눈을 부릅떴다.
그가 놀란 건 장일소의 신법 때문이 아니라, 청명의 검이 장일소의 목에 닿아 있어서였다. 마치 장일소가 그곳에 그리 나타나리라 미리 예측한 것처럼.
카가앙!
장일소의 손목에 빽빽이 들어찬 팔찌들과 청명의 검이 맞부딪쳤다. 빠르게 등을 노린 백천의 검 역시 장일소의 다른 손에 콱 잡혔다.
“느려.”
장일소가 가볍게 손목을 뒤틀자 맞닿은 검들이 장난감처럼 튕겨 나갔다.
콰앙!
이내 장일소의 일 권이 백천에게로 향했다. 백천은 빠르게 검을 세워 장일소의 권을 막아 냈지만 그 여력만은 막을 길이 없었다. 백천의 몸이 단번에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동시에 비호처럼 청명을 노리며 날아든 장일소가 수리의 발톱처럼 구부린 손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촤아아아악!
청명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뒤로 날렸다. 가까스로 직격은 피했지만, 그의 앞섶이 통째로 찢겨 나가며 가슴과 배에 다섯 줄기의 붉은 혈흔이 번졌다.
청명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바닥에 틀어박힌 경기는 그들이 선 절벽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큭!”
피어오른 먼지구름 사이로 돌진한 유이설이 검을 횡으로 그었다. 전력으로 운용된 자하신공이 실린 검은 지금까지 유이설이 보여 주었던 그 어떤 검보다 강력했다.
하나.
카가가가각!
금속끼리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검이 그대로 허공에서 멈추었다.
유이설의 눈이 부릅떠졌다.
먼지구름이 걷히는 순간, 그녀는 보았다. 태연하게 선 장일소의 손이 그녀의 검을 움켜잡고 있는 모습을.
“흠.”
장일소는 한 손으로 제 턱을 매만지며, 손에 잡은 매화검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좋은 검이네.”
“이익!”
퍼어어어억!
유이설이 뭔가 반응하기도 전에 장일소의 발이 그녀의 배에 틀어박혔다.
울컥.
일격에 내장이 뒤집힌 유이설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너희 같은 조무래기들이 쓰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말이야.”
서서히 먼지구름이 가라앉았다.
완벽한 합격이었다. 화산의 제자들이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담았다.
하지만 그 합격이 너무도 간단하게 와해됐다.
그저 그들 사이로 파고드는 것만으로 화산의 합격을 무위로 돌려 버린 장일소가 나른한 태양 아래를 느긋하게 거니는 범처럼 미소 지었다.
“이곳에서 이런 검을 쓰는 게 어울리는 이는 한 명뿐이지.”
저벅. 저벅.
범의 발톱에 긁히기라도 한 듯, 가슴에 상처를 새긴 청명이 검을 역수로 잡고 장일소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장일소는 웃음을 흘렸다. 얼음장같이 가라앉은 청명의 눈을 보는 순간,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모를 일이군.’
왜 이렇게까지 전율이 이는지 그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가능성 따위야 말 그대로 그저 가능성에 불과하다. 직접 손으로 움켜잡아 이루어 내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현재의 청명은 결코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이. 말하자면 하나의 장기 말 이상의 가치는 없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저 모습에서 자꾸 눈을 뗄 수가 없다.
눈을 돌리는 순간, 저 검이 목에 꽂혀 들어올 것 같고, 이내 머리를 통째로 뜯어낼 것만 같은 위기감에 온몸이 오싹오싹했다.
“퉤!”
온통 한 사람에게만 쏠려 있던 장일소의 시선을 뜯어 낸 것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온 낮은 소리였다.
유이설.
그에게 걷어차여 날아갔던 유이설이 무감한 얼굴로 피를 뱉어 내며,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내부가 완전히 뒤틀렸을 텐데?’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저리 태연히 일어난다고?
아니, 설사 일어난다고 해도 그만한 공격을 받고도 싸우겠다는 의지를 전혀 잃지 않았다?
심지어 유이설과 청명뿐만이 아니었다.
저벅. 저벅.
장일소의 권을 얻어맞고 날아갔던 백천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다시 걸어왔고, 윤종, 조걸 역시 결의 어린 눈으로 그를 조여 오고 있었다.
제 영역에 침범한 범을 쫓아내기 위해 에워싸는 늑대들처럼.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핫!”
결국 장일소의 입에서 다시 한번 광소가 터져 나왔다.
설마 이런 곳에서 이놈들을 상대로 피가 끓는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이야.
저 무당의 허도도 아니고, 남궁의 남궁황도 아닌, 화산의 애송이들에게!
“장일소.”
“으음?”
청명이 비뚜름하게 웃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애들은 조금 거칠거든.”
“그거 듣던 중…….”
장일소의 두 눈에 광기가 급격하게 차올랐다.
“반가운 소리로구나.”
장일소의 전신에서 경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의 붉은 장포가 부풀어 펄럭이고, 전신의 장신구들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짤랑거렸다.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도 오검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파아아아앗!
다섯 줄기의 섬전이 장일소를 향해 포기 없이 다시금 쇄도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노을빛 경기가 마치 붉은 매화의 다섯 꽃잎처럼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