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화. 모가지 딱 대라, 이 새끼야! (4)
남궁황의 두 눈에 경악이 어렸다.
어마어마한 도기가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흡사 시야가 모두 먹빛으로 물드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큭!”
남궁황은 벼락같이 발검하여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도기 쪽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남궁황이다!”
커다란 사자후와 함께 남궁황의 검이 전방의 도기를 일도양단(一刀兩斷)한다. 태양 같은 백색의 검강(劒剛)이 검은 어둠을 갈라내었다.
“하아아아아아압!”
촤아아아아아악!
백색의 검기에 둘러싸인 남궁황이 검은 도기를 가르며 솟구치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장을 끓게 만들었다.
하지만.
“놈!”
흑룡왕의 언월도가 다시 한번 내리그어지자 기세를 더욱 더한 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하아아아아압!”
남궁황이 사자후를 터뜨리며 쏟아지는 도기를 갈랐다.
흑룡왕의 도기는 그가 왜 장강의 신으로 불리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지만, 남궁황 역시 왜 남궁세가라 천하제일가로 불리는지를 그 무위로 확연하게 증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개인의 무위를 증명하는 전투가 아니다. 그 점이 둘 사이의 희비를 갈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남궁황의 검에 좌우로 갈라진 흑룡왕의 검은 도기가 그 기세를 전혀 잃지 않고 아래에 있는 이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피, 피해라!”
“으아아아악!”
별안간에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도기에, 소림과 무당의 제자들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곳은 절벽 위다. 평지였다면 어렵지 않게 피했을 공격도 이곳에서라면 그 위력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미처 피해 내지 못하고 도기에 휩쓸린 이들은 피를 뿌리며 맥없이 추락했다.
“진회!!”
“혜명! 혜명아아아!”
소림과 무당.
이름만으로도 천하일절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굴지의 문파.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신주오패의 수장인 흑룡왕이 내뿜는 도기를 감당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절벽을 오르던 이들이 줄줄이 피를 뿌리며 추락했다.
쏟아지는 기름 폭포와 화살 비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흑룡왕의 단 일 도가 해내고 만 것이다.
“이!”
남궁황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흑룡와아아아아아앙!”
“크하하하하하핫!”
흑룡왕이 커다란 광소를 터뜨렸다.
“표정 한번 볼만하군, 제왕검?”
절벽에 다시 달라붙어 아래를 내려다본 남궁황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소림과 남궁뿐 아니라 그 아래에 있던 남궁세가도 흑룡왕의 도기에 피해를 입었다.
절벽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보니 달군 숯을 삼킨 듯 배 속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남궁황은 그 분노를 단번에 터뜨리지 못했다.
사파.
장강수로십팔채.
그동안 그가 상대해 온 장강수로채는 빈말로도 강한 문파라 말하기 어려웠다.
수적들의 수준은 감히 남궁검대에 비할 바가 아니고, 수채의 채주는 남궁세가의 장로들에게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일개 검대의 대주들에게도 못 미치는 급이었다.
그렇기에 내심 이들을 경시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흑룡왕의 도기는 남궁황의 그런 자만을 단숨에 깨뜨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흑룡왕.’
수로채를 지배하는 장강의 왕.
그는 격이 다르다. 적어도 그만은 다른 수적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남궁황의 검기는 일 검에 산을 가르고, 이 검에 강을 베어 낸다. 하지만 조금 전 흑룡왕의 도기만은 완전히 베어 내지 못했다.
‘어떻게?’
저 조잡한 이들 사이에서 어찌 저런 인물이 나온다는 말인가?
정파는 소속된 문파의 모두를 키워 내지만, 사파는 규격이 다른 인간이 그들을 밟고 올라선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뼈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남궁가주!”
순간 벼락같이 고함을 지른 허도진인이 남궁황을 스치며 솟구쳤다. 그 덕에 움찔하며 퍼뜩 정신을 차린 남궁황이 다시 이를 악물었다.
‘내가 겁을 먹기라도 했다는 거냐?’
그를 지나쳐 가는 허도진인을 보는 순간 전신의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허도오오오오오오!”
남궁황이 다시 한번 고함을 터뜨리며 절벽을 박차고 올랐다.
그런 그의 바로 옆으로 법계가 재빠르게 뒤따랐다.
허도진인, 남궁황, 법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대표하는 절대의 무인들이 사파의 지존들의 목을 베기 위해 단숨에 절벽을 차고 올랐다.
“으하하하하하하핫! 이 애송이 놈들이!”
흑룡왕의 두 눈에 뜨거운 열기가 차올랐다.
“원한다면 내가 상대해 주마!”
흑룡왕이 바닥을 박차며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 육중한 거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상상 이상의 위압감을 자아냈다.
“감히!”
허도진인이 이를 갈며 검을 날리려는 그 순간이었다.
“네 상대는 나겠지!”
차갑고 소름끼치는 음성과 함께 날카로운 검기가 허도진인의 목을 향해 파고들었다.
카가각!
검을 부드럽게 휘둘러 날아드는 검기를 밀쳐 낸 허도진인의 두 눈이 이채를 띠었다.
“만금대부!”
어느새 절벽에서 내려온 만금대부가 마치 두 발에 아교라도 붙인 양 절벽에 수직으로 서서 느긋하게 허도진인을 바라보았다.
“무당 장문인 허도진인의 목이라면, 내 목을 걸 정도의 가치는 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장사야.”
허도진인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수전노.
모든 것을 거래하는 지옥의 상인.
가장 검은 곳을 걷는 행상인.
만금대부를 수식하는 말이야 너무도 많지만 지금 허도진인의 머리에 떠오르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사파제일검(邪派第一劍).”
“허울이지. 한 푼짜리도 안 되는.”
허도진인이 검을 고쳐 잡았다.
‘빌어먹을.’
그리고 슬쩍 좌우를 훑어보았다.
격전의 여파, 그리고 청명의 활약으로 불줄기는 대부분 꺼졌지만, 아직 꺼지지 않은 불줄기들이 절벽 아래쪽을 향해 타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발을 뺄 도리가 없다.
만금대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파가 말해 주고 있었다. 등을 돌리는 순간 그의 척추가 끊어질 것이다. 이 섬뜩한 살기와 끈적한 기세가 그의 발목을 움켜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아무리 그가 무당의 허도진인이라고는 하나, 상대가 사파제일검 만금대부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무당의 허도! 네 목숨을 가져가마!”
“좋지. 어울려 보자고.”
만금대부와 허도진인이 절벽을 평지처럼 내달려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흑룡왕의 언월도와 남궁황의 장검이 맞부딪치는 기파를 뚫고, 법계가 절벽 위로 솟구쳤다. 유려한 그의 신법은 저 허도진인과 남궁황을 오히려 능가하는 면도 있었다.
‘위를 점거해야 한다! 더 이상 희생을 늘릴 순 없어!’
법계가 이를 악물고 위로 솟구치는 바로 그때였다.
“소림의 연대구품이라.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순간 그의 머리 위에서 수십 개의 손 그림자가 나타난다.
법계는 순간 두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수십 개의 장영을 날리는 정도야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무당의 일대제자만 되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십 개의 손 그림자가 모두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하앗!”
법계의 양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동시에 그의 손끝을 따라 수십 개의 장영이 천수관음(千手觀音)의 손처럼 피어났다.
콰아아아아앙!
두 장영이 서로 얽히며 충돌했다.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한 법계가 아래로 십여 걸음 남짓이나 뒷걸음질을 쳤다.
“…….”
경악의 빛이 어린 법계의 눈에, 느긋하게 뒷짐을 진 채 절벽을 걸어 내려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경신법이라면 나도 그리 뒤지진 않지.”
“……천면수사.”
하오문의 문주, 천면수사가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법계는 굳은 얼굴로 자신의 손을 주물렀다.
소림의 권은 천하제일. 소림의 장 역시 말할 것 없이 천하제일이다. 하지만 조금 전 충돌의 여파는 그의 손목에 명백한 고통을 남겼다.
“……그게 그 유명한 천면수(千面手)요?”
“영광이야. 아주 영광이지. 소림의 법계가 내 독문무공을 알아봐 주고 말이야.”
천면수사가 즐겁다는 듯 낄낄대며 웃었다.
“하지만 소림의 관음수(觀音手)는 듣던 것만 못한 것 같군. 무학이 약한 것인지, 사람이 약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미타불.”
법계의 눈빛이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둘 다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오, 시주.”
“하하하핫. 너희 중놈들도 호승심이 있더냐? 그럼 어디 덤벼 보거라!”
천면수사가 위쪽으로 가볍게 뛰어오르며 양팔을 넓게 펼쳤다.
그러자 법계 역시 단호한 얼굴로 반장을 하며 위쪽으로 솟아올랐다.
수영과 장영.
절벽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을 사람이 만들어 낸 손 그림자들이 가리자 절벽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각 세력을 대표하는 절대의 고수들이 이 가파른 절벽위에서 서로 맞붙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절벽 위가 금세 커다란 폭음과 기의 파편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뭔…….”
절벽을 기어오르던 이들은 저마다 그 광경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절대자들에 대한 이야기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저만한 고수들이 진심으로 맞붙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강호가 평화에 젖은 지 어언 백년. 사파와 정파가 서로 전쟁을 벌인 것도 백 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절대고수는 각 문파의 명예를 대변한다. 한 번의 패배로 잃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이들이다. 그렇기에 쉽사리 서로 손을 섞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문파를 지켜 내기 위해 반드시 적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콰르르르르르릉!
검강과 도강이 맞부딪치고, 수강과 권광이 폭발한다.
기와 기가 충돌하는 여파에 폭약이 터지지도 않았는데 절벽 전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저게…… 절대의 영역.”
무당 일대제자 무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절대와 절대가 충돌하는 장엄한 광경을 두 눈으로 본 순간, 스스로에 대한 초라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장문인께서 저리도 강하셨단 말인가?’
검과 검이 충돌하며 튕겨 나온 기의 파편이 절벽을 파고들어 깊은 상흔을 남긴다. 그가 전력을 다해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인 광경이 단순히 여력만으로도 종횡으로 그어지고 있었다.
허도의 검은 진정으로 놀라웠다.
하지만 만금대부의 검 역시 그런 허도진인의 검에 단 한 치도 밀리지 않는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백중세.
흑룡왕과 남궁장천의 충돌도, 법계 선사와 천면수사의 경합도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접전이었다.
콰르르르르르르릉!
절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뒤흔들리고, 부서진 절벽의 파편이 흡사 산사태처럼 쏟아졌다.
“바짝 달라붙어!”
“떨어진다아아아!”
무진은 이를 악물고 절벽에 들러붙었다.
저길 뚫고 위를 향한다? 목숨이 열 개가 아니라 천 개라도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라는…….’
그리고 그때였다.
“하핫!”
지금의 상황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무진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격하게 고개를 돌린 무진은 그 순간 보았다.
청명, 그리고 그를 호위하듯 에워싼 화산오검이 절벽을 내달려 장일소를 향해 단숨에 달려드는 모습을 말이다.
“목은 잘 닦아 놨냐, 이 빌어먹을 새끼야!”
무진의 입에 충격에 쩍 벌어졌다.
절대와 절대가 격돌하는 광경에 모두가 시선이 팔리고 오금이 얼어붙은 가운데 단 한 무리, 저 화산오검만이 그 흐름에 호응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은 이미 그 영역에 속해 있다는 듯이.
“화…… 화산신룡!”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무진의 고함과 동시에, 청명이 절벽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장일소오오오오오!”
섬전처럼 날아든 청명의 검이 장일소의 머리 위로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하핫!”
장일소가 광소를 터뜨리며 손을 들어 날아든 청명의 검을 막아 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의 손가락마다 끼워진 반지들이 청명의 검과 충돌하며 커다란 굉음을 빚었다.
일그러진 청명의 얼굴.
그리고 비웃음을 머금은 장일소의 얼굴.
검과 손을 마주 댄 두 사람의 눈빛이 격돌했다.